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염정아 "저도 한 땐 극성스러운 엄마였어요"

강선애 기자 작성 2019.02.12 18:49 수정 2019.02.13 08:29 조회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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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염정아는 본디 연기 잘하는 배우였다. '장화, 홍련', '범죄의 재구성', '로열패밀리' 등 수많은 작품 속에 녹아들어 평단의 극찬과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염정아의 연기력에 대한 칭찬은 두말하면 입 아픈, 누구나 인정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연기 잘하는 염정아니까, 이번에도 어느 정도는 하겠지" 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영화 '완벽한 타인'과 JTBC 드라마 'SKY캐슬'에 그녀가 출연한다고 했을 때, 오히려 큰 기대는 갖지 않았다. 시험을 보지 않아도 공부 잘하는 친구의 성적을 상위권으로 예상하듯, 염정아의 연기도 잘하는 일정 정도일 것이라는 적당한 기대심리가 있었다. 이것이 오히려 편견이고 오만이었다는 걸 통렬히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염정아는 '완벽한 타인'과 'SKY캐슬'을 통해 결이 전혀 다른 두 명의 아내 역할을 선보였다. '완벽한 타인'에서는 순종적인데 푼수기 있는 아내 수현 역을, 'SKY캐슬'에서는 딸 예서를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독종 엄마 한서진 역을 소화했다. 이 두 캐릭터를 통해 염정아는 '기대 이상'이란 단어로 감히 설명할 수 없는, 소름 끼치는 연기력을 펼쳤다. 누구는 평생 하나 갖기도 힘든 '인생 캐릭터'를 불과 몇 개월 만에 두 개나 새로 만들어낼 만큼, 염정아는 또 한 번 배우로서 스스로의 한계를 깼다.

대중은 염정아에게 열광하고 있다. 염정아의 극 중 말투를 따라 하고 각종 패러디가 양산됐다. 광고계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졌다. 연기경력 28년 만에 다시 한번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염정아는 자신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와 닿지 않는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거 같다"라고 겸손해했다. 그러면서도 "화보 촬영차 발리에 갔는데, 새벽에 공항에 소녀팬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더라. 한국어로 '스카이캐슬', '예서 엄마' 하는데, 그걸 보고 깜짝 놀라긴 했다"며 달라진 자신의 위상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는 그녀였다.

염정아

# 염정아가 이해한 한서진의 모성

'SKY캐슬'의 한서진은 세상 교양있고 우아한 상위 0.1% 상류층 마나님인 줄 알았으나, 철저한 신분세탁으로 거짓 인생을 사는 인물이었다. 실상은 "아갈머리 확 찢어버릴라"라는 듣도 보도 못한 욕을 상대방 면전에서 쏘아붙일 줄 아는 '곽미향'이었다. 품위 있는 한서진과 달리 곽미향은 싸움닭이었다. 큰딸 예서(김혜윤)의 서울의대 진학을 위해서라면, 도발하는 그 누구도 용납하지 않았고, 악마 같은 김주영(김서형)에게 영혼까지 팔았다. 대립하는 인물과 감정을 쏟아내야 하는 장면이 많은 캐릭터였던 만큼, 연기하는 입장에서 염정아는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서진이 워낙 많은 인물들과 대립 관계라 그걸 잡아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못된 말도 잘하고 사람들한테도 막 대하는 이 센 캐릭터를 어떻게 해야 시청자에게 공감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미워 보이지 않도록 할까, 그 부분에 신경 썼죠. 그래도 주인공인데, 시청자가 한서진을 죽일 듯이 미워하면 안 되잖아요?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한서진에게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여자한테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니, 제일 큰 게 '모성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부분을 작가님이 써 주신 대본 안에서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려 노력했어요."

염정아가 강조한 한서진의 '모성애'. 이는 'SKY캐슬' 전체를 관통한 키워드였다. 딸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고자 김주영에게 맡긴 것도, 김주영의 위험한 실체를 알면서도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한 것도, 혜나(김보라)의 죽음과 우주(찬희)의 누명을 모른 채 한 것도, 모든 일련의 과정들의 바탕에는 딸에 대한 한서진의 그릇된 모성애가 깔려 있었다. 극 말미 예서가 이상행동을 보이자 욕심을 내려놓고 모두 제자리로 돌려놓는 한서진의 반성적 태도들도 결국에는 딸의 안정을 위한 모성애에서 비롯됐다.

염정아

"한서진이 했던 행동들 중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게 많았죠. 어떤 엄마가 그토록 많은 희생을 감내하며 한서진처럼 하겠어요. 그래도 제가 엄마 한서진의 마음을 이해한 부분들은 있어요. 예서에게 화도 냈다가, 우주 같은 애는 대학 가면 많다고 설득도 했다가, 그러다가 진심으로 '엄마는 네 인생 절대 포기 못 해 예서야. 엄마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넌 그냥 공부만 해'라고 말하는 장면, 그 부분은 연기하는 제 마음에도 크게 와닿았어요. '이 여자도 결국 엄마구나' 싶더라고요. 또 마지막에 예서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행동하는 걸 보고 충격받은 한서진이 모든 걸 밝히겠다고 마음먹은 후, 딸에게 곧 닥칠 미래를 알려주며 '그래도 우리 딸, 잘 먹고 잘 자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라고 말하는 장면. 그 신은 정말 제 온 마음으로 연기한 거 같아요. 저 역시 엄마로서 느끼는 게 많은 장면들이었어요."

매회, 매 장면에서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한서진을, 시청자는 손에 땀을 쥐고 바라봤다. 시청자가 땀이 날 지경이면, 연기한 염정아는 오죽했으랴. 염정아는 꿈속에서도 예서를 찾을 만큼 긴장했던 나날들을 숨김없이 털어놨다.

"엄청 긴장하고 예민했었죠. 한 신이 무사히 끝나면, 그다음 신이 걱정되고, 그런 감정들의 연속이었어요. 극이 후반으로 갈수록 감정신이 많아져 솔직히 굉장히 부담스럽고 힘들었어요. 꿈을 계속 꿨어요. 자면서도 대사를 말하고, 잠꼬대로 '예서야'를 부르곤 했어요. 그만큼 늘 긴장한 상태였나봐요."

염정아는 자신이 연기한 감정신 중 아쉬웠던 장면도 꼽았다. 극 말미 한서진이 혜나를 죽인 범인으로 김주영을 지목하고 경찰서에서 나온 후의 장면, 우주에게 무릎 꿇고 사과한 장면은 스스로 "방송을 보며 많이 아쉬웠다"라고 말한다. 염정아는 "보시는 분들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아쉬워 보였다. 물론 연기할 때는 최선을 다했지만, 좀 더 진정성 있게 다르게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한다. 모두가 자신의 연기를 극찬해도 여전히 부족함이 먼저 보이는 염정아다. 이런 배우이기에, 세월과 경력에 비례해 연기력이 계속 발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서로에게 자극이 됐던 최고의 배우들

'SKY캐슬'은 23%라는 비지상파 최고의 시청률과 함께, 모든 배우들의 이름을 남겼다.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은 누구 하나 연기구멍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완벽하게 맡은 배역을 소화해내 최고의 앙상블을 만들어냈고, 이는 배우들 각각의 스포트라이트로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연기배틀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SKY캐슬' 배우들의 연기 각축전은 첫 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명주 역으로 특별출연한 배우 김정난이 제대로 방아쇠를 쏜 셈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많아 서로에게 자극을 받고 시너지가 컸어요. 전 첫 회에 (김)정난 언니가 한 연기를 보고 너무 놀랐어요. 저랑 함께 찍었던 신들은 평범한 것들이었는데, 제가 못 본 곳에서 찍은 신들이 정말 예술이더라고요. 정난언니 때문에 남은 저희가 자극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언니가 저 정도로 했는데, 이제 우리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었죠.(웃음)"

염정아

염정아와 김서형은 서로 함께 한 장면에서 "기가 빨렸다"라고 입을 모은다. 한서진과 김주영이 만나는 장면들은 함부로 눈 한 번 깜박일 수 없는 절정의 긴장감이 감돌았고, 그 무거운 분위기는 TV 밖 시청자도 고스란히 느꼈다. 염정아도 가장 힘들었던 상대 연기가 김주영과 붙는 신이었다고 전했다.

"다른 인물들보다도 김주영을 대하는 신이 가장 힘들었죠. 한서진은 김주영이 어떤 여자인지 알고 담판을 지으러 갔다가 또다시 휘말려 나오고, 벌을 주려고 갔다가 오히려 벌을 받고 나오는 식이었어요. 저와 서형 씨가 서로 '기 빨려 못하겠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는데, 그걸 방송으로 보니 확실히 긴장감은 있더라고요. 실제의 서형 씨는 여리고 얌전한 스타일이에요. 김주영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죠."

'SKY캐슬'의 최고 유행어를 꼽자면 한서진의 "아갈머리 확 찍어버릴라"와, 한서진이 김주영을 부르는 '선생님'이란 호칭에서 따온 "쓰앵님"이다. 이 두 가지 말을 탄생시킨 염정아에게 그 소감을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아갈머리' 장면은 연기를 하면서도 너무 재미있어서, 실제 방송으로 나갈 날만을 기다렸어요. 교양 떠는 한서진의 입에서 저런 단어가 나오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했죠. '아갈미향'이란 별명도 생기고, 재밌어요.(웃음) '쓰앵님'은 제가 한 말인지 처음에는 몰랐어요. 제가 '선생님'이라 말한 부분에서 따온 거란 걸 나중에야 알았죠. '선생님'을 빨리 발음하다 보니 그렇게 들렸나 봐요. 저 발음 좋은 편인데...(웃음) 정말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땐 '선.생.님.'이라고 정확하게 끊어 말하기도 했어요. 근데 빨리 말할 땐 '쓰앵님'으로 나오더라고요."

# 실제 엄마로서 염정아는 이런 모습

염정아도 한서진처럼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다. 그렇다고 한서진처럼 아이 교육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염정아에게 실제 아이 교육법을 물었다.

"솔직히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극성스럽게 쫓아다니고 옆에 앉아 가르치는 엄마였어요. 누가 뭘 배운다고 하면, 그런 말에 휩쓸리곤 했죠. 지나고 보니 그런 건 별거 아니더라고요. 휘둘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아이들에게 많이 맡기는 편이에요.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이라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알아서 잘해주고 있어요. 이 드라마를 하면서 느끼는 점도 많았고요."

한서진이 캐슬 내 엄마들의 대장 역할을 했던 것처럼, 염정아도 엄마들 사이에서 "대장 같은 행동을 많이 했다"고 한다. 물론, 한서진처럼 철저한 이해관계에 얽힌 대장 놀이는 아니었다. 유치원 엄마들 중 염정아가 가장 나이가 많다 보니 리더 역할을 한 셈이었다. 염정아는 "나중에 아이들의 학년이 점점 올라갈수록,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둔 엄마를 중심으로 모임이 형성되곤 한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 'SKY캐슬'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씁쓸하다"며 속상해했다. 드라마적 상황이 현실에 실존한다는 이야기에 안타까움을 내비치는, 염정아도 평범한 엄마이자 학부모였다.

염정아

# 나이 듦에 의연한 '여배우' 염정아

요즘 10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배우 염정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으로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2003)을 꼽는 이가 많다. 한국형 공포영화의 새 역사를 썼다고 평가받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염정아는 '연기 잘하는 배우'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미스코리아 출신에 대한 편견으로 연기력 저평가를 받기도 했던 그녀는 이 작품 이후 확실히 연기의 맛을 아는 배우로 성장했다.

염정아 스스로도 28년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장화, 홍련'을 언급했다.

"그때부터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아요. 연기의 재미를 느꼈다고 할까요. 김지운 감독님이 새로운 뭔가를 막 끌어내 주시는데, 거기서 놀라울 정도의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꼈어요."

여배우로서 염정아는 '나이 듦'에 있어 의연했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너무 괴롭고, 받아들이면 편한 게 나이인 거 같다. 전 그걸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염정아는 나이와 그에 따른 외모 변화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슬퍼질 거 같다"는 감성적인 이야기도 꺼냈다. 그러면서도 대중이 "연기는 연기로만 봐 준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베테랑이었다. "좀 늙으면 어때"라는 끝맺음 없는 작은 중얼거림에서 염정아의 진심이 전해졌다.

염정아가 나이를 먹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 건, 그로 인해 '여유'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예전과 비교해 제 연기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모든 게 여유로워졌다는 거예요. 생활도, 사람을 대할 때도, 연기할 때의 마음도 전보다 훨씬 여유롭고 편해졌어요. 그렇게 마음먹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된 거죠. 그런 점에서 나이를 먹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SKY캐슬'이 대성공을 거두고, 스스로의 인기와 인지도가 몇 배로 뛰었다 한들, 염정아는 앞으로도 배우로서 "똑같을 거 같다"라고 말한다. 작품 선택의 폭이 보다 넓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서 늘 해왔던 대로 할 뿐 특별히 달라질 건 없다고 설명한다.

"향후 작품 선택에 있어서 크게 달라질 게 있을까요? 완성도 높은 책과, 연출해줄 감독님에 대한 믿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캐릭터가 나타난다면, 또 하는 거죠. 지금껏 늘 그런 선택을 해왔어요. 물론 'SKY캐슬' 이후로 제게 제안하는 역할의 폭이 넓어진다면, 그것만으로 좋을 뿐이에요. 더 유별나게 달라질 건 없고, 그 안에서 늘 하던 대로 선택하고 또 열심히 하겠죠."

[사진제공=아티스트컴퍼니]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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