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로딩이미지
로딩중

[빅픽처] '로켓맨'은 왜 '보헤미안 랩소디'가 되지 못했나

최종편집 : 2019-06-19 15:16:00

조회 : 1103

이미지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엘튼 존(72)에게는 두 개의 애칭이 있다. '로켓맨'과 '캡틴 판타스틱'이다.

이 중 '로켓맨'은 엘튼 존이 1972년 발표한 곡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을 로켓맨에 비유하기 전까지 엘튼 존은 이 수식어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다. 미국과 소련 사이의 우주 개발 경쟁이 시들해가던 시기에 탄생한 노래다. 우주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서정적인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로 풀어냈다.

로켓맨,(A rocket man)
아마 조금 오래 걸릴 거야(And I think it's gonna be a long, long time)
우주선이 다시 돌아와 착륙하기까지(Til
touchdown brings me round again to find)
과거에 그들이 기억하던 내가 아닐 거야(I'm not the man they thing I am at home)
아니지(Oh no. no. no)
난 로켓맨이야.(I'm a rocket man)

영화 '로켓맨'(감독 덱스터 플레처)에서 이 노래는 영화의 중반부에 등장한다. 눈부신 성공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삶을 살던 엘튼 존이 자살을 시도할 때 흐른다. 불안한 내면을 형상화한 판타지 장면이 더해지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집을 떠나 정처 없이 우주를 유영하는 로켓맨의 고독이 묻어나는 가사는 엘튼 존 자신을 빗댄 것이기도 하다. 엘튼 존의 전기 영화 제목이 '로켓맨'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는 현재까지 전국 9만 9천 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그치며 외면받고 있다. 엘튼 존의 일대기를 그린 첫 번째 음악 영화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개봉해 전국 990만 흥행에 성공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덱스터 플레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브라이언 싱어가 하차한 감독직에 대타로 들어가 '보헤미안 랩소디'를 마무리했던 것과 달리 '로켓맨'은 기획부터 참여해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았다.

이미지

◆ 엘튼 존 내면의 고백…지극히 사적인 회고

영화는 약물 치료 모임에 참석하는 엘튼 존(태런 에저튼)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자신을 엘튼 허큘리스 존(Elton Hercules John)으로 소개하지만 영화는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Reginald Kenneth Dwight)였던 그의 어린 시절을 비추며 이야기를 펼친다.

'로켓맨'은 엘튼 존 내면의 고백과 같은 영화다. 20대 중반에 영국을 넘어 미국 팝 음악계까지 제패하고 세계적인 스타가 됐지만 오랜 시간 동안 불행했다고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영화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일기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엘튼 존 내면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으며, 그의 혼란스러웠던 정신세계는 판타지 장면을 통해 여러 차례 형상화된다.

이미지

삶의 희로애락을 원천 삼아 창작 행위를 해나가는 예술가에겐 기쁨만큼이나 슬픔이 창작의 큰 동력이 된다. '로켓맨'을 보고 있으면 엘튼 존에게 창작의 원천이 된 것은 결핍과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엘튼 존은 세상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며 자랐다. 또 연인의 진심 어린 사랑을 갈구했으나 얻지 못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는 부자였지만 마음은 빈곤했던 사람이었다.

영화는 엘튼 존의 대표곡 '로켓맨'(Rocket Man), '유어 송'(Your Song), '굿바이 옐로우 브릭 로드'(Goodbye Yellow Brick Road), '아임 스틸 스탠딩'(I'm Still Standing) 등을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활용하며 그의 인생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이미지

◆ 마약과 술 그리고 성적 지향

엘튼 존은 무대 위에서 화려한 쇼맨십을 자랑하는 가수였지만, 무대 아래에서의 삶은 혼돈 그 자체였다. 특히 20대부터 40대까지는 술과 마약, 섹스, 쇼핑 중독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영화는 엘튼 존의 방황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로켓맨'이 흥미로운 건 인기 가수의 삶을 그린 음악 영화가 으레 하는 의도적 생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엘튼 존은 이 영화의 기획에 참여하며 제작진에게 '청소년 관람가'(PG-13) 등급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일부 제작사들은 성관계, 마약을 하는 장면의 수위를 낮추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PG-13 등급을 받을 정도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내가 70년대와 80년대에 마약과 성관계를 많이 했음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인데 영화에서 공연이 끝날 때마다 우유 한 컵, 성경 책만 갖고 조용히 호텔 방으로 돌아가는 것만 보여준다면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엘튼 존의 바람대로 영화는 그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고, 편집 과정에서도 주요 장면은 살아남았다. 영화는 남자를 사랑했던 엘튼 존의 성 정체성도 상세하게 묘사했다. 특히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퀸의 매니저로 등장했던 존 리드와의 사랑과 이별을 비중 있게 그렸다.

그 결과 북미에서는 청소년관람불가(R등급)로 개봉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성행위 묘사 장면이 있으나 구체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아 수위가 다소 높은 정도이며, 마약 사용의 표현이 있으나 구체적이거나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고 이를 정당화하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그 이유를 전했다.

이미지

◆ 살아있는 신화…미화도 왜곡도 없이

전기 영화는 인물이 죽기 전에 기획되는 경우도 있고, 사후에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로켓맨'은 전자다. 엘튼 존과 그의 반려자 데이비드 퍼니시가 이끄는 로켓 픽처스가 제작했고, 엘튼 존은 영화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엘튼 존은 살아있는 신화다. 자신의 삶을 미화하는 것에 거리를 두며 진솔한 고백 형식의 영화를 만들었다. 한 뮤지션의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다루면서 드라마적인 매력이 진해졌다. 인물 묘사의 깊이 면에서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넘어선다.

반면 음악 영화로서의 폭발력은 '보헤미안 랩소디'에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이 영화가 음악보다는 이야기에 치중하면서 극적인 연출에 힘을 싣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도 성공신화의 밑천으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엘튼 존의 고해성사를 멜로디와 가사로 드러내는 형식으로 활용한다. 이는 의도한 선택으로 보인다.

'로켓맨'은 엘튼 존의 신화를 온전히 그만의 것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늘날 엘튼 존을 발견하고 성장시킨 조력자에 대한 애정과 헌사도 아끼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은 수 십 년 간 엘튼 존의 음악적 동지 역할을 한 작사가 버니 토핀이다.

이미지

버니 토핀은 음유 시인이었다. 명곡들은 대부분 버니 토핀이 쓴 시적인 가사에 엘튼 존이 멜로디를 붙이며 완성됐다. 보통의 음악 작업이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가사를 붙이는 것과는 상반된 방식이다. 엘튼 존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사가 어떻게 음악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로켓맨'의 완성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타이틀롤을 맡은 태런 에저튼이다. 실존 인물과의 싱크로율에 대한 우려를 연기력과 노력으로 말끔히 날렸다. 무엇보다 엘튼 존의 명곡을 직접 불러 생생한 감동을 선사했다. 연기할 때의 목소리와 노래의 목소리가 동떨어져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그는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제2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로켓맨'은 조금은 낯설게 다가갈 수 있다. 노래 제목은 몰라도 멜로디만 들으면 알 수 있었던 퀸의 중독성 높은 명곡과 달리 엘튼 존의 노래는 몇몇 곡을 빼면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국제적인 인기(엘튼 존의 전 세계 역대 음반 누적 판매량은 1억 8,400만 장(공식 집계)으로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에 이은 역대 4위다)와 인지도는 퀸을 능가하지만 국내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그러나 미화와 왜곡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낸 깊이 있는 전기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로켓맨'은 만족스러울 결과물이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몰랐던 엘튼 존의 삶이 이 영화에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