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로딩이미지
로딩중

[스브스夜] '그것이 알고싶다' 용산 참사 10년…망루 위로 올라간 '괴물'을 만든 이들은 누구?

최종편집 : 2019-01-20 13:16:01

조회 : 1234

이미지

[SBS 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용산 참사의 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누구일까?

19일 방송된 SBS 에서는 용산 참사에 대해 조명했다.

당시 진압을 위해 출동했던 김남훈 경사는 죽음을 맞았고, 망루에 올랐던 용산 세입자 이충연 씨는 아버지 이상림 씨를 잃었다.

당시 망루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음이 들렸고, 이에 이충연 씨는 살기 위해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아버지를 잃고 '살인자'라는 이야기와 '공권력의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10년 전 용산 4구역, 세입자들이 농성 중이던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참사가 발생했다. 5명의 세입자와 1명의 경찰특공대원이 사망했다.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이라는 논란이 일었으나 법원은 적법한 집행이었다며 경찰의 손을 들어줬고 그렇게 용산 참사는 마무리됐다.

그리고 지난 1월 14일 민갑룡 경찰청장이 용산 참사의 희생자 유가족에게 사과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용산 참사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당시 소속 의경은 "사람이 떨어지는데 에어매트 위로 못 떨어지고 팔이 꺾이는 상황이었다"라며 "위에서 시키니까 명령이 떨어졌으니까. 위에서 명령이 떨어졌으면 들어갔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명령을 했다는 특공대장의 말은 달랐다. 그는 "지휘를 한 적이 없다"라며 진입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당시 용산 경찰서장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제작진을 향해 화부터 낼뿐이었다. 또한 그는 인터폰 너머로 화가 가득한 말들을 내뱉었다.

당시 현장에서 지휘를 맡았던 총책임자는 "내가 세세한 것까지 지휘한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보고만 받았을 뿐 명령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제작진의 질문에 10년 전에 이미 답했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 당시 서울 경찰청장이었던 현 국회의원 김석기는 "경찰의 법 칩행은 정당했다고 본다"라며 당시 상황이 극복 가능한 수준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는 "우리 아들은 죽었지만 그 뒤에 들어간 사람들도 다 화상을 입고 나오고 그랬다"라며 "더 큰 사고가 났으면 어쩔 뻔했냐. 그런 판단도 못하고 경찰 옷을 입고 있으면 어쩌냐?"라며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을 못했던 당시 당국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한 제보자는 "용역들이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을 상황이었다. 확실한 건 그 건물을 용역들이 자유자재로 올라갈 수 있었다"라며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대로 제지하지 않았다"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당시 철거업체 직원은 당시 영상을 보며 "저희 직원이 맞다. 주제넘게 농성을 막아 보겠다고 개입한 것이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경찰들이나 소방관이 폭력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했으면 우리가 했겠냐"라며 "우리는 소방관 협조까지 얻어가면서 시민들을 향해 물을 쏜 것인데 우리 죄로 몰아갔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2009년 7월 경찰청은 용산참사 때와 유사한 진압 훈련을 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경찰청 내부 문건이 공개되며 이 훈련이 "경찰의 공권력은 정당했고, 시위자들이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경찰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2차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라는 점이 밝혀지게 됐다.

당시 망루에 올랐던 한 시민은 "딸이 매일매일 아빠 언제 오냐고 물었단다. 그런데 돌아오는 시일이 멀어지고 시간이 걸리니까 딸은 어느 순간 정신과 치료도 받고 그랬다더라"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또한 망루에 올랐던 이충연 씨는 망루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공무집행 방해로 징역에 처했다. 그는 "가슴에 수인 번호를 다는 것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는 거였다. 내가 누구를 다치게 하려고 망루에 올라갈 이유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망루로 올라간 용산 4구역의 주민들은 말도 안 되는 이사 비용을 내밀며 폭력을 행사하며 세입자들을 내모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충연 씨는 "폭력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어서였다. 망루에 올라가서 문을 잠그고 있으면 그래도 그들이 때릴 수는 없잖냐. 용역들의 폭행에 맞서기 위해서 생각한 것이 망루였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용산 구청장은 "그들은 세입자가 아니다. 떼쟁이다. 개발하는 데마다 돈 내라고 이런다. 그 사람들이 시위를 해서 사고가 났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비하하기도 했다.

당시 세입자들은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망루에 올라갔지만 어떤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고 몇 시간 만에 진압을 시작했다"라며 당시의 믿지 못할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은 "피고인들은 법률에 정한 절차에 집회나 시위 등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릴 수도 있었고 조합이 제기한 명도소송 절차에서 그 주장을 펼칠 수도 있었고, 입법의 미비를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도 있었고 입법 청원을 할 수도 있었다"라고 당시 세입자들의 죄로 몰아갔다.

이에 김형태 변호사는 "생각하면 아주 슬픈 재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이 겪은 지옥의 아주 정확한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다"라며 씁쓸해했다.

박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조사위원회 위원 "갈 곳이 없어서 망루로 올라갔는데 공권력이 투입돼서 참사에 이르게 만든 사건이다. 사건 이후에 이들은 또 다른 범죄자가 된 거다. 평범한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어냈던 과정 같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당시 세입자였던 이들은 용산 근처에서 집과 가게를 잃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특히 다수의 세입자들은 실업자가 되거나 기초수급자가 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또한 김남훈 씨의 아버지는 "솔직한 마음으로 그분들도 안됐고 우리 아들도 안됐다. 당연히 공무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겠고 철거민은 자신의 주권으로 찾으려고 하다가 그렇게 희생이 된 거다"라며 비극적인 참사에 대해 떠올렸다.

지난해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 위원회 조사에서는 용산 참사와 관련해 철거민과 가족, 순직한 경찰과 가족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세입자들이 건물에서 밀려나는 건 이웃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다는 의미다. 하지만 경찰이나 구청에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망루에 올랐다.

영하의 날씨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망루를 세운 이들의 심정은 어땠을 까?

용산 참사 이후 10년, 도시정비법상 영업 손상 보상비를 3달에서 4달치로 늘린 것뿐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부동산 상위 1%가 전체의 46%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 건물이 없어 밀려나는 이들의 비극은 타인의 일 뿐만이 아닐 것이다.

2019년에도 여전히 터전을 잃고 밀려나는 이들의 비보를 들으며 우리는 10년 전 그들을 떠올린다. 망루에 올랐던 이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