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PMC', 하정우가 연 액션의 새 장…관람에서 체험으로

김지혜 기자 작성 2018.12.24 12:39 수정 2018.12.24 14:49 조회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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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C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관객은 창작자가 만들어놓은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으로 소비한다. 영화를 즐기는 가장 능동적인 방식은 관람 후 감독의 의도를 해석하고 배우의 연기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PMC: 더 벙커'(감독 김병우, 제작 퍼펙트 스톰 필름)는 영화라는 오락을 관람하는 차원에서 체험하는 장으로 판을 벌린 야심 찬 결과물이다.

2013년 영화 '더 테러 라이브' 인터뷰 당시 김병우 감독은 주인공 윤영화(하정우)의 감정 그래프로 그린 수첩을 보여준 바 있다. 폭탄 테러의 압박을 한정된 공간에서 감당해야 했던 주인공의 심리가 상·하강 곡선으로 표현된 지표였다.

감독이 인물의 감정 상태를 장면 장면에 따라 달리 설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였다. 하정우는 감독이 그린 그래프를 멀티태스킹 연기로 시각화했다. 젊고 새로웠던 영화에 전국 558만 관객이 반응했다.

그로부터 5년,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고 리얼타임 생존극에 관객을 등에 태우는 보다 확장된 시도를 감행했다.

PMC

'PMC: 더 벙커'(감독 김병우)는 글로벌 군사기업(PMC)의 캡틴 에이헵(하정우)이 CIA로부터 거액의 프로젝트를 의뢰받아 지하 30M 비밀벙커에 투입되어 작전의 키를 쥔 닥터 윤지의(이선균)와 함께 펼치는 리얼타임 생존 액션 영화다.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조직이 감독과 배우의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 호기심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다국적의 불법체류자로 구성된 팀 '블랙 리저드'는 거액의 대가와 미국 시민권 보상을 제시하는 CIA의 의뢰를 수락한다. CIA가 PMC에 비밀 작전을 의뢰하는 것을 한국의 정세를 자국의 정치판에 이용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남북 관계를 설정으로 가져온 영화는 많았지만 그 상상력은 대체로 순진했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남북관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역시 북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만큼 'PMC'의 설정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강대국이 주요한 군사 업무를 PMC에 맡기는 것은 비밀 유지가 가능하면서도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고 무엇보다 필요에 의해 쓰고 버리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PMC'는 비밀 작전이 엇나가면서 발생하는 CIA와 블랙 리저드 사이의 갈등, 딜레마, 내부 분열 등을 영화적 재미로 다채롭게 활용한다.

'PMC'는 영화 시작 후 10여 분만에 뉴스릴과 그래프, 분할 화면 등으로 정치적 배경을 빠르게 설명한다. 가판대에 궁금증을 유발하는 물건들을 진열하고 이제 셔터를 올리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김병우 감독만의 세련된 도입부다.

피엠씨

현란한 교차 편집으로 시선을 모은 영화는 DMZ 지하 비밀 벙커로 관객을 안내한다. CIA와 PMC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시작된 비밀 작전은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부딪히며 갈등과 긴장의 괘도에 진입한다.

'PMC'는 감독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영화 안팎의 시간이 동일한 리얼 타임으로 진행되며, 지시하는 사람과 지시받는 사람의 소통은 모니터, 무전 등으로 이뤄지는 폐쇄적 설정을 통해 체험의 강도를 높였다.

영화의 대부분은 핸드헬드로 촬영했다. 감독이 이 방식을 선택한 것은 관객이 블랙 리저드의 작전을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체험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드코어 헨리'처럼 토할 것 같은 수준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속도로 화면에 적응하느냐가 영화 집중도의 차이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고 액션 신이 관객들에게 직접 체험하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블랙 리저드 크루들의 헬멧에 POV(1인칭 시점)캠을 장착했다. 스크린에 대원들의 시점으로 작전을 보여줌으로써 영화 내내 박진감이 유지된다.

벙커 곳곳은 드론 카메라로 촬영됐다. 팀원들은 미로 같은 벙커를 전진해나가며 총격전을 벌인다. 좁고 꽉 막힌 벙커의 코너를 돌 때마다 쏘거나 맞는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고 이 과정은 흔들리는 카메라와 강렬한 사운드로 전달돼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준다.

피엠씨

분명 극영화지만 놓인 상황과 설정은 FPS 게임(First-person shooter; 1인칭 슈팅 게임)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어지러움이나 울렁증을 느낄 수도 있다. 총을 주 무기로 쓰는 'PMC'는 요 근래 나온 한국 영화 중에서 사운드가 가장 돋보인다.

▲ 리얼 타임, ▲ 한정된 공간, ▲ 생존 게임 등 영화의 키포인트 등을 생각하면 김병우 감독의 전작 '더 테러 라이브'의 성공 방식이 이어진 듯한 느낌도 든다. 형식과 설정으로 영화적 재미를 높이는 지적인 연출 방식은 고수하되 사건만큼이나 인물에도 포커싱을 맞췄다. 특히 두 남자의 브로맨스를 통해 보편적 공감대 형성에 힘을 실었다.

남한 출신의 에이햅과 북한 출신의 윤지의의 브로맨스는 뻔한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남북 화해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생존'이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피어난 자연스러운 동료애 정도로 묘사했다. 또한 전시에 준하는 작전 상황이라는 설정 탓에 두 사람의 드라마가 겹겹이 쌓이는 방식으로 연출되지는 못했지만 배우 각각의 매력과 역량이 빛을 발하다가 결합되는 흐름이라 큰 단점은 아니다.

다국적의 용병으로 구성된 '블랙 리저드'는 에이햅을 제외한 모든 배우가 외국인이다. 대사도 80%가 영어다. 영어 대사는 '데드풀' 시리즈, '스파이더맨 홈커밍'으로 유명한 황석희 번역가가 작업해 몰입도를 높였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영화 '시카리오' 등을 번역한 내공 덕분에 밀리터리 마니아가 봐도 생생한 현장감이 한국 영화 속 영어 대사에서 느껴진다.

피엠씨

한국 출신의 용병 에이햅으로 분한 하정우는 액션에 영어 대사까지 마스터해야 했던 이중고를 극복해냈다. 남성미 넘치는 외모 변화부터 캐릭터의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내면 연기도 돋보인다.

영화 중반부, 어떤 상황으로 인해 인물의 동선의 좁아지는 상황이 발생하지만 작은 디테일에도 생기를 불어넣는 하정우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이 구간은 앞선 전개에서의 매력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기에 영화 전체의 위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배우의 매력이 보완재로 기능한다.

'더 테러 라이브'를 통해 '1인극 장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하정우는 이번 영화에서도 악전고투하며 관객을 등에 업고 '체험, 생존 현장'에 와있는 듯한 생생한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 등장하는 낙하산 시퀀스는 흡사 '미션 임파서블'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요 상황이 종료되고 이야기의 마무리에 접어든 순간 등장하는 이 장면은 확실한 스펙터클로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푸짐한 아드레날린을 선사한다. 공중 부양 감이 살아있는 액션신을 한국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엔딩까지 체험의 강도를 극대화하고 따뜻한 드라마까지 부여한 것은 'PMC'의 미덕이다.

김병우

하정우와 이선균은 촬영 대부분을 파트너의 리액션을 예상하며 연기했다. 하정우와는 또 다르게 홀로 고군분투하며 과정이 외로운 연기를 수행해낸 이선균의 열정과 노력도 칭찬받을 만하다.

김병우 감독은 치밀하게 설계된 흥미로운 설정, 미니멀한 이야기와 감정선 구성을 통해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 같은 단순하지만 확실한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는 데 성공했다.

뻔한 공식과 안전한 지향으로 점철된 기획 영화가 판을 치는 충무로에서 소재와 형식의 신선함을 놓치지 않는, 무엇보다 관객의 젊은 취향을 타겟팅하는 야심은 돋보인다.

*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의 관람을 추천한다. 자막에 얽매이지 말고 상황에 집중할 것.
* 김병우 감독이 숨겨놓은 이스터에그(Easter Egg: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 속에 숨겨 놓은 재미있는 것)를 찾아보자.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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