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로딩이미지
로딩중

"사랑의 편지를 써달라"…'은막의 여왕' 윤정희를 위하여

최종편집 : 2019-11-11 13:47:13

조회 : 605

>
이미지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2010년 5월, 칸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크로와제트 거리의 뒷골목에서 한 노부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본 적 있다.

어둠이 짙게 내린 늦은 밤이었지만 그 모습은 선명했다. 남편과 아내는 손을 맞잡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동행이란 저런 것이구나' 느꼈던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배우 윤정희, 피아니스트 백건우 부부였다.

앞서 공식 석상에서 만난 윤정희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배우를 비추는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도, 화려한 의상도 아닌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여성 윤정희의 모습이었다.

배우 윤정희가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딸이자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와 함께 나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윤정희의 알츠하이머 투병 사실을 알렸다.

이미지

윤정희의 알츠하이머 증상은 약 10년 전쯤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증상이 심해져 딸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라고.

결혼 후 40년간 세계 각지에서 열린 백건우의 연주회에 동행하며 남편을 내조해왔던 윤정희는 현재 파리 근교에서 요양 중이다.

백건우는 홀로 서울을 찾아 국내 4개 도시 연주회를 준비 중이다. 아내의 빈자리를 누구보다 크게 느낄 그다.

윤정희는 1967년 영화 '청춘극장'로 데뷔해 문희, 남정임과 함께 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여배우였다.

프랑스 파리 유학 중 만난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1976년 결혼한 윤정희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파리에서 살았다.

이미지

2010년 이창동 감독 영화 '시'로 '만무방'(1994) 이후 16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했고, 이 작품은 그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제2의 고향인 프랑스의 대표 영화제에 배우로 초청받은 그 기분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시'는 치매를 앓고 있는 미자가 시의 아름다움에 눈뜨며 삶의 고통과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해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윤정희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본명을 딴 '미자'로 분했다. 칸영화제 초청 당시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펼쳤다. 칸에서 연기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LA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미국 영화계의 인정을 받았다.

이미지

백건우는 사실상 윤정희의 마지막 작품이 된 '시'에 대해 "그렇게 좋은 감독에, 그렇게 좋은 영화로 배우로서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쇼팽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국내에 귀국한 백건우는 내년에는 슈만의 음악을 중심으로 한 연주회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내 클라라를 위한 사랑의 음악을 만들었던 그 슈만이다.

딸 진희 씨는 어머니의 병을 세상에 밝히는 이유에 대해 "엄마는 요즘도 '오늘 촬영은 몇 시야?'라고 물을 정도로 배우로 오래 살았던 사람"이라며 "이 병을 알리면서 엄마가 그 사랑을 다시 확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엄마에게 사랑의 편지를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 지금 엄마에게 그게 정말 필요하다"고 전했다.

약 3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관객들에게 희로애락을 선사했던 윤정희에게 관객들이 보답할 차례다.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