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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82년생 김지영', 눈물 난 건 '50년생 오미숙'의 삶이었다

최종편집 : 2019-10-23 11:27:23

조회 :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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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개봉하기도 전에 이렇게 달아오른 영화가 있을까. 영화화 소식부터 캐스팅, 예고편 공개, 개봉 고지에 이르는 과정마다 '좋다', '싫다'에 대한 대중의 의견 표출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제목은 한 번쯤 들어 보았을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에 관한 이야기다.

2016년 발간돼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정유미가 타이틀롤인 지영을, 공유가 남편 대현 역을 맡아 활자로 묘사된 인물을 스크린에 부활시켰다.

지영(정유미)은 광고대행사의 촉망받는 사원이었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경력 단절 상태에 놓인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딸은 사랑스럽고, 남편 대현(공유) 역시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지만 지영은 때때로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공허함을 느낀다.

육아와 가사로 인한 피로, 명절 우울증까지 겹친 지영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하기 시작하고, 대현은 그런 아내가 걱정스러워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한다. 이 가운데 전 직장 상사의 제안으로 복직의 기회를 잡지만 처한 환경 때문에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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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作)이 문학적 완성도를 능가하는 사랑을 받은 것은 여성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이 작품에 환호한 독자들은 "김지영의 삶이 내가 지나온 길과 꼭 같진 않더라도 살면서 한 번쯤 겪었던 일이거나 느꼈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해 가슴을 툭하고 건드렸다"고 호평했다. 작가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에 한국 여성들이 사회와 가정에서 겪는 삶의 고충을 투영했다.

영화 또한 비슷한 길을 간다. 소설에 비하면 순화된 설정과 캐릭터로 관객의 수용폭을 넓히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82년생 김지영'이 '김지영의 넋두리'에 그치지 않고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된 데는 '빙의'라는 설정이 큰 역할을 한다. 이는 개인의 목소리만 내는 것이 아닌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요받으며 살고, 사회적 편견과 싸워온 여성 다수의 목소리를 총체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소설이 가진 한계와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며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개개인의 경험 유무에 따라 공감의 정도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영화는 여성의 피해 의식을 극대화하고 대다수의 남성을 가해자 혹은 방관자로 그렸다는 비판을 받은 소설의 아쉬움을 보완하려는 듯 지영의 남편 대현에게도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공유가 연기한 대현은 지영의 아픔과 상실감을 보듬는 존재로 기능한다.

다만 대현의 역할이 커지면서 지영이 처한 환경과 직면한 고민의 절박함이 약해보이는 듯한 착시 효과를 주는 경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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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남성의 육아휴직 문제, 화장실 몰카로 인한 남성 혐오, 맘충이라는 신조어에 담긴 편견 등 몇몇 에피소드들은 현실에서 한 번쯤 겪었거나 혹은 봤을 법한 내용이다.

그러나 몇몇 신들은 비약이 두드러진다. 대한민국이 예상치 못한 이상한 일과 비상식적 인물들이 넘쳐 나는 사회인 것은 맞지만 현실적인 극 전개보다는 영화적 효과에 주안을 둔 것 같은 상황 설정과 연출은 아쉬움이다.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남성들이 존재하고, 편견과 선입견에 갇힌 구세대들도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그런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묘사하고 간단하게 악당으로 만들어버린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빚어지는 여성의 변화를 부정적으로만 그린 점도 아쉽다. 극단적인 현실을 부각하기 위해 각자에게 다르게 수용되고 해석될 수 있는 삶의 어떤 모습을 마냥 불행하고 무가치하게 그린 것은 묘사 자체가 어떤 이들에겐 비애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이 동시대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인지에 대해서는 관객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그러나 소재의 가치적 측면에서 언급하고 싶은 건 여성의 삶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로 그린 여성에 관한 영화라는 점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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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안 겪어봐서 그래"라고 말한다면 대화는 단절되기 십상이다. 경험의 유무로 공감의 여지를 판단하고자 한다면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여자로 태어나서 삶이 힘들다고 한다면, 남성 역시 남자로 태어나서 버거운 순간들이 많다고 할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은 그릇된 인식이 사회와 사람에게 어떻게 자리 잡았고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에피소드의 나열을 통해 보여주고, 성의 다름으로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과 더불어 인식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지영'을 연기한 정유미의 연기는 훌륭하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여성의 삶을 연기하면서도 '김지영'이라는 인물이 가진 캐릭터의 예민함과 연약함을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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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만큼이나 언급하고 싶은 배우는 '지영이 엄마'로 분한 김미경이다. 영화에서 순도 높은 공감의 눈물을 흘렸던 건 '82년생 김지영'의 삶보다는 '50년생 오미숙'의 삶이었다.

남자 형제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고, 결혼해서도 나를 지우고 가사와 육아에 헌신한 오미숙의 삶이야 말로 가공되지 않은 희생의 서사 그 자체다. 김미경의 진정성 넘치는 연기는 남녀, 세대를 막론해 눈물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82년생 김지영'이 작품성, 재미에 대한 평가를 넘어 담론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정도의 담론을 건강하게 소비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