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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왜 안돼요?"...정유미가 15년간 거듭한 질문

최종편집 : 2019-11-06 15:25:24

조회 :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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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생각해보면, 영화 한 편 출연했을 뿐이다.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며, 배우는 연기를 한다. 정유미도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선택에 따른 화제성과 주목도는 여느 작품과 비할 바가 못됐다.

배우와 작품의 만남은 인연이라고들 한다.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필모그래피라는 기록으로 남는다. '82년생 김지영'이 정유미에게 온 것은 인연이다.

정유미는 이 영화를 선택하면서부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 화제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 일례로 개인 SNS가 악플로 도배됐던 일 같은 것이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어떤 작품에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받은 것은 데뷔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완성되고 공개된 날, 정유미는 그 선택에 대해 "용기 낼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정유미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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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년생 김지영', 나를 움직였어요."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뭔가 나를 움직였다"라고 말했다. 영화 '부산행'과 '염력'을 찍었고, 드라마 '라이브'를 막 끝낸 뒤 주어진 시나리오였다.

"작품은 늘 그런 식으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이 이야기를 잘 만들어서 관객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일이잖아요. 소설은 '읽으면서' 느껴지는 바가 있고, 영화는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장르 영화들이 선사하는 매력도 있지만 이건 일상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힘이 큰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던 건 희망적인 결말 때문이기도 했어요. 비관적이었다면 선뜻 손이 가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유미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가족과 친구를 떠올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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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안 했고, 출산과 육아도 안 해봤지만 나를 키워준 엄마, 엄마를 키워준 할머니까지 떠오르더라고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몇 개월 잠깐 연기하면서 얼마나 그들을 안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해 지나쳤던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긴 시간이었어요. 저도 혼자 크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관객에게도 가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그게 직업인 배우인 제가 해야 하는 일이고요. 감사하게도 이 영화가 제게 와주었네요."

원작이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 격으로 추앙되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 브랜딩은 소설보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부분이 크다고 봐요.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관객들도 다양한 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보여주고자 함이 더 컸어요"라고 소신을 밝혔다.

남녀 성 대결이 조장되고 있는 일부 커뮤니티 분위기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아닌 사람도 많다고 생각해요. 그 크기가 인터넷상에 보여지는 게 다는 아닐 거예요. 또 그건 서로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83년생인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과 동시대를 살아왔다. 그렇기에 영화 속 이야기가 더 와닿았을 것이다. 꼭 경험하지 않아도 공유할 수 있는 동시대의 정서라는 게 있다. 정유미가 김지영의 일상을 그렇듯 덤덤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공감과 교감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유미는 "육아를 하고 있을 친구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며 떨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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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의라고 표현하지 않았다"…김지영 내면의 목소리

"사부인, 쉬게 해주고 싶으면 집에 보내주세요. 딸 보니 반가우시죠? 저도 제 딸 보고 싶어요."

많은 관객들의 각성을 불러일으킨 대사다. 김지영의 몸으로 김지영의 어머니의 목소리를 낸 장면이다. '빙의'는 소설과 영화 모두 중요한 설정으로 작용했다. 정유미는 활자로 표현된 장면의 분위기를 연기로 탁월하게 살려냈다. 보는 것이 읽는 것보다 강하다는 것을 배우의 역량으로 보여준 결과였다.

"우리끼리는 그걸 '빙의'라고 표현하지 않았어요. 어린 지영이가 할머니, 외할머니, 언니를 보면서 가졌던 어떤 시선과 감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게 켜켜이 쌓여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뭔지도 모른 상태에서 제 안에 어떤 인물이 말을 하는 거죠. 영화 속 장치지만 그것을 입체화시키고 관객들에게 와 닿게 하는 건 제 몫이었어요. 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가장 중요한 건 감정 전달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부인' 장면이 첫 연기였어요. 중요한 장면인 만큼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저보다 더 긴장하시더라고요. 첫날은 리딩을 했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바로 연기를 했어요. 미리 톤앤 매너를 정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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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다양한 세대의 목소리를 담아내 비단 '82년생 김지영'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여성의 이야기로 확장시키는데 성공했다. 그중 관객 누구나의 눈물샘을 자극한 건 50년생 오미숙이었다. 정유미 역시 '지영이 엄마'를 연기한 김미경과의 호흡이 특별히 좋았다고 회상했다.

"팬이었는데 작품으로는 처음 만났어요. 연기 잘하시는 분이 캐스팅돼 좋았는데 현장에서는 더 좋았어요. 실제로 함께 찍은 장면이 많지는 않았지만 매 신 생각지 못한 리액션으로 저를 놀라게 하셨어요. 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예수정 선배도 너무나 좋아하는 배우인데 특별 출연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할머니 빙의 장면은 톤을 잡기가 어려웠는데 직접 녹음까지 해주셨어요. 상상만 했던 장면을 실제로 이입할 수 있게 도와주신 거죠."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서사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이 완성한 서사기도 하다. 정유미는 김도영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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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연기를 병행하셨던 분이기에 의지를 많이 했어요. 연기 선배님이시기도 하고 김지영의 모든 것들을 실제로 경험해보신 분이다 보니 믿음이 컸죠. 지영이 옷에 묻은 이유식이라던가 아이 도시락 쌀 때의 디테일 등 육아할 때의 자연스러운 패턴 같은 것을 비롯해 부엌에 있는 소품, 손목 아대나 힙 시트 사용법까지 모두 알려주셨어요. 저는 유모차에 브레이크가 있는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영화에서 평이하게 흘러가는 장면이 많은데 그런 장면들조차 살아있는 것처럼 만든 건 감독님이 알려주신 디테일 덕분이었어요. 매번 그런 감독님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어마어마하게 든든했답니다."

정유미는 시나리오에 전적으로 의지하면서도 관객들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가 닿았으면 하는 장면은 촬영 전날 책을 찾아서 기도하듯 읽었다고 했다. 그렇게 경험이라는 빈틈을 하나하나 매워갔다.

'맘충' 에피소드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장면은 영화가 소설보다 훨씬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정유미는 "김지영의 마음속에 있던 말이었을 텐데...그게 영화가 해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속으로만 생각했다면 관객은 지영의 마음속을 온전히 알 수 없을 거에요. 영화적으로 할 수 있는 걸 보여준 동시에 극 안에서 숨통이 트이는 역할을 해주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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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 15년, 편견 깬 선택들이 있었기에…"

영화 속에서 김지영은 결혼과 출산 이후 경력 단절 상태에 놓인다. 일을 하고 싶지만, 육아라는 벽에 부딪혀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 많은 주부들의 공감을 부른 현실적인 에피소드였다.

"경력 단절을 고민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정유미는 "아직은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 적은 없지만 (결혼과 출산 이후라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경력 단절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작품을 못 하거나 하더라도 반대에 부딪힌 적은 많았다"라고 덧붙였다.

"과거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를 했었어요. 김혜수 선배와 드라마를 하고 싶었고, 재밌는 이야기였기에 참여하고 싶었죠. 그런데 주변에서 '주인공을 할 수 있는데 왜 조연을 하냐?'는 시선이 대부분이었어요. 영화 '부산행'을 할 때도 '연애의 발견'으로 로코 이미지를 잘 만들어 놓고 왜 갑자기 임산부 역할을 하느냐? 그런 이미지가 굳어지면 어떡해? 라는 우려가 많았어요. '히말라야' 때도 비중 작은 단역이라 하지 말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때마다 전 '왜요? 왜 하면 안 돼요. 저는 배우고, 좋은 작품에서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게 제 일인데... 그 시간이 매일, 마냥 주어지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했었어요. 결과적으론 모두 다 재밌게 찍은 작품이에요.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제가 된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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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는 2004년 단편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15년간 2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평범과 비범 사이를 넘나들며 리얼리즘 영화와 오락영화 안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발현해냈다. 15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성숙함이 지금의 정유미를 만들었지만 데뷔 초의 순수함에 대한 향수도 있을 것이다. 정유미는 "'어떻게 저렇게 했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때의 연기를 따라 해 본 적도 있어요. 안되더라고요."라고 웃어 보였다.

"얼떨결에 데뷔를 했고 좋은 기회를 많이 얻었어요. 저는 필름으로 영화를 시작했고, 그때만이 주는 분위기나 감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촬영 환경도 많이 달라졌고... 마냥 배우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시간 안에 신을 마무리 해야 하는 시기가 왔고 또 그게 맞아요. 제 역량이 부족할 때는 '이것밖에 안 되나' 싶기도 하지만.... 안될 때는 죽어라 해도 안 되더라고요.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는데 그조차도 이겨내야겠죠. 다행히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님들과 좋은 선배들과 만나 연기를 해왔어요. 또래 친구와 일할 때도 결이 비슷한 친구가 많았어요. 그것이 주는 힘이 컸고, 작품들에도 묻어났다고 생각해요."

정유미에게 배우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세 편의 작품을 꼽아 달라고 했다.

"영화 '사랑니'는 첫 작품이라 너무너무 특별해요. 그리고 드라마 '케세라세라'와 '로맨스가 필요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세 편의 공통점은 제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쓸데없는 편견을 깬 작품들이라는 거에요. 영화로 데뷔를 해서 '내가 드라마를 왜 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어요. '케세라세라'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 여정이 힘들긴 했지만 감독님, 배우들과 재밌게 했어요.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드라마가 너무 재밌더라고요. '로맨스가 필요해'는 당시 tvN이라는 채널이 생소해 주변의 우려가 컸어요. 당시 대작 영화 캐스팅과 맞물려 있어서 결정을 했어야 했어요. '케세라세라'를 통해 TV라는 매체에 대한 편견을 깨지 못했다면 '로필'도 못했겠죠. 상업적인 포지셔닝만 가지고 작품을 선택했다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 그게 연기를 할 때, 뭔가 결정을 할 때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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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었다. 영화 한 편을 둘러싼 이 뜨거운 반응을 지켜보며 정유미는 어떤 것을 느꼈을까.

"처음엔 놀랍고 신기했죠. 그렇지만 (다양한 반응과 의견에 대해) 이해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편견 없이 영화로 잘 다가가길 바라요. 또 영화의 의도와 의미가 왜곡되지 않기를요."

개봉 2주 차, '82년생 김지영'은 관객들에게 다양한 평가를 받으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유미의 바람대로 영화는 어떤 형태로든 관객들의 가슴에 의미 있는 불을 지핀 셈이다.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