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로딩이미지
로딩중

[스브수다]"세상엔 또 다른 '용현'이 많아요"..'요한 씨돌 용현' 이큰별 PD의 바람

최종편집 : 2019-06-14 17:21:49

조회 : 6297

[SBS 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에세이나 드라마 제목처럼 긴, 그러면서도 감성적인 느낌의 이 문장은 지난 9일 'SBS스페셜'을 통해 방송된 다큐멘터리의 제목이다. 제목부터 보통의 다큐멘터리와 달랐던 이 방송은, 자연다큐로 시작했다가 역사다큐로 넘어가고, 휴먼다큐로 흐르는 듯하다가 깜짝 놀랄만한 반전까지 숨어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로 일요일 밤 TV 앞에 앉은 시청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방송이 끝나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의 충격에 정신이 멍했다"-한 네티즌의 시청 후기 中-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이하 '요한 씨돌 용현')을 본 시청자라면, 이 다큐멘터리가 주는 깊은 여운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인 씨돌 아저씨, 의로운 청년 요한, 몸이 불편한 지금의 용현 씨까지, 결국엔 한 명의 동일인물인 이 남자의 기구하고 묵직한 인생사는,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을 위해 잠을 청해야 하는 누군가의 밤의 끝을 상념과 자기반성으로 돌아보게끔 만들었다.

이미지

시작은 유쾌했다. 7년 전,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했던 강원도 정선 봉화치 산골마을에 사는 씨돌 아저씨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마을 할머니의 농사를 내 일처럼 돕고, 동물과 교류하며 자연과 하나 되어 해맑게 살아가는 '원조 자연인' 씨돌 아저씨의 모습은 잔잔한 미소를 자아냈다. 그런데 그 씨돌 아저씨가 언제부턴가 봉화치 마을에서 사라졌다.

'요한 씨돌 용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87년에 초점을 맞췄다. 대통령 부재자 투표에서 여당 대표를 뽑지 않았다고 구타당해 숨진 故 정연관 상병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숨진 열사들의 유가족이 모인 공동체 '한울삶'에서 사람들을 챙기며 그 누구보다 앞장서 투쟁하고 정의를 위해 몸 바쳤다는 청년 요한. 그도 2004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정연관 상병의 의문사가 인정된 후, 정상병의 어머니를 만나 위로를 건넨 후 홀연히 사라졌다.

다시 시간을 돌려 1995년, 봉화치 마을 씨돌 아저씨의 흔적을 의외의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충격의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그는 사람을 구하겠다고 강원도에서 한 달음에 달려와 구조현장에 매달렸다고 한다. 구출한 생존자가 두 시간 만에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었던 씨돌 아저씨는 언론사에 사고 희생자의 추모와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고, 재난구조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등 세상을 바꾸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펼쳤다.

사람 좋은 인상으로 새와 친구 하며 자연 속에서 순수하게 지내던, 삼풍백화점 참사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려 애쓰기도 했다던 씨돌 아저씨. 그리고 독재정권과 민주화 움직임 속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의 가족을 돌보며 진실을 밝히려 했던 청년 요한. 씨돌 아저씨는 바로 그 요한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미지

요한이자 씨돌인 그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총 2부작으로 구성된 '요한, 씨돌, 용현'은 2부 예고편을 통해 지금은 '김용현'이란 이름으로 지내고 있는 그의 근황을 살짝 공개했다. 해맑게 웃던 씨돌 아저씨, 총명하게 눈을 빛내던 요한의 모습을 지금의 용현 씨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측 반신마비에 언어장애로 소통이 안 되고, 더 이상 뇌의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료진의 설명은, '요한, 씨돌, 용현' 1부에 담긴 모든 내용을 전복시킬 만한 반전이었다. 비록 봉화치 마을에서, 한울삶에서 사라졌지만,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길 바랐던 씨돌, 요한은 그렇게 힘겹게 현재를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요한, 씨돌, 용현'의 2부 방송이. 드라마도 아닌데, 이토록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다. 그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빨리 해소하고자, 담당 PD에게 S.O.S를 쳤다. '요한, 씨돌, 용현'을 만든 이큰별 PD를 만났다.

이미지

Q. 1부 방송 이후 온라인 반응이 뜨거웠어요. 다큐가 주는 묵직한 감동에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는 글들이 많더라고요. PD로서 직접 체감하기에는 어땠나요?
이큰별 PD: 1부 다큐를 보신 분들은 다행히 좋은 평을 해주셨어요.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주변 분들로부터 "방송 잘 봤다"는 연락도 많이 받았고요.

Q. 씨돌 아저씨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이큰별 PD: 7년 전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를 통해 씨돌 아저씨를 찾아간 PD가 바로 저였어요. 당시에는 제가 갓 입봉한, 3년 차 PD였죠. '세상에 이런 일이'를 맡고 세 번째쯤 하게 된 아이템이 씨돌 아저씨였어요. 그때 촬영을 하며 저 스스로 아저씨에게 깊이 동화됐어요. 그래서 방송 이후에는 촬영과 상관없이 휴가 때마다 봉화치 마을에 찾아가 아저씨와 계속 만났어요. 방송으로 알게 됐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할 게 많은 분이었어요. 그러다 아저씨가 3년 전쯤부터 몸이 안 좋아지셨는데, 때마침 저도 팀으로 옮기면서 일이 바빠지는 바람에 아저씨를 찾아뵙지 못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죠. 최근에 제가 'SBS스페셜' 팀에 와서 다큐 형식의 교양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게 됐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 고민하다가 아저씨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씨돌 아저씨의 이야기를, 그의 인생을 취재하게 됐어요.

Q. '자연인' 인줄만 알았던 씨돌 아저씨가 과거 민주화 운동에 아무 조건 없이 앞장섰던 요한이란 걸, 이런 그의 남다른 인생을 사전에 얼마나 인지하고 있었나요?

이큰별 PD: '세상에 이런 일이' 때부터 아저씨를 봐 왔지만,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으로는 몰랐어요. 아저씨가 스스로 내세우지 않았으니까요. 개인적으로 기회만 된다면 이 분의 인생을 조명해보고 싶다는, PD로서 그런 마음의 부채감이 있었어요. 드디어 이번에 이 분의 다큐를 하게 됐는데, 취재하다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인생을 겪으셨더라고요. 모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았어요. 이번 다큐를 위해 저와 함께 힘쓴 제작진이 를 했던 작가, 스태프들이라, 뭘 찾아내는 데는 선수예요. 이 분의 인생을 취재하고 과거의 기록들을 찾아보니, 저희 같은 범인(凡人)은 이해하기 힘든 정말 희생적인 인생을 사셨더라고요. 그동안 범죄자 추적만 하다가, 이렇게 좋은 사람의 인생을 좇으니, 저희도 취재하고 새로운 뭔가를 알아낼수록 더 신이 났던 거 같아요. 영화 '서칭포슈가맨' 같은 느낌도 받았고요.

이미지

Q. '요한 씨돌 용현' 1부를 봤다면, 다음 2부를 궁금해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스포일러일 수 있겠지만, 요한, 씨돌의 또 다른 이름, '용현'이 너무 궁금해요. 2부 내용에 대해 살짝만 귀띔해 주세요.
이큰별 PD: 1부 방송을 본 시청자가 제일 궁금할 게, '왜 요한에서 씨돌이 되었나', 그리고 '저 용현이란 사람은 왜 지금 아픈가' 일 거예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2부 방송에서 다 해소가 될 겁니다. 살짝만 설명하자면, 씨돌 아저씨는 예전에 민주화 운동하던 때의 후유증으로 뇌출혈에 계속 시달려 오셨어요. 그러다 사고를 당해 지금 요양원에 계신 거죠. 다행히 주변 신부님, 수녀님들의 따뜻한 돌봄을 받고 있긴 한데, 이 분이 기초생활 수급자이고 자신의 터전마저 모두 기부하려 했던 분이라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으세요. 마비된 오른쪽 팔, 다리가 안쪽으로 말리고 있어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결국에는 비용의 문제라 현재 적극적인 치료는 못 받고 있고요. 그런 현실적인 부분들까지, '요한 씨돌 용현' 2부 방송에서 모두 다뤄질 예정입니다. 아저씨를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분들과의 감동적인 만남도 그려질 거고요.

Q. 다큐 제목이 참 독특해요.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이란 부제도, '요한 씨돌 용현'이란 세 이름을 모든 넣은 것도요.
이큰별 PD: 저희가 이분에 대해 취재하면서 이곳저곳 연락을 많이 돌렸는데, '김용현을 아느냐' 물으면 모른다는 분이, 사진을 보면 '이 사람은 요한인데?'라고 말하는 경우들이 많았어요. 아저씨는 철저히 세 가지의 이름으로 살았더라고요. 이 분을 요한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씨돌, 용현이란 이름을 모르고, 이 분을 씨돌로 아는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을 했던 과거 요한의 모습을 모르고. 그런 취재 과정을 겪으며 어느 순간, 머리가 깨였어요. 한 사람이 세 가지 이름으로 살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건 자신의 이야기를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거예요. 빛나는 별만 기억하는 우리 사회에서, 작은 일이라도 크게 부풀려 자기 성과로 내세우고 1등만 쫓는 경쟁주의 사회에서, 이 분은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얼마든지 과시하고 돋보이게 할 수 있었지만 전혀 그런 걸 안 했어요. 이 분이 세 가지 이름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담아보자는 취지로, 제목에 세 이름을 모두 넣게 됐죠.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이란 부제는 '한울삶' 어머니, 아버지들과의 대화에서 나왔어요. 그분들이 '요한은 분명 기록이나 기억에는 존재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기에,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기에, 있는데 없는 사람처럼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대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목이 좀 길어지지만 부제도 넣게 됐어요.

Q. 배우 류수영-박하선 부부가 함께 내레이션을 맡았더라고요. '씨돌' 부분에서는 박하선이, '요한' 부분에서는 류수영이 각각 내레이션을 하고, 나중에 두 인물이 동일인물인 걸 설명할 때 부부의 목소리를 함께 입힌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이큰별 PD: 제가 SBS '희망TV' 방송을 맡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MC가 류수영 씨였어요. 방송을 정말 진정성 있게 잘하는 분이라 생각했죠. 방송을 하며 류수영 씨와 친분이 생겼는데, 이번에 제가 첫 다큐를 하며 어렵게 내레이션을 부탁드렸어요. 아내인 박하선 씨까지 같이 섭외를 해야 했는데, 부부가 기획안을 보더니 정말 좋은 방송이라며, 흔쾌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고마웠죠. 두 분 다 내레이션 더빙에 정말 열심히 해줬어요. 전달력도 좋았고, 내용에 감정몰입해서 눈물도 보이더라고요. 부부 내레이터라 다큐 주인공의 인생을 연결성 있게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효과적이었던 거 같고요. 류수영-박하선 부부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이미지

Q. 7년 전부터 인연을 쌓아 온 분의 인생을 다큐로 조명한다는 게, PD로서도, 그냥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남다를 거 같아요.
이큰별 PD: 언론이란 건 '질문'을 하는 존재잖아요? 7년 전에 분명 이 분을 취재했었지만, 그때는 저 스스로도 잘 몰라서 물어보지 못한 게 많아요. 이제 7년이란 세월이 지나, 저도 그 사이 교양 PD로서 수많은 일을 겪으며 성장해왔고, 또 이 분의 인생을 취재하며 알게 된 것들이 쌓인 후라, 다시 이 분과 마주 했을 때 "왜 이런 희생적인 인생을 사셨나요?"라고 질문하는 제 마음이 정말 벅찼어요. 촬영 막바지에 아저씨의 컨디션이 괜찮아 딱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접 인터뷰를 하며 제가 그 질문을 던졌죠. 그 답에 대해서는 방송을 통해 공개되겠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우문현답의 충격적인 답변이었어요. 머리를 징으로 한 번 맞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몸이 아파도 아저씨는 여전하구나, 진짜 한결같은 사람이구나 싶더라고요.

Q. 이미 1부 방송을 본 시청자는 많은 것을 느끼고 있어요. 이걸 만든 PD로서, '요한, 씨돌, 용현'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뭔가요?
이큰별 PD: 이 분을 취재하며 제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있어요. '민주주의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인데, 우리는 그 꽃을 피운 사람에게만 주목했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 뿌리가 되고 줄기가 된 수많은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어요. '요한, 씨돌, 용현'을 통해 단순히 이 아저씨의 대단한 인생만을 담으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민주화 운동을 하며 구속되고, 끌려가 맞아서 몸은 피폐해지고, 범죄경력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못하고, 그런 분들이 많아요. 이름도 명예도 없이 잊혀져간 분들이죠. 그중에 하나가 '용현'인 거고, 세상에는 또 다른 용현들이 많아요. 우리가 '용현'을 주목한 건, 그분의 희생적인 인생의 가치도 가치지만, 나아가 또 다른 용현을 찾아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취지였어요.

Q. 방송을 본 시청자에게 그런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제작자로서 정말 보람이 크겠네요.
이큰별 PD: 제가 를 3년 정도 하며 대한민국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다가, 'SBS스페셜' 팀에 와서 이번 다큐를 만들며 정말 큰 행복감을 느꼈어요. '요한, 씨돌, 용현'은 자연다큐, 휴먼다큐, 역사다큐를 다 아우르는 스타일이라 제작하는데 품이 정말 많이 들었는데, 몸은 힘들어도 개인적으로 의미가 컸어요. 나중에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을 되돌아보면, '정말 열정과 진정성을 갖고 이걸 만들었구나'란 생각을 스스로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가 처음부터 다큐 PD가 되고 싶어 교양 PD에 지원했던 건데, 요즘 '정말 PD 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방송을 본 시청자 분들도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