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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우리 모두에게 우디가 있었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9.06.25 08:53 수정 2019.06.26 10:24 조회 1,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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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 이 글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1995년 개봉한 '토이 스토리'의 오프닝 시퀀스는 앤디의 장난감 역할극이었다. 포테이토 헤드가 은행을 터는 악당으로 등장해 보핍과 양들을 위협하는 가운데 용감하고 정의로운 보안관 우디가 나타나 악당을 소탕하는 내용이다.

앤디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장난감 친구들이 구현하는 이 오프닝은 '난 너의 친구야'(You've Got a Friend in Me)라는 주제가와 함께 등장해 캐릭터들을 관객의 가슴에 안착시켰다.

1편으로부터 24년, 3편으로부터 9년 만에 '토이 스토리4'(감독 조시 쿨리)가 개봉했다. 개봉 첫 주말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영화를 관람했고, 호평 일색의 반응을 내놓고 있다. 애니메이션 아니 극영화를 통틀어서도 '이토록 완벽한 마무리는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3부작의 봉인을 해제한 보람이 있는 성공적인 귀환이다.

'토이 스토리4'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보며 자란 성인 관객의 향수를 자극했으며, 현시대의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시대 불문, 세대 불문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리즈의 인기 비결은 뭘까. 단순하다.

'우리 모두에게 우디가 있었다.'

토이스토리

◆ 우디, 나의 충성스러운 보안관

2010년 개봉한 영화 '토이 스토리3'의 엔딩은 앤디와 우디의 이별이었다. 대학에 합격해 집을 떠나는 앤디는 장난감 꾸러미를 옆집 소녀 보니에게 선물한다.

장난감은 계승됐고, 주인은 바뀌었다. '토이 스토리4'에 등장한 우디의 부츠 바닥에 'ANDY'가 아닌 'BONNIE'라고 쓰여있는 이유다.

우디는 '보니 바보'가 돼있었다. 그러나 전 주인 앤디의 바람과 달리 우디는 새로운 주인인 보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장롱 안에 처박혀 지내기 일쑤다. 그렇지만 우디는 여전히 주인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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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직한 보안관 우디는 먹은 나이만큼 성숙해져 있었다. 더 이상 새로운 장난감을 질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니가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도록 남몰래 돕고, 주인이 총애하는 장난감 포키가 집을 나가자 찾아주려고 고군분투한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이름과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던 장난감이 있었다. 시대, 세대, 성별에 따라 공룡, 로봇, 인형 등 대상이 달랐을 뿐 그 시기, 그 존재의 가치는 불변했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절대적 힘은 그때 그 시절의 나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심으로의 회귀이자 추억의 소환이라는 불가 항력한 힘이 이 영화를 보며 웃고 울게 만든다. 동시에 '우리는 우디처럼 소중한 친구에게 의리를 다했을까'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함께 회한에 젖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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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지 입은 보핍…주체적인 여성 캐릭터 확립

'토이 스토리4'는 버즈, 포테이토 헤드, 렉스, 햄, 슬링키 등 주요 장난감의 비중이 줄어든 대신 또 한 명의 핵심 캐릭터를 부각했다. 앞선 3부작에서 우디와 썸을 타는 관계로 설정됐던 도자기 인형 보핍이다. 3편에서 골동품 가게에 팔려가며 우디와 이별했던 보핍은 4편에 재등장해 맹활약을 펼친다.

전 시리즈에서 보핍은 공주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양치기 소녀였다. 그러나 돌아온 보핍은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지팡이를 무기로 휘두르는 씩씩한 여성으로 변신해있었다.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투영해온 디즈니·픽사 다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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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핍의 변화를 보며 픽사의 스토리텔링 법칙 22가지 중 '캐릭터들에게 색깔을 입혀라. 수동적이고 유순한 캐릭터는 쓰기 편할지 모르지만 관객에겐 독이다'이라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다. 시리즈 15년 간 방치되다시피 했던 무색무취 캐릭터의 근사한 진화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확립은 '사랑을 갈구하는 장난감으로 살 것인가, '사랑을 주는 장난감으로 살 것인가'라는 '토이 스토리4'의 주제와도 맞닿는 부분이다.

'토이 스토리4'에서 보핍의 목소리를 맡은 애니 파츠는 "보핍은 결국 주변에 사랑을 나누고 자신의 삶을 즐기는 방법을 찾았어요. 보핍이 스스로 힘을 얻는 법을 배운 것처럼 여자 아이들이 이 캐릭터를 통해 임파워링(Empowering: 권한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됐다고 느끼기를 바라요."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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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의 행복이 아닌, 너의 행복을!

그럼에도 '토이 스토리4'가 '토이 스토리3'를 넘어서는 영화라고는 섣불리 말하지 못하겠다. 3부작의 명성을 깎아 먹는 4편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3편의 재미와 감동을 능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개별 캐릭터의 개성을 부각하면서도 앙상블을 통해 절묘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던 세 편의 영화와 달리 '토이 스토리4'는 우디와 보핍, 포키 캐릭터에 집중한 감이 있다.

새로운 캐릭터 개비개비, 더키, 버니, 듀크 카붐 등도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지만 버즈, 제시, 포테이토 헤드, 렉스, 햄, 슬링키 등 원조 캐릭터의 활약이 미비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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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9년 만의 시리즈 귀환을 준비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디의 성장담에 초점을 맞추면서 장난감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테마에 집중했다. '주인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서의 장난감의 숙명에 부합하지 못할 때의 외로움과 상처도 언급하며 관객의 가슴 한편을 저릿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리즈의 진화라는 큰 숙제를 안고 시작한 '토이 스토리4'는 우디의 모험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예상치 못한 결말로 관객에게 놀라움을 안긴다. 누군가는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불만을 표출할 수도 있는 선택이다.

'토이 스토리4'가 선택한 결말은 우디가 그간 보여준 가치관과 반대되는 것이다. 물론 영화는 캐릭터 변화의 과정을 통해 선택의 당위를 보여준다. 다소 아쉽기도, 섭섭하기도 한 이 선택 때문에라도 관객들은 5편 제작을 고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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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는 3편에서 떠나는 앤디를 보며 "안녕, 파트너"(So long partner)라고 읊조리며 작별 인사를 했다. 4편에서 왁자지껄한 모험을 마친 우디는 어떤 선택을 하며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To infinity, and beyond)라는 버즈의 말을 빌린다.

우디가 앤디에게 보내는 헌사 '난 너의 친구야'(You've Got a Friend in Me)를 이제 관객들이 우디에게 전해줄 차례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난 너의 친구야. 영원한 친구야. 너 어렵고 힘들 때 누구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 내가 있다는 사실 잊지 마. 그래 난 너의 친구야. 예! 영원한 친구야. 나보다 똑똑하고 더 잘난 친구들도 너무 많겠지. 하지만 나처럼 널 아끼는 친구는 이 세상에 또 없을 걸.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우리들. 너와 난 뗄 수가 없다네. 난 너의 친구야. 영원한 친구야."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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