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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신성일, 영정사진 속 미소 띤 마지막 모습..영화인장 엄수

강선애 기자 작성 2018.11.04 14:32 조회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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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사진변환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폐암 투병 끝에 별세한 배우 신성일(본명 강신성일)의 빈소가 마련됐다.

한국 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이 4일 오전 2시 30분 전남의 한 병원에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고인의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에 차려졌다. 하얀 셔츠를 입고 살짝 미소 띤 표정을 짓고 있는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정사진이 준비됐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신성일 사진변환

고인이 한국영화계에 세운 업적을 기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엄수된다. 영화인장은 한국영화의 발전에 공헌한 예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장례 절차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지상학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영결식은 오는 6일 오전 10시에 진행하며, 오전 11시 서울추모공원으로 고인을 옮겨 화장한다. 장지는 경북 영천이다.

신성일 사진변환

고(故)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치료를 이어왔다. 그러다 지난 3일부터 병세가 위독해져 그간 치료를 받아오던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전남대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사망 오보가 나오며 한차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상태가 악화된 고인은 결국 숨을 거뒀다.

투병 중이었으나 고인은 한국 영화계의 큰 어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지난달 초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밝은 표정으로 대중에게 인사를 전한 바 있다. 그게 고인의 생전 마지막 대외 활동이 됐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의 본명은 강신영이었으나, 故신상옥 감독이 '뉴스타 넘버원'이란 뜻으로 지어준 예명 '신성일'을 주로 사용했다. 정계에도 진출했던 그는 국회의원 출마를 앞두고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영화계에 데뷔한 고인은 '맨발의 청춘'(1964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1960년대와 70년대 최고의 미남배우이자 청춘스타로 당대를 풍미했던 그가 출연한 영화는 무려 500여편.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출연 영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등 한국 영화계에 길이 남을 만한 독보적인 활동이다. 1967년 한 해에만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51편이다. 그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1964년부터 1971년까지 8년간 개봉한 한국영화가 1,194편인데 그 가운데 324편에 그가 등장했다.

고인은 다수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여배우 엄앵란과 지난 1964년 결혼했다. 당시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약 4,000명의 인파가 몰려 지금까지도 '세기의 결혼'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들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고인의 외도와 사업실패 등으로 40년 넘게 별거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혼하지 않고 힘들 때 서로의 곁을 지키며 인생의 동반자로서 삶을 함께 했다.

유족으로 부인 엄앵란, 장남 석현·장녀 경아·차녀 수화 씨가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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