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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밥 딜런,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마저 음악이 된다

작성 2018.07.28 14:42 조회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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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SBS연예뉴스 |이정아 기자]악기를 조율하는 소리마저 음악이 된다.

뮤지션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음유시인 밥 딜런(76)이 27일 오후 8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2018 밥 딜런 내한공연 Bob Dylan & His Band'라는 타이틀로 역사적인 내한공연을 펼쳤다.

이번 내한공연은 지난 2010년 3월 3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진행된 첫 공연 이후 8년 만에 성사된 무대다.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펼쳐지는 한국 공연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더 뜨거운 관심이 모아졌다.

밥 딜런의 내한공연장으로 가는 길, 하늘 높이 모습을 드러낸 붉은 달이 이 날의 특별함을 더해주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 신비한 느낌을 갖고 공연장에 들어섰고 밥 딜런은 오후 8시 정각에 무대에 올랐다. 그는 숨죽이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 앞에 섰고 그의 곁에는 그의 전설적인 밴드가 함께했다.

밥 딜런이 무대에 오르자 객석의 조명은 꺼졌고 그는 숨을 한 번 고르더니 그대로 공연을 시작했다. 이후 앙코르 곡까지 2시간 동안 객석의 조명은 한 번도 켜지지 않았고 밥 딜런은 단 한마디의 인사도 없이 오로지 약 20여 곡을 피아노를 치며 노래로만 함께 호흡했다.

'올 얼롱 더 워치타워'(All along the watchtower)로 공연의 포문을 연 밥 딜런은 '돈트 띵크 트와이스, 이츠 올 라이트'(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순 애프터 미드나이트'(Soon after midnight), '가터 서브 섬바디'(Gotta Serve Somebody)까지 쉼없이 달렸다.

객석에서는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돈트 띵크 트와이스, 이트 올 라이트',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Make you feel my love), 앙코르 곡으로 나온 1960년대 저항의 상징,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가 나올 때는 함께 따라부르며 이 시간을 즐겼다. 익숙한 곡이 나올 때는 객석이 떠나갈 듯한 박수도 터져나왔다.

하지만 아쉬움을 토로하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내한한 아티스트에게 기대되는, 한국에 온 소감이라던지, 하다못해 짧은 인사말조차 없었다. 게다가 워낙 자유로운 편곡 탓에 원곡의 느낌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그래서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어떤 관객은 너무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어서 다 한 곡인 줄 알았다는 농담마저 했다. 게다가 거친 음색도 낯설게 느껴졌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 와중에 국내에 '고엽'(枯葉)으로 알려진 샹송 가수 이브 몽탕의 원곡 '오텀 리브스'(Autumn Leaves)를 밥 딜런이 부른 대목은 반가움까지 더해져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피아노에 앉아 있던 밥 딜런은 무대 한 가운데에서 스탠딩 마이크를 들고 노래했는데 그 단촐한 무대 구성이 이 곡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다. 밥 딜런이 스탠딩 마이크를 드는 순간 무대 위에 가을이 내린 듯한 기분이랄까. 밖에 떠올라 있던 붉은 달이 저절로 연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너무 심하게 편곡을 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 속에서도 밥 딜런의 무대가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해 박수를 보냈고 공연 중간 중간 잠시 다음 무대를 위해 불이 꺼진 사이 잠깐잠깐 악기를 조율하는 밥 딜런과 그의 밴드 소리는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줬다. 나무를 태우는 그런 향기 같은 게 난다고 할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그리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향기가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밥 딜런은 그렇게 8년 만의 내한 공연을 마쳤다. 끝까지 국내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곡이라고 할 수 있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는 들을 수 없었다. 아쉬웠지만 이 또한 괜찮다. 다음 공연을 또 기다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쉽지만은 않았던 거장과의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 됐다. 사실 마냥 즐길 수 있는 즐겁고 쉬운 공연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솔직히 중간중간 너무나 난해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공연이 끝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여운이 느껴지는 걸 보면 역시 그는 자신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깊은 향기를 남기는 아티스트인가 보다.

밥 딜런

밥 딜런은 이날 한국 공연을 거쳐 29일 후지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오른 뒤 대만,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에서 투어를 이어간다.

밥 딜런은 데뷔 이래 단순히 명성에만 그치지 않고 38개의 스튜디오 앨범을 포함하여 650여 곡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음반 판매량만 1억 2천 500만 장에 이르는 밥 딜런은 발표하는 앨범마다 음악사의 위대한 업적이라 일컬어지며 전 세계의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1991년에는 그래미 어워즈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시적인 가사와 곡을 통해 팝 음악과 미국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친 공로로 퓰리처상 특별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2012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영예인 자유훈장(Medal of Freedom)을 받았고 연이어 2013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도 거머쥐며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2016년 12월,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지 20년 만에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위대한 미국 음악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했다”는 평가와 함께 밥 딜런은 뮤지션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노벨상 수상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   

happy@sbs.co.kr
<사진>위 소니뮤직/아래 에이아이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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