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정지훈의 '오프 더 레코드'에 담긴 진심

김지혜 기자 작성 2019.03.10 14:02 수정 2019.03.11 09:21 조회 5,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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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지친 얼굴이었다. 민낯의 얼굴이라 턱에는 거뭇거뭇 수염이 올라와 있었고, 잠을 이루지 못한 듯 눈 밑에는 다크 서클도 내려앉아 있었다. 무대 위 화려한 자태나 TV 속 차려입은 복장과는 거리가 먼 진짜 정지훈(비)을 보는 것 같았다.

비 아니 정지훈을 만난 날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언론시사회 이후였다. 개봉을 앞둔 시점이었고, 이제 막 영화에 관한 평가가 쏟아지는 시점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진 융단 폭격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정지훈은 모든 비판적 평가와 공격적 질문에도 답할 준비가 돼있었다.

"홍보팀에서 곤란한 질문 있으면 말해 달라는데, 그런 게 어딨어요? 매 맞을 일이면 맞아야죠."

불현듯 2007년 도쿄돔 콘서트 취재 당시 봤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렸고, 뜨거웠으며 자신감이 넘쳤다. 그때의 비와 지금의 정지훈을 비교하니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왔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는 한층 더 성숙해져 있었다.

비가 7년 만에 '영화배우 정지훈'으로 관객 앞에 섰다. 연기 공백이 길었던 만큼 우려도 있었다. 100억 대 대작 영화의 타이틀롤을 맡는 그가 작품 안에서 온전히 캐릭터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우려보다 더 큰 암초가 있었다. 영화의 완성도였다. 촬영 단계에서부터 말이 많았던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완성됐고, 잡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흡수한 듯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정지훈

관객의 눈은 냉정했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개봉 12일이 지난 현재 전국 16만 8,136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다. '캡틴 마블'이 등장한 지난 6일부터는 박스오피스 10위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관객의 혹평까지 더해진 명백한 실패였다.

정지훈은 가수와 배우를 겸업하면서 영화계에서 빠른 주목을 받았다. 충무로 데뷔작은 무려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였고, 할리우드 데뷔작은 워쇼스키 감독의 '스피드 레이서'였다.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정지훈의 스타성과 가능성은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한동안 연기 활동을 쉰 이유에 대해 정지훈은 "강 위에 떠있는 오리처럼 위에서 보면 유유자적이지만 발밑에서는 열심히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가수란 직업도 하고 배우란 직업도 하다 보니...가수는 앨범과 활동 계획을 넉넉히 1~2년은 잡아야 해요. 그 와중에 영화 출연 제의가 들어오다 보니 놓칠 때가 많았어요."라고 운을 뗐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이범수가 대본을 주며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시나리오의 제목을 보고 어린이 가족 영화인 줄 알았다고 했다.

"영화 제목을 봤더니 엄복동?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 일제 강점기 배경의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됐죠. 당연히 허구의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고...'그런데 왜 이름을 엄복동으로 지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실존 인물이고 실화 기반이라는 거예요. 시나리오를 읽고 '이 인물을 알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이 당시 조선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줬던 건 사실이니까요."

정지훈은 엄복동을 연기하기 위해 시나리오 속 중요 사건을 토대로 도표를 만들었다. 운동선수의 다부진 몸을 만들었고 촬영 3개월 전에는 대학 선수촌에 입소해 자전거 훈련을 받았다.

엄복동

'자전차왕 엄복동'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영화적 허구도 첨가돼있다. 정지훈은 "너무 영화적 장치가 많아서 국뽕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아니냐고 하시는데 저 역시 대본에서 그 점들이 거슬렸어요"라고 운을 뗐다.

"딱 세 장면을 지적했고 그 대사들만 빼자고 제안했었다. "복동아 지금이야", "복동아 아이들을 위해서 이겨줘", "엄복동을 지킵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대사 속 상황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는 거예요. 실제로 엄복동은 드라마틱한 우승을 여러 차례 했고, 매 대회에 수만 명의 관중이 모여들었어요. 어느 경기에서는 엄복동이 너무 잘하니까 일본이 반칙패를 판정했고 화가 난 엄복동이 단상 위에 올라가서 일장기를 꺾은 일도 있었어요. 당시 관중들은 경찰로부터 엄복동을 지키기 위해 인간 방어벽을 치기도 했고요. 이후 4년간 칩거를 하다가 중국 자전차 대회에 참가해서 1등을 했어요. 이것도 실화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엄복동은 빛나는 활약을 거둔 만큼 부끄러운 실수도 저지른 인물이었다. 말년의 절도 행적이 알려지며 개봉 전 큰 논란에 휩싸였다. 정지훈은 역사 왜곡 논란의 발단이 된 이 사건들은 개봉 준비 단계에서 알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오랜만의 스크린 컴백인 만큼 팬들은 더 좋은 작품을 기대했다. 이에 대해 비는 "7년 만의 영화인데 왜 이런 영화시냐고 꽂으시는 질문 같은데 제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뿐이에요. 저는 지금 작품도 나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촬영 중 많은 일들을 겪으며 '과연 이 영화가 완성되기는 할까'라는 걱정도 컸거든요. 많이들 지적하시는 CG 역시 제 예상보다는 훨씬 더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허심탄회하게 답했다.

비

가수 비는 올해로 데뷔 18년 차를 맞았다.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까지 얻으며 국내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내줬다. 최근까지도 앨범을 내고 활동을 펼쳤지만 트렌드에서 다소 뒤처진 듯한 노래와 춤을 내놓은 것도 사실이다. 시대의 트렌드를 잃지 않기 위해 비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사실 과거에도 제가 최고라거나 잘되고 있다는 걸 체감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학교종이 땡땡땡'을 불러도 잘될 것 같은, 한 마디로 뭘 해도 되는 때가 있기는 했죠. 반대로 뭘 해도 사고뭉치로 미운털이 박혔던 적도 있었고요. 그런 희비를 다 겪어보니 '하늘이 내려준 때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정성 있게 활동하면 알아주시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꾸준히 하려고 해요. 요즘 후배들 보면 너무 잘하고 열심히 한다는 생각을 해요. 놀라울 정도로요. 그래서 그들의 성장과 인기를 받아들이게 돼요. 저는 제 또래의 시장이 있고,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분야가 있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제가 지금 아이돌이 하는 음악을 하고, 군무를 추면 '어휴 주책이야', '갑자기 왜 이래?'하시는 분도 있을 거에요. 그래서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생각을 해요. 다만 지금은 엄청난 영광을 얻거나 대박을 꿈꾸면서 막연히 뭔가 좇으려고 하지는 않아요."

비에게는 '노력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마흔을 내다보는 나이에도 20대의 몸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비는 "이 모든 게 승부욕, 책임감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정지훈

대중문화예술인으로서 목표는 무엇일까.

"요즘 (박)진영이 형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지금도 프로듀서로서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시고, 가수로서도 활동하는 걸 보면 멋지다는 생각을 해요. 저의 경우는 가수로서 계속 현역에 있겠다 이런 건 좀 세부적인 목표 같고 대전제로서 어떤 목표를 가질까를 생각해보곤 해요. 제가 작년에 '더 유닛'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했거든요. '내 주제에 누굴 가르쳐?'라는 생각도 했지만 데뷔 후 주목받지 못했던 친구들이 재도전한 거라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멘토링을 했어요. 그때 제가 그들에게 강조했던 건 "다들 소중한 존재니까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 달라"였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과거에는 제 자신을 소중하게 다루지 못하고 막 대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나를 좀 소중하게 다루고 싶어요."

비는 '나를 소중하게 다루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아침에 눈을 떠 부재중 전화가 수십, 수백 통이 와있으면 손으로 액정을 가리고 쪼듯이 인터넷을 확인했어요. 제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두려웠거든요. 그만큼 매일 아침이 숨 막혔어요. 자다가 일어났는데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이제는 나를 사랑하고 내려놓으니 그런 압박에서도 조금은 벗어나게 되더라고요. 아마 많은 연예인들의 삶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핸드폰을 집에 놓고 여행을 간 적이 있거든요. 결국 손이 떨려서 돌아왔어요. 그것도 해보니 불안하더라고요. 돌아오니 아니나 다를까 부재중 통화 몇백 통이 와있더군요.(웃음) 제가 이 일을 할 때 결심한 게 있어요. '나는 사람들의 장난감이다'라는 거. '대중이 나를 좋아해서 선택했다고 해도 언젠가는 질릴 것이다'라는 각오를 하고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했어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나도 압박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올 텐데 그때는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싶어요."

이날 정지훈, 비는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 : 비보도)를 전제로 한 속내를 많이 털어놓았다. 기사화할 수 없는 말속에는 뿌리 깊은 진심이 느껴졌다. '내려놓음'을 이야기하지만 비는 근본적으로 성실하고 열정적이며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 성격이 스스로에게 '대충'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정지훈의 삶의 중심과 중요성이 '물질적 성공'보다는 '정신적 행복'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만큼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비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신고 문밖으로 나가는 순간은 '비'지만, 신발끈을 풀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정지훈'이라는 사람이 된다"라고 말했다.

삶의 안정과 행복을 찾은 비의 능력과 매력이 무대와 스크린에서 좀 더 오랫동안 발현되기를 기대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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