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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아, '휘트니', 영원한 팝의 디바여!

최종편집 : 2018-09-03 08:37:03

조회 :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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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2010년 7월, 한국에서 최초로 열렸던 휘트니 휴스턴의 내한 공연을 보러 갔었다. 최악의 콘서트였다. 그녀는 단 한 곡도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키(KEY)를 낮춰 편곡한 MR(Music Recording, 반주만 있는 상태)에도 음정, 박자를 놓치기 일쑤였다. 게다가 노래를 부르며 연신 몸을 떨었다.

공연 내내 불안한 모습을 보여 안타까웠고 종국에는 화가 났다. 자신의 컨디션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월드투어에 나선 뮤지션과 그 공연을 강행한 기획자들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세월 무상이 아님은 그날 공연을 본 대부분의 팬들은 알아챘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 무언가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2년 후인 2013년 8월 9일, 휘트니 휴스턴의 사망 소식을 외신으로 접했다. 사인은 약물 중독에 의한 익사였다. 결국 그녀의 공연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안타까운 역사로 남게 됐다. 

휘트니 휴스턴의 사후 5년 만에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휘트니'는 2012년 전설적인 레게 뮤지션 밥 말리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밥 말리'를 만들어 주목받은 바 있는 케빈 맥도널드가 메가폰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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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 감독은 2015년부터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휘트니 휴스턴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 결과 1,500개가 넘는 비디오테이프와 250여 개 마스터 영상, 2천여 개 스틸 영상 등에서 휘트니 휴스턴의 흔적을 찾아냈고, 여기에 가족과 친구, 동료 30여 명의 인터뷰를 엮어 다큐멘터리 영화를 완성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휘트니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휘트니의 모습까지 엿볼 수 있는 영화다. 

휘트니 엘리자베스 휴스턴 (Whitney Elizabeth Houston)은 1963년 8월 9일, 뉴저지 주 뉴어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가스펠 가수인 씨씨 휴스턴, 사촌은 디온 워윅인 덕분에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나 남다른 재능을 소유하게 됐다.

1985년 아리스타 레코드와 손잡고 발매한 앨범 'Whitney Houston'으로 일약 데뷔와 동시에 슈퍼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Saving All My Love for You), '하우 윌 아이 노우'(How Will I Know)까지 총 세 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으며 미국 내 앨범 판매량 1,000만장 및 월드와이드 2,500만장을 넘기며 넘게 여자 가수 데뷔 음반 최고판매기록을 갱신했다.

데뷔 초기에는 메가톤급 앨범 판매량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백인 취향의 컨템포러리 팝에 흑인 목소리만 얹었다는 비판을 받으며 '화이트 휘트니'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3집 앨범 '아임 유어 베이비 투나잇'(I'm Your Baby Tonight)기점으로 흑인 아티스트로서의 확실한 정체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2년 '보디가드' OST를 통해 '아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 '아이 헤브 낫띵'(I Have Nothing), '런 투 유'(Run to You) 등의 싱글을 연속 히트시키며 전 세계 4,5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다. 이 앨범은 상업적 성공뿐만 아니라 1994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과 올해의 레코드, 그리고 최우수 여자가수상 3관왕에 오르며 비평적으로도 최고의 찬사를 받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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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에 팝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데뷔한 휘트니 휴스턴. 단순히 빌보드 차트 기록만으로 회자되는 슈퍼 스타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선사한 명가수였다. 대중문화에서 가졌던 파급력과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왜 그녀를 '디바'라고 칭했는지 알 수 있다.  

1991년 슈퍼볼에서 시작 전 부른 미국 국가 '더 스타 스팽글드 배너'(The Star-Spangled Banner)은 당시 걸프전을 치르고 있던 미국인의 가슴에 '애국심'이라는 단어를 음악으로 아로 생긴 명공연으로 평가받는다. 영화에서도 이 무대를 준비한 프로듀서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그는 "국가를 기존의 3/4박자에서 4/4박자로 편곡해 한음한음 곱씹어 의미를 담아 부를 수 있게 했고 가스펠 풍의 편곡을 시도했다. 이 공연 전 휘트니는 해외 일정을 갔다가 바로 경기장으로 왔는데 특별한 리허설도 없이 그 무대를 소화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날 휘트니는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free'를 가성 애드립으로 불렀다. 이는 국민들에게 미국의 정신인 '자유'를 강조하는 큰 울림을 선사했다.

미국의 가장 큰 스포츠 행사에서 젊은 흑인 여가수가 애국가를 부른 것도 놀라웠지만 이날 휘트니는 드레스가 아닌 운동복 차림으로 등장해 대중 친화적인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역량 최대치를 선보인 것은 물론 대중 스타로서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 최고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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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94년 11월, 휘트니는 넬슨 만델라의 대통령 선출을 기념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세 개 도시에서 공연을 펼쳤다.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가 철폐된 이후 남아공에서 콘서트를 연 첫 번째 주요 뮤지션이었다. 영화는 이 공연에서 남아공 국민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으며 '그레이티스트 러브 올'(Greatest Love of All)을 열창하는 휘트니의 모습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활동 당시 흑인 인권 운동에 직접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지만 휘트니의 등장과 성공은 미국의 흑인 사회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인들에게도 큰 긍지를 심어줬다. 백인 중심의 팝 음악계에서 가창력만으로도 청중을 사로잡는 스탠딩 가수의 존재는 그 자체로도 경이로웠다. 폭발적인 성량과 화려한 기교, 그리고 탁월한 무대 매너로 무형의 감동을 선사하는 최초의 '디바'였다. 

그야말로 신이 내린 재능이었다. 휘트니가 생전에 남긴 셀프 카메라를 보면 그녀 어머니뿐만 아니라 본인도 자신의 재능이 남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신은 그녀에게 재능을 줬지만, 삶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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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가수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 이후부터 가정 폭력에 시달렸으며 약물에도 본격적으로 손을 대 내리막길을 걸었다. 여기에 아버지와의 금전적 갈등까지 겹치며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영화는 휘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보여주며 그녀가 왜 이미 균열된 가정을 무리해서 지키려고 했는지, 왜 어린 딸을 월드 투어에 데리고 다니며 외롭게 만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모든 것은 스스로가 겪었던 유년 시절의 고통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이것은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고통이기도 했다.

'휘트니'는 전설적 디바의 어린 시절부터 전성기, 쇠락기까지 차분하게 훑으며 시대에 대한 향수까지 전달한다. 청소년 시절 성가대 공연 모습부터 데뷔 무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및 월드 투어 등 주옥같은 라이브 영상을 통해 감동의 순간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이야기를 하다가 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구성적 산만함이 다소 아쉽다. 또한 휘트니의 죽음에 얽힌 마약 문제 등에 대해서는 실체적 접근을 하지 못한다. 전 남편, 오빠들과 얽힌 부문이 있다는 것을 암시만 하는 정도다. 그들은 질문에 대답을 피했고, 영화도 그 이상은 파고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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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것은 이 영화가 포커스를 휘트니 휴스턴의 죽음이 아닌 휘트니 휴스턴의 삶에 맞췄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은 애칭 '니피'(nippy)로 불렀던 어린 시절, '팝의 디바'로 군림했던 시기 그리고 바비 브라운의 아내이자 크리스티나의 엄마로 살았던 짧고 불안했던 순간들을 아우르는 방식을 택했다.

휘트니 휴스턴에게 신의 재능을 물려주고, '팝의 디바'로 만든 일등공신인 어머니 씨씨 휴스턴은 말했다.

"노래는 머리(정신), 가슴(마음), 배(배짱)으로 부른다. 딸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휘트니는 말년에 이 세 가지 모두를 잃어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홀로 남겨진 호텔 욕조에서 세상과 작별했다.

오랫동안 그녀의 곁을 지켰던 가족도 친구도 그녀를 제대로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노래로 그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했지만 정작 그 스스로는 오랜 시간 외로움과 싸웠던 것이다. 슬프다. 그리고 너무 아프다. 

휘트니, 아 휘트니 R.I.P.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