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미성년'으로 확인된 '감독 김윤석'의 역량

김지혜 기자 작성 2019.05.10 18:28 수정 2019.05.13 09:41 조회 1,008
기사 인쇄하기
김윤석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미성년'으로 데뷔한 김윤석 감독은 언론시사회 이후부터 개봉 전까지 리뷰를 한 줄도 읽어보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평가를 확인하는 건 모든 상영이 끝난 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만든 이가 작품에 대한 평가를 확인하는 것을 후일로 미루는 것, 조금 이상해 보였다. 성적표를 마주하는 학생의 마음 같은 것일까. 그는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배우 김윤석이 감독 김윤석으로 관객과 만났다. 영화계에서는 그의 연출 데뷔를 예견된 일로 보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윤석은 충무로에 넘어오기 전 대학로에서 빼어난 역량을 발휘하던 배우 겸 연출가였다.

한때 충무로에는 '김윤석은 촬영장의 감독'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는 배우 김윤석이 작품 전체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때론 감독보다 영화를 꿰뚫어 보는 눈이 넓고 깊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아가 김윤석이 영화를 연출한다 해도 이상할 것 없고, 배우로서의 역량에 근접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란 것은 공통된 생각이었다.

미성년

대부분 상업적인 장르 영화를 데뷔작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김윤석이 선택해온 작품들은 감정의 파토스(Pathos)가 큰 영화가 다수였고, 그런 영화들에서 역량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그의 안목과 취향, 경험에 따른다면 연출작 역시 같은 선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성년'은 가족 드라마다. 각자의 아버지, 어머니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두 여고생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김윤석은 이 작품을 대학로 작가들의 희곡 발표회에서 발견했다.

"2014년 대학로 지인의 소개로 간 창작 희곡 발표회에서 본 미완성 작품이었다. 보자마자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결심이 섰다. 불륜이라는 소재는 흔하지만 어른들의 위선과 나약한 모습을 아이의 시선으로 그렸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원작을 쓴 이보람 작가를 만나 함께 시나리오로 발전시켜 나갔다."

미성년

소재와 장르까지 모두 의외의 선택이었다고 하자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답다고 한다"라고 웃어 보였다.

"배우로서 끌리는 이야기와 연출자로서 끌리는 이야기가 내 경우는 비슷하다. 나는 드라마와 사람만 가지고 만드는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그런 영화가 생명력이 길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볼 때마다 새롭다. '쇼생크 탈출'(1994)은 여러 번 봐도 좋지 않나. 인간에 관한 드라마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장르적인 영화를 하게 된다. 감독들도 나의 파워풀한 캐릭터를 좋아하고... 어쩌겠냐?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야지.(웃음) '미성년' 시나리오를 쓰면서 장준환 감독을 비롯한 친한 감독에게 모니터링을 부탁했는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다들 나답다고 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나를 박처장('1987'), 면가('황해'), 아귀('타짜')로 기억하시니 의외라고 할밖에."

'미성년'은 영화지만 연극적 매력이 가득하다. 신과 신의 연결을 통해 캐릭터가 선명해지고, 사건이 일으킨 감정의 파동이 이야기 흐름에 따라 자연스러운 높낮이를 형성한다. 이는 상황과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집중도가 높다는 의미기도 하다. 캐릭터 디자인이 섬세하고, 드라마 연출도 노련하다.

미성년

모두의 삶에 파장 일으키는 건 대원(김윤석)이지만, 뒷감당을 하는 건 아내인 영주(염정아), 딸인 주리(김혜준), 불륜녀 미희(김소진)와 그녀의 딸 윤아(박세진)다. 김윤석 감독은 이 네 사람이 얽히고설키는 드라마를 쓰면서 각각의 인물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

김윤석이 만든 캐릭터를 형상화한 것은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이었다. 연기 디렉팅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을까.

"동료 배우로 편하게 다가갔다. 이 신(scene), 이 대사는 어떤지, 불편하지는 않는지를 물으면서 의미가 바뀌지 않는 한 어미와 어두는 편하게 바꾸라고 했다. 그게 서툰 감독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미성년'은 많은 배우가 나오는 작품이 아닌 4명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 이런 방식이 가능했다. 우리 배우들은 분위기만 만들어주면 알아서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집중해서 연기하면 난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캐스팅을 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김희원, 이정은, 이희준, 염혜란, 정이랑과 같은 역량 좋은 배우들도 작은 역할에 자신의 개성과 연기력을 기꺼이 쏟았다. 단순히 감독과의 친분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해당 장면에서 배우가 가볍게 소비되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는 감독 김윤석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성년

김윤석은 연출뿐만 아니라 연기도 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가장 대원 역할이었다. '미성년'에서 대원은 무책임하고 나약한 어른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김윤석은 한심하고 지질한 역할을 능청스럽게 해내 영화 내내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대원은 대부분 뒷모습, 옆모습만 나온다. 이 영화는 대원이라는 인물에 관심이 없다. 기능적 역할이다. 이 남자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미성년'은 네 사람이 사건의 중심에 서서 회피하지 않고 용기 있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다만 대원이 관객의 너무 큰 분노를 유발하면 그 분노의 파장이 나머지 네 배우가 나오는 장면까지 오염시킬 수 있어서 수위 조절을 했다. 찌질이로 그려서 관객에게 숨 쉴 공간을 주되 나머지 네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파격적인 결말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영화의 주제를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여주는 과감한 선택이라는 평가와 예술과 치기의 어정쩡한 경계에 있는 선택이라는 평가다. 김윤석 감독은 이보람 작가와 결말을 가장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미성년

"결말을 서른 번 가량 고쳤다. 아무리 고쳐도 아이 두 명이 세상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패배감이 느껴지는 결말을 원치 않았다. 아이들이 (위기와 슬픔을) 딛고 올라서는 마무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작가가 써온 지금의 이 결말이 너무 좋았다. '못난이'(아기의 애칭)를 잊지 않기 위해 그러한 행동을 한다고는 하지만, 당신들(어른들)이 한 짓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못난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했던 세 어른은 자격이 없다는 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2018)을 보면 "너희들이 버린 걸 우리가 주웠다"라는 대사가 있는 데 그것과 비슷한 의미다. 물론 '미성년'의 결말을 극장에서 보며 "어? 어~~~~!" 하며 놀라는 관객들도 있겠지만 신인 감독의 패기로 봐주셨으면 한다. 기성세대가 신세대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면 우리가 자격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엄청난 고민을 하면서 만든 결말이다. 이 장면은 그런 의미를 담은 은유다."

김윤석은 영화의 결말뿐만 아니라 몇몇 장면에서 기성세대의 무능과 방황, 신세대와의 불통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나도 기성세대에 속하는 나이가 되니까 돌아보게 되더라. 이대로 정체되어 석고 굳듯 늙어갈 것인가 문을 열고 신세대에게 다가갈 것인가. 대원이 방파제에서 할머니(이정은)한테 돈을 뜯기고 연이어 어린 학생들에게 린치까지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위와도, 아래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기성세대의 발걸음을 묘사하고 싶어서 넣은 장면이다. 이제 우리도 (다음 세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윤석

영화를 함축하는 탁월한 제목인 '미성년'은 산고 끝에 나온 것이었다. 김윤석은 "전 스태프를 대상으로 상금을 걸고 공모를 했다. '유원지의 불청객', '오리집 연가', '주리와 윤아' 등 별의별 제목이 다 나왔는데 '미성년'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었다. 양익준 감독이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애정만세')에 동명의 작품이 있다. 그래서 그를 만나 이 제목을 써도 되냐는 허락을 구했다."라고 비하인드를 전하기도 했다.

"제목은 '사실 우리는 모두 미성년입니다'의 준말로 보시면 된다. 아름다운 성년이 되기 위해서는 죽기 전까지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성인이라는 게 운전 면허증이 아니지 않나. 한번 따면 그만이 아니니까. 어떤 사람은 퇴보하기도 하니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김윤석은 인터뷰 내내 영화의 원안자이자 각본을 함께 쓴 이보람 작가를 칭찬했다. 그는 "이보람 작가의 공을 알아달라. 1990년대 초반 연극계에서 활약하던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영화계로 옮겨간 것처럼 희곡 작가들도 시나리오를 썼으면 한다. 어차피 드라마라는 건 같고, 매체의 특성이 다른 것이야 영화하는 사람들이 알려주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미성년

또한 '미성년'의 수확이자 김윤석의 안목으로 발굴한 두 신예 김혜준, 박세진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처음부터 주리와 윤아 역할은 오디션으로 뽑겠다고 생각했다. 연기 잘하는 친구들이야 많지만 다른 작품에서 여고생을 연기한 적 없는 배우들을 찾고 싶었다. 두 배우를 뽑아 크랭크인 두 달 전부터 매일 만나 연습을 시켰다. 뿐만 아니라 대화를 많이 나누며 마음의 벽을 허무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촬영에 들어가니 훨씬 수월했다."

특히 김혜준은 이번 작품을 통해 전작인 드라마 '킹덤'의 연기력 논란을 말끔히 씻었다. 김윤석 감독은 김혜준이 영화에서 펼친 활약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둘 다 어려운 역할이지만 주리는 하나 더 해설자 역할까지 해야 했다. 많은 신인들이 윤아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다. 튀는 역할이니까. 하지만 난 주리가 너무 중요했다. 그래서 김혜준에게 이 역할을 주면서 주리는 '단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영화는 어른들의 세계를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주리의 강렬한 모습으로 시작한다. 주리는 유일하게 '미성년'에서 울지 않는 캐릭터다. 물론 내 마음은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두 사람 모두 다 연기로 칭찬받았으면 한다."

김윤석

김윤석 감독에게 흥행과 작품에 대한 호평이 양립할 수 없다면 어떤 결과가 더 욕심이 나느냐는 질문에 "신인 감독이니까 아무래도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칭찬을 받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냐"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감독 데뷔작이 은퇴작이 되지 않으려면 손익분기점은 넘어야겠죠?"라고 덧붙였다.

이제 막 감독으로 첫 발을 뗀 김윤석에게 향후 연출 계획을 묻자 "젊었을 때라면 욕심을 내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또 좋은 이야기를 찾으면 다음 작품을 하겠지만 억지로 할 생각은 없다."라고 겸허하게 말했다.

'미성년'에 대해 올해 최고의 데뷔작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신인 감독상 수상을 예견하자 김윤석은 "내가 가장 탐나는 건 우리 배우들의 연기상이다. 여우주연상, 신인상을 다 휩쓸었으면 좋겠다. 또 이보람 작가가 각본상 받기를 원한다"라고 미소 지었다.

ebada@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