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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美는 포기했죠"…노행하, '녹두꽃' 버들이가 되기까지

최종편집 : 2019-07-25 16:29:29

조회 : 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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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기회는 아무한테 오는 게 아니지만, 힘들게 마주한 기회를 허망하게 놓쳐버리는 경우도 많다. 기회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그걸 소화할 만한 '실력'을 갖춘, 준비된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배우 노행하는 SBS 드라마 (극본 정현민, 연출 신경수)에서 '버들이' 역으로 활약할 기회를 잡았고, 보기 좋게 성공해냈다. 연기에 뜻을 품은 지 십 수년이 됐지만, 아직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노행하. 이번에는 달랐다. 오랫동안 쌓아 올린 연기력을 바탕으로 기회를 실력으로 입증했다. 뜨거웠고 울컥했던 동학농민운동 별동대원들 사이에서 장총을 들고 뛰어다니며 눈빛을 빛내던 '버들이' 노행하의 드라마 속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노행하의 배우 인생은 '녹두꽃'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월 중순부터 첫 촬영에 들어가 5개월 정도 촬영에 임했어요. 진짜 신기하게도, 전 '녹두꽃'을 하며 힘들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드라마가 끝났다는 게, 실감이 안 나요. 다시 촬영장에 가야 할 거 같아요."

노행하는 이란 울림 있는 작품에 참여하고, 그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한 마음이 컸다. 동학농민혁명 가운데에서 안타깝게 희생당한 민초들을 떠올리며 분노하다가도, 재밌었던 현장 이야기에 배시시 웃어 보이는 노행하의 모습에서 순수했던 버들이가 엿보였다. '녹두꽃'과 버들이에 애정이 큰 만큼, 인터뷰 중간중간 울컥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노행하가 버들이로 완벽하게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이 진정성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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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들이가 되기 위해, 아름다움은 포기했다"

의 버들이는 어려서부터 포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산을 누비며 자라 꾀죄죄한 몰골에 선머슴 같은 여인이었다. 작은 얼굴과 큰 눈의 서구적인 외모로 부잣집 딸 같은 외형적 이미지를 갖춘 노행하와는 180도 다른 캐릭터였다. 그래서 노행하는 버들이가 되기 위해 과감히 아름다움을 포기했다.

"오디션에 합격한 후 버들이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감독님께서 해주셨는데 '미(美)를 찾으려 하면 안 된다. 굉장히 못 생겨질 거다. 그걸 감당할 수 있겠냐'라고 물으셨어요. 전 '너무 좋다'고 대답했죠. 처음부터 망가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어요. 오히려 어떻게 해야 자연에서 살아온 버들이처럼 보일지, 이질감 없이 잘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죠."

노행하는 분장팀에게 '더'를 요청했다. 분장팀이 "이래도 되냐"고 되물을 정도로 얼굴을 까맣게 칠했고, 일부러 땅바닥에 주저앉아 풀을 뜯으면서 놀았다. 버들이가 총을 잡는 저격수라 손이 클로즈업될 것을 대비해 손과 손톱도 더러워 보이도록 분장했다. 노행하는 "손톱의 때를 분장하는 기술이 있더라. 신기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리며 웃어 보였다.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욕심 따위는 그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버들이' 노행하에게 칭찬하고 싶은 또 한 가지는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였다. 이 과거 전라도 고부 인근에서 촉발된 동학농민혁명을 다루는 만큼, 출연 인물들 대다수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했다. 10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란 걸 반영해 지금보다 더 센 억양의 전라도 사투리가 등장했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현대를 살고 있는 시청자에게 사투리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노행하는 거부감 없는 사투리 연기로 버들이를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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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래 전라도 출신이에요. 고향은 전남 함평이고, 초등학교 6학년 때 광주로 이사를 갔어요. 그래서 전라도 사투리 연기에 부담은 없었는데, 에서는 단어나 억양이나 너무 옛날에 쓰던 사투리를 쓰더라고요. 지금은 그 정도까지 심하게 사투리를 쓰지 않거든요. 오디션 때, 할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급하게 '밥 먹었어라?'라는 대본의 대사를 한 번 해보시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렇게 할머니와 통화 후에 오디션을 봤는데, 그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 거 같아요. 실제 촬영할 땐, 엄마랑 통화를 자주 했어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엄마랑 통화를 하면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입에 붙어 연기할 때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노행하의 준비성은 총을 든 액션에서도 빛났다. 무게가 6~8kg 정도 되어 성인 남자들도 들고 연기하기 힘들다는 장총을 거뜬하게 움직였고, 조준을 하거나 쏘는 장면도 자연스러웠다. 이 모든 건 총을 드는 연기를 위해 나름 철저하게 준비한 노행하의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꽤 오래 액션스쿨에 다니며 총을 잡는 자세나 기초적인 것들을 훈련받았어요. 그런데 촬영 날 처음 모형이 아닌 실총을 들었는데, 어마어마하게 무겁더라고요. 촬영 후 모니터를 보고, 제 자신한테 화가 났어요. 장전하고 개머리판을 안착시킬 때 총이 무거워 제 몸이 흔들리더라고요. 그 길로 집에 가, 바벨의 가운데 바만 구입했어요. 그리고 그걸 들고 계속 연습했죠. 팔힘을 기르기 위해 팔운동도 하고, 코어운동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준비를 해서인지, 초반에는 총을 들고 연기하는 게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그 무게가 익숙해지더라고요."

▲ "버들이 같은 역,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버들이는 노행하에게 일종의 '도전'이었다. 서구적인 외모에 여성스러운 이미지라, 그동안 밝고 새초롬한 부잣집 딸내미 역할을 주로 맡아온 그다. 그래서 노행하는 버들이 같은 역할을 자신에게 줄, 그런 모험을 거는 제작진은 없을 거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팀은 노행하에게 버들이 역을 제안했다.

"여태까지 연기를 연습하고 공부하면서, 버들이 같은 역할을 접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저도 제 이미지를 알기에, 제게는 오지 않을 역할이라 생각했거든요. 크게 욕심 안 부리고 있었는데, 캐스팅이 된 거죠. 제가 말고, 또 어디에서 이런 버들이 같은 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종류의 캐릭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초연해지더라고요. 모든 욕심을 버리고, 버들이에게만 집중하고 연구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지, '녹두꽃' 촬영이 끝났지만 아쉽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마음이 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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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행하는 버들이가 되기 위해 캐릭터의 전사(前史)를 한 땀 한 땀 만들어 나갔다. 버들이가 산에서 포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면 총을 장난감처럼 여겼을 테고, 친구가 없었다면 사회성이 떨어져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이었을 거라고. 그래서 좋아하는 백이강(조정석 분)에게 '츤데레'처럼 굴었을 거라고. 버들이가 자라왔을 환경을 상상해가며 캐릭터의 틀을 잡아나갔다. 이렇게 초반에 분석해 놓은 버들이에 관한 세세한 것들을 토대로, 노행하는 버들이의 행동과 생각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이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이어졌다. 그는 "버들이를 한 번 잘 만들어보자, 하는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에서 버들이의 마지막은 비극이었다. 회복 불가능한 부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버들이는 마지막으로 백이현(윤시윤 분)을 죽이려다가 결국 자신이 죽음을 맞았다. 처절하지만 뜨거웠던 버들이의 죽음에 많은 시청자가 함께 눈물을 흘렸다.

"버들이의 마지막을 연기하며, 눈물이 자꾸 났어요. 감독님은 마지막 순간에 버들이의 강인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울지 말라고 했는데, 버들이가 처한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죽은 부모님과 번개(병헌 분)도 생각나고, 별동대 사람들도 떠올랐을, 그런 버들이의 상황에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이 계속 났어요. 전 버들이가 너무 좋았어요. 버들이와 함께 한 시간들 속에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고, 버들이를 통해 희망이란 걸 봤죠. 혹시 제가 부족해 버들이의 더 좋은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버들이를 언제 떠나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버들이라는 역할을 만나 너무 많은 걸 얻었고,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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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만불짜리 눈빛의 조정석, 천사 같은 선배였다"

열심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 해 연기한 만큼 노행하가 그린 버들이는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잘 녹아들며 시청자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노행하는 자신의 연기에 만족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전 제 연기에 만족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몇 백개의 모니터 영상 클립을 갖고 있는데, 지금도 아쉬워서 돌려보곤 해요. 버들이라는, 제가 평소 해보지 못했던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만족하고 안주해버리면 끝이라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제 연기에 더 만족이 안 됐던 거 같아요."

연기에 몸담은 지는 오래됐지만 노행하는 신인급의 배우다. 처음 도전하는 사극인데,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어려운 작품에 사연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게 신인한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게 맞는 연기인지 고민이 될 때마다, 노행하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건넨 사람이 있다. 의 주역, 조정석이었다.

"왜 사람들이 '조정석 조정석'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조정석 선배님은 진짜 돈 주고도 못 살 백만 불짜리 눈을 갖고 있어요. 만나는 인물마다 눈빛이 달라지고, 눈이 모든 감정을 말해요. 슬픈 장면을 연기할 때 선배님의 눈을 보면, 제가 자꾸 눈물이 나서 눈을 못 보겠더라고요. 연기를 정말 잘하는 분인데, 특히 그 눈이 너무 좋았어요. 또 선배님은 제가 어떤 연기를 하던 다 맞춰주세요. '행하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럼 내가 거기에 맞출게'라고 말해 주는 게 너무 고마웠어요. 저 같은 신인의 입장에서는, 상대 배우가 그렇게 배려해주면 좀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가 있거든요. 조정석 선배님 뿐만 아니라, 안길강 선배님 등 다른 별동대 선배님들이 다 그랬어요. 다들 천사예요. 어쩜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행복했고,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촬영장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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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엉뚱한 생각으로 시작한 연기, 지금은 후회 안 해"

노행하가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좀 특이하다. 철없던 어린아이의 엉뚱한 생각이 연기란 것에 처음 발 담그게 만들었다. 남아선호가 뚜렷했던 종갓집에서 자란 초등학생 노행하는 오빠와 자신을 차별하는 집안 분위기에 "난 다리 밑에서 주어온 자식"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당시 인기 있던 TV 프로그램이 'TV는 사랑을 싣고'였고, 유명한 연예인이 되어 그 프로그램에 나가 친엄마를 찾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고에 진학하고 대학교에서 연극영화과를 전공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어린 노행하는 연기를 해야겠다고 처음 마음을 먹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이었죠.(웃음) 마침 당시 지역 연기학원에서 1등한테 1년 동안 무료로 수업해주는 오디션을 실시했는데, 거기서 제가 덜컥 1등을 해버렸어요. 그때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저보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이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연기가 멋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거 같아요. 그 후로 저도 진지해졌죠. 서울에 있는 예고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서울에 있는 큰삼촌 집으로 올라오기도 했고, 반대하는 엄마를 설득시키기 위해 그 앞에서 연기를 보여준 적도 있어요.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처음에는 철없이 가졌던 생각이지만, 진짜 예고에 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진학까지 이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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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연기를 포기할까"란 고민을 한다. 노행하는 그걸 대학 시절에 겪었다.

"대학 다닐 때 연기에 대한 회의감이 깊이 들었었어요. 연기라는 게 감정 소비가 너무 심하고, 제가 아무리 연습해도 이게 정답이 없는 거라 그걸 쫓아가지 못하겠더라고요. 연기를 이제 때려치겠다는 생각으로 3년을 쭉 휴학하고 광주 집에 내려가 지냈어요. 연기하는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연기밖에 없더라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해왔던 걸 포기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었죠. 결국 다시 돌아왔어요. 20대 초반이 제게는 그래서 힘든 시간이었어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 연기. 노행하는 이후 카페 아르바이트와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시간만으로 24시간이 부족한 생활을 이어가며 자신을 담금질했다. 그리고 한 작품 한 작품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하며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러다 이라는 인생 작품을 만났다.

"지금은 제가 배우가 된 걸 후회하지 않아요. 연기를 포기할까 하다가 다시 돌아온 후, 제가 마지노선으로 잡은 나이가 서른 살이었어요. 서른 살까지 연기자로서 아무것도 못 하면 과감하게 연기를 그만두자고 마음먹었죠. 지금이 딱 그 마지노선의 나이예요. 그런데 전 운명처럼 을 만났어요. '녹두꽃' 촬영장에서 느낀 건, 제가 그동안 나름 연기에 대해 공부해온 것들이 '세발의 피'였다는 거예요. 현장에서 직접 피부로 느끼고 선배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서 배우는 게, 진짜 큰 배움이더라고요. 그래서 '녹두꽃'은 제게 의미가 커요."

[사진=백승철 기자]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