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주지훈의 두 얼굴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8.22 16:46 수정 2018.08.22 17:44 조회 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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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그야말로 주지훈의 전성시대다. 뜨고 지는 일이 빈번한 연예계에서 정상의 자리를 찍고 내려온 스타가 다시 한번 정상에 오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지훈은 데뷔 초였던 20대 중반, 드라마 '궁'(2006)으로 국내는 물론 아시아를 호령하는 한류스타로 큰 사랑을 받았다. 굵고 짧은 인기였다. 한 번의 실수로 나락에 떨어진 주지훈은 30대에 접어들어 배우로 정상을 향해 도약하고 있다. 배우로 성장하자 인기도 선물처럼 따라오는 중이다. 

현재 극장가에서는 주지훈의 전혀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는 두 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신과함께-인과 연'(감독 김용화)에서는 차사 해원맥을, '공작'(감독 윤종빈)에서는 보위부 정무택을 연기했다. 전자는 저승의 세계를 다룬 판타지 영화, 후자는 드라마틱한 실화를 그린 첩보극이다.

극과 극의 장르 영화에서 각기 다른 이미지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주지훈을 보면 그 스펙트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언제 사그라들지 모르는 스타덤을 넘어 신뢰감을 주는 배우로 도약했다는 점이 지금도 지금이지만,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주지훈

◆ 키 큰 주영훈, 얼떨결에 모델이 되다

주지훈의 본명은 주영훈이다. 지금은 개명했지만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주영훈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알려졌다시피 주지훈은 모델 출신 배우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모델 일은 주영훈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역시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배우 일은 주지훈이라는 사람을 바꿔놓았다.

"모델이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키(187cm)가 크니까 주변에서 '모델 한번 해봐라'고 권유는 꽤 받았죠. 어느 날 엄마의 지인분께서 사진을 찍으면 돈을 준다길래 프로필을 찍었어요. 고등학교 짝꿍에게 사진을 보여줬더니 두 장만 달라는 거에요. 그 친구가 사진을 잡지사에 보냈고, 연락이 와서 모델 일을 하게 됐어요."

큰 키에 잘생긴 얼굴, 남다른 비율에 퇴폐적인 눈빛까지 갖춘 주지훈은 패션계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주지훈의 배우 데뷔는 우연히 이뤄졌으나 당연한 결과였다. 

주지훈

"전 포즈가 많은 모델이었어요. 연기 학원은 배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포즈 연습 차원에서 갔어요. 그때 제 매니저가 황인뢰 감독과 친분이 있어서 드라마 '궁' 오디션장에 놀러 갔어요. 거기에서 감독님 눈에 띄어 캐스팅 제안을 받게 됐어요. 그때가 모델 5년 차였고 24살이었어요. 처음엔 안 하겠다고 2주를 팅겼어요. 모델 일을 재밌게 하고 있었고 연기는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장성한 청년한테 교복을 입으라니까 너무 싫은 거에요. 한창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을 나이였거든요." 

그래서일까. 당시의 주지훈을 생각하면 신인의 간절함이나 열정이 보이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어린 나이에 모델이 됐고, 작은 집단에 있다가 큰 세계에 진입했어요. 심지어 그런 건 꿈꾸지도 않았던 제가요.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다 보니 그걸 받아들일 준비와 역량이 안 돼 있었던 거에요. 후레쉬는 터지지, 질문은 계속 던지지, 내가 말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말을 아꼈던 거 같아요. 게다가 키도 크고, 까맣고, 좀 강해 보이는 인상이라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은 얼어있었던 건데 말이죠. 물론 지금 여러 사람과 어울리고, 여러 상황을 경험하면서 사회성도 늘고, 유연해졌어요."라고 웃어 보였다.

신과

◆ 주지훈을 바꾼 김용화X하정우X신과함께

주지훈은 2011년 군 제대 이후 연기 인생의 2기를 열었다. 드라마로 컴백했고, 본격적인 스크린 활약이 시작됐다. 특히 2014년 선보인 영화 '좋은 친구들'은 주지훈의 매력을 스크린에서 제대로 발산한 의미 있는 작품. 주지훈 역시 이 영화로 연기의 맛을 알게 됐다고 언급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지훈에게 저런 모습이 있어?'라고 하셨어요. 그간 제가 보여준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낯설면서도 새롭게 여기신 거죠. 개인적으론 어릴 때부터 느와르 영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어린 나이에 '궁'으로 인기를 얻다 보니 비슷한 분위기의 로맨틱 코미디물 제안이 많았어요. 느와르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제안받게 돼 좋았고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 편의 영화 '아수라'(2016)를 만났다. 그해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이 영화에서 연기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배우는 주지훈이었다. 한도경(정우성)을 따르다 박성배(황정민)의 수하가 되는 기회주의 형사 문선모로 분해 야누스적 매력을 발산했다. 냉정히 말해 '좋은 친구들'이 아는 사람만 아는, 찾아 봐야지만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면 '아수라'는 유명 감독(김성수)과 톱배우(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정만식 등)들의 조합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개봉 당시 호불호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지만, 주지훈의 연기에 대해서는 이견 없는 호평이 쏟아졌다.

주지훈

이 작품은 주지훈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모델 출신의 잘생긴 배우'로만 여겼던 영화 관계자들에게도 '연기 좀 하는 배우'라는 인상을 확실하게 심어줬다. 자신이 연기한 작품이 보증이 돼 더 좋은 작품이 들어오는, 배우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반이 된 것이다. 그리고 주지훈의 작품관을 바꿔준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를 만났다.

"제가 캐스팅되기 전 하정우, 차태현 선배가 이미 캐스팅 돼 있었어요. 그들에 대한 신뢰도가 엄청났기 때문에 이 영화가 이렇게 잘될지는 몰랐지만 망할 것 같지는 않았어요. 저는 묻어간 거죠. 영화를 통해 이런 사랑을 받은 게 처음이에요. 팔자인가? 전 중간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1부 때는 흥행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어요. (흥행을) 해봤어야 알죠. 형들이 예매율, 박스오피스 보면서 흥행 추이를 분석할 때도 '음, 영화가 잘 굴러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만 할 뿐이었어요.(웃음) 개봉 십몇일 만에 천만을 넘을 때도 '아, 그렇구나' 했었어요. 또 이런 기회가 온다면 이젠 제대로 즐겨야죠."

주지훈이 '신과함께' 2부작을 통해 얻은 수확은 '천만 배우' 타이틀만이 아니다. 사람도 얻었다. 김용화 감독과 배우 하정우다.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김용화 감독은 제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바꿔줬어요. 촬영을 하고 개봉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굉장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동시에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고, 장르적인 특성을 떠나 영화의 미덕을 보게 됐죠. (하)정우 형에게는 연기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요."

신과함께

◆ '신과함께'→'공작'→'암수살인', 폭넓은 스펙트럼

주지훈은 '신과함께' 1,2편에서 '해원맥'이라는 한 인물을 연기했지만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1부가 손오공 같은 시공일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진 매력을 보여줬다면, 2부에서는 해원맥과 그의 천 년 전 과거 '하얀 삵'까지 연기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을 보여줬다.

"어찌 보면 1인 2역이고 캐릭터의 간극도 크지만 두려워하지 말자고 결심했어요. 김용화 감독을 신뢰하고, 함께 호흡을 맞춘 (하)정우 형, (마)동석이형, (김)향기가 정승처럼 버티고 있으니까 그들을 신뢰하고 저를 내던졌어요."  

1,2부를 동시에 촬영한 도전은 배우에게도 쉽지 않았을 터. 주지훈은 "1부가 안 됐으면, 2부는 사장 됐을 거에요. 하이 리스크가 하이 리턴의 결과인 거죠. 처음엔 다들 망할 거라며 여론도 안 좋았어요. 하지만 그 위험을 뚫고 김용화 감독이 도전에 임했고, 쟁취한 거예요. 저희는 그 모습을 지켜봤고, 함께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공작

주지훈은 '공작'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북한 보위부 정무택 역할을 맡았다. 영화를 연출한 윤종빈 감독에 따르면 '육류 사이에 있는 채소'다. 한마디로 묵직한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 셈이다.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등 업계 최고의 연기파 사이에서 주지훈은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해냈다. 주지훈은 '용서받지 못한 자',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등의 영화를 좋아한 윤종빈 감독의 팬이었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를 보면 작은 캐릭터도 생생하게 살아있잖아요. 그 점을 믿었죠. '공작'은 참여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작품이에요. 우리가 몰랐던 역사를 알게 해주는 영화고, 남북관계를 떠나 신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죠. 진지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상업영화에요. 이 영화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제작진들의 열망과 의지가 컸고, 우리가 재밌게 풀어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 웃음도 코미디를 의도한 웃음이 아니라 상황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터지는 웃음을 안배했어요. 관객들이 그걸 알아주시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오는 10월 개봉하는 차기작 '암수살인'에서는 살인범으로 분해 또 한 번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2018년에만 3편의 개봉작으로 관객과 만나게 됐다. 그리고 12월에는 넷플릭스 제작의 드라마 '킹덤'을 통해 국내는 물론 전세계 안방극장을 공략한다.   

주지훈

◆ 주지훈이 꿈꾸는 미래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

가히 주지훈의 시대라는 말에 그는 "아직 멀었죠. 선배들이 너무 쟁쟁해. 다 현역이잖아요."라고 웃어 보였다. 또한 "선배들이 '배우는 40대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던 말을 요즘 들어 실감하고 있어요. 다가오는 40대를 준비해서 맞느냐, 아니냐가 큰 차이를 가를 것으로 생각해요. 전 이제 그 스타트 라인에 섰고, 제대로 준비해서 좋은 경기를 보여줘야죠."라고 성숙한 답변을 내놓았다.

주지훈은 정우성, 황정민, 하정우 등 영화계 대선배들과 잇따른 작업을 통해 그들의 장점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다. 배우로서의 배울 점은 물론이고 내적 성숙과 인간미까지 닮으려고 노력 중이다. 

"나도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후배들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선배요. '아수라'의 정우성, '공작'의 황정민', '신과함께'의 하정우를 보면....그런 역할이 정말 힘들거든요. 이야기를 쭉 끌고 가면서 다른 캐릭터들의 변주에 맞춰주는 것 말이에요. 분량은 많아도 본인이 두드러지지 않아 잘해야 본전인 캐릭터들인데 형들은 그런 걸 다 해내요. '저 형들은 어떻게 저렇게 잘할까', '어떤 과정을 거쳐 저렇게 됐을까'를 생각해요. 그러면서 느낀 게 '준비가 안 된 건 나구나'라는 생각이었어요. 더불어 형들에게 받은 걸 나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그런데 그건 후배들이 저를 존경할 정도가 돼야 가능한 거겠죠. 좀 더 준비를 하고 이룬 다음에 후배들이 요청하면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신과

주지훈은 삶을 즐기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축복받은 사람인 것을 모른 채 살았던 시간이 불행했음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존경하는 배우처럼 되고 싶어서 안간힘을 썼던 제가 초라하다는 걸 느낀 순간이 있었어요. 너무 못하는데 열심히만 했던 거죠. 지금은 현장에서의 상황과 변수들을 많이 반영하는데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찍을 때는 대본을 150번씩 읽었어요. 안소니 홉킨스가 200번씩 본다는 말만 듣고요. 대배우를 따라 해봤는데 저는 200번을 해도 실패하더라고요. 지금 제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있어요. 이뤄놓은 것도 없지만 교만하지 말자고 깨닫게 해주는 존재들이요."

주지훈이 무서운 것은 성공과 실패, 성공의 과정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며 연기하는 즐거움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데다 즐기는 법까지 알게 된 주지훈은 지금 거칠 것이 없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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