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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랩]'라이프', '비밀의숲' 기대했으나 '비밀'만 남긴 드라마

최종편집 : 2018-09-12 16:37:15

조회 :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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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지난해 방영한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은 역작이다. 16부 동안 쌓아 올린 촘촘한 전개와 기막힌 반전, 배우들의 빈틈없는 열연, 기득권층에 도전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묵직한 이야기는 강한 울림으로 시청자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이에 “'비밀의 숲' 시즌2를 보고 싶다”는 시청자가 많았고, 심지어 출연 배우들마저 같은 바람을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지난 11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라이프'는 '비밀의 숲'을 만든 이수연 작가의 작품으로 방영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여기에 배우 조승우, 유재명, 이규형 등 '비밀의 숲'에 이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는 출연진, 또 문성근, 문소리, 천호진 등 이름값을 하는 배우들이 대거 포진하며 드라마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높였다.

처음에는 좋았다. '라이프'는 방송 초반 '병원에서 환자도 고치고 연애도 하는' 뻔한 의학 드라마가 아닌, 병원 내에서 충돌하는 여러 신념들의 간극을 특유의 묵직함으로 풀어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대에 부응하는 배우들의 열연도 한몫했다.

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시청자 반응은 식어갔다. 의료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건 좋으나 너무 그들만의 이야기라 공감할 수 없다는 반응,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응, 수많은 인물들의 등장과 갈등에 몰입감이 떨어진다는 반응,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는 반응 등 '라이프'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라이프'는 이수연 작가가 '비밀의 숲'에서 보여준, 기득권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에 반기를 드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법원에서 병원으로 옮겨 그려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교묘하게 덫을 놓고, 서민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존재로 전락하고, 이를 인지하고 있는 정의로운 자들이 나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기득권과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 결말이 나지 않는 싸움이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누군가는 이런 '시도'라도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수연 작가의 두 작품에서 모두 관통한다.

하지만 '라이프'는 시청자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병원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재벌 재단과 환자에 대한 신념을 내세우는 의사들의 싸움이란 간단한 흑백구조가 아닌, 그 속에는 여러 이합집산이 존재했다. 역시 사회적 기득권층으로 여겨지는 의사들은 저마다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였고, 복잡한 관계의 변화들은 극적 갈등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인물들과 충분한 설명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변모하는 관계들은 복잡함만 가중시켰고, 결과적으로 시청자의 몰입감과 이해도를 떨어뜨렸다.

초반 사측 대표로 '숫자'만을 강조해 의사들과 대립하는 악역으로 여겨지던 사장 구승효(조승우 분)가 나중에는 더 큰 악인 화정대표 조남형(정문성 분) 회장과 상대하기 위해 의사들과 '같은 편'이 된다는 전개도 아이러니했다. 원래 인간적이었던 구승효가 신념을 지키려는 일부 의사들의 진심을 보고 깨달은바, 자기가 사장에서 해임될지언정, 환자가 평등하게 치료받을 권리와 의료진이 돈에 놀아나지 않는 환경을 위해 마치 논개가 된 듯 모든 것을 떠안고 병원을 떠난다는 전개도 설득력을 잃었다. 이런 구승효를 위해, 그토록 지지고 볶고 싸우던 의사들이 마지막에 깜짝 인사 자리를 마련해준다는 설정은 비소마저 터져 나왔다.

또 다른 주인공 예진우(이동욱 분)의 포지션도 흔들림이 많았다. 방송 내내 의견이 분분했던 배우 이동욱의 연기력을 차치하고라도, 예진우 캐릭터 자체의 중구난방 활약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응급실 전문의인 만큼 안 그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캐릭터가, 아버지 같았던 이보훈 원장(천호진 분)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다가, 병원을 기업에 내어주느냐 마느냐 하는 병원 정치싸움 곳곳에 끼어들고, 동생 예선우(이규형 분)와 애틋한 형제애를 보여주다가, 동생의 환상이 보이는 정신병도 챙겨야 했고, 나중에는 새글21 기자 최서현(최유화 분)과 로맨스까지 펼쳤다. 이렇듯 예진우에게 쏠린 지나친 설정들은 안 그래도 많은 이야기 흐름 속 '굳이 저거까지 넣었어야 했나'라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시청자가 가장 크게 실망감을 표현한 부분은 '라이프' 속 러브라인이다. 예진우와 최서현의 로맨스에는 갑작스런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진다는 뜻의 신조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시청자가 많았다. 이는 구승효와 이노을(원진아 분)도 마찬가지. 두 사람이 병원 내 치열한 이해관계 싸움 속에서도 남녀로서 호감을 드러내는 과정이 그려지긴 했으나, 억지로 러브라인을 밀어붙였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라이프' 관련 인터넷 글들을 보면 “이수연 작가님 작품에서 러브라인은 빼주세요”라는 의견이 많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남녀간의 사랑이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드라마가 종영한 후에도 아직 시원하게 풀리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극 중 이보훈 원장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다. '라이프'는 이보훈 원장의 죽음으로 포문을 열고, 그에 따른 후폭풍들로 이야기를 전개해왔다. 하지만 16부가 끝난 지금, 이보훈 원장이 정말 심장발작으로 옥상에서 추락사한 것인지, 김태상(문성근 분)에 의한 타살인지, 각종 상황들에 괴로워하던 이보훈이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인지, 명쾌하게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여전히 비밀로 남았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된 일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으니, 남은 것은 시청자의 답답함 뿐이다.

'라이프'가 의료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부분은 칭찬받을 만하다. 극 중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의사 대신 대리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는, 최근 실제 대리수술로 환자가 뇌사판정을 받은 사건과 연관돼 드라마의 현실감을 입증했다. 또 조승우, 유재명, 문소리, 문성근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견고한 연기력도 드라마를 본 시청자에게 보는 기쁨을 선사했다.

하지만 '라이프'는 '비밀의 숲'이 되지는 못했다. “'비밀의 숲'을 너무 인상 깊게 보았기 때문에 기대가 너무 컸나 봐요”라는 한 시청자의 씁쓸한 댓글이 와닿는다.

[사진제공=JTBC]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