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주지훈의 맛있는 연기

김지혜 기자 작성 2018.10.12 16:43 수정 2018.10.12 16:53 조회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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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를 재밌게 봤다는 말이 제일 좋아요. 꿈에서도 듣고 싶은 말입니다."

영화와 연기에 관한 덕담을 건네자 주지훈에게 돌아온 답이었다. 꿈에도 듣고 싶은 말을 올해는 데뷔 이래 가장 많이 들었다. 

주지훈이 훗날 배우 생활을 돌이켜볼 때 2018년은 남다른 해로 기억될 것이다. '신과함께-인과 연'(이하 '신과함께2'), '공작' 그리고 '암수살인'까지 어느 것 하나 아쉬울 게 없는, 배우에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작품을 필모그래피에 넣었다.

'신과 함께2' 1,227만 명, '공작' 497만 명, '암수살인' 228만 명(상영 중). 올해에만 무려 1952만 명의 관객이 주지훈이 출연한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했다. 지난 10월 5일 부일영화상 시상식에서 '공작'으로 생애 첫 남우조연상도 수상했다.    

'신과함께2'와 '공작'이 주지훈의 스타성과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였다면 지난 3일 개봉한 '암수살인'은 주지훈의 연기력에 대해 논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암수살인' 속 주지훈의 연기에 대한 극찬은 부산 사투리, 삭발, 체중 감량 등에 집중된 감이 없잖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의 연기를 곱씹어보면 그 매력이 생각보다 깊고 다채롭다. 그저 연기 좀 하는 배우인 줄 알았던 이 배우의 스펙트럼이 기대 이상으로 넓다는 것 그리고 이 배우가 연기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아주 잘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암수살인

'암수살인'은 감옥에서 7건의 추가 살인을 자백하는 살인범과 자백을 믿고 사건을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실화극. 주지훈은 이 작품에서 살인범 강태오로 분했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무서웠다. 영화에 묘사된 건 일종의 '묻지마 범죄'지 않나. 우발적 범죄가 다수다. 시나리오를 읽는 것만으로도 무기력해지고 공포스럽더라. 무엇보다 '피해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수살인'은 화려한 액션이나 요란한 추격전도 없는 범죄 영화다. 진실을 쫓는 한 형사의 우직한 추격기에 집중하며, 범죄 사건의 묘사에 있어서도 선정성과 자극을 최소화했다. 메시지에 중점을 둔 감독의 뚝심이고 이 영화만의 개성일 수도 있지만, 자칫 심심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 틈은 배우들의 명연기로 채웠다. 

이 영화가 긴장감은 발생시키는 방식은 형사 김형민(김윤석)과 범인 강태오(주지훈)의 팽팽한 심리 게임이다. 추가 살인을 자백한 강태오는 형량을 줄이고 싶고, 진실을 추적하는 형사 김형민은 미제 사건을 해결하고 싶다. 두 사람은 접견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심리전 밀당을 한다. 

암수살인

"언뜻 보기에 강태오가 그냥 막 미쳐 날뛰는 것 같지만, 연기적으로는 하나하나 계산된 거다. 감정의 톤 조절은 물론이고 고개 각도조차 계산해서 연기를 해나갔다. 접견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극의 흐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줘야 했다. 두 사람이 하는 밀당의 느낌을 관객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연극을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참고한 인물은 없다고 했다. 심지어 주지훈은 영화의 모티브가 된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도 보지 않았다. 시나리오에 표현된 인물의 형상을 머릿속에 그리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부산이 배경인 영화에다가, 부산 사람을 연기해야 했던 탓에 사투리 연마는 필수적이었다. 많은 배우들이 부산 사투리는 외국어를 익히는 것만큼 어렵다고들 한다. 게다가 주지훈은 서울 토박이었다.

"연기라는 건 언어를 통해 대사와 감정을 전달하는데 이 영화에선 언어가 핸디캡이었다. 경상도 사투리의 허들은 무서울 정도로 높지 않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심사위원처럼 '사투리 잘하나 못하나'를 볼 것 같았다. 나이브한 분위기의 영화인데 캐릭터는 사투리를 써야 하고, 연기 역시 마음대로 하는 게 신별로 계산된 연기를 해야 했다. 원래 작품에서의 준비 과정이나 노력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딱히 고생스럽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 따져보니 사투리 연습을 하루에 8~9시간 정도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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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영화에서의 악역 변신은 배우에게 자칫 위험할 수가 있다. 종전의 이미지를 바꾸는 극단의 변신이 될 수 있지만, 이 변신은 배우에게 굴레가 되기도 한다. 특히 여성 팬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미남 배우가 극악무도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은 시도도 어렵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몰입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 어설프게 표현하면 작품 자체를 망칠 수 있다.

게다가 살인범 캐릭터는 '악마를 보았다' 최민식, '추격자'의 하정우 같은 바이블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있다. 뛰어넘을 수 없고,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산을 앞에 두고 답습하기도, 자신만의 무언가를 창조해내기도 쉽지 않다. 주지훈은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배우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리허설에 모든 것을 던지는 스타일은 아니다. 리허설은 큰 동선만 잡아놓고 본격적인 연기는 촬영에 들어가면 하는 편이다. '암수살인'의 경우 사투리를 써야 하는 데다 움직임도 많고, 연기적인 약속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리허설을 한 시간씩 했는데 진이 빠지더라. 그러다 보니 현장에 가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또 가서 연기를 하면 너무 재밌고. 한여름에 계곡물이 차가워서 들어갈 엄두가 안 나지만 막상 들어가면 너무 시원해서 좋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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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앞선 선배들의 악역 캐릭터와는 또 다른 유형의 캐릭터가 탄생했다. 강태오는 주도면밀한 지능형 범죄자라기보다는 어린아이 같은, 철들지 않은 나쁜 놈이라 더 무서운 범죄자다. 이를 표현해낸 주지훈의 연기는 다채롭고 재밌다. 

삐딱한 걸음걸이, 변색 안경 등 강태오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들도 대본에 표현된 것에서 나아가 주지훈의 해석이 투영돼 풍성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 게다가 주지훈의 짝눈이 영화에서 이렇게 쓰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암수살인'은 요 근래 나온 범죄 영화 중 가장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충격적 사건 안팎에 놓인 인간을 폭넓게 들여다보는 영화다. 인간을 향한 사려 깊은 태도가 돋보이는 이 작품에서 주지훈은 악(惡)을 담당했음에도 소비되지 않고 캐릭터 그 자체로 놀라운 에너지를 발휘했다.

주지훈의 연기 스펙트럼이 재능인지 노력인지 알 수 없지만(아마도 두 요소의 앙상블에 힘입은 결과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연기는 매우 다양한 맛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올해만 3편의 영화를 내놓았지만 쉬지 않고 달린다. 이미 촬영을 마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과 이제 막 촬영을 시작한 '아이템'으로 곧 시청자들과 만난다.   

<사진 =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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