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이정재를 오해하고 있었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8.15 07:47 수정 2018.08.16 10:54 조회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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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이정재는 데뷔 초 스타덤에 올라 26년째 톱스타인 보기 드문 배우다. '대중의 스타'를 넘어 '스타들의 스타'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타고난 외모와 세련된 패션 감각, 따뜻한 매너를 가진 그는 스타라는 유,무형의 이미지에 완벽히 부합되는 인물이다. 

20대에는 뜨겁게 타오르는 청춘의 이미지를 구현하며 대중들을 열광시켰고, 30대에는 연기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며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특유의 귀족적이고 과묵한 이미지 덕분에 가까이 있어도 멀게 보이는 거리감이 존재했다.

이정재 역시 대중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알고 있다. 때문에 자신이 연기한 '신과함께'의 염라대왕에 '염라언니', '염라스틴', '염라렐라' 등의 별명까지 붙이며 호감을 표시하는 관객들의 반응에 행복해했다. 

한때 연기 활동과 사업을 오가며 '마이 웨이'를 가는 것 같던 이정재는 불혹을 넘어서면서 본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통해 관객과 자주 만나고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반가운 변화다.

이야기와 캐릭터만 매력적이라면 분량을 따지지 않고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작품을 매력적인 동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 "관객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의 발현이다.

신과함께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연속 천만 관객을 동원한 '신과함께'(감독 김용화) 시리즈는 이정재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영화다. 김용화 감독의 데뷔작 '오! 브라더스'(2003)에 출연했던 이정재는 '신과함께' 시리즈로 14년 만에 재회했다. 이정재는 김용화 감독의 데뷔와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며 뿌듯해했던 1인이었고, 늘 그의 작품 제안을 기다렸다. 그러나 다시 만나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소방관 역할에 특별 출연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알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스태프들 사이에서 "이정재가 해준다고 하는데 기왕이면 좀 더 많이 나오는 역할을 권해봐라"는 이야기가 있었나 봐요. 2~3일 후 다시 전화가 와서 "염라대왕이라는 역할이 있는데 그걸 해주면 안 될까?" 하더라고요. "그건 얼마나 나오는 건데?"라고 물으니 "그것도 얼마 안 나와"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시나리오가 두 개가 온 거야. 처음엔 모니터해달라는 건가 싶더라고요. 읽어보니 염라대왕이 2편까지 나오더라고요. 단순히 가볍게 몇 번 등·퇴장하는 역할이 아니란 걸 알았죠."

'신과함께'의 염라대왕은 가장 만화적인 캐릭터인 동시에 이국적인 캐릭터다. 삼차사(강림, 해원맥, 덕춘)와 나머지 인물들은 그나마 현존할 것 같은 이미지와 캐릭터라면 염라대왕은 다른 차원의 인물이라는 느낌이 외형부터 물씬 풍긴다.

영화의 비주얼과 예고편이 처음 공개됐을 때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염라대왕으로 분한 이정재였다. 한국에서도 이런 신화적인 비주얼을 구현 할 수 있다니. 아니 소화 가능한 배우가 있다는 사실에 모두 놀랐다.

신함

"처음에 분장 테스트받으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12가지 정도의 디자인이 있더라고요. 대머리도 있고 파마머리도 있었다. 수염도 짧은 것부터 배꼽까지 내려오는 긴 것까지 있었어요, 화관도 마찬가지로 다양했어요.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어 고민하던 중 김용화 감독이 와서 네 가지 모습을 추렸는데 대머리 분장테스트는 없었어요. 스타일이 이질적이라서 불안했다기보다는 이게 나한테 어울릴까 하는 우려가 있어 테스트를 여러 번 했어요. 내가 어색한 것보다는 관객이 보기 불편하지 않은 게 중요했죠. 스태프들이 잘 도와준 덕분에 지금의 염라대왕 비주얼이 나올 수 있었어요."

이정재는 2편에 대해 큰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김용화 감독에게 처음으로 한 이야기가 '정성을 들인 게 너무 잘 보인다. 수고 많았고 고맙다'였어요. 1편도 그렇지만 2편에서는 세밀한 부분까지 다 공을 들였다는 게 보여서 좋았거든요. 현장에서 촬영하신 분들도 고생하셨지만, 후반 작업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노고가 느껴졌어요"라고 평가했다.

말이 특별출연이지 사실상 주연에 가까운 조연이었다. 이정재는 "제 이름은 출연진 순서에서 여섯, 일곱 번째에 나와야 하는데 감독님이 '그리고 이정재'라는 크레딧으로 배려를 해주셨어요. 조연이 아닌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리며 고마움의 표시를 하신거에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 마음이 고맙죠."라고 웃어보였다. 

염라대왕으로 분한 이정재는 분량과 상관없이 등장마다 스크린을 장악하는 존재감을 발산했다. 결과물을 만들어낸 본인만의 과정은 치열했을 터.

"어차피 죽어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 인물이고, 죄를 심판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서 근엄함이라던가 무서움보다는 인간의 죄를 잘 이해하고, 그 죄에 대해 안타까움을 좀 가지고 있는 인물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런 캐릭터로 보이면 이야기 안에서 긴장도가 떨어질 것 같더라고요.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끌고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캐릭터가 적절하지 않았나 싶어요. 보통 나오는 신이 많으면 한 두 신은 못해도 다음 신에 잘하면 되는데 신이 많지 않은 작품에서는 나오는 신마다 아주 정확한 포인트를 잡고 연기해줘야 해요. 그래서 현장에 가면 먼저 촬영한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하고, 어떤 감정을 펼쳤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감독님의 연출 방향도 다 체크했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연기 톤을 맞춰나갔습니다."

이정재

염라대왕의 전매특허이자 이정재밖에 할 수 없는 두껍고 울림이 좋은 발성에 대해서는 "목소리도 캐릭터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수염을 어떻게 붙이네 옷을 어떻게 입네 고민하듯 목소리 색깔도 고민을 많이 해야죠. 신인 때야 캐릭터 구축에 미숙하기 마련인데 오랜 기간 연기를 하면서 내 캐릭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를 조금은 알아가는 것 같아요.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켜가면서 연습도 많이 했고요."라고 밝혔다.

이정재는 자신의 굉장한 무기가 된 근사한 목소리 탄생의 배경도 공개했다. 그는 "나이가 드니까 극 중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극적 긴장감을 뜨겁게 높이는 역할을 주로 맡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하지?', '뭘 더 연습하지?' 등 표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고 발성에서도 생각의 전환이 이뤄진 것 같아요. 위엄 넘치는 캐릭터를 맡았다고 해서 인상 쓰기는 싫고, 가만히 있어도 존재감을 발산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목소리의 변화를 생각했어요."라고 전했다. 

"염라의 목소리 톤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승세계에서도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거든요. 그러나 막상 촬영하는 현장에서는 공간감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키우고 색깔을 두껍게 설정했어요. 그래서 촬영장 가기 전에 차 안에서 목을 충분히 풀고 가기를 반복했고요."

만약 망자가 돼 7개의 지옥 재판을 받아야 한다면 이정재가 가장 두려운 지옥은 어디일까. 그는 '나태지옥'을 꼽으며 "관객마다 어떤 지옥이든 걸리는 데가 있기 마련일 텐데 나의 경우 나태지옥 장면들을 보면서 '그래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게을러지면 안 된다는 일종의 책임감도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연기를 할 거면 더 좋은 모습,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거죠."라고 부연했다.

이정재

이정재는 올해로 데뷔 26년 차다. 이 말은 데뷔 당시 나이(20살)보다 배우로 살아온 기간이 더 길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우로서 그가 멋지다고 느끼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근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에게는 물리적 나이의 축적이 주는 불안함이나 조급함은 있을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빼고는 나름 잘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걱정은 해요. 신선함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항상 관객들에게 신선해 보이고 싶은데 '어떤 노력을 해야 하지?' 같은 고민이죠. 그건 작품을 고르는데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염라대왕을 선택한 것은 김용화 감독과의 친분도 작용했지만 어디서도 본적 없는 캐릭터라 나에게도 큰 도전이 됐기 때문이에요. 26년간 배우로 살아오면서 지칠 때도 있었지만 일하면서 에너지를 얻었던 것 같아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현장이 편해지고, 스태프들이랑 동료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컷 한컷 찍어가는 것에 더 큰 재미를 느껴요."

그렇다면 영화의 부제인 '인과 연'은 이정재에게 있어 어떤 의미일까. 그는 "관계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요.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에게 더 좋은 감정으로 대해야 한다는 생각? 역시 남는 건 사람이니까요."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그런 점에서 정우성과 함께 이끌고 있는 소속사 아티스트 컴퍼니에 대한 애착도 남다를 것 같다. 이정재는 "처음 창립 의도는 배우를 잘 이해하고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어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아요. 배우 영입도 직접 하냐고요? 제가 아는 분들이 회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하죠. 생각도 없는데 가서 팔을 잡아당기진 못하지만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정재

"배우들이 주축이 된 회사다 보니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요. 오늘같이 무더운 날이면 구성원 전체가 모인 카톡방에서 '무더운 여름이지만, 힘내서 촬영 잘하셔라'고 한마디만 던져도 각자의 이야기가 쏟아져요. 그리고 소속 배우의 시사회가 있으면 시간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응원하러 가기도 해요. 끝나고 맥주도 한잔하면서 영화 이야기도 나누고 덕담도 하고. 그런 게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감정적으로 느끼는 따뜻함은 커요."

동료이자 사실상의 공동 대표인 정우성과의 의견 출동은 없는지, 있다면 견해는 어떻게 좁혀가는 지도 궁금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데뷔 초부터 20년 넘게 절친으로 지내오고 있지만 상호 존중의 의미로 존댓말을 쓰고 있다.

"의견이 다를 수는 있어요. 그럴 때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요. 각자가 낸 아이디어라도 상대방의 의견이 더 좋다는 게 보이고, 누군가 한 명이 인정을 하면 합의점이 도출돼요. 저희는 굉장히 민주적인 의사 결정을 내린답니다.(웃음)"

이정재는 최근 몇 년간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의도적으로 관리를 한다고 해도 이같은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기는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 훌륭한 작품, 성공적인 평가를 이뤄냈다. 그 비결에 대해 "자극이 되는 동료들이 있어서죠. 이번 영화의 경우 하정우, 주지훈, 김동욱, 마동석, 김향기 등의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고 겸손한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 최근 이정재의 작품을 보면 연기를 잘할 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6년 차의 배우가 타성에 젖지 않고 관성화된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건 굉장한 미덕이다. 정작 본인은 여전히 배고프고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연기가 더 빨리 늘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내가 연기하는 내 캐릭터인데도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연출자, 동료 배우,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면서 '이런 효과를 얻는구나' 매번 느껴요.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아이디어도 일을 해야지 나오거든요."

이정재

'신세계'의 딜레마에 빠진 잠입 경찰 이자성, '관상'의 야욕에 찬 수양대군, '암살'의 조국을 저버린 매국노 염석진, '신과함께'의 망자를 심판하는 염라대왕까지 관객의 뇌리에 깊게 박힌 캐릭터의 존재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만의 시크릿 레시피를 물었다.

"첫 번째 과연 팀플레이가 잘되고 있는지, 즉 상대와 호흡이 잘 맞는지를 생각하며 연기를 하려고 해요. 전체적인 이야기에서 내가 잘 표현하고 있는가가 주안점이 되는 거죠. 팀플레이를 잘 하다 보면 관객도 그걸 느끼더라고요. 그 안에서 배우가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는지를 연동해서 느끼시는 것 같아요. 이번 '신과함께' 시리즈 역시 팀플레이가 정말 좋았어요. 1편에서는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김동욱, 김향기 등의 배우들이 제 역할을 너무나 훌륭히 소화해줬고, 2편에서는 그 멤버들에 마동석까지 합류해 캐릭터 스펙트럼을 잘 넓혀줬어요. 이런 팀플레이에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저도 염라대왕 역할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쿠키 영상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했다.

"첫 번째 쿠키 영상은 시나리오에는 없었어요. 어느 날 김용화 감독이 현장에서 이런걸 쿠키영상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면서 간단히 찍자고 하더라고요. 1,2편 합쳐 1년 가까이 이어진 촬영이었는데 거의 마지막 날 찍었던 거로 기억해요. 두 번째 쿠키는 시나리오에는 있었지만 마지막에 들어갈 줄은 몰랐어요. 완성본을 보고 깜짝 놀랐죠! 그러면서 김용화 감독에게 또 한 번 감탄했답니다."

이정재

이정재는 14년 지기 김용화의 도전과 모험을 옆에서 지켜본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인터뷰 내내 드러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판타지 블록버스터 게다가 1,2편 동시 촬영이라는 최초의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었음을 뿌듯해하기도 했다.

"'신과함께'를 촬영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을지 몰랐어요. 2편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를 하고 언론의 반응을 봤을 때는 3,4편을 만드는 게 꿈은 아니겠구나 싶더라고요.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3,4편도 출연할 용의가 있냐고요? 한다면 계약서는 제대로 써야죠. 하하"

화려하고 세련된 스타, 저 멀리서도 반짝거리지만 내 손에는 닿지 않을 것 같았던 이정재의 이미지는 섣불리 만든 선입견이라는 생각이 내내 드는 인터뷰였다.

이정재를 오해하고 있었다. 그는 눈부시게 빛나는 '별'이기 전에 따뜻하고 정 많은 '인간'이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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