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이정재는 아직도 연기가 어렵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9.02.27 16:29 수정 2019.02.28 07:50 조회 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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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에서 박웅재 목사는 비밀의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이자 관객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신흥 종교의 비밀을 쫓는 박 목사의 행동은 신념이나 사명이 아닌 개인의 이익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리면서 박 목사가 '진짜'를 찾는 또 다른 이유도 고개를 든다. 영화에서 가장 단순한 캐릭터로 보였던 그에게도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었다.

이정재의 반가운 연기를 만났다. 2013년 개봉한 영화 '신세계'를 기점으로 '관상'(2013), '암살'(2015), '신과함께'(2017)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년간 묵직하고 선이 굵은 연기를 해왔지만 '태양은 없다'(1999), '오, 브라더스'(2003)와 같은 영화에서는 껄렁한 캐릭터를 징그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연기해낸 바 있다.

동시대를 살며 그의 작품을 따라온 팬들에게 '사바하' 속 연기는 반가움일 것이며, 지금의 10~20대 관객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갈 것이다.

'사바하'의 박웅재는 이른바 '불량 목사'다. 목사라고는 하지만 예배를 이끌지도 설교를 하지도 않는다. 신도와의 소통도 거의 볼 수 없다. 게다가 그는 담배를 입에 달고 사는 골초다.

이러한 캐릭터의 개성은 이정재라는 배우를 관통하며 매력적인 컬러를 발산한다. 어떤 변신도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연기력에 물이 오른 배우의 노련한 역량 덕분이다.

사바하

◆ "'사바하', 오컬트보다는 수사물에 가깝다"

이정재가 '사바하'를 선택한 데는 장재현 감독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그는 "재밌게 봤던 '검은 사제들'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것에 솔깃했다. 시나리오 제목만 보고는 전작에 이은 오컬트 물 아닐까 했는데 읽어보니 탐정 수사물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독특하고 신선했다. 또 캐릭터들의 개성도 뚜렷해서 선택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영화의 신비로운 오프닝이 지나고 나면 박웅재 목사의 강연 장면이 등장한다. 종교에 있어 '진짜와 가짜'를 강조하는 이 장면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사바하

이정재는 박 목사의 연기톤을 잡기 위해 어느 영화보다 장재현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오, 브라더스'(2003)때 김용화 감독과 했던 방식으로 캐릭터와 연기를 분석해나갔다.

"박 목사는 대체로 그 사람과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돌려서 이야기하고 상대의 반응을 체크하려고 한다. 감독님만의 독특한 말투가 있어서 내 것보다는 그 스타일을 받아서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처음 연습하던 날 감독님에게 시나리오 속 박 목사의 모든 대사를 한 번씩만 읽어달라고 했다.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연습하기 시작했다. 도움이 많이 됐다."

영화에서 박 목사는 관객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정재는 "박정민이 연기한 '나한'이 에너지를 뿜는 역할이라면 '박 목사'는 미스터리의 원인을 찾아서 관객에게 알려주는 역할이다 보니 사건의 중요도와 정보를 어떤 식으로 전할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사바하

"후반부는 초,중반부까지 펼쳐놨던 단서가 모이게 되는 지점이다. 박 목사가 초반부에 비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마지막 단서까지도 박 목사를 통해 전달이 되는 것이기에 단어 하나하나의 중요성을 견지했다. 그 단어가 관객에게 전달이 되면서 느낄 충격이 있고, 물음표가 해소되는 것이기에 어느 정도 수위에 어느 정도 임팩트를 전달해야 할까를 감독과 많이 상의했다. 장재현 감독을 믿고 따라갔다."

이정재의 종교는 기독교다. 특정 종교를 넘어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영화를 촬영하며 느끼는 바도 남달랐을 것 같았다.

"속상하죠. 거짓으로 신자를 속이고 이용해 자신의 경제적인 욕구를 채우는 잘못된 종교인이 간혹 있으니까. 뉴스로 접할 때마다 많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사바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종교인들의 반발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막상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니 종교인이 좋아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기독교계의 박웅재 목사와 불교계의 해안 스님(진선규)이 합심해 잘못된 종교단체를 잡겠다는 이야기니까."

이정재

◆ "박정민·이다윗, 폭발력 넘치는 에너지 많이 배웠다"

이정재는 이번 영화에서 박정민, 이다윗, 진선규 등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특히 박정민, 이다윗과의 호흡은 20년이 넘는 연기 경력을 가진 그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박정민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춘 배우고 집중력이 남다르더라. 많이 배웠다. 이다윗은 볼 때마다 느꼈는데 자기 색깔이 강한 배우다.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연기와 호흡법이 있다. 두 배우 모두 한 번 더 호흡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의 개성 하면 이정재도 뒤지지 않는다. 데뷔 26년 차의 이정재는 '청춘의 아이콘'에서 '충무로 연기파'로 단계적 발전을 거듭해왔다. 무엇보다 매 작품 그만의 색깔로 대체 불가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 아마도 관객 상당수가 이정재에 대한 신뢰로 '사바하'를 선택할 것이다.

이정재는 "매 작품 할 때마다 예전에 했던 표현 방식은 가급적 안 하려고 한다. 간혹 실수 아닌 실수로 예전 표현법이 나올 수 있어 현장에서도 모니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연기란 참,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배우 이정재를 나이 들게 하지 않은 원동력처럼 느껴진다. 더욱이 그는 신인 감독,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그들이 자신에게 줄 에너지와 영향을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인다.

사바하

'사바하'를 통해 생애 첫 미스터리 스릴러물에 도전한 것도 그런 이유다.

"영화 후반 20분 남았을 때는 박정민이 너무 연기를 잘해줘서인지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슬프지?'라는 생각까지 들더라. 감독님이 생각한 주제가 어렵지 않게 잘 보이더라. 우리가 긴장한 것은 관객이 우리가 그리고자 한 것을 잘 이해하시지 못하면 어쩌지 않은 일말의 불안함 때문이었다. 초반에 기독교, 불교가 함께 나오고 마치 안갯속에 있는 것 같이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마지막 20분은 '이 영화가 그리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구나', '믿음에 관한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영화의 엔딩은 해피엔딩도, 언해피엔딩도 아닌 듯하지만 먹먹한 감정을 전해준다. 감독이 그 감정을 잘 살려냈구나 싶더라."

깊은 여운을 남긴 엔딩은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영화의 속편이 나온다면 이정재는 출연하고 싶을까.

"흥행하고 상관없이 속편이 제작된다면야 출연하고 싶다. 박 목사는 제가 이제까지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서도 꽤 재미난 캐릭터다.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이야기하지 못했던 박 목사의 속내와 애환이 담긴 사건들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감독님이 자료 조사를 굉장히 많이 해놔서 소재가 아까울 정도다. 수사물이다 보니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사바하'만의 매력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장르적 특성을 뛰어넘는 장재현 감독만의 독창적 스릴러 영화, 그것이 이 영화의 제일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이정재

인터뷰 말미 '인간으로서 언제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정재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배우 이정재와 인간 이정재는 많이 밀접해진 것 같다. 사실 예전에는 좀 어색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나와 배우란 직업이 많이 붙었달까. 안에 있든 현장에서 일하든 다 편한 것 같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건 내 일에 있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연기에 대한 호감의 표현을 들을 때다. 그때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 특별한 관심 분야가 있느냐고 자주 물으시는데 연기 쪽에 많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영화 만드는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장 즐겁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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