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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박해일은 어떻게 장률의 페르소나가 됐나

최종편집 : 2018-10-08 08:10:49

조회 :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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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부산=김지혜 기자]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의 첫 장면은 군산의 지도를 보는 윤영(박해일)의 뒷모습이다. 여기에 또 다른 인물 송현(문소리)이 등장하고 두 사람은 나란히 군산의 지도를 바라본다.

"미친 거 같아. 갑자기 군산에 가자는 사람도, 따라내려 온 나도" (송현)

지난 2015년 개봉한 장률 감독의 전작 '경주'가 오버랩 된다. 이 영화에도 경주 지도를 응시하는 최현(박해일)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두 작품 모두 대한민국의 도시명을 영화의 제목으로 가져왔다. 장률 감독의 대부분의 영화는 이야기의 출발을 공간에서부터 한다. 공간이 선사하는 심상(心象)이 자유로운 스토리텔링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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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경주에 대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도시라고 말했던 장률 감독은 군산이라는 도시에 대해 일제시대의 건물과 정서가 남아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남녀가 연애하고 싶은 도시라고도 첨언했다. 한국스러움과 일본스러움 즉 이질적인 요소가 교차하는 이 도시의 매력은 창작자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재중동포인 장률 감독은 2005년 영화 '망종'으로 뉴커런츠 부문 대상을 받으며 부산국제영화제는 물론 아시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대부분의 작품도 부산을 통해 첫선을 보였다.

11번째 장편영화인 '군산'은 갑자기 군산 여행을 가게 된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다룬다. 겉보기와는 다른 세상의 감춰진 형상을 그렸다. 박해일과 문소리가 주연을 맡았다. 일본식 가옥과 정서가 남아있는 군산을 배경으로 윤영과 송현이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상징과 은유, 그리고 정서를 전달한다. 장률 감독 특유의 일상과 꿈의 경계에 있는듯한 몽환적인 이야기 전개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같은 연출 방식에 대해 장률 감독 "감독은 답을 알 수 없는 삶에서 자기의 리듬을 갖고 그 궁금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그 리듬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되 관객들은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스스로 생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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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의 영화적 공간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배우는 박해일일 것이다. '경주'를 시작으로 '필름시대사랑', '군산'까지 5년간 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박해일은 "장률 감독님과의 작업에 대해 많은 배우들이 궁금해한다. 주변에서 어떤 감독이냐고 묻기도 한다. 나를 포함해 감독님과 함께 한 모든 배우들은 그와의 작업을 만족스러워한다. 그것은 감독님이 섬세한 감정을 통해 배우들을 잘 보듬어주시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라고 운을 뗐다.

박해일은 "처음 감독님과 작업할 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섞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리를 가지면 가질수록 호기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더라. 캐릭터와 이야기를 녹여내는 역량이 대단하시다."라고 극찬했다.

장률 감독은 '이리', '중경', '경주', '군산' 등 도시명을 작품명으로 즐겨 써왔다. 박해일은 "감독님은 어떤 공간에서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화를 자주 만들어왔는데 앞으로도 지역명을 제목으로 쓰면서 영화를 만들어나갈 것 같다. 아마 국내 모든 배우들과 만나 영화로 전국 팔도를 여행하시지 않을까 싶다.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오셨지만 100억 이상의 거대 예산으로도 영화를 만드실 수 있는 분이다. 상상력이 감이 안 잡힐 정도로 무한하시기 때문이다. 장률 감독님은 동네 아저씨 같기도 하고 시를 쓰는 시인 같기도 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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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은 100억대의 상업영화와 저예산 독립영화를 아우르는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장률 감독과의 작업은 후자의 형태에 가깝다. 저예산에 짧은 촬영 기간, 적은 개런티 등을 감수하고도 박해일이 장률과의 작업에 기꺼이 뛰어드는 이유는 배우적 욕망 때문일 것이다.

영화적이기도 시적이기도 한 장률의 오묘한 작품세계에서 박해일은 가장 자유로운 연기를 펼친다. 장률의 분신인 것 같기도 하고, 박해일의 진짜 모습이기도 한 것 같은 캐릭터다. 속내를 알 수 없고,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장률 감독의 영화는 공간과 시간, 시점이 섞이는 이야기의 흐름대로 받아들이거나 장면 장면의 의미에 대해 해석하는 재미 두 가지 모두를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장률의 영화에서 자유분방하게 뛰어노는 듯한 박해일은 장률의 영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연기해왔을까.

"감독님과 몇 작품을 하면서 한 번도 (장면의 의미를)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도 명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감독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자고 생각했다. 이건 감독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장률 감독은 배우들이 볼 수 없는 섬세한 시선을 잘 간직했다가 작품에서 담아낸다. 배우 입장에서는 본인도 몰랐던 어떤 세계를 연기를 통해 경험하게 된다. 신선하고 즐겁다. '경주'를 몇 번이나 봤지만 그때마다 내 감상이 달랐고 관객, 기자, 평론가들의 시선과 감상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 또한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볼수록 새로운 영화적 감상을 곱씹게 된다. 이번 영화도 그런 매력이 가득하지 않을까 싶다."

장률 감독 역시 배우 박해일의 매력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는 "한국에 와서 와서 가장 많이 만난 배우가 박해일이다. 친구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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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현장에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지 않으면 인간관계도 재미가 없다. 또 해일 씨 연기에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은 많지만 대체로 연기를 잘하는 방향이 하나다. 그런데 해일 씨는 그 방향이 다양하다. 세상은...바라볼수록 뭔지 모르겠다. 이 세상의 아리송함을 잘 표현하는 배우 하면 나는 박해일이 떠오른다. 해일 씨는 실제 생활에서도 보면 시인 같은 면이 있다. 시인이 좀 이상하지 않나.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그것에 항상 흥미를 가지고 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을 통해 월드 프리미어로 첫 공개된 '군산'은 두 차례의 공식 상영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장률과 박해일, 문소리가 만들어간 '군산'에 관한 흥미로운 상상력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될까. 영화가 보여주는 여정 너머 관객들이 채워갈 다채로운 감상도 궁금해진다.

'군산'은 오는 11월 극장에 정식 개봉한다.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