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PMC' 김병우 감독이 밝힌 숨은 1mm

김지혜 기자 작성 2018.12.28 17:52 수정 2018.12.29 11:50 조회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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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관람 후 읽을 것을 권합니다.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김병우 감독은 상업영화 데뷔작 '더 테러 라이브'(2013)의 상영이 끝난 후 오답 노트를 작성했다.

제작비 35억을 투입해 만든 이 영화로 불러 모은 관객 수는 550만 명. 그해 가장 성공한 영화 중 한 편이었지만, 만든 이는 단점을 되짚는 시간을 가졌다.

"'더 테러 라이브' 이후 머릿속이 포맷됐다. 내가 만든 영화의 부족함을 돌이켜봤다. 하지만 다시 시간을 돌이킨다 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가진 능력이 그 정도였으니...제작사 이춘연 대표('씨네 2000')께서 '영화는 제 생긴 대로 나오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에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겠더라."

신작 'PMC: 더 벙커'가 나오기까지 5년, 성공한 감독의 차기작치고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PMC

"아이슬란드를 여행 중이었는데 하정우 선배가 다음 영화를 같이 해보자는 연락을 주셨다. 귀국해 만나 난상토론처럼 여러 아이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던 것 같다. 그때 선배가 DMZ 지하 벙커에서 뭔가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라고 하시더라. 그 당시 막연히 주요 인물이 납치당하는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던 터라 괜찮다고 생각했다. '납치당하는 사람은 누구고, 벙커에 있는 사람은 누굴까'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2013년 10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차기작 준비에 들어갔고, 2014년 1월경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가 제작된다고 했을 때부터 'PMC'라는 낯선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해외에서는 알려졌을지 몰라도 국내에서 민간군사기업(PMC)의 존재는 생소했다. 국가의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조직이 자국 군인이 아니라는 다국적 용병이라는 설정은 흥미로웠다.

"미국에는 굉장히 보편화돼있다. 표면적으로 국방비를 감축해야 하기 때문에 외주를 주는 것이다. 티 나지 않고 목적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성공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된 대표적인 경우는 2004년 미국 부시 대통령 집권 당시다. 당시 부시는 이라크전 반대 여론과 싸우면서도 물밑에서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라크전에 투입된 용병의 규모가 엄청났다. 그들은 전장에서 죽어도 카운트가 안되니 활용하기 좋았을 것이다. 심지어 불법체류자라고 한다면 낮은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좀 가볍게는 해양 선박이 해적을 대비해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상황 안에서 PMC라는 소재를 활용하고자 하면 DMZ를 뺄 수 없겠더라. 다만 그동안 남북 소재 영화와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싶었다. 주인공에게 애국심 같은 목적을 지웠다. 남한 출신이긴 하되 미국의 불법체류자 용병으로 설정했다."

김병우

◆ "에이햅과 관객이 친구가 되길 바랐다"

'더 테러 라이브' 오답 노트는 'PMC: 더 벙커'의 방향 설정에 영향을 미쳤다. 김병우 감독은 "전작에서는 인물과 사건의 무게 배분이 5:5 정도였다. 이번에는 인물에 좀 더 무게를 실어보자고 생각했다. 'PMC'의 전체 구조가 에이햅의 인물탐구로 보였으면 했다."라고 밝혔다.

하정우가 연기한 에이햅은 이름부터 눈길을 끈다. 전작 '더 테러 라이브'의 주인공 윤영화(하정우)와 초성이 동일한 이 이름은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에서 따왔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마크'라는 평범한 영어 이름을 붙였다. 어느 순간 이름도 사람의 히스토리와 연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경'에서 에이햅은 고래를 잡으려다가 한쪽 다리를 잃는다. 복수를 하려고 선원들을 데리고 가다가 선원들마저 마저 죽는다. 두 에이햅의 서사는 큰 틀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에이햅 몸에 고래 문신도 새겼다. 몇몇 문신은 하정우 선배가 그린 도안을 그대로 새긴 것도 있다."

* 하정우는 에이햅의 몸에 새겨진 문신은 그가 살아온 여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훈장과 같은 의미로 해석했다고 했다. 직접 디자인한 문신 중 하나는 심박수 그래프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피엠씨

에이햅은 민간군사기업(PMC) 블랙 리저드의 리더다. 영화의 도입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건이 에이햅의 시점에서 그려지기 때문에 이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면 영화의 재미가 배가된다. 한국에서 군인으로 일하다가 실수로 불명예 전역을 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PMC가 됐다. 과거 일로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얻기도 했다.

김병우 감독의 영화 속 인물은 우리가 익히 봐온 주인공의 속성과 다른 특징을 띤다. 선보다는 악에 가까우며, 대의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좇는 인물로 그려졌다. 에이햅 역시 돌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냉철한 판단으로 관객의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더 테러 라이브'의 윤영화의 경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에이햅은 사람과 관계에 어떻게 대응하냐에 중점을 줬다. 그것 때문에 이 영화는 마지막에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으로 끝날 수 있었다. 주인공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킨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세계 안에서는 크게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고 상황에 따라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에이햅이 굉장히 냉철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아내와 통화할 때는 다른 모습도 보이지 않나.

우리가 아는 배우가 낯선 행색으로 나와 낯선 언어를 쓰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텐데 영화가 끝났을 때는 관객이 에이햅과 친구가 됐으면 했다. 친구를 사귈 때 싸우며 실망하기도 하고,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을 목격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거치며 가까워지지 않나. 에이햅이 관객과 친구가 되려면 일련의 다양한 모습을 제한된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보여줘야 했다."

'PMC'에서는 그간 차가운 이성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김병우 감독의 감성적 변화도 엿볼 수 있다. 에이햅과 윤지의(이선균)의 관계에서 포착된 생존을 위한 연대, 신뢰의 관계 구축 등이 그러하다.

PMC

◆ 핸드헬드·POV캠 촬영…기술적 도전과 성취

'PMC'는 기술적 성취가 돋보이는 영화다. 촬영과 사운드 등이 특히 돋보인다. 촬영 부문에 있어 두드러지는 특징은 핸드헬드와 POV캠(1인칭 시점)이다.

김병우 감독은 "관객들이 에이햅 옆자리에서 이 상황을 같이 체험하듯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야기 자체도 그렇게 구성돼있으니 다른 모든 부분들도 그 전제 아래 작동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메라가 인물의 동선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서 감정으로도 호흡하려면 핸드헬드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카메라가 흔들리냐 안 흔들리냐보다 중요한 건 이 영화의 콘셉트를 어디까지 유지할까였다. '더 테러 라이브'의 반응을 보면서 느낀 점은 관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 관객은 올드하게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몇몇 장면에서 좀 과하다 싶은 것도 있지만 상황에 빠져 체험하듯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PMC'는 요근래 한국 영화 중에서 총기 액션이 장면의 완성도가 가장 높다. 특히 사운드의 활용이 돋보인다. 이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피엠씨

"이 영화를 하고 나서 섣불리 총을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한 컷을 찍고 나서 배우에게 총을 다시 쥐게 하기까지 너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벽에 뚫린 구멍을 메우고 망가진 주변 환경을 재정비하는 시간과 노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PMC'는 리얼 타임 형식에 생존을 위한 악전고투가 펼쳐지는 탓에 전작의 향기가 나기도 한다. 유사한 형식과 설정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내가 잘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에 대한 구조를 짤 때 '이 엔진을 다시 쓰는 게 맞는가', '아니면 새로운 엔진을 써야 하나, 개량해서 쓸까'라는 고민도 많았다. 지하 벙커에서 무슨 작전을 벌인다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이 분주하게 액션을 펼치다가 목표를 성취하고 끝나지 않을까 생각할 텐데 그러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고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친구를 어느 정도 타이밍이 됐을 때 주저앉혀놓고 사건을 전개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럴려면 종전에 썼던 엔진을 개량시켜 한 번 더 쓰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답했다.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후반부 낙하산 신의 설계와 촬영 뒷이야기도 밝혔다. 액션 가뭄을 일소에 해소해주는 스펙터클은 어떤 고민 끝에 완성됐을까.

김병우

"대부분의 관객이 액션을 즐기러 오셨을 텐데 갈증 해소가 안 된 상태에서 영화가 끝나면 안 되니까 아끼고 아꼈다가 보여드리자는 생각이었다. 낙하산 시퀀스는 액션 신이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신이기도 하다. 촬영 자체도 어려웠지만 사전에 동선을 설계하는 게 더 어려웠다. 두 인물이 비행기에서 딸려 나가기 직전부터 착지까지 한 테이크로 설계가 돼 있는 신이라 이걸 7~8군데로 나눈 후 각각의 컷들을 어떻게 설계하고 기술적으로 구현할지를 오랜 시간 고민했다."

영화의 스펙터클을 잘 구현해준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있지 않았다.

"하정우 선배는 '베를린', '암살' 등에서 여러 차례 액션 연기를 하셔서인지 경험에서 오는 유연함이 남달랐다. 낙하산 신의 경우 이게 잘 찍힐까 또는 배우들이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찍었다. 윤지의의 경우 영화 중간에 등장하기 때문에 캐릭터를 소개할 시간도 거의 없을뿐더러 관객의 시선도 많이 안 갈 수 있었다. 이 인물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나에게도 숙제였는데 이선균 선배가 대사는 물론 캐릭터 설정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해줬다."

김병우

◆ "남북관계, 영화적 장치 중 하나"

'PMC'는 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의 정치 역학관계가 배경으로 등장하고 두 주인공이 남한과 북한 출신으로 설정돼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주인공이 남과 북을 상징한다고 볼 수는 없다. 관객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엔딩부의 '고맙다. XX!' 대사 역시 영화 안에서 인물을 지칭하는 별명이고, 그 인물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뿐이다.

"에이햅과 윤지의 개인의 이야기지. 그 사람들이 뭐라고 남,북한을 대표하겠냐. 강대국의 논리와 압력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개개인의 모습이고 그 과정에서 이뤄지는 선택일 뿐이다."

영화에서 충격을 안겨주는 존재인 'KING'의 설정에 관한 고민도 많았다. 실존 인물 누군가를 떠오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작에서 마포대교 설정은 현실에서 어떤 배경들을 당겨오려고 쓴 것이지만 'PMC'에서는 현실과 연관되는 외부 요인을 단절시켜야 영화 자체에 관객이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킹의 이미지도 다르게 설정했다. 물론 북한 권력 서열 1위라는 상징성 때문에 큰 틀에서는 실존 인물과 비슷해 보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름은 부여하지 않고 대명사로만 썼다. 중반 이후 킹은 욕조에 누워있는 모습으로만 나오는데 그건 실제 사람이 아닌 더미(사람 모양의 인형)다."

피엠씨

김병우 감독은 관람을 넘어 체험의 영화로 자리매김한 'PMC: 더 벙커'를 좀 더 신나게 즐길 수 있는 팁을 소개했다. 사운드 특화관에서의 관람과 좌석 선택에 관한 팁이다.

"'PMC'는 돌비 애트모스로 작업한 영화다. 때문에 MX관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영화로 다가갈 것이다. 특수관이 아니라면 좌석 위치에 따라 체험의 강도도 조절할 수 있다. 떡볶이를 먹을 때도 매움의 강도를 조절하지 않나. 세고 강한 걸 원할 때는 제일 앞줄에서 보기를 권한다. 영화적 매운맛을 체험하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망하듯이 영화를 보고 싶다면 뒷줄을 추천한다."

* 김병우 감독이 넣은 '숨은그림찾기'

→ 에이헵이 사과를 먹는 장면은 아담이 사과를 먹은 것처럼 불행의 전조를 알리는 기능을 한다. 그는 사과를 먹기 전 화장실을 두 번 갔다. 게다가 두 번째는 손을 안 씻고 사과를 깨물었다.

→ 에이헵의 한쪽 다리는 육체적 장애와 더불어 정신적 트라우마를 상징한다. 그 다리에는 블랙리저드 마크가 찍혀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신체의 일부가 회사의 소유인 셈이다. 영화 후반부 에이햅은 이 다리를 과감하게 쳐내고 생존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나간다.

ebada@sbs.co.kr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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