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전도연도 어려웠다는 세월호 영화…놓지 못한 이유는

김지혜 기자 작성 2019.04.04 17:59 수정 2019.04.05 09:00 조회 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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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진심은 진심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소재를 영화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만든 이의 마음이며 태도일 것이다.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어떤 태도로 작품에 임했는가는 결과물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2014년 4월 16일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날의 참사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뉴스를 보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과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트라우마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이 날 이후를 그리는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은 만든다고 했을 때 너무 빠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배우 전도연도 그랬다. 두 차례나 출연을 고사하고 세 번째에서야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생일'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전도연은 "영화 '밀양'의 연출부로 인연을 맺었던 이종언 감독이 데뷔작으로 세월호 소재의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너무 이른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니까요. 사람들은 지금도 사건에 관해 오해하고, 정치적 공격도 하고, 몇몇 사람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해요. 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너무 이른 것 같았고, 세월호라는 소재를 떠나 온전히 영화로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에요."라고 운을 뗐다.

생일

배우에게 작품은 일종의 운명과 같은 것이다. 전도연은 '생일'과 만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 주변 사람들에게 시나리오 모니터를 해달라고 했는데 다들 읽고 난 뒤 펑펑 울면서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딱 한 사람, 제가 정말 좋아하고 신뢰하는 송종희(충무로의 대표적인 분장 감독으로 전도연과는 영화 '접속'으로 인연을 맺은 지인) 언니만 하라고 하는 거예요.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요. 세월호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과연 이게 유가족만의 이야기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종희 언니도 '네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니까 피해 가지 말라'라고 했어요. 어쩌면 제 마음은 하고 싶었는데 '해봐!'라는 말이 듣고 싶었는지 몰라요. 작품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감독님을 만나 '이 이야기에 당당하세요. 그제나 어제 만들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 만들어져야 한다면 그때가 지금이라고. 영화를 만들기에 적당한 타이밍 같은 건 없다고. 감독님이 만들어야겠다고 선택했다면 그 타이밍은 감독님이 만드는 거라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영화입니다."

'생일'은 아들을 사고로 잃은 후 슬픔을 이겨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엄마 순남(전도연)과 베트남에서 일하는 바람에 아들의 곁을 지키지 못한 아빠 정일(설경구), 슬픔에 휩싸인 부모의 애정과 보살핌을 받지 못해 일찍 철들어버린 딸 예솔(김보민), 세 가족이 유가족을 위해 사망한 이의 생일을 챙겨주는 모임에 나가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생일

전도연은 아들을 잃은 엄마 '순남'으로 분했다. '생일'은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있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었다. 30년 가까이 다져온 연기의 내공은 삶과 인간을 진실되게 표현할 때 더욱 반짝인다.

캐릭터의 현실감을 높인 것은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는 생기 잃은 표정이었다. 겉보기에 남들과 다름없이 일상을 살아내고 있지만 핏기 없는 얼굴에는 상실과 공허가 배어 있다. 너무 울어 눈물조차 마른 얼굴로 유가족의 다정한 손길에 "소풍 오셨어요?"라며 날 선 눈빛을 보낸다. 흉내 낸 가짜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 표현한 진짜였다.

"이제 저도 한 아이의 엄마니까요. 순남에게 감정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보고 싶었어요. 자식을 잃은 엄마의 마음을요."

'생일'은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애도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영화다. 피해자는 물론이고 유가족, 생존 학생, 희생 학생의 친구, 유가족의 이웃 등 다양한 시선을 아우르며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일

전도연도 자신이 연기한 순남이나 남편 정일만큼이나 오빠를 잃은 예솔(김보민)의 슬픔과 외로움, 이웃의 고통을 보듬은 우찬 엄마(김수진) 캐릭터를 힘주어 언급했다.

"'그래서 네가 잘해야 해. 엄마 아빠가 힘드니까.'라는 말을 듣고 살아야 하는 예솔이의 삶도 힘들 거예요. 엄마가 오빠 옷이라고 사온 쇼핑백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제 옷을 찾잖아요. 그러면서도 갯벌 체험 가서는 바다에 발도 못 딛는 아이예요. 영화에서 순남이 반찬 투정을 하는 예솔이를 거세게 다그치는 장면을 찍을 때도 기억이 나네요. 감독님이 보민이에게 전체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감정 소모가 크니까요. 상황을 설명해주고 촬영에 들어갔는데 제가 화내는 연기에 애가 너무 놀라는 거예요. 한 번에 감정을 몰아서 아이를 문밖으로 내쫓아야 했는데 놀랐는지 한동안 제게 오지 않더라고요. 순남에게 예솔의 존재가 큰 힘이 됐던 것처럼 현장에서 보민이가 제게 큰 힘이 됐어요."

영화가 관객에게 닿기 전 유가족들을 위한 시사회가 선행됐다. 전도연은 그날의 놀라웠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전도연

"유가족분들을 못 보겠더라고요. 영화가 끝난 후 무대 인사를 하러 들어가야 하는데 극장 안의 무거운 공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울고 계시는 분들도 있고, 담담히 저희를 쳐다보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나올 때까지 한 번도 고개를 못 든 거 같아요. 그분들의 이야기고 저는 연기를 한 배우인데 '제 연기 어때요?', '이만하면 잘했나요?'라는 말을 할 수도 없고...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생일 모임을 하는 이유는 위로나 치유가 아니라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단 하나라도 찾아야 해서 하는 거라고 이야기해주셨어요. 그리고 한 어머니께서 손수 수놓은 지갑을 주셨어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어요. 내가 왜 자꾸 (세월호를) 피하려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눈물이 터져서 나올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다만 '생일'이란 영화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은 드렸어요. 그날 그 자리에서 제가 위로받고 위안받았어요. '잘했어요'라는 응원의 말을 듣고 나온 거죠."

세월호를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인터넷 상에서 평점 테러 등의 뜻하지 않은 공격도 받고 있다. 전도연은 담담하게 "정치적인 색깔로 공격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로 인한 상처가 중요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걸로 인해서 아프지는 않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들이 가졌던 유대감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전도연은 "이 이야기를 하는데 동참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이 아파하고 같이 힘들어했던 거 같아요.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면 내가 도와줄게' 하면서 돕고,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서로가 서로의 작업에 잘 임할 수 있게 해 줬어요.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웃 때문에 자식이 대학을 세 번이나 떨어졌다는데 유가족의 아픔부터 챙기는 '우찬 엄마' 같은 이웃이 어디 있겠어요? 생각해보면 감독님이 관객들을 향해 '유가족에게 우찬 엄마 같은 사람이 돼 주세요'라는 말을 건넨 게 아닐까 싶어요."라고 말했다.

전도연

전도연은 영화 '남과 여'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했다. 잘할 수 있는 작품을 신중하게 고르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밀양' 이후 엄마 역할, 아이를 잃은 엄마 역할이 많이 들어오는데 가급적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생일'은 피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어요.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안 했으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 '공격하는 말에 상처 받고 도망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했는데 홍보를 하면서 기자 분들, 관객 분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아, 우리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어려워하고 조심스러워하는 이야기구나', '생일이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렇게 오늘까지 왔고 계속 가게 될 것 같아요."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삶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도연은 유독 잘 그려낸다. 어떤 가짜도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리얼리즘 연기의 원천은 무엇일까.

"음... 사람마다 표현하는 게, 생각하는 게 다르잖아요. 저는 배우이기 때문에 슬픔이나 기쁨을 표현할 때 내가 만족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모습이 되기도 해요. 연기는 되게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연기적인) 기술도 필요하고 진심도 필요하고 없는 것도 꾸며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달라도,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못해도 제가 느끼는 만큼을 하려고 해요. 그런 방식이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진심이 보여서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취향의 문제고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진심보다 또 다른 게 필요한 작품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전도연은 인터뷰 말미 이 영화를 선택하기까지의 어려움이 이제는 고마움으로 변했다고 고백했다.

"'이 이야기는 너무 힘들어'라는 느낌이 분명 제게도 있었어요. 그러나 용기를 내 다가가 보니 소중함, 감사함이 생기고 '나도 누군가의 따뜻한 이웃이 돼줘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하루를, 일상을,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한걸음만 다가왔으면 좋겠어요. 아프고 힘들게 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니까 다가와 주세요. 우찬이 엄마처럼요."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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