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영화 핫 리뷰

[빅픽처] '완벽한 타인', 핸드폰은 어쩌다 시한폭탄이 됐나

김지혜 기자 작성 2018.11.06 10:54 수정 2018.11.07 11:39 조회 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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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지금 당장 무인도에 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생필품을 제외한 단 하나의 물건을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이 핸드폰(와이파이가 터진다는 가정하에)을 꼽을 것이다. 21세기 사회에서 핸드폰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작고 얇은 손바닥 전화기는 타자와의 소통, 긴급 상황 대비, 인맥 관계 확산 등의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온갖 비밀이 담겨있기도 하다. 프라이버시의 보고(寶庫)이자,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이 물건을 누군가에게 공개해야 한다면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영화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은 이 아찔한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바른생활의 표본인 변호사 태수(유해진)와 매너 좋은 중년의 의사 석호(조진웅), 꽃중년 레스토랑 사장 준모(이서진), 상남자처럼 보이지만 속은 여린 체육 교사 영배(윤경호)는 40년 지기 고향 친구들이다. 이들은 석호와 예진(김지수) 부부 집에서 아내를 동행한 커플 모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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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이 흥미로운 게임을 제안한다. 저녁 식사 중에 오는 전화와 문자, 이메일까지 모두 공유하자는 것. 하나같이 당황하지만, 비밀이 있다는 의심을 살까 봐 게임에 응한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전화벨이 울리고, 문자 알람이 켜질 때마다 아연실색하는 상황이 연이어 벌어지게 된다.

'완벽한 타인'은 핸드폰을 통해 긴장감을 유발하고, 캐릭터의 충돌을 통해 유머를 발생시킨다. 게임이라는 이름 아래 룰이 적용되는 만큼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참여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압박감을 높인다.

핸드폰 공유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신된 모든 것을 공개해야 한다는 가정을 한다면 그 순간부터 이 물건은 치명적인 비밀 창고이자 판도라의 상자가 되고 만다.

'완벽한 타인'의 재미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7명 주요 캐릭터의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인물의 속성과 이면이 드러난다. 단순히 개인의 비밀이 드러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인간관계에 얽힌 다양한 감정까지 드러난다. 부부관계, 불륜, 고부갈등, 성 정체성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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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단출하면서도 만만찮은 힘을 가진 영화다. 테이블 위에서 하나같이 웃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비밀 폭탄을 피해보려고 각자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이런 신선한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을 발견하는 것은 퍽이나 오랜만이다. 이 영화는 원작이 따로 있다.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스'다. 스페인, 그리스 등 1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리메이크 됐다. 

한국 리메이크의 아쉬움은 있다. 발칙한 상상력을 펼쳐놓은 데 반해 마무리가 시원찮다.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나 다수의 도덕관념에 발목이 잡힌 느낌이랄까. 조금 더 과감하게 나가지 못한 채 황당한 방식으로 상황을 수습해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긴장과 이완의 저글링으로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고 적시적소에 웃음을 터트리는 각본의 힘이 느껴진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최소한의 동선만을 사용한 미니멀한 연출도 돋보인다. 전화벨 소리, 문자 알람 등의 사운드를 공포의 소리로 활용한 것이라던가 주제가 격인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의 효과적 등장은 무릎을 칠 정도로 유쾌하다.

게다가 유해진, 염정아, 조진웅, 김지수, 이서진, 송하윤, 윤경호까지 일곱 배우가 탁구를 치듯 대사를 주고받는 연기 호흡이 기가 막히다. 배우들이 캐릭터를 이해하고 흡수한 상태에서 상호 호흡을 맞췄기에 탁월한 앙상블이 완성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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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전화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카메오의 활용도 돋보인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우가 가진 이미지를 목소리 연기로도 표현한 배우가 있다.

영화가 깊게 이입되거나 강렬한 공감 지수를 유발할 때는 이야기 속 설정과 사건이 나에게도 적용 가능할 때 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저 게임을 제안한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이 흥미로운 염탐은 공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작부터 결말까지 꽤나 흥미로운 가정이 된다.

'완벽한 타인'은 두 가지를 인정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무사 무탈하게 한다고 말하는 영화기도 하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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