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비로소 날아오른, 오나라 "10년의 법칙 믿었죠"

강선애 기자 작성 2019.02.24 09:18 수정 2019.02.24 15:08 조회 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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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지난 봄 방영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인생 드라마'라고 칭하는 지인들이 꽤 있다. 드라마의 분위기는 다소 무겁지만, 내면의 쓸쓸함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어른들에 관한 이야기가 깊은 여운을 준다며 좋아한다. 그런 '나의 아저씨'를 아끼는 이들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자기한테도 '정희네' 같은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고.

'나의 아저씨' 속 '정희네'는 동네 어귀에 소박하게 자리 잡은 작은 술집이다.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고, 가면 언제나 동네 친구들이 반긴다. 그곳은 정든 이웃들과 웃고 떠들며 신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아지트이자, 힘들 땐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희네'의 여주인, 배우 오나라가 연기한 '정희'가 있다.

오나라라는 배우한테 편견 같은 게 있었나 보다. 그동안 밝은 작품에서 유쾌한 연기를 주로 선보여 왔던 오나라라, 정희로 변신한 그녀의 모습은 솔직히 낯설었다. 하지만 낯선 느낌은 잠시 뿐이었다. 오나라는 자유분방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상대방의 내면을 따스하게 바라봐 주고 진심 어린 공감과 조용한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진짜 멋진 어른, 정희로 완벽히 거듭났다. 오나라라는 배우가 이런 류의 연기도 가능하단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10년간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2006년 '김종욱 찾기'로 한국 뮤지컬 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이후 매체 연기로 진출해 다양한 작품을 소화해 온 오나라는 연기 참 '맛깔나게' 잘하는 배우다. 하지만 탄탄한 연기력만큼 대중의 인지도는 따라오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1년 사이 상황이 바뀌었다. '나의 아저씨'에 이어 JTBC 'SKY캐슬'까지, 평생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인생 작품'과 '인생 캐릭터'를 두 번이나 만나며, 대중은 오나라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나라

오나라는 'SKY캐슬'에서 0.1% 상류층에 맞게 화려한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입이 가볍고 지성미를 갖추지 못한 진진희 캐릭터를 맡아 열연했다. 대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솔직한 성격, 감정에 충실하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화끈함, 밉상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인간미가 넘치는 캐릭터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찐찐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은 진진희. 오나라가 밝고 사랑스럽게, 매력적으로 그려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품이 큰 사랑을 받은 소감을 묻자 오나라는 "저한테 'SKY캐슬'은 기적이다. 이런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감격스러워하면서도, 거기에 마냥 빠져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차라리 드라마를 하고 있었을 때가 행복했던 거 같다. 그동안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는데, 이제 차기작에 대한 부담도 슬슬 올라온다"며 황홀했던 꿈에서 깨어나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에 대한 솔직한 걱정을 털어놨다.

"이제부터가 정말 실전이란 생각이 들어요. 제 이름을 걸고 연기력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어요. 앞으로 노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즐기면서 하고 싶은걸 해온 지금까지의 노선을 이어갈지, 아니면 실험적인 역할을 맡아 도전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어요. 제가 이다음에 어떤 작품, 어떤 배역을 만날지 궁금해요. 한 편으론 걱정도 되고요."

# 진진희, 무대 위에서 원 없이 놀아본 기분

'SKY캐슬'에 출연한 배우들은 실제와 맡은 캐릭터가 가장 비슷한 출연자로 오나라를 꼽는다. 진진희처럼 오나라도 밝은 에너지의 소유자라는 설명이다. 인터뷰 때문에 오나라와 한시간 여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지만, 그런 'SKY캐슬' 출연진의 마음이 공감됐다. 오나라는 주변을 활기차게 만드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진진희한테 제 실제 모습을 많이 녹여냈어요. '나의 아저씨'의 정희도, 'SKY캐슬'의 진진희도 분명 오나라가 담겨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받은 교육 중 하나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라'였어요. 그래서 뮤지컬을 할 때 주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한 것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였어요. 매체 연기로 넘어와서도 극의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많이 맡아왔죠. 그렇게 사람들을 재밌게 해주는 게 저도 행복했어요. 'SKY캐슬'은 그거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이 진진희만큼은 마음껏 놀라고 멍석을 깔아주셨죠."

오나라

진진희가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솔직한 화법이었다. 상류층의 마나님이 쓰기에 다소 경박해 보일 수 있으나, 솔직하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진진희의 말들은 극의 웃음 포인트였고, 때론 시청자의 속을 뻥 뚫리게 하는 사이다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진진희의 말들 중에는 오나라의 애드리브가 많이 녹아 있었다.

"매 신이 애드리브 퍼레이드였어요. 물론 작가님이 써주신 대사는 정확하게 표현했고, 거기에 애드리브를 가미했죠. 진진희 표 애드리브의 시작은 한서진(염정아 분)이 째려보자 '순간 쫄았네. 쪼는 게 습관 됐어'라고 말하는 거였어요. 감독님이 그 애드리브를 보시고, '앞으로 진진희는 마음껏 표현하라'고 허락해주셨어요. 훌륭한 감독님을 만나, 무대 위에서 원 없이 놀아본 기분이에요."

한서진이 머리 위에 부은 메이플 시럽에 "눈깔이 안 떠져"라고 말하는 장면, 한서진에게 머리채를 잡혀 소파에 내동댕이쳐진 후에도 너무 아름다웠다고 해서 '천년돌'이라 불리는 일본의 유명 아이돌 별명에 빗대 '천년줌'(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아줌마)라는 별명이 생겼던 장면 등 진진희에게는 명장면이 많다. 이 모든 것은 캐릭터 분석을 통해 찰떡같은 애드리브를 선보인 오나라의 센스와, 몸 사리지 않은 열연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19부를 찍을 때, 감독님이 제게 고맙다며 '우리나라에서 애드리브를 애드리브 같지 않고 대사처럼 고급지게 하는 유일한 배우'라고 칭찬해주셨어요. 사실 저도 애드리브를 집에서 연구를 많이 했던 거거든요. 상황에 맞는, 진진희가 할 법한 말들을 연구해 와서 대사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는데, 그걸 인정해주신 거 같아 감동이었고, 감사했어요."

오나라

# 롤모델 염정아, 고마운 조재윤

이번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염정아는 오나라가 20대 때부터 롤모델로 삼던 배우다. 그래서 그 앞에서 연기하는 게 떨리고 긴장됐다고 한다. "쪼는 게 습관 됐어"란 애드리브 대사도, 그런 자신의 마음가짐에서 순간적으로 터뜨린 말이었다. 게다가 염정아가 연기한 한서진이 굉장히 센 캐릭터였으니, 오나라는 "쳐다만 봐도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고 솔직한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염정아의 연기력에는 절로 존경심이 솟구쳤다.

"정말 제가 롤모델로 삼았던 정아언니인데, 이번 작품을 하며 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옆에서 언니가 연기하는 걸 바라보면, 주름 하나, 모공 하나하나가 다 연기하고 있어요. 언니가 연기했던 장면 중에 제가 명장면으로 꼽는 하나가, 한서진이 소리 없이 가슴을 치며 오열하는 장면이에요. 언니는 목에 핏줄까지 세우며 그걸 표현하더라고요. 정말 소름 끼칠 정도의 연기였어요. 그 장면을 보자마자 언니한테 '존경한다'고 문자를 보냈어요. 언니는 '다 잘하고 있으면서 왜 그래'라고 겸손하게 반응하더라고요. 거기서 또 한 번 배웠죠."

오나라는 아직 미혼이다. 뮤지컬 배우 출신 연기 강사 김도훈과 20년 째 연애 중이라고 최근 수차례 화제가 됐지만, 어쨌든 오나라는 결혼도 출산도 해보지 않은 여성이다. 그런 오나라가 어떻게 중학생 아들을 둔 엄마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큰 애가 있는 엄마 연기는 해본 적이 없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제가 아들 수한이(이유진 분)를 안는 모습이 남들이 보기에 남자를 안은 것처럼 느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어요. 유진이가 이번 작품이 처음 연기란 걸 해보는 거더라고요.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테크닉 없이 대사를 하는데, '엄마 태어나서 미안해' 할 때는 정말 제 마음이 끓었어요. 유진이가 처음 대본 리딩 할 때는 저보다 작았는데, 종방 때는 저보다 크더라고요. 그 사이 키가 10cm나 자랐대요. 어느 순간 보니까 수염도 나고, 변성기도 왔어요. 6개월 동안 애가 자라는 걸 보니, 정말 제가 엄마가 된 기분이었어요. 엄마인 척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나중에는 정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나왔어요. 수한이가 가출하고 돌아와 안아주면서 '사랑해'라고 말할 땐 정말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더라고요."

오나라

오나라는 남편 우양우 역의 조재윤과도 찰떡 케미를 보였다. 진진희의 이름을 가지고 '찐찐이'란 귀여운 애칭을 처음 만들어 극 안팎에서 불리게 한 것도 조재윤이었다. 'SKY캐슬' 속 여러 부부들이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켜 파국으로 치달을 때, 우양우-진진희 네는 이리저리 휩쓸리긴 했지만 큰 사고 없이 나름의 화목함을 보여준 가정이었다. 숨 막히는 극의 긴장감 속, 밝은 기운으로 유일하게 숨통을 트이게 하는 가정이 바로 이들이었다.

"조재윤 씨와는 케미가 너무 좋았죠. 처음에 절 보자마자 '예쁘다 귀엽다' 하면서 '찐찐이'란 예쁜 애칭을 만들어주셨어요. 진진희네 가정이 사랑스럽게 잘 포장될 수 있었던 건 조재윤 씨 덕이예요. 그래서 너무 감사드려요. 많은 분들이 진진희보다 '찐찐이'라고 불러주시는데, 저한테도 그런 애칭이 생겨서 기분이 좋아요."

# 10년의 법칙을 믿고 최선을 다 해라

오나라는 한국 뮤지컬 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정받는 뮤지컬 배우였다. 그런 그녀가 드라마, 영화라는 매체연기로 넘어온 계기는 뭘까.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요. 제가 매체 쪽으로 온 게 서른이 넘었을 때였는데, 성대라는 건 소모품이기도 하고, 뮤지컬에서 여자배우가 최고의 기량을 뽐낼 수 있는 시기가 길지 않아요. 전 가창력으로 승부를 본 뮤지컬 배우가 아니라서, 제 한계를 조금씩 느끼던 때였어요. 연기가 너무 좋은데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연기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자연스럽게 매체 연기 쪽을 보게 됐어요."

하지만 뮤지컬 배우에서 매체연기 배우로 정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땐 뮤지컬에서 이 쪽으로 넘어온 선배가 많지 않았어요. 저 혼자서 아무도 모르는 길을 뚫어야 했죠. 가장 힘들었던 건, 절 서포트해 줄 소속사를 만나는 거였어요. 시장에서는 '뮤지컬 배우의 연기는 오버스럽다'는 선입견이 컸을 때라, 나이까지 서른 넘은 뮤지컬 배우에게 관심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간은 제가 스타일리스트도 섭외하고, 혼자 차를 운전해 가면서 작품을 했어요. 최선을 다해 제 모습을 보여드렸더니, 조금씩 저한테 관심을 갖는 회사가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첫 회사가 생겼고, 지금 소속사는 제 세 번째 회사예요."

오나라

뮤지컬 배우에 대한 편견과 정면 승부하며, 지난 10년간 오나라는 정말 열심히 달렸다. 자신을 찾아주는 곳이라면 캐릭터의 비중과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임했다. 오나라가 포기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10년의 법칙'을 믿기 때문이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들이 해주신 말씀이 '10년의 법칙을 믿어라' 였어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한다는 전제 하에, 10년을 해봐야 안다는 것이죠. 뮤지컬 한지 10년 되던 해에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여기로 넘어와서 10년이 되던 해에 '나의 아저씨'와 'SKY캐슬'을 만났어요. 10년 동안 최선을 다하면, 뭐든 해내긴 하는 거 같아요. 다시 뮤지컬을 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지난 10년간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그동안은 그 여유가 없어서 다시 무대에 설 생각을 못 했는데, 제 무대를 보기 원하는 분들이 있다면 다시 뮤지컬 무대에 돌아갈 마음이 있어요."

# 소개팅하는 마음으로 차기작 기다려

오나라는 하고 싶은 작품으로, 여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정통 멜로'를 꼽았다. 대신 남녀 간의 가벼운 연애를 그리는 작품이 아닌, 절절하고 가슴 아픈 사랑을 표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들 지금이 제 '리즈시절'이래요. '예쁘다 예쁘다' 해주시니, 예쁠 때 정통 멜로를 찍어보면 어떨까 싶어요.(웃음) 풋풋한 20대들의 사랑이 아닌, 묵직하고 가슴 시린 사랑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눈의 흰자에 실핏줄이 설 것 같은, 그런 연기요."

그동안 밝은 캐릭터를 주로 선보여 왔던 오나라는 앞으로도 비슷한 캐릭터가 들어오더라도 피할 생각은 없다. 그저 자신에게 어떤 새로운 작품과 캐릭터가 들어올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지금까지 비슷하게 밝은 역할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건 'SKY캐슬'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거 같아요. 어쩔 수 없죠. 제작진이 그런 걸 원하면 받아들여야죠. 제게 정희 역을 주셨던 '나의 아저씨'의 김원석 감독님처럼, 제 이면의 다른 걸 보는 분이 계시다면 정말 행복할 거 같긴 해요. 차기작과 관련해 아직까지 많은 러브콜이 들어온 건 아닌데, 지금 소개팅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어떤 배역이 찾아올까, 그 배역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다시 연기하고 싶어요. 그 기다림의 기간이 길지 않았으면 해요."

[사진=백승철 기자]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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