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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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가수 김장훈은 왜 콘서트장에서 지갑을 열까?

강경윤 기자 작성 2018.11.27 11:09 수정 2018.11.27 11:26 조회 2,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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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자, 오늘 엄마 아빠 손잡고 온 친구들 손들어 봐. 삼촌이 용돈 줄게. 손 번쩍 들어봐."

가수 김장훈이 콘서트 도중 지갑을 열었다. 아무리 돌발 이벤트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게 익숙했던 김장훈이지만 왜 갑자기 그가 공연 도중 지갑을 열는지 궁금했다. 김장훈은 명절에 만난 삼촌들의 그랬듯, 어린이들은 물론 초, 중학생들에게까지 용돈 선심을 썼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김장훈이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건 매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 회 공연에서 아이들이 3명이든, 10명이 넘든 김장훈은 셈하지 않는다는 것. "콘서트 제작비에 애들 용돈 비 따로 넣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김장훈은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정작 본인이 아이들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울 대학로 청운예술극장에서 진행되는 100회 연속 콘서트 '고운말 콘서트'에서 김장훈은 아이돌 그룹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를 편곡해 새로운 세트리스트에 추가했다.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교가보다 더 많이 불린다는 '사랑을 했다'를 통해서 엄마 아빠 손잡고 온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즐거웠으면 좋은 마음에서란다.

"용돈을 주면 남는 것도 없지 않나."라고 기자가 말문을 열자 김장훈은 "괜찮다. 뭐가 남는지 아닌지를 생각하고 계산하면서 공연을 하진 않는다."면서 "그동안 3000번 정도 공연을 해오지 않았나. 사람들은 내가 건물이라도 올렸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또 안 그러면 좀 어떤가. 낭만이 있는데."라고 말했다.

김장훈의 입에서 '낭만'이라는 단어가 밖으로 나왔다. 김장훈은 잘 알려져 있듯 유약하고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병치레 때문에 병원에서 유년시절 대부분을 보냈고, 일하는 어머니의 빈자리는 김장훈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김장훈은 음악을 평생의 벗으로 삼았고, 아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콘서트장에 오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착하잖아요.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엄마 아빠가 가잔다고 따라왔잖아요. 용돈 주면서 '너네 아저씨가 예뻐서 주는 거야. 이거 아저씨 마음이야. 너희들도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나눠주고 그래'라고 얘기해주면 아이들은 그 마음을 평생 못 잊어요. 저도 아직도 어렸을 때 그렇게 받았던 용돈, 얼마인지는 기억 안나도 그때의 따뜻했던 감정을 잊지 못해요."

김장훈

김장훈에게 아이들에게 주는 용돈, 혹은 택시기사에게 '오늘은 사모님과 맛있는 거 드세요'라며 건네는 작지만 정중한 사치에는 그런 '낭만'이 담겨 있었다.

"솔직히 기부를 몇십억 씩 하다 보면 돈에 대한 개념이 잘 안 생겨요. 그런데 5만원씩 200번을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3~4인 가족이 2, 3일 동안 정말 행복하지 않겠어요? '이건 어차피 내 돈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까운 것도 없고요. 제 돈이 행복의 씨앗이 되어 세상에 전파된다면 저는 더 바라는 게 없어요."

김장훈은 가수인 동시에 꿈을 꾸는 공연 연출가다. '고운말 콘서트'가 열리는 소극장은 그가 주로 해왔던 수만 석 규모의 공연장에 비하면 협소하다. 하지만 김장훈의 넘치는 재치와 상상력을 실현시키기에 결코 좁지 않는 공간. 김장훈은 이번 콘서트에서 무대 앞 낭만석을 만들고, 홀로그램 화면을 설치하고, 자신의 인생과 비전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공개하면서 누구보다 진솔하게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3년 동안 병원에만 있었을 때 정말 저는 날고 싶었어요. 예전에 공연장에서 최초로 날아가는 무대를 설치해 날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공연이 끝난 뒤 한 여고생이 '자살을 꿈꿨는데 나도 한번 꿈을 향해 살아가고자 한다'고 편지 써서 줘서 제가 그날 밤새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누군가는 저를 이벤트 가수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벤트는 경우에 따라서 목숨까지도 살리는 숭고한 거예요."

김장훈은 3000회 넘는 콘서트를 통해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한 수많은 이벤트를 펼쳐 보인 바 있다. 독도 3D영상, 로봇 스테이지, 우주쇼, 여장쇼 등 '대한민국 공연의 전설'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다양한 시도를 했다.

"저는 무대에는 철학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재밌다, 신기하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인문학의 관점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정말 관객들과 서로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어려운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한곡, 한곡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인생을 얘기하는 공연을 통해서 서로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요."

김장훈이 이번 소극장 콘서트에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되뇌고 있다. 그는 실제로 공연 내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관객들과 호흡하고 있다. "왜 그렇게 행복하나."라고 묻는다면, 김장훈은 관객들이 나의 음악에 행복해 하기에 행복하다고 답할 게 분명하다.

김장훈

"시끌시끌한 연말이면 저는 늘 외로웠어요. 그래서 어두운 곳을 먼저 봐요. 누군가에게는 화려한 연말이, 누군가에게는 그래서 더 힘든 시간일 수도 있거든요. 생일잔치도 거의 안하고 연말도 최대한 조용하게 지내왔어요. 저에게 이번 연말 콘서트는 '낭만', 그중에서도 외로움을 아는 '낭만'이 될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은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 김장훈을 통해 낭만을 찾기 위해 콘서트 장을 찾는다. 그렇다면 김장훈에게 '낭만'은 무엇일까.

"그동안 '극복'이 낭만이었어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낸다는 것이었죠. 어렵던 시절이었으니까, 어려움을 이겨내고 '와, 이겨냈다'라고 하는 낭만이 좋았어요. 이제는 못하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이제는 그저 사랑하고 나누고 용서할 게 있으면 용서하고, 용서받을 게 있으면 용서받는 그런 평범한 낭만이 좋아요."

'낭만'에 대한 철학이 분명한 김장훈이기에, 그의 공연은 공연 그 자체의 의미로 둬야 낭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예술과 문화는 현실에 메이지 않아야 한다는 게 그의 공연 철학. 김장훈은 "최대한 티켓 가격을 낮추고, 대신 더 좋은 공연을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게 나의 꿈"이라고 바람을 밝혔다.

사람 냄새 가득한 김장훈의 100회 연속 콘서트 '고운말 콘서트'는 매주 금, 토, 일요일 서울 대학로 청운예술극장에서 뜨겁게 열린다.

김장훈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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