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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우상', 부유하는 이미지 vs 잡히지 않는 이야기

최종편집 : 2019-03-14 12:10:14

조회 : 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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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복잡하게 풀어냈다. 중식의 내레이션으로 여는 영화는 명회의 시점으로 전개되며 련화의 등장으로 인해 파국을 맞는 구조를 띠고 있다. 관객은 누굴 따라가야 할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우상'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4가지 의미 아래 세 인물을 만들고 그에 조응하는 이야기를 설계한 것처럼 보인다. 구조에 있어 여러 층의 레이어를 쌓았으나, 영화 중반 이후 뒤엉켜버린다. 이야기의 타래를 풀지 않고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든 이들은 영화가 남긴 물음표는 관객의 몫이라고 한다. 매력적인 미스터리지만, 미완의 영화로 보인다.

청렴한 도덕성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차기 경남 도지사로 주목받고 있는 도의원 구명회(한석규)는 어느 날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고 이를 은폐한 사실을 알게 된다. 신망받는 자신의 정치 인생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그는 아들을 자수시킨다. 그러나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고 난 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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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혈육이 세상의 전부인 유중식(설경구)은 지체 장애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시체로 돌아오자 절망에 빠진다. 사고 당일 아들의 행적을 이해할 수 없어 자취를 감춘 며느리 최련화(천우희)를 찾아 나선다.

'우상'은 메타포(metaphor : 은유)의 영화다. 빛, 물, 비, 피, 낙엽, 동상 등의 이미지는 은유이자 상징으로서 이야기와 캐릭터를 부연하고자 한다.

영화를 연출한 이수진 감독은 "한국 사회에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그 시작이 뭘까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면서 "한 인간이 이루고 싶어 하는 꿈이나 신념이 맹목적으로 변화하는 순간, 그것 또한 우상이 아닐까 생각했고 그것이 작품의 시작이었다."라고 말했다.

정치·사회 스릴러로서 '우상'의 세 인물에겐 계급의 층위가 존재한다.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정치인이 등장하며, 그와 엮이는 두 인물은 지체 장애 아들을 둔 소시민, 중국 연변에서 넘어온 불법 체류자다. 권력층과 하층민의 구도로 보이지만 이 안에서도 기생하고 공생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들에겐 각각 쫓는 우상이 있다. 구명회는 권력, 유중식은 혈육, 최련화는 생존이다. 허상에 가까운 헛된 욕망을 위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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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은 입으로 퍼진다"

"믿음은 귀를 막는다"

"바램(바람)은 눈을 가린다"

영화를 설명하는 세 개의 카피는 그럴 듯 하지만 인물에 흡수되지 못한 채 따로 떠돈다. 영화는 중간까지 뺑소니 사고를 중심에 두고 은폐하려는 자와 파헤치려는 자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개한다. 스릴러 영화로서의 긴장감이 살아있고, 한석규와 설경구는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연기한다.

완성된 영화에서 '우상'이라는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은 구명회로 보인다. 우상을 쫓으면서 동시에 우상이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도덕성을 갖춘 정치인으로 대중의 사랑과 신뢰를 받았지만 당연해 보였던 도지사직이 위태롭게 되면서 권력욕이 고개를 든다.

영화라는 매체가 소설과 다른 점은 서사를 글로서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로 묘사한다는 데 있다. '우상' 역시 메타포를 인상적인 영상으로 구현하며 이야기와 조응하는 구조를 짜고자 했지만 서사와 밀착되지 못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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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인물의 이야기가 톱니바퀴처럼 어우러져 메인 플롯의 의미 형성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영화적 귀결이 아쉽다. 메타포 역시 메인 플롯에 기능적으로 호응하지 못한 채 개념으로만 남은 느낌을 준다.

만든 이의 의도는 있겠으나 그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기억에 남는 잔상들도 많지만 그 정체가 불분명하며 오독(誤讀)도 가능할 정도로 혼란스럽다. 어떤 관객도 반복 관람을 전제하고 영화를 보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부유하는 이미지와 잡히지 않는 이야기는 이 영화의 결정적인 아쉬움이다.

촬영과 음악, 미술, 조명 등 기술적 완성도는 수준급이다.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극 내내 유지하는 것은 배우들의 흡입력 있는 연기와 기술적 요소가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우상'의 또 하나 치명적인 문제점은 대사 전달이다. 한국 영화의 후시녹음은 비단 이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최근 어떤 영화보다도 아쉬움이 크다. 그 대사들은 인물이 사건에 결정적인 비밀이나 키를 입으로 직접 전하는 신에 등장한다. 극의 하이라이트에서 인물이 극한의 감정을 담아 대사를 치지만 알아듣기 힘들다.

세 배우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다. 특히 아들의 사고로 지위가 흔들리자 욕망의 민낯을 드러내는 구명회 역할의 한석규는 장면 장면을 장악하는 탁월한 연기로 영화의 집중도를 높인다. 특히 히틀러의 연설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엔딩은 옆모습과 육성만으로도 공포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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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은 슬픔과 더불어 혈육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 유중식 역할의 설경구도 뜨겁게 달아올라 서서히 싸늘해져 가는 연기로 몰입도를 높였다.

'한공주'(2014)에 이어 다시 한번 이수진 감독과 호흡을 맞춘 천우희는 연기에 관해서는 어떤 모험과 도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상'은 곧 '허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모든 사건과 인물에 파장을 일으키게 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다만 미스터리한 데다가 초인적인 이 캐릭터는 지나치게 영화적이라 동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우상'은 메타포를 거듭 되새김질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영화다. 더욱이 2시간 20분이 넘는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과 재미를 내내 끌고 가는 점도 돋보인다. 그러나 불친절한 전개와 너무 많은 은유 때문에라도 관객의 취향을 탈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지옥도를 그려온 이수진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지독하게 파고들고 집요하게 묘사한다. 이야기하고자 한 바를 영화적 방식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그의 집념은 영화 곳곳에서 느껴진다.

3월 20일 개봉,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44분.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