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돈 내고 오디션 보는 '관행', 옳다고 생각하세요?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9.09 14:10 수정 2018.09.09 18:29 조회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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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점입가경이다. 한 배우가 모 영화사에서 오디션 지원자들에게 오디션비를 받았다고 주장한 가운데 영화 관계자가 해당 배우를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영화 '님의 침묵'의 한명구 감독은 지난 4일 "배우 민지혁과 해당 주장을 처음 기사화한 언론사 등을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지혁은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영화 '님의 침묵' 오디션을 보며 제작사에서 배우들에게 오디션비를 1만 원을 내도록 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어떻게든 오디션이라도 봐야 기회라도 가지는 배우들에게 단돈 1만 원이라고 말하실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하십니까?"라고 비판했다.

이에 한명구 감독은 "오디션비로 수익을 남긴 것처럼 주장하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다니 참을 수 없어 프로듀서 등과 상의해 고소를 결정했다. 시작하는 영화에 심각한 해를 끼쳤고 명예 또한 훼손돼 참을 수 없다."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오디션

'님의 침묵' 오디션에는 총 5,200명이 서류를 접수했다. 서류를 통과하고 오디션 기회를 얻은 이는 모두 120명, 이 가운데 117명이 오디션에 참석했다.

한명구 감독은 "사정상 오디션비를 낼 수 없다고 밝힌 분들에게는 오디션비를 받지 않아 총 58만 원이 걷혔고, 이는 김밥과 주스 등 간식을 사는데 다 쓰였다. 증빙자료도 있다. SNS에 글을 쓴 민지혁은 정작 오디션에 참석도 하지 않았다. 논란 이후 스태프에게 58만 원 또한 모두 돌려주라고 했다."고 해명했다.

감독은 오디션비를 받은 것에 대해 '관행'을 언급했다. 그는 "배우에게 오디션 비용을 받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다. 우리만 받은 게 아니다. 모 영화 역시 오디션에서 진행비를 받은 적 있다. 할리우드 등 외국 같은 경우 오디션에 소액의 진행비를 받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사실일까. 국내 몇몇 영화 제작사에 문의했다. 하나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오디션비를 받은 적은 한 차례도 없다"는 것이었다. 한 제작사 대표는 "오디션비를 준 것도 아니고 받는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오디션은 배우 캐스팅의 과정에서 소요되는 작은 돈이다. 이 돈은 다 제작비에 포함된다. 이것을 배우에게 받는다는 건 해외는 어떨지 몰라도 국내 제작 시스템에선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라고 전했다. 

방송국의 경우 오디션 참석자에게 오디션비를 주기도 한다. 최근 SBS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님께', '흉부외과' 제작진은 오디션을 보러 온 배우 약 200여 명에게 차비와 고마움을 담은 편지를 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오디션

'님의 침묵' 제작사가 오디션 지원자에게 걷었다는 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밥과 주스 등 다과 준비에 썼다고는 하지만, 오디션을 보러온 배우들은 소풍을 온 게 아니다. 목적과 명분을 가지고 찾아간 오디션장에서 다과를 먹으며 수다 떨 여유도 없다.

한명구 감독이 주장한 관행이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없어져야 마땅한 악습이다. 그걸 지적한 배우가 제작사와 감독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있을까. '남들도 다 받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라는 억울한 마음이 컸던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또한 오디션 시스템이 불합리하다고 여겨 가지 않은 배우는 현장에 없었으니 문제 제기할 자격조차 없는 걸까.

오디션 관행을 언급한 한명구 감독에게 한 무명 배우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10년째 연기를 하고 있는 L씨는 일주일에 수차례 영화사에 프로필을 돌리고 포털 사이트의 오디션 커뮤니티를 드나든다.

L씨는 "요즘은 캐스팅 디렉터를 통한 캐스팅이 보편화되면서 소속사 없는 신인의 경우 오디션에 응시하는 것조차 어렵다. 일단 공개 오디션 자체가 드물고, 있다 하더라도 정보 자체가 폭넓게 오픈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님의 침묵' 오디션비 논란을 기사로 확인한 L씨는 "연기하는 다른 친구로부터 그런 곳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내가 오디션을 본 수백 개의 영화사 중 오디션비를 걷는 경우는 없었다. 다시 알아보니 오디션비를 받는 회사가 드물지만 있다고 하더라. 오디션을 보러 온다고 하고선 안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계좌로 입금을 받는다고 했다더라"고 전했다.

이어 "오디션을 보러 와달라고 해서 가는 건데 차비를 주지는 못 할 망정 오디션비라니....일반 회사도 면접을 볼 때 정장을 사 입고 미용실에 가서 화장을 받고 가는 경우가 있다. 몇몇 기업의 경우 응시자에게 면접비를 주기도 하지 않냐. 하물며 배우 지망생들은 한 번의 오디션 기회도 소중하게 하기 때문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비를 들여 꾸미고 간다. 단 몇 분을 위해 쏟는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은 돌려받지 못할 기회비용이다. 그럼에도 꿈을 위해 투자 한다. 그런데 오디션비까지 내라고 하는 것은 무명 배우인 우리에겐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고 의견을 전했다.   

또한 고소에까지 이른 '님의 침묵' 사태를 이야기를 하자 L씨는 "안타깝다"고 반응했다.

수많은 무명배우들은 꿈을 좇아 일말의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오디션에 지원한다. 그 작은 기회조차 돈이라는 자격 조건이 붙는다면 너무나 슬픈 이야기다. 누가 돈 내고 오디션 보는 것을 '관행'이라고 하는가.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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