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서치' 번역가가 밝힌 숨은 1mm "한국계 설정은…"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9.04 11:37 수정 2018.09.13 09:27 조회 2,097
기사 인쇄하기
서치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제목만 보고 그저 그런 스릴러겠거니 했다. 사라진 딸을 찾는 아빠의 고군분투기라는 소재도 이미 닳고 닳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영화, 뒤통수를 제대로 친다. 시종일관 쫀쫀하고 신박하다. 아이디어와 형식으로 관객을 매료시킨 영화 '서치' 이야기다.

'서치'가 개봉 6일 만에 국내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며 역주행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영화는 딸이 부재중 전화 3통만을 남기고 사라지고, SNS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딸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 아빠가 발견한 뜻밖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모든 장면을 PC와 스마트폰 화면, SNS 창으로만 구성한 독특한 형식으로 오프닝부터 관객의 시선을 끈다.  

영화의 메가폰은 1991년생 인도 출신의 아니쉬 차간티 감독이 잡았다. 이력이 흥미롭다. 2014년 발표한 '시드'(SEEDS)라는 2분 29초짜리 단편 영화로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 스카웃돼 약 2년간 콘텐츠 제작을 담당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아내의 임신 소식을 인도에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알리는 과정을 구글 글라스만을 이용해 촬영했다. 감독의 야심과 감각은 이때부터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서치'의 자막은 히어로 무비 '데드풀' 시리즈로 국내 관객의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는 황석희 번역가가 맡았다. 영화의 장르와 형식, 소재에 따라 꼼꼼한 학습과 분석을 통한 번역을 하기로 유명한 번역가답게 이번 영화에서도 SNS 시대에 맞춘 감각적인 자막을 선보였다. 영화를 한 번 봐서는 알 수 없는 극 중 숨은 1mm를 황석희 번역가가 공개했다.

서치

◆ 주연은 모두 한국계 미국 배우…왜?

'서치' 속 아버지의 이름은 데이빗 킴(존 조), 딸의 이름은 마고 킴(미셸 라)이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것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데이빗은 동생 피터(조셉 리)으로부터 "김치 검보 레시피를 알려달라"는 전화를 받기도 한다. 검보(Gumbo)는 미국 뉴욜리언즈식 수프. 이들 형제는 김치를 넣어 응용한 '김치 검보'를 즐겨 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딸이 실종되고 난 후 데이빗은 딸의 통화 목록을 추적한다. 그 리스트에서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유일하게 한글로 입력된 '엄마'라는 글씨다. 이렇듯 영화는 데이빗 가족이 한국계라는 것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인도계인 감독이 굳이 주인공 가족을 한국계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황석희 번역가는 "감독이 왜 주인공 가족들을 한국계로 설정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듣기로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데이빗 역할은 반드시 존 조여야 한다면서 캐스팅을 위해 삼고초려까지 했다고 들었다. 아마도 존 조 캐스팅에 성공한 이후 그가 가진 문화적 배경과 캐릭터와 이야기에 녹여낸 게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인도계 미국인인 감독은 실리콘밸리의 IT 기업에서 일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한국계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의 동료를 익숙하게 봐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중산층 동양인 가정이라는 문화적 특징을 영화에 녹여내고자 한 감독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이 외에도 감독이 존 조 캐스팅에 목을 맨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내를 잃은 뒤 홀로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낸다. 특히 이마에 깊게 팬 주름 세 줄로도 실종된 딸을 찾는 애달음을 표현해낸 연기가 일품이다. '해롤드와 쿠마' 시리즈와 '스타트렉' 시리즈 등에서 활약해온 존 조는 최근 '콜럼버스'와 '서치'로 이어진 참신한 안목으로 할리우드의 수많은 한국계 배우 중에서도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서치

◆ "사진 한 장으로 신상 검색"…구글링의 위력

영화 속에서 데이빗의 직업이 정확하게 명시되지는 않지만 엔지니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이는 주인공이 컴퓨터의 기능을 폭넓게 활용하는 것의 근거가 된다. 실제로 데이빗은 사라진 딸에 관한 단서를 찾기 위해 딸이 두고 간 맥북 속 기록을 샅샅이 뒤진다. 딸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텀블러, 유캐스트 등의 SNS는 비공개 계정이지만 비밀번호를 가볍게 풀어내며 딸의 은밀한 세계에 진입한다.  

놀라운 것은 딸이 컴퓨터에 남긴 기록이 사건 추적의 주요한 실마리가 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사생활 공개는 물론 속내를 드러내는 것에 익숙지 않은 현대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상에서 만나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보다 자신을 넓고 깊게 오픈하는 경향이 있다. SNS 시대의 특징인 동시에 씁쓸한 풍경이기도 하다. 낳아주고 길러준 아빠보다 일면식도 없는 익명의 누군가가 딸에 대해 더 많이 알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는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서치'를 보고 있으면 새삼 구글링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SNS에서 발췌한 사진 한 장으로 그 인물에 대한 검색이 가능하며 지도 검색 기능 역시 놀랍다. 영화 속에 등장한 구글의 기능은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구글링이 일상이 된 유저들에겐 익숙할 테지만 아닌 사람들의 경우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놀라운 것들이다. 

황석희 번역가는 "개인적으로 IT GEEK(IT에 몰두하는 괴짜)기질이 있다 보니 영화 속에 나오는 구글, 맥북의 기능은 이미 익숙했다. 다만 OS 운영체제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하게 공부했다"고 번역 후기를 밝혔다. 

서치

◆ 결말·반전을 암시하는 숨은 1mm

'서치'는 채팅창과 페이스타임 영상 등 대부분 컴퓨터 화면만으로 장면 전환이 이뤄지는 독특한 형식을 자랑한다. 영화는 대부분 맥북 카메라에 찍힌 데이빗의 모습으로 진행되지만 실제 촬영은 고프로(GoPro)로 이뤄졌다.

데이빗이 마우스 커서를 옮기며 긴박하게 진실을 추적해나가고, 자판의 글자를 썼다 지우는 찰나의 순간은 인물의 내적 고민을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영화에는 결말과 반전을 암시하는 복선도 많다. 20대의 젊은 감독은 영화가 선사하는 물음표를 관객이 능동적으로 풀어나가길 바랐던 것 같다.

황석희 번역가는 "데이빗이 딸 친구들의 연락처를 알려고 아내 팸의 계정으로 윈도우 주소록을 보는 장면에 범인의 이름과 신상 정보가 등장한다. 또한 딸의 페이스북을 열어 피드를 확인할 때 범인의 사진도 스쳐 지나간다"고 언급했다. 

서치

이밖에 영화 초반, 산에서 조난 당한 사람이 9일 만에 구조됐다는 뉴스도 등장한다. 이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암시기도 하다. 

결말과 연결되는 장치들도 있는 반면 젊은 감독의 위트와 재기를 엿볼 수 있는 숨은 1mm도 있다. 황석희 번역가는 "'서치'는 약 2주 만에 촬영을 마쳤다. 4명의 편집자들이 편집을 담당했는데 영화 형식상 편집에만 1년 반이 걸릴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다더라. 그래서인지 실종 뉴스가 화면에 나올 때 하단 자막을 보면 할리우드 에디터가 살해당했는데 용의자가 감독이라는 내용의 뉴스가 나오기도 한다. 담당자들이 다 감독과 친구다. 정말 친하니까 그런 것도 영화적 재미로 넣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감독의 재기 발랄한 셀프 디스다.

'서치'는 SNS 시대에 걸맞는 형식을 영화에 도입한 신선한 영화다. 더불어 잘 만든 가족 영화이기도 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친구 맺기에 관한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지지만 이를 통해 가족, 내 사람의 존재와 소중함에 대한 울림을 그 어떤 영화보다 진하게 담아냈다. 

ebada@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