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외유내강 하정우

김지혜 기자 작성 2020.01.09 09:46 수정 2020.01.09 10:20 조회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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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하정우는 '유머를 즐기는 쾌남'인 동시에 '내면이 단단하고 견고한 인물'이다. 또 한 번에 여러 일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고 시작과 끝을 제대로 맺는다. 한마디로 외유내강형 인간이다.

2019년 1월 하정우는 성공 가도를 이어가던 배우 커리어에서 한 차례 실패를 맛봤다. 영화 'PMC:더 벙커'의 부진이었다. 손익분기점이 400만 명에 육박했던 영화는 167만 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흥행 실패뿐만 아니라 관객의 평가 면에서도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신과함께' 시리즈의 연속 천만 흥행 뒤에 온 실패였기에 그 시련은 뼈아프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정우는 흔들림 없이 배우의 삶에 충실했다. 신작 '백두산', '클로젯', '보스턴 1947'의 촬영을 이어갔다. 그리고 약 1년 만에 겨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재난 블록버스터 '백두산'으로 말이다.

백두산

'백두산'은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초유의 재난인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을 막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하정우는 백두산 화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폭발물 처리반(EOD) 대위 조인창으로 분했다.

이 영화가 화제를 모은 것은 '백두산 폭발'이라는 소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캐스팅의 폭발력 때문이었다. 하정우와 이병헌이라는 충무로에서 제일 잘 나가는 두 배우가 동반 출연했다. 영화계 선후배로서 오랜 인연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작품으로 만난 것을 처음이었다.

확연히 다른 매력과 연기 스타일을 자랑하는 두 배우의 만남은 서로에게 시너지로 작용했다. 하정우는 "(이)병헌 형과 오랫동안 많이 봐왔고, 그의 유머 스타일도 알기 때문에 처음 작업을 했지만 새롭진 않았다. 전에 한번 해봤던 것 같은 느낌까지 들더라."면서 "조인창과 리준평은 마주 보고 나가는 게 아니라 한 곳을 바라보고 나아간다. 옆에 서서 같은 시선을 향하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하정우

캐릭터의 개성이 강하고 연기의 폭이 넓게 설계된 리준평에 비해 조인창의 캐릭터는 다소 단선적으로 보인다. 시나리오에 평면적으로 설계된 캐릭터에 하정우는 '유머'라는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는 "리준평이 완벽하고 멋있고 영화적인 캐릭터라면 인창은 다른 한 축을 담당한다. 그것이 조화를 잘 이루면 영화가 풍성하고 재밌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병헌 형이 캐스팅되기를 바랐다. 둘의 앙상블이 조화로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부분을 극대화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블록버스터의 흥행 공식이 다소 뻔하게 전개된다는 지적도 나온 '백두산'에서 하정우가 매력으로 생각한 것은 재난에 맞닥뜨리는 인물들의 대처 방식이었다. 하정우는 "스토리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지만 스토리 안에서 캐릭터들이 새롭게 표현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그걸 잘 디자인 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촬영 때는 유머를 많이 살렸다. 처음엔 두 캐릭터 모두 좀 진지하고 단선적이었다"라고 밝혔다.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가 빛난 시퀀스는 단연 장갑차 장면이다. 하정우는 "따로 찍었다"고 밝혔다. 이어 "병헌이 형이 찍은 분량을 먼저 영상으로 봤다. '시나리오보다 MSG를 많이 쳤네? 그럼 나도 많이 쳐야지' 했다. 전기 충격기 신부터 같이 찍었는데 재밌었다."라고 전했다.

하정우

"두 사람의 유머감각 중 누구의 유머가 대중적인 것 같으냐"는 다소 짓궂은 물음에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병헌이 형이 좀 더 대중적이지 않나 싶다. 저는 좀 비대중적? 마니아적이다. 뭐가 더 좋고 나쁘고는 아닌 것 같다. 난 마이너? 독립 개그 스타일"이라고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해 답변했다.

하정우는 현장에서 이병헌의 열정에 큰 동기 부여를 받았다고 했다. 오죽하면 그를 '연기 머신'이라고 표현했을까.

"테이크마다 똑같은 열정으로 연기한다. 심지어 힘도 세다. '형 20대 같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농담으로 열정까지 계산된 게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성실하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1등의 자리를 지켜온 게 아닌가 싶다. 배울 점이 많은 형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뭐 하나 그냥 지나가는 게 없다. 배우들은 보통 자기 뒷모습이 나오면 힘을 빼는 병헌이 형은 그런 것도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연기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연기 머신 버즈', '연기봇', '연기 알파고' 스타일이다."

'백두산'은 하정우가 제작에도 참여한 작품이다. 하정우와 김영훈 대표, 강명찬 대표가 이끄는 퍼펙트스톰필름은 창립작 '싱글라이더'를 시작으로 'PMC:더 벙커'를 만들었다. '백두산'은 김용화 감독의 덱스터필름과 공동 제작한 영화로 제작비만 260억 원이 투입된 대작 프로젝트였다.

하정우

"중·저예산 영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요즘은 그런 영화를 만나기가 어렵다. 독립영화에서 조금만 잘 찍는다 싶으면 상업 영화로 스카웃해 와 시스템 안에 넣어버린다. 윤종빈 감독처럼 독립영화로 시작해 상업영화계에서 단계적으로 성장한 감독을 만나기 어려운 구조다. 그래서 제작사를 만든 것도 있다. 창립작인 '싱글라이더'는 저예산에 가까운 영화였고, 개봉을 앞둔 '클로젯'은 중간 사이즈 규모다. 또 하나 기획 중인 영화도 그 정도 규모가 될 것 같다."

하정우의 2020년 타임라인도 꽉 차있다. 두 편의 영화 '보스턴 1947', '피랍'과 한 편의 드라마 '수리남'의 촬영이 예정돼있다. 흥미로운 건 세 작품 모두 해외 촬영이 있다는 것.

국내 촬영을 모두 마친 '보스턴'은 호주 촬영을 앞두고 있고, '피랍'은 모로코 올 로케이션, '수리남'은 도미니카 로케이션이 기다리고 있다. 해외의 낯선 공간을 안방처럼 누빌 하정우의 모습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금은 강제규 감독의 영화 '보스턴'을 찍고 있다. 한국 촬영은 모두 끝났고 호주 촬영 만을 남겨두고 있다. 차기작은 '터널'을 함께 했던 김성훈 감독의 신작 '피랍'이다. 이 영화는 모로코에서 약 4개월 정도 촬영을 할 예정이다. 그다음 작품은 윤종빈 감독의 드라마 '수리남'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스케줄이다. 2020년에는 장기간 해외에 머물 예정이라 불편함도 꽤 있을 것 같다. 모로코는 위험해서 잘 걷지도 못한다고 하고, 도미니카는 날씨는 좋은데 물이 안 좋아서 배탈이 잦다고 하던데 걱정이다. 하하."

하정우

하정우는 자신의 책에서 '시련이 올 때 성장하는 것 같다'는 말을 쓴 적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물론 그때 당시는 고통스럽고 힘들다. 그런데 그런 시기를 겪고 나면 고행 속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것 깨닫게 되더라. 작년 'PMC' 성적은 다소 아쉬웠다. 그러나 그 안에서 충분히 깨달은 바가 있었다. 당시는 속상했는데 지나고 보니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았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쌓이는 경력만큼이나 사회적 책임감도 커질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무엇보다 나잇값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서 후배들, 스태프들에게 '선배'라는 말을 듣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병헌이 형을 비롯한 여러 형들도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활약하고 있어 든든하다"라고 웃어 보였다.

새해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한참을 고심한 뒤 "올해는 종교 활동을 많이 못했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하정우는 작품을 고르는 탁월한 안목과 신뢰를 주는 연기력, 대중적 매력을 바탕으로 지난 10년 간 한국 관객이 가장 사랑한 배우 1위에 올랐다. 누적 관객 수는 1억 1,400만 명을 넘어섰다. 최신작인 '백두산'도 손익분기점(73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이런 기쁜 소식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국내 촬영을 모두 마친 영화 '보스턴 1947'의 해외 촬영을 소화하기 위해서다. 이런 숨 가쁜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2020년에 만날 그의 신작들도 신뢰의 결과물이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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