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김서형 "연기경력 25년, 그런 나도 김주영은 힘든 여자였다"

강선애 기자 작성 2019.01.31 18:39 수정 2019.02.01 08:25 조회 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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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형 -플라이업 제공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1994년에 데뷔한 배우 김서형은 무려 25년 연기 경력의 베테랑이다. 2009년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악녀 신애리를 연기해 안방극장 시청자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던 김서형은 꼭 10년이 지난 지금, JTBC 드라마 'SKY캐슬'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역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기의 정점에 섰다.

김서형은 10년 만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사이 다양한 작품에서 안정적으로 연기를 소화해 왔지만, 이번 'SKY캐슬' 만큼 대중의 뜨거운 반응은 오랜만이다. '센 캐(센 캐릭터) 전문배우'라 불리는 김서형인 만큼, 김주영도 어찌 보면 그동안 그녀가 꾸준히 보여 온 '센 캐'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신애리(아내의 유혹), 유경옥(자이언트), 모가비(샐러리맨 초한지), 황태후(기황후)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번 김주영은 그들과 결이 달랐다. 김주영이 있는 공간에서는 분노의 고함보다 숨 막히는 정적이 더 무서웠다. 째려보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는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했다. 그 어떤 강한 상대가 와도 전혀 밀리지 않는 김주영만의 '넘사벽' 아우라가, TV 밖 시청자의 입술마저 바짝바짝 마르게 했다. 이런 고독한 독기로 가득 찬 김주영을 김서형은 자신만의 카리스마 서린 연기로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김서형 -플라이업 제공

그래서 시청자는 김서형의 캐릭터 소화력과 연기를 극찬했다. 악역이었음에도 김서형을 "쓰앵님(선생님)"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전적으로 절 믿으셔야 합니다"라는 김주영 표 유행어와 각종 패러디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서형은 이런 'SKY캐슬'의 인기와 자신을 향한 칭찬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정말 예상 못했어요. 김주영의 올빽 헤어스타일 같은 건 특색 있게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사랑받을 줄 몰랐어요. 김주영이 보여서라기 보단, 'SKY캐슬' 자체가 잘 되어서죠. 드라마의 전개, 연출, 음악 등 모든 박자가 잘 맞다 보니 드라마가 인기를 얻었고, 그러다 보니 김주영까지 보인 게 아닐까요."

지난 19회 방송이 시청률 23.2%을 기록하며 국내 비지상파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SKY캐슬'이지만, 첫 회 시청률은 1%대로 처참했다. 첫 회 방송의 저조한 시청률 탓에 "이 드라마 망했다"라는 섣부른 예견도 있었다. 하지만 김서형은 처음부터 이 작품에 강한 신뢰를 갖고 흔들리지 않았다.

"첫 회 방송을 보고, 전 망했다는 생각 안 했어요. 오히려 방송을 보며 '와...' 하며 감탄했죠. 드라마가 입시, 엄마들의 치맛바람 이런 이야기라 그런 흐름으로만 전개되는 줄 알았는데, 방송을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전개가 너무 빨라 보는 사람을 정신 못 차리게 하더라고요. 이런 느낌대로만 가면 시청률 15%까지도 갈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20%를 넘기더라고요. 대본이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작가님이 머리 꼭대기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작가님이 쓴 이야기를 시청자가 분석하고 다음 전개를 예측하려 하는 분위기도 재밌었어요."

김서형 -플라이업 제공

김서형은 블랙 계열의 의상과 올빽 헤어로 그만의 독특한 '김주영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런 캐릭터의 외형적 콘셉트도 오랜 고민과 노력 끝에 완성된 것이다.

"김주영이 입시 전문가라 처음부터 정장스타일, 까만 수트에 하이힐을 생각했어요. 그러다 세트에 따라 조금씩 의상에 변화를 줬죠. 명상실 세트가 너무 어두워 그냥 검은색 옷이면 제가 보이지 않겠다 싶어, 옷의 원단을 달리 했어요. 곽미향(염정아)한테 '죽은 듯이 가만히 있어'라고 세게 말하는 장면에서는 일부러 가죽 의상을 입기도 했고요. 대본이 나오면 옷 피팅을 하는데, 그 회차와 캐릭터의 감정선에 맞는 의상을 고르는 데만 4~5시간씩 걸렸어요. 검은색 옷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물이죠. 머리는 바짝 묶을까 살짝 머리카락을 흘러내리게 할까 고민했는데,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면 감정까지 감추는 듯 보여 차라리 올빽으로 하자고 결정했어요. 제 머리가 짧은 편이라 초반엔 바짝 올빽 머리로 묶는 데 고생 좀 했죠."(웃음)

사실 김서형은 'SKY캐슬' 출연을 고사하려 했다. 센 캐릭터를 많이 맡아봤기에, 이런 캐릭터가 주는 공허함과 연기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 센 캐릭터들은 극에서 강렬하게 치고 빠지긴 하지만, 그 캐릭터 자체에 대한 설명과 서사가 약하다. 그래서 연기하는 배우들은 주목을 받을지언정, 연기함에 있어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그걸 잘 아는 김서형이라 선뜻 김주영의 손을 잡지 못했다.

"처음에는 김주영을 못 하겠다고 했어요. 이런 카리스마 있는 역할들을 무수히 해봤는데, 이런 역할은 임팩트가 세긴 하지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자세히 풀지는 않거든요. 김주영도 죽은 남편, 아픈 딸에 대한 스토리가 있긴 하지만, 극 후반부에 나와서 그전까지는 저 혼자만 알고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죠. 그런 면에서 부담감도 있고, 그 서사가 언제 풀릴까, 나올 듯 나올 듯하면서 계속 안 나오는 이야기에 대한 답답함도 있어요. 결과적으로 김주영은, 그런 답답하고 부담되는 감정을 계속 쌓아온 게 오히려 연기에 도움이 된 거 같아요."

김서형 -플라이업 제공

'SKY캐슬'의 가장 큰 재미는, 시청자가 함께 추리를 하며 다음 전개를 예상하는 지점에 있었다. '누가 혜나를 죽였나', '김주영은 왜 저런 행동을 하나' 와 같은 질문과 그에 따른 각종 해석이 쏟아져 나왔다. 모든 내용을 꿰고 연기했을 것 같은 김서형도 사실, 김주영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고 드라마에 들어갔다고 한다.

"교통사고로 인해 남편이 죽은 건 알았는데, 솔직히 김주영이 남편이 죽인 건지 어쨌는지 몰랐어요. 조 선생(이현진)이 페어팩스 출신에 마약중독자였던 것도 몰랐는 걸요."(웃음)

캐릭터의 사전 정보가 부족했어도, 김서형은 그 누구보다 김주영을 잘 이해했고, 본능적으로 그녀를 연기해냈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김서형이 철저히 김주영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했기에 따라온 결과였다.

"김주영을 이해하려 했어요. 이 여자의 삶을 큰 폭으로 들여다보고자 했죠. 남편을 죽이고, 천재 딸 케이(조미녀)가 다치고, 그게 전부가 아니라, 김주영이 어떤 태생인가,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떻게 자랐을까, 왜 송희주에게 열등감이 있을까, 그런 것부터 스스로 찾아가고자 했어요."

김주영의 미묘하게 바뀌는 표정, 작은 행동의 변화는 김서형의 치열한 캐릭터 분석으로 탄생했다. 특히 김서형은 '김주영의 미소' 장면에서 고민이 많았다.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미소가 나와야 하는데, 그 완급조절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미소라고 해서 그냥 '씨익' 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표정을 더 연구했어요. 그래서 '근육까지 연기한다'는 말이 나온 거 같아요. 감독님은 지문의 미소에 대해 너무 갇히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저도 연기 경력 25년이라, 가상의 인물을 많이 연기해봤지만, 김주영은 보통의 여자가 아니었어요."

김서형 -플라이업 제공

'SKY캐슬'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아역부터 성인까지, 누구 하나 연기 구멍 없이 캐릭터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연기를 펼친 것이다. 이들의 연기 합이 모여 'SKY캐슬'이란 성을 공고히 쌓았다.

"모두 자기 할 도리를 하는 배우들이었어요. 현장에서 눈빛만 봐도, 서로가 얼마만큼 준비해왔는지, 얼마나 여기에 빠져있는 지가 다 보였죠. 아이들도 터치할 게 전혀 없이 연기가 좋았어요. 또 다들 경력이 있다 보니, 배려와 존중, 서로를 인정해주는 게 있어요. 모두가 배우로서 올바른 현장이었고, 그래서 아무 탈 없이 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특히 극 중 김주영의 아군이기도 적군이기도 했던 한서진/곽미향 역의 염정아와 김서형이 만나면 드라마에선 강한 스파크가 튀었다. 김서형도 염정아와 붙는 신에서는 "서로 기가 빨렸다"라고 속 시원하게 설명했다. 시청자도 숨이 막힐 정도였는데, 긴장감이 더할 촬영장은 오죽했으랴.

"염정아 언니와 만나면 서로 '기 빨린다'고 했어요.(웃음) 19회분 초반에 김주영의 사무실에서 한서진에게 시험지를 주는 장면을 찍고, '이제 끝이죠? 둘이 붙는 신 더 이상 없죠?' 라며 같이 안도했다니까요. 촬영이란 게,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번 찍잖아요. 그런데 NG라도 나면 그 뒤에 더 말려서, 그런 신은 NG 없이 촬영하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 보니 더 긴장하게 되고. 안 그래도 숨이 막히는 신인데, NG를 안 내려고 더 집중하다 보니, 그런 긴장감을 시청자가 고스란히 받았던 거 같아요. 연기하는 저희도 힘들고, 숨 막혔어요. 다들 김주영 사무실만 오면, 기가 빨려서 갔어요.(웃음)"

'SKY캐슬'로 기분 좋게 2019년을 시작한 김서형은 아직 차기작을 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또 센 캐릭터가 들어와도 피할 생각은 없다. 그게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SKY캐슬'이 큰 인기를 끌었어도 김서형은 변함이 없다. 그냥 우직하게 같은 마음으로 걸을 뿐이다.

"'SKY캐슬'도 다른 작품들 때처럼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 '제2의 전성기'란 것도 잘 모르겠어요. 저한테 어떤 역할이 들어올까, 다음 작품은 뭘 할까 궁금하긴 하죠. 전작들처럼 힘을 줘야하는 비슷한 캐릭터가 들어와도 전 할 거예요. 그건 제가 해야 될 몫이니까요. 울며 불면서도 부딪쳐야지, 피할 생각은 없어요. 이런 마음가짐은 시청률이 1%가 나왔을 때도 똑같았어요. 어떤 역할을 맡든 열심히 할 뿐이지, 전 달라질 게 없어요."

[사진제공=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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