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착하면 손해? 인생은 진선규처럼

강선애 기자 작성 2019.01.28 16:30 수정 2019.01.28 16:43 조회 1,562
기사 인쇄하기
진선규 -CJ엔터테인먼트 제공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진선규의 배우 인생은 2017년 11월 25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영화 '범죄도시'의 위성락 역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그 날을 기점으로 그의 입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더 이상 오디션을 찾아가서 보지 않아도 시나리오가 전해지고 캐스팅 섭외가 들어오는, 충무로에서 '대우받는' 배우로 거듭났다. 오랜 무명의 세월을 견뎌낸 진선규의 배우 꽃길이 드디어 시작됐다.

수상 여부보다 대중이 진선규를 강렬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수상소감 때문이었다. 극악무도한 위성락이 스크린 밖으로 막 튀어나온 것처럼 까까머리 상태로 무대에 오른 그는 의외로 세상 순박한 모습이었다. 엉엉 울며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다가 마지막에 배시시 웃어 보이는 진선규의 숨길 수 없는 선한 기운에 지켜보는 모두가 흐뭇했다. 위성락과 실제 진선규의 놀라울 만치 큰 간극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진선규는 정말 '선한' 사람이다. 주변에서는 그의 착함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작품만 만나면 진선규는 자신의 본모습을 지우고, 완전히 다른 옷을 입는다.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에서도 그랬다. 여기서 진선규는 선한 본연의 모습도, '범죄도시'처럼 악인도 아닌, 새로운 인물로 거듭났다. 뺀질거리는 듯하면서도 뚝심 있고, 허당스러운 듯 하면서도 은근 재능 많은 경찰 마약반의 트러블 메이커 '마 형사' 역을 맡아 또 한 번 연기 변신을 해냈다.

상업영화 첫 주연작이라 개봉을 앞두고 "떨려 미치겠다"며 긴장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냈던 진선규. 걱정은 보기 좋게 날아갔다. '극한직업'은 개봉 5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 중이다. 이제 막 시작한 진선규의 배우 인생 꽃길이 첫걸음부터 순조롭다.

진선규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범죄도시' 위성락에 이어 '극한직업' 마 형사로, 다시 한번 인생캐릭터를 만난 느낌이다.
진선규: '범죄도시'와 위성락은 제게 어마어마한 작품이자 캐릭터였다. '극한직업'의 마 형사는 그와 정반대되는 느낌이지만, 이 또한 저와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위성락도, 마 형사도, 둘 다 저를 대표하는 역할이 되면 좋겠다. 아직 대중에게 배우 진선규로서 보인 게 많지 않은데, 하나하나 신선하게 다가갔으면 한다. '비슷하다'는 느낌보다, 늘 '색다르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계속 색다른 모습이 기대되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

Q. 착한 성품으로 유명한데, 맡는 역할은 착하지가 않다. 자신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노하우가 있나?
진선규: 전 분장을 되게 빨리 받는다. 분장을 받으면 제가 쓰윽 없어지고 그 캐릭터가 되는 기분이다. 분장으로 외형적인 변신이 끝나면 혼자 가만히 맡은 배역의 가치관, 사고방식 같은 걸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캐릭터 연기에 몰입하려 한다. 제가 그런 역을 할 수 있는 건, 제 안에 조금이라도 그런 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참았던 것, 마음속에 잡아뒀던 그런 마음들을 꺼내 극대화시키며, 캐릭터를 이해하려 애쓴다.

Q. 마 형사도 그런 과정을 거쳤나? 감독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캐릭터를 잡아갔나?

진선규: 마 형사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감독님은 마 형사가 생각이 가벼우면서도 뚜렷한데, 누군가가 싫어하는 눈빛을 보이면 바로 자기주장을 접을 수 있는 사람, 또 1차원적인 반응도 남들과 조금은 다르게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런 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감정을 가볍게 갖고 가되, 감정을 주지 말아야 할 때 오히려 진지한 감정을 드러내고, 일반적인 액션과는 다른 마 형사를 연기하려 했다. 마 형사가 감독님이 원하는 대로 잘 묻어났는지는, 감독님한테 따로 물어봐야 할 거 같다.(웃음)

극한

Q. 류승룡, 이하늬, 이동휘, 공명과 함께 완성한 '마약반 5인방'의 케미가 정말 좋았다. 실제 분위기는 어떤가.
진선규: 영화촬영 때 만든 모바일 단체 톡방이 있는데, 수다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는다. 다들 '극한직업'이 개봉하기만을 기다렸다. 여름에 영화촬영이 끝나고 각자 스케줄 때문에 서로 바쁘다 보니 만나지 못했는데, '극한직업' 홍보를 시작하면 다 같이 만날 수 있으니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가 모이면 정말 정말 재밌다. 쉴 틈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Q. 영화에서도, 실제에서도 서로를 '독수리 오형제'라고 부르더라. 홍일점 이하늬가 있는데도, 진짜 친형제 같은 돈독함이 느껴진다.
진선규: 제가 영화에 합류했을 때, 승룡이 형이 먼저 캐스팅돼 있었다. 원래 형의 팬이었는데, 직접 만나본 승룡이 형은 연기적인 선배보다 사람으로서 다가온 느낌이 더 컸다. 그래서 형과 편하게 순식간에 친해졌다. 이후 하늬, 동휘, 명이가 차례차례 들어오면서 그런 느낌은 점점 더 커졌다. 마지막에 승룡이 형이 "이제 우리 오형제 다 모였다"라고 말하는데, 정말 형제들이 모인 것처럼 기쁘고 힘이 됐다. 우리는 리딩 전부터 만나기만 하면 항상 즐거웠다. 그런 친한 관계에서 나오는 느낌이 영화에 그대로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Q. 얼마 전 SBS '런닝맨'에도 독수리 오형제가 모두 출동했더라. 예능 첫 출연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도 그 찰떡 케미가 보기 좋았다.

진선규: 우리 다섯 명 모두 '런닝맨'이 처음이었고, 특히 승룡이 형은 예능 자체가 처음이었다. '런닝맨' 섭외가 들어왔는데, 우리 내부에서 '다섯 명이 다 같이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거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얘기를 듣고 승룡이 형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예능이라 생각하고, 너희와 함께하겠다"라고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예능 경험이지 않았나 싶다.

진선규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극한직업'에서 수원왕갈비집 아들 마 형사가 갈비 양념을 이용해 만든 치킨이 대박 나며 마약반의 위장 수사가 파란을 맞게 된다. 치킨을 요리하는 장면이 많아 따로 요리 연습을 했다고 하던데?
진선규: 닭 발골 연습을 많이 했다. 연습하고 남은 닭을 집에 가져가 닭볶음탕을 많이 만들어 먹었다. 요리학원 아카데미에서 연습할 때 직접 그 자리에서 발골한 닭을 바로 튀겨 치킨을 만들었는데, 기름만 탁탁 털어내고 먹은 그 치킨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맛있었다.

Q. 원래 요리 좀 하는 편인가?
진선규: 자취경력이 15년이라, 기본적인 건 조금씩 할 줄 안다. 주특기는 팥죽이다. 큰 선물은 아닌데 동짓날에 아내에게 팥죽을 꼭 해준다. 제가 어릴 때부터 팥을 좋아해 어머니가 단팥죽을 만들어주시곤 했다. 그 어머니의 레시피에 나만의 방법을 추가해 팥죽을 만들어 먹곤 한다. 제가 먹어도 맛있다.(웃음)

Q. 청룡상 이야기를 안 꺼낼 수가 없다. 수상 이후로 자신이 느끼기에도 많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
진선규: 전 똑같은데, 제 주변도 달라지고, 제가 할 수 있는 여건도 달라졌다. 후배들한테 밥을 사줄 수 있게 됐고, 아내랑 마트에 가면 먹고 싶은 거 가격표 안 보고 바구니에 담을 수 있게 됐다. 그 정도다. 금전적으로 엄청나게 달라진 건 아니고, 제가 못했던 걸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인 거 같다. '핫하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도 저한텐 너무나 달라진 현실이다.

Q. 당시 수상 소감이 큰 화제였다. 진선규란 사람의 '선함'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진선규: 청룡상은 제게 과분한 큰 상이었는데, 연기력 인정보다도 저 자신을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남들에게 '착하게 살면 손해본다', '그렇게 살면 사기당하기 쉽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도, 비록 돈 없이 어렵게 살아도, 제 가치관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청룡상의 수상, 정말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준 동료들, 꾸며지지 않은 제 원래 모습을 응원해준 사람들의 반응들을 보며, 제가 살아온 방식이 맞다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면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또 저 같은 배우들,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갖게 됐다.

진선규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그래도 '진선규=착한 사람'이란 게 오히려 선입견이 되어, 언제 어디서든 항상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거 같다.
진선규: 함부로 무단횡단도 못하고 주차장에 주차도 잘해야 하는 건 맞다.(웃음) 마포경찰서 홍보대사를 하면서 더욱 바르게 생활하려 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거라 받아들인다. 원래 그렇게 생활하며 큰 사고 없이 지내온 삶이기에, 앞으로도 뭐든 잘 지키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이렇게 착한 사람이, 정작 연기로서 착한 캐릭터를 소화한 경우가 드물다.
진선규: 아무래도 제가 이런 모습이다 보니, 연기할 땐 다르게 변하고 싶은 욕심이 있나 보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제가 아닌 다른 모습을 연기하는 게 짜릿하다. 제가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착한 캐릭터를 하기 싫다는 건 아니다. 착해도 캐릭터가 이야기 흐름에 중요하고 매력적인 역할이라면, 당연히 할 의향이 있다.

Q. '자신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스스로가 싫었던 적이 있나?

진선규: 약간 그런 적이 있다. 어머니가 어려운 형편에서 3남매를 키우시며 늘 강조하신 게 '어딜 가서든 먼저 인사하고 고개 숙이고 사람을 겸손하게 대하라'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말을 들으면서 자라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이 늘 좋을 수만은 없지 않나. 살다 보면 화가 나고 짜증 날 때가 있는데,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색하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걸 잘 못한다. 이런 제 자신이 싫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연기가 좋다. 제가 아닌 다른 모습이 되어, 감정의 표현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게 좋다. 그게 제가 배역을 선택하는 느낌이기도 하다.

진선규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쉴 때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진선규: 집에서 아이들과 논다. 첫째가 올해 7살, 둘째가 4살이 됐는데, 촬영이 없어 집에 있을 때는 아내를 돕고 애들과 놀아준다. 제가 재미없는 사람이라 남들처럼 특별한 취미생활이 없다. 그냥 집에서 아이들이랑 장난치고 노는 게 행복하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Q. 2019년을 '극한직업'으로 화려하게 열었다. 올해의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진선규: 작년에 올해 개봉하는 영화 다섯 편을 찍느라 정말 쉼 없이 달렸다. 너무 달리기만 한 것 같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질 겸 아직 차기작을 정하지 않았다. '극한직업'을 시작으로, 앞으로 개봉할 '사바하', '암전', '롱 리브 더 킹', '퍼펙트 맨'까지, 모두 "좋은 영화였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장르, 매력적인 역할이 들어오면 열심히 작업해 보는 게 올해의 목표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