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하정우는 오늘도 걷는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9.01.17 16:36 수정 2019.01.19 19:38 조회 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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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하정우는 2011년 '피에로'(pierrot)를 테마로 한 개인전을 연 바 있다. 피에로를 대신할 한글로는 '광대'가 적합할 것이다. 피에로든 광대든 그 속성은 배우와 닮았다. 변신을 거듭하는 감정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든 행위는 관객을 위한 것이다.

당시 하정우는 "피에로는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배우라는 직업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정우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내면이 읽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배우가 연기를 스크린에 투영하고, 작가가 심상을 백지에 쏟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화가는 정신을 캔버스에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피엠씨

짧은 여가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영화 작업이다. 심지어 이번 영화는 기획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감독과 함께 머리를 싸맸다.

영화 'PMC: 더 벙커'(감독 김병우, 제작 퍼펙트스톰필름)의 개봉일에 인터뷰에 나섰던 하정우는 조금은 지쳐 보였다. 홍보 강행군에다 개봉일인 만큼 긴장감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시작하고 입이 풀리자 여느 때처럼 화려한 언변을 자랑했다. 가볍지만 유치하지 않고, 진지하지만 어둡지 않은 대화의 연속이었다.

◆ 하정우는 걷는다

몇 해 전, 영화 인터뷰 대기 시간에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 하정우를 보며 '참 특이하다'라는 생각을 한 적 있었다. 손목에는 전자시계 같은 걸 차고 있었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다. 시계형 만보기는 '걷는 사람'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하정우의 '걷기 사랑'은 연예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다. 2011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황해'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그는 수상 공약으로 국토대장정을 내걸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땅끝마을 해남까지 577km를 걸은 기록은 '577 프로젝트'(2012)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야말로 하정우만이 할 수 있는 공약이자 실행력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한 이 여정을 통해 육체의 피로를 푼 것은 물론 정신의 정화도 이뤄냈다. 어쩌면 그때부터 '걷기 학교' 교장을 자처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정우는 하루 3만 보 걷기를 목표로 생활한다. 1만 보당 십 분씩 휴식한다고 가정하면 6시간을 내리 걸어야 달성 가능한 수치다. 촬영이 없는 날은 한강 고수부지부터 시작한다. 촬영이 있는 경우에는 쉬는 틈틈이 걷는다.

하정우

그의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 러닝머신을 1교시(그는 50분 단위의 운동을 '1교시'라고 표현함)정도 소화한다. 그러면 대략 5~6 천보가 쌓인다. 2교시까지 뛴다면 오전 10시쯤 1만보를 쌓고 하루를 열 수 있다. 작업실이나 영화사도 가급적 걸어서 출근한다. 집에서 작업실까지 가는 루트는 두 개다. 다이렉트로 가는 방법이 있고, 한강 쪽으로 나가 강을 빙 둘러 걷다가 빠지는 게 두 번째 루트다. 이른바 '돌려깎이'라고 명명한 이 방법은 같은 거리라도 루트 1에 비해 5천보는 더 획득할 수 있다.

3만 보를 채우기 위해서는 '생보'(생활 속 걷기)와 '제뛰'(제자리 뛰기)도 생활화한다. 그러면 2만 5천보 쯤은 하루에 가볍게 쌓인다고 한다. 

하정우에게 걷기는 기도의 또 다른 방식이다. 땅의 온기를 발로 느끼며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 이 행위는 육체의 감각을 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걷기는 감각을 유지시켜 주는 것 같다. 밖에 나가 걸으면 지금 계절이 추운지, 더운지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걷는지를 알 수 있다. 요즘은 실내 생활을 많이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점점 짐작하는 것에 기대서 살지 않나 싶다. 직접 날씨를 느끼고 감각을 느끼기 위해 걷는다. 걸으면서 기도한다. 나는 늘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족함이나 걱정, 고민 등은 기도를 하면 많이 좋아진다.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타서도 기도한다. 갇힌 적이 하도 많아서...(웃음)"

하정우

◆ 하정우는 관계 맺는다

하정우는 5년 전 영화 제작사 '퍼펙트스톰 필름'을 만들었다. 이 영화사는 김영훈, 강명찬 두 공동 대표가 이끌고 있다. 하정우는 후방에서 영화 제작에 관한 방향성을 잡아준다. 창립작 '싱글라이더'에 이어 두 번째 제작 영화 'PMC: 더 벙커'가 관객과 만났다.

"배우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고 포커싱 돼 있기 때문에 그런 장을 마련해뒀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는다. 'PMC'의 경우 주연 배우로서 프리 프로덕션부터 참여했다. 5년간 두 작품을 내놓았다. 사실 제작사로서는 적은 편수다. 앞으로는 좀 더 속도를 올릴 예정이다. '싱글라이더'와 'PMC'가 좋은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하정우의 삶에 있어서 인간관계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영화를 선택할 때 시나리오보다 만드는 사람들을 본다고 누누이 말해왔다. 영화란 공동 작업이기에 함께 손발을 맞추는 사람과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물론 그만큼 관객이 재미있어할 작품인지도 따진다.

신작 'PMC'를 비롯해 곧 촬영에 들어갈 '백두산'(감독 이해준·김병서), '보스턴 1947'(감독 강제규), '피랍'(감독 김성훈)도 오랜 기간 신뢰를 쌓은 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이다.

김병우

'PMC'는 '더 테러 라이브'로 만난 김병우 감독과의 관계가 낳은 또 하나의 결과다. 신뢰와 믿음으로 함께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했다. 그는 1인칭 슈팅게임 같은 이 영화의 형식에 대해 '모 아니면 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어 보였다.

연기와 더불어 연출과 제작에도 꾸준히 관심을 보이는 하정우를 보고 있으면 할리우드의 브래드 피트나 로버트 레드포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들이 상상이 되기도 한다.

다소 과한 비유라 느꼈는지 "하하 글쎄요. 그분들은...선배죠. 영화계 선배. 일단은 질적인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제작자와 감독과 함께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키워 해외로 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험난하지만 묵묵히 하다 보면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롤모델?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형님들을 더 좋아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러 방면에서 업적을 남겼는데 그 삶을 들여다보면 다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호기심에 관한 한 하정우도 뒤지지 않는다.

하정우

◆ 하정우는 기도한다

지난 11월 발간한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 서두에는 '신이시여, 당신께서 예비하고 계획하시는 일 그저 묵묵히 따라 걸어갈 수 있도록 제게 건강한 두 다리만 허락해주십이오'라는 글귀가 있다. 아마도 하정우 내면의 소리일 게다.

하정우는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기도하자'다. 기도하면 모든 게 다 가능해지는 것 같다. 두려움도 없어지고."라고 답했다. 정상의 자리에 있지만 낮은 자세로 임하려는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기도의 기적을 느낀 적 있냐"는 질문에는 "음...그것보다는 내가 바라는 어떤 기도를 했을 때 전혀 생각지 못한 형태의 응답을 받았을 때 무릎을 친 기억이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신이 생각하는 건 다르구나라는 걸 느꼈다."라고 조심스레 답했다.

하정우의 바이오 시계는 40대 중반을 향해가지만, 10~20대 관객은 여전히 하정우를 '오빠'로 인식하고 있다. 건강하고 밝은 성격과 젊은 감각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떻게 이 감각을 유지할까.

하정우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최근 트렌드나 관심사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 같다. '요즘 뭐가 핫(hot)해?'라고 물으면 유튜브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더라. 유튜버 중에 더블비(장명준, 박민규)라는 친구들이 있는데 기상천외하다. 또 장삐쭈라는 친구의 콘텐츠도 완전 내 스타일이다. B급 코미디가 나랑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정우는 지난해 '최연소 누적 관객 수 1억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데이터가 나온 것이다. 그 비결에 대해 "영화 찍을 때나 인터뷰할 때나 최선을 다해 진솔하게 하려고 한다. 그 정성스러운 마음이 관객에게도 통한 게 아닌가 싶다"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연출과 제작 행보에도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연출 컴백작으로 알려졌던 '서울 타임즈'는 직접 연출할지 제작만 하게 될지 미정이라고 했다.

"배우는 연기할 때 카메라 안의 공간만 인지하는데 '롤러코스터'(2013)를 연출하면서 카메라 뒤의 풍경에 대해 알게 됐다. 배우와 마찬가지로 감독, 제작자, 스태프도 똑같은 긴장감을 가지고 영화를 대한다는 것을 말이다. 모두들 제 자리에서 열과 성을 다한다. '허삼관'(2015)을 만들고 나서는 영화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영화라는 게 더 어려워지고, 작업 또한 더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연기도, 하면 할수록 어렵다. 나이를 먹을수록 살아가는 게 힘들어지듯 말이다."

하정우가 새롭게 몸담은 회사의 이름은 워크하우스(WALKHOUSE)다. '걷는 사람' 하정우의 지향이 보이는 네이밍이다. 그는 오늘도 걷는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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