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죄 많은 소녀' 김의석 "자극을 전시? 영화 이상이길 바랐다"

최종편집 : 2018-10-12 22: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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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죄 많은 소녀'는 체험적 영화라는 측면에서는 압도적인 결과물이다. 이 영화는 인간이 겪는 고통을 이미지와 사운드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너무나 집요하고 지독해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순 있다. 그러나 2018년의 독립영화를 정리할 때 반드시 거론돼야 할 작품임은 틀림없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에너지는 무시무시하다.

'죄 많은 소녀'는 친구의 죽음에 가해자로 몰린 소녀 '영희'가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받았다.

약 1년 만에 극장에 정식 개봉한 영화는 하반기 한국 다양성 영화로는 유일하게 전국 2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편하게 감상하기는 힘든 이 작품에 관객들이 반응한 것은 신인 감독과 배우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결과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김의석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연출하고, 나홍진 감독의 '곡성' 연출부를 거쳐 장편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죄 많은 소녀'는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자신이 겪어 누구보다 잘 아는 이야기기에 연출과 연기 모두 인간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죄를 부여받고 저항하다가 끝내 죄책감과 죄의식을 떠안는 한 소녀의 이야기는 인간이 겪는 어떤 형태의 비극과 고통을 알알이 경험하게 한다. 김의석 감독의 연출은 라스 폰 트리에나 린 램지의 영화를 보듯 집요하고 지독하다. 그런 탓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뼈가 시린 느낌마저 준다.

강렬하고 인상적인 첫 장편을 내놓은 김의석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은 그의 삶의 기록 속 단편이 아닌 새롭게 그려낸 창작 영화이길 기대한다. 

Q.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상을 수상하고도 정식 개봉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누구보다 영화의 개봉을 기다렸을 것 같다.

A. 꼭 그렇지는 않다. 심판받는 것 같은 느낌에 두려움도 컸다. 영화제 상영 기간이 꽤 길어서 영화를 여러 번 봤는데 요즘엔 잘 못 보겠더라. 이제는 이 영화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은데 못 벗어나는 느낌이랄까. 내 영화지만 나도 보기 괴로울 때가 있다.

Q. 영화를 총 몇 번 정도 봤나?

A. 셀 수 없을 정도다. 편집을 직접 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지원작 원칙 중 하나가 연출자가 편집을 직접 하는 것이다. 서브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혼자 너무 오래 해와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엔 늦은 감이 있었다. 

이미지Q. 자전적인 이야기는 가장 잘 아는 이야기와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안전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개인의 불행이나 상처를 끄집어내 영화화하는 작업 자체는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A. 이 영화를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입시켰던 것 같다.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었는데 방점을 찍는다고 할까. 챕터 하나를 넘기고 싶었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만들기 바랐던 영화로 이 챕터가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억지로 사명감을 주입시켰다.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Q. 아마도 이 영화를 본, 혹은 볼 관객들이 힘겨움을 느끼고 느낄 것이다.

A. 만들 때는 고통을 전이시키는 게 목표였다.

Q. 배우들의 연기가 대단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출로서 형성해낸 공기 형성이 탁월하다.

A. 그렇게 느끼셨다면 내가 인식했던 게 잘 전달이 된 것 같다. 압박감, 죄책감 같은 것 말이다.

Q. 시나리오를 얼마 동안, 어떻게 준비했나? 과정이 상당히 혹독했을 것 같다.

A. 총 2년간 썼다. 컨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창의인재동반사업에 당선이 돼 부지영 감독의 멘토링 아래 1년간 썼고, 그 이후 혼자 1년 정도를 더 썼다. 그땐 스스로를 파먹으면서 글을 썼던 것 같다. 과거 겪었던 일을 생생하게 돌이켜야 했으니까. 시나리오를 다 쓰고 돌이켜보니 가시적인 목표를 가지고 엔딩에 도달하면서 끝을 낸 게 아니라 그 기억에서 도망친 것들이 모여서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 같다. 회피하고 도망가고 그랬던 그 시간들이 곧 시나리오가 된 것이랄까.

Q. 영화화에 대한 사명감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는 하지만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게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A. 시나리오의 진도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작은 캐릭터조차도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이 사람은 뭐 하고 살까'와 같은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현장에 배우들이 오면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다. 그 사람들에 대해 상상한 것들이 많았으니까. 이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와 같은 것 말이다. 

이미지Q. 한솔(고원희), 유리(이태경), 다솜(이봄) 등의 이름과 달리 영희(전여빈)라는 여주인공의 이름이 조금 튄다. 요즘은 많이 쓰지 않는 이름이지만 90년대엔 교과서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평범한 이름이다. 여주인공의 이름을 통해 비단 특별한 누군가가 겪거나 보여주는 행동은 아닐 거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A. 그런 생각은 안 했다. 영희는 내 어머니 이름이다.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엎거나 포기할까 봐 그 이름을 정해놓고 시작했다.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지만 엄마하고는 매일 통화를 하니까. 어머니 이름을 붙여놓으면 이 캐릭터를 자주 들여다보게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옹호할 생각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희의 부정적인 면까지 다 담아내려고 했다.

Q. '죄 많은 소녀'를 지칭하는 것은 영희일텐데, 영화를 보면서 이 소녀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을까 싶기도 했다. 역설적인 제목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A. 이 친구가 느끼는 자기 의심, 죄책감이 컸던 것 같다. 사람들한테 큰 의심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은 사라졌기 때문에 누군가를 지탄하는 것일 뿐이지 영희를 굉장한 논리로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다. 그러나 영희에겐 그런 시선들이 엄청난 상처가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그 날을 복기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Q. 영희 역을 맡은 전여빈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연기를 펼쳤다. '여배우는 오늘도'에서도 주목받았지만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과 연기를 보여줬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면 때문에 캐스팅 한 것인지 궁금하다.

A. '여배우는 오늘도'를 보기 전에 오디션을 봤다. 연출팀 친구가 오디션 영상을 보내주면 매일 확인하면서 배우를 찾았다. 영상만으로는 배우를 다 파악할 수 없으니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전여빈 씨는 본인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해줬고, 내가 느낀 감정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이라면 본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의심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나 내가 어느 순간 감정의 흐름을 놓치더라도 이분이라면 잡아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고 싶어 본인의 이야기처럼 소화해줄 배우를 찾았고, 전여빈은 최적의 배우였다.    

이미지Q.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한 수화 장면이 후반부에 다시 등장한다. 그 의미가 자막으로 전달될 때의 충격이 엄청나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A.그 불통의 순간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뒷장면에 자막으로 뜻이 나올때 '우리는 (영희의 언어 혹은 속내를)까맣게 몰랐구나'라는 것이 극대화된다. 

Q. 최근의 한국 상업영화를 통틀어서도 사운드의 활용이 가장 탁월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A. 8개월 정도 편집을 하면서 사운드도 같이 만들었다. 계속 가믹싱을 하면서 컷 편집을 동시에 해나갔다. 공을 많이 들였다. 영화 하나 다시 만든다는 생각으로. 믹싱 기사님과도 합이 잘 맞았다. 영화 전체가 밝음과 어둠, 따뜻함과 차가움이 교차하고 그것이 계속 한 프레임에 담기길 원했는데 사운드도 마찬가지였다. 안 들리다가 들리다가를 반복하지 않나. 굴다리 장면에서 사운드가 뮤트(Mute:소리를 줄이거나 없애는 것)되기도 하는데 믹싱 기사님이 자칫하면 음향 사고처럼 보일 수 있다고 우려하셨다. 근데 나는 그게 재밌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Q. 굴다리 장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A. 그 장면은 어젯밤 현장일 수도 있고, CCTV로 간주할 수도 있다. 영화 초반 그 장면이 등장하고, 나중에 경찰에 의해 CCTV 화면으로 다시 한번 나오면서 이게 경민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CCTV의 레벨(카메라의 높이)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하이레벨로 바꾸면 객관적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주관적인 레벨, 아이레벨로 낮췄다. 뒤에 컷이 형사들이 CCTV를 보고 있는 모습이 붙어서 앞에 컷이 CCTV 컷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을 단독으로 볼 때는 아이레벨로 찍혀있어서 누군가의 (주관적인)시선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건 꿈일 수도 있고 상상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 컷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닿을 수 없는 그 날의 어떤 순간인 거다. 

이미지Q. 영화의 엔딩은 마치 영희가 내면의 우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의도였는가?

A. 카메라가 쫓아가다가 멈추지 않나.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을 연출하고 싶었다.

Q.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이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것은 아니었고, 졸업 이후 장편 영화를 만들기까지도 꽤 공백이 있었는데?

A. 그렇다. 정규과정으로는 27기니까 2010년에 졸업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안국진 감독과 '레슬러'를 만든 김대웅 감독, '불한당'을 촬영한 조형래 촬영감독 등이 동기다. 대학에서는 스포츠 과학을 전공했다. 수영을 오래 해 수영 강사도 하고, 라이프 가드도 했다. 영화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고 동경했다. 아카데미 들어가기 전에는 단편 영화를 찍고, VJ 알바도 하면서 독학했다. 

Q. 이력 중 '곡성' 연출부 출신이라는 것에 눈길이 간다.

A. 1년 동안 연출부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나홍진 감독이 연출부들을 많이 챙겨 주신다. 통화를 한번 하면 한 시간씩 하는데 소소한 것들을 많이 가르쳐주신다. 고마운 분이다.

Q. 화장실 장면, 레스토랑 장면 등 자해 장면의 묘사와 카메라의 시선 때문인지 이 영화가 자극을 전시한다는 평가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A. 전시할 마음은 없었다. 다만 영화 이상으로 강하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몇몇 장면을 불편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퍼즐 맞추듯 끼워 넣은 건 아니고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해 넣었다. 화장실 장면은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렇게 해야 공감이 되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내가 인지하고 있는 건 더 크니까. 큰 벽처럼 관객이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느꼈던 것들이 장난 같지 않았으면 했다. 실제 겪은 고통에 비하면 100%는 안 담겼다. 그렇게 묘사해야 약간이나마 전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이미지Q. 감독이 집요하고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다 봤을 때의 느낌은 아리다는 것이었다. 결국엔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모든 사람들이 크든 작든 상처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라.

A.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일련의 사건을 모두 다 봤다. 그리고 그 고통을 크든 작든 공유하게 되는 상황이 있었다. 그러니 각자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될 수밖에 없다.

Q. 한글 제목은 '죄 많은 소녀', 영제는 'After My Death'다. 탁월한 제목이다.

A.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모호하거나 관념적인 건 아닐까 싶더라. 영제는 원래 '애프터 데스'(After Death)였는데 해외 배급팀에서 '마이'(My)를 넣으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이 제목이다 싶었다.

Q. 인생은 비극일까?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질문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A. 내가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중간이 아니라 극단인 것 같다.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지나치게 비관한다. 영화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계속 의심하고 비관했다. 그때 조감독이 응원해주고 그랬다. 평소에 시니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긴 한데 알고 보면 철이 없다.

Q. 이제 막 첫 장편 영화를 내놓았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A. 뭔가 좀 의미 있는 영화, 누군가에게 필요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