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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사마에게', 카메라의 역할

기사 출고 : 2020-01-29 19:16:47

조회 : 512

사마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2015년 9월, 언론에 공개된 사진 한 장은 전 세계의 시선을 모았다.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3살 배기 아이 사진이었다. 아이는 시리아 출신의 쿠르디로 가족들과 난민 보트에 올랐다가 익사했다. 이 사진은 난민의 참상을 보여줬으며 동시에 시리아 내전에 대한 심각성을 환기시켰다.

때론 수백 마디의 말과 수 천 자의 글보다 사진 한 장의 힘이 강력하다. 카메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저장할 수 있는 가장 투명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감독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를 보며 카메라의 역할과 힘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됐다.

'사마에게'는 저널리스트 와드가 미디어가 절대 보도하지 않았던 알레포의 현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와드는 대학생 때부터 시작해 한 남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고 시리아 내전의 과거와 현재를 담았다.

폭탄이 떨어지는 생과 사의 현장에서 그녀는 왜 카메라를 들었을까. 와드는 말한다.

"이 모든 건 사마, 너를 위해서야."

사마

◆ 아이 안은 엄마, 폭격 현장을 카메라에 담다

2012년,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 대학의 학생이었던 와드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저항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후 독재정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부군과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반군의 대립은 심화되고 이 문제에 러시아와 미국까지 개입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시리아 내전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교 갈등 양상으로까지 번지며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와드는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의대를 졸업한 함자는 총탄과 폭격에 쓰러진 반군과 민간인들을 치료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간다. 뜻이 통하는 동료 사이였던 와드와 함자는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둘은 아이에게 아랍어로 '하늘'을 뜻하는 '사마'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딸에게 화약 연기로 잿빛이 된 하늘이 아닌 푸른 하늘을 선사해주고픈 열망을 담았다.

사마

알레포는 시리아 반군의 주요 거점 지역이었다. 정부군은 알레포의 병원을 폭격하기 시작한다. 의료시설과 구호시설을 파괴해 반군의 저항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겠다는 의도다.

와드와 함자 부부가 병원을 비운 사이 벌어진 폭격으로 동료 의사를 잃기도 한다. 자욱한 연기로 휩싸인 병원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상태. 이 와중에도 와드는 카메라를 든다. 생과 사가 넘나드는 일촉즉발의 현장에서 여성이자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기록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마

◆ "이것은 현실"…연출되지 않은 공포

지난해 개봉한 '가버나움'은 레바논 난민들을 캐스팅해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극영화였다. '사마에게'는 사실의 기록과 저장이 주요 형식이 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와드의 카메라에는 연출이 없다. 자신이 보고 경험한 모든 것을 담아냈다. 이 영화의 소재는 내전이며, 줄거리는 생과 사의 기로에 선 알레포 시민들의 사투라고 볼 수 있다. 주요한 사운드는 폭격으로 인한 굉음과 민간인들의 비명, 울음소리 등이다.

카메라가 담은 현장은 그 자체로 공포감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우리는 잘 연출된 전쟁영화를 볼 때 "관객을 전쟁터에 데려다 놓은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수사조차도 필요 없다. 관객은 와드의 카메라를 통해 진짜 전쟁을 경험하게 된다.

그 목적과 의도는 명확하다.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알리는 것. 때문에 와드의 카메라는 거침없이 침투한다. 폭격으로 건물이 흔들리는 순간도,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민간인의 모습도 빠짐없이 담는다. 의도가 명확히 보이는 앵글도 등장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은 미소를 짓는 사마와 차가운 주검이 된 어린아이를 대비해 비춘다. 두 아이는 반대의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으며, 그 공포는 계속해서 도사리고 있음을 말한다.

사마

전쟁이 일상인 사람들에게도 삶은 계속된다. 와드와 함자가 전쟁통에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듯 알레포의 시민들은 공포와 위기 속에서도 일상을 영위해나간다. 카메라는 그 짧은 순간도 빠짐없이 담았다.

병원에서 몸을 피하고 있는 와드의 친구는 전쟁이 일상이 된 현실에 대해 '일일 폭격 드라마'라고 표현한 뒤 "정부가 전 세계의 온갖 폭탄을 종류별로 캐스팅했다"라고 웃기도 한다. 그렇게 애써 히히덕거리며 현실의 비극을 잊다가도 불시에 터진 폭탄에 다시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리는 모습을 통해 전쟁이란 어떻게 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인류 최악의 비극임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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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려야 하기에"…진실을 외면한 언론

영화를 보면서 '왜 사마를 그 위험한 곳에 뒀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와드와 함자의 신념은 이해할 수 있다 해도 갓난아기를 폭격의 현장에서 키우는 것이 부모로서 올바른 선택이었을까에 대한 비판의 여지는 있다. 부상자들의 얼굴과 신체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방비로 노출된다. 누구는 원하고, 누구는 원치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촬영의 방식과 방법론을 지적하는 것보다 선행돼야 하는 것은 이런 위험한 선택들을 해야만 했던 이유다. 와드에게 카메라는 SOS 신호이며, 고발의 수단이었다.

와드는 총탄과 폭격의 한가운데에서도 영상을 기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사마 때문이라고 한다. 이 모든 기록은 나의 아이를 위한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의미일 게다. 다음 세대에게 억압과 공포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과 노력이었다.

사마에게

그도 그럴 것이 시리아의 언론과 방송은 내전과 관련된 보도를 외면했다. 와드가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것도 내전의 참상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영화는 알레포를 떠나는 와드 가족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와드 가족은 터키로 피신했으며, 현재는 영국에 거주 중이다. 어쩌면 이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시리아 내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수많은 시리아인이 죽음의 공포를 피해 난민 보트에 몸을 싣고 있다.

와드는 5년 간 500시간이 넘게 기록한 영상을 편집해 영화 '사마에게'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됐으며,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와드와 함자 부부는 레드카펫에 올라 'Stop bombing the hospital'(병원 폭격을 중지하라)라는 피켓을 들었다. 나라를 떠난 그들은 지금도 시리아를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카메라의 역할, 목소리의 역할은 유효하다.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