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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지하연습실서 6년간 연기공부"…고준,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최종편집 : 2019-05-24 13:43:21

조회 : 2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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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지하에 연습실을 차려 절 가뒀어요. 6년 동안요. 저의 30대는 그렇게 하루하루 준비를 하던 시간이었죠."

인정하기 싫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현실에 안주하고 도전을 꺼리게 된다.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불안정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모든 것을 과감히 던져버리는 30대를 보통의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배우 고준은 다르다. 그는 "20대 때는 주제 파악을 못했다. 실력도 없는데 작품만 하려 했다. 20대 후반에 그걸 깨달았고, 30대는 날 업그레이드하는 시간으로 채웠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통렬히 깨달은 지난날의 고준은 스스로를 지하 연습실에 가뒀다.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전까지 "세상에 나가지 말자"는 마음이었다는 그는 무려 6년 동안 그 안에서 연기 공부에만 매진했다.

무모하리만치 용감했던 이 도전은 현재 값진 결실로 돌아오고 있다. 드라마 '구해줘', '미스티', 영화 '청년경찰', '변산' 등 고준은 지난 몇 년간 출연하는 작품마다 강렬한 연기로 대중의 인정을 받는 데 성공했다. 특히 최근 시청률 23%를 찍으며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에서는 인간미가 있는 악역 황철범 역을 맡아,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배우로서도 큰 주목을 받게 됐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이 뻔하디뻔한 진리는 고준의 연기 인생에서도 통했다.

지난날의 고생과 노력을 바탕으로 얻어낸 지금의 달콤한 결과물에 취할 법도 하지만, 고준은 "이런 칭찬이 안 믿긴다", "잘 모르겠다", "부끄러울 뿐이다"라며 민망해했다. 200명 정도 있던 팬카페 회원이 이후 10배 늘어 2000명대가 된 걸 보면 신기하긴 하지만, 이게 정녕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실감할 수 없다는 그다.

현실 속 고준은 '미스티' 이재영처럼 '으른' 섹시미를 장착하고 황철범처럼 남자다움이 넘쳤지만, 기본적으로 '순박한' 사람이었다. '악역 전문 배우'로 불리는 고준의 인터뷰 자리에서는 아이러니하게 유쾌한 웃음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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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높아진 인기, 좀 실감하고 있어요?
고준: 아뇨, 실감 못 해요. 주변에서 인기 많아졌다고 해도 전 안 믿겨요. 팬카페 회원 수가 200명대에서 2000명대로 10배가 늘었는데 기분이 묘하고, 이상하게 부끄러워요. 팬들에게는 감사한 마음이 크죠. 그동안 조금씩 조금씩 생기던 팬들이 를 기폭제로 확 는 거 같아요. 진짜 제가 보잘거 없을 때부터 소소하게 모여 팬카페까지 만들어 활동해준 팬들이 '미스티'가 끝나고 200명 정도 됐는데, '열혈사제'를 하면서는 그 수가 500명만 되어도 행복할 거 같았어요. 근데 그 수치를 너무 많이 뛰어넘으니까, 안 믿기고 신기해요. 제가 더 열심히 잘해야죠. 저보다 더 잘난 연예인들 많은데, 제 팬을 해주시는 거잖아요. 그분들께 제 팬이라는 자부심을 드리고 싶어요.

Q. 대답이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순박함이 느껴지네요. 이번 를 비롯해 악역을 많이 맡아왔는데, 실제 성격은 다른가 봐요.
고준: 닮은 부분도 다른 부분도 있죠. 모든 캐릭터는 다 배우 본인 안에 내포돼 있다고 여겨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이 제 몸속에 있다면, 연기는 그 가운데 어떤 특정한 색깔 하나를 꺼내 오랫동안 보여주는 거라 생각해요. 사람이 나이와 환경에 따라 자신의 색깔이 달라지듯, 연기도 자기 안에 있는 희로애락의 경험을 바탕으로 캐릭터에 맞는 색깔을 장기간 꺼내 보여주는 작업이죠. 지난 5~6년간 악역을 주로 해왔는데, 너무 악역의 색깔만 오래 꺼내놓고 있다 보니 정신적으로 좀 힘들긴 해요.

Q. 이제 악역을 좀 피하고 싶다는 의미인가요?

고준: 물론 악역을 아예 안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죠. 악역도 하고, 선한 역도 하고.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지난해 방영됐던 단막극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연기한 캐릭터가, 제 마음속의 색깔 중에 가장 저와 잘 맞는 정서인 거 같아요. 사랑 앞에서 찌질하고 소극적인 남자 역할이었는데, 저 악역 말고 그런 연기도 가능합니다.(웃음) 관계자분들이 저의 다른 면을 보고, 새로운 이미지로도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기회만 된다면 보여드릴 모습들이 제 속에 무한대로 저장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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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기자에게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당연한 거겠죠. 그래도 고준만이 표현하는 악역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극악하지만은 않은, 인간미 있는 악역 캐릭터를 맛깔나게 잘 소화하잖아요? 의 황철범도 그랬고.
고준: 아이스크림으로 비유하자면, 전에는 바닐라맛, 딸기맛, 초코맛, 이런 단품들을 연기한 기분이었다면, '열혈사제' 황철범은 '바닐라초코맛' 처럼 혼합 아이스크림 같았어요. 언어도 서울에 상경한 지 오래된 전라도 사람이라는 설정으로 서울 말과 전라도 말이 섞인 사투리를 썼고, 정서적으로도 나쁜 짓은 하지만 자기 식구 잘 챙기며 정이 많은 사람을 표현하려 했어요. 전작에서 했던 악역과 완전히 다른 모습은 아니었지만, 황철범을 통해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악역을 보여드리고 싶어 집중을 많이 했어요.

Q. 배우들의 팀워크가 남달랐잖아요. 함께 연기한 배우들과의 호흡에 대해 좀 설명해주세요.

고준: (김)남길이랑 (김)성균이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났는데,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이게 연기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어요. 그 친구들한테 제가 많이 배웠죠. 남길이는 가장 많은 신을 연기하는데도 작품 전체를 보는 시야, 그걸 운영하는 능력이 뛰어나요. 성균이는 깨알 같은 분석력으로 대본보다 더 재밌게 살려내는 연기능력이 탁월하고요. (이)하늬는 여배우가 그러기 쉽지 않은데, 스스로를 완전히 내려놓고 캐릭터에 맞게 연기를 가지고 놀아요. 하늬랑은 영화 '타짜2' 동기라 원래 친했는데, 성품이 정말 좋고 만인을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사람이에요. (음)문석이는 오래전부터 제게 연기를 배웠던 친구라, 연기 호흡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고요. 는 정말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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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황철범이 권투선수 출신의 조폭 설정이라 싸움을 잘했어요. 액션신에서 굉장히 날렵해 보이던데, 실제 운동 실력은 어떤가요?
고준: 제가 잡기는 많은데 제대로 잘하는 건 없어요.(웃음) 복싱도 배우고, 무에타이도 배우고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건 많은데, 제대로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딱히 못 하는 것도 없어요.

Q. 춤 실력도 대단하던데요? 종영 후 특집 예능에 출연해 요즘 '핵인싸'들이 춘다는 '오나나' 춤을 추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고준: 사실 전 그게 '인싸춤'인지, '오나나 춤'이라 불리는 건지도 잘 몰랐어요. 유튜브를 보니 그게 요즘 유행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춤은 제가 어릴 적 한창 춤춘다며 까불고 다닐 때, 20년 전에 유행했던 스탭이에요. 그게 요즘에 다시 유행한다더라고요. 전 옛날 춤을 춘 건데, 그게 요즘 인싸 춤으로 보인 거죠. 유행은 돌고 도나 봐요.(웃음)

Q. 2001년 '와니와 준하'로 데뷔한 19년 차 배우인데 인지도는 최근 몇 년 사이 확 높아졌어요. 무명시절이 길었는데, 배우로서 어떤 길을 걸어온 건가요?
고준: 주제 파악을 못하던 20대가 있었고, 주제 파악을 하고 준비를 하던 30대를 거쳐 지금이 완성됐어요. 어릴 적엔 제가 준비가 덜 되고 실력이 없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기회만 쫓아다녔어요. 어떻게든 작품에 들어가려 하고, 오디션만 보러 다녔죠. 실력이 없는데 잘 될 리가 있나요. 그걸 20대 후반에 깨달았어요.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연기적으로 채워나가고 개선할 게 너무 많더라고요. 나머지 30대의 시간 동안은 하루하루 절 업그레이드하고 성장시키는 시간으로 살았어요.

Q. 연기를 포기할 생각도 가졌었나요?

고준: 너무 힘들어서 연기를 잠깐 포기한 적이 있어요. 연기를 내려놓고 다른 시각에서 저란 존재를 바라보니 그제야 보이더라고요. 얼마나 연기를 못했고 준비가 안 됐었는지가요. 연기를 포기하고 3달 만에 다시 복귀하면서 다짐했어요. '연기를 진짜로 잘할 때까지, 세상에 나가지 말자'라고요. 지하에 연습실을 차려 절 가뒀고, 거기서 6년 정도를 생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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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6년이나 지하 연습실에요? 어떻게 지냈는데요?
고준: 제 연기의 문제점을 찾아내려 카메라를 하나 놓고 찍으면서 그 앞에서 연기를 하고 고쳐나갔어요. 같이 동참하려는 동료들이 생기면서 컷을 분할해서 찍고 서로 모니터도 하고, 좋은 명장면을 편집해서 신 스터디도 했죠.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지, 그것만 깊게 파고들었어요. 냉난방기 하나 없던 그 지하 공간에서, 너무 습해 몸에 곰팡이가 생길 정도의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연기를 안 하며 사는 삶보다 그렇게라도 연기를 하면서 사는 게 제일 행복하다는 걸 느꼈죠.

Q. 그럼, 연기를 하고 대중의 인정까지 받는 지금은 행복한가요?
고준: 이게 모순적인데, 사실 연기를 하면 되게 힘들어요. 근데 또 행복해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죠. 촬영 현장에서는 '다시는 연기 안 해'라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다가도, 작품이 끝나고 조금 쉬면 다시 현장에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Q. 촬영장에서 힘들다는 건, 자신을 괴롭히면서 연기하는 스타일인가 봐요?
고준: 배우는 작품 따라가고 역할 따라가는 거 같아요. 악역 대부분이, 마냥 악하지만은 않아요.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지 않고 정신적으로 아픈 캐릭터라, 그걸 악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죠. 아픈 캐릭터들을 연기하다 보니 저도 아파지는 거 같아요. 그래도 황철범을 하면서는 많이 건강해졌어요. 코미디가 있으면 재밌어요. '변산' 할 때가 재밌고 행복했는데, '열혈사제'에서도 그걸 느꼈어요.

Q. 악역을 벗어나 연기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고준: 영화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 선배, '오아시스'의 설경구 선배가 연기한 순수한 사랑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선배가 했던, 어리바리한데 동물적 감각을 발휘하는 형사 역할도 좋고요. 전 휴머니즘 있는 캐릭터로 '사람'을 표현하고 싶어요. 다음 작품에서 제가 뭘 할지, 또 똑같은 역할을 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긴 하지만, 그래도 기대되고 설레요. 새로운 결을 연기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사진제공=비에스컴퍼니]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