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기생충'의 기록적인 오스카 레이스

김지혜 기자 작성 2020.02.10 08:19 수정 2020.02.10 10:24 조회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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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엉겁결에 강제 등판된 투수처럼 (오스카) 캠페인의 파도에 휩쓸려 들어간 느낌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 1월 6일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후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시상식에서 수상에 성공하며 오스카 레이스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한국 영화가 아시아나 유럽 무대가 아닌 미국 영화 시장에서 이처럼 뜨거운 반응을 얻을 줄 누가 예상했을까.

'기생충'은 한국 시간으로 오늘(10일) 9시부터 생중계되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6개 부문에 후보 지명돼 한국 영화 최초로 수상에 도전한다.

봉준호 감독은 "강제 등판된 투수"라는 재밌는 표현을 써가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기분을 설명했지만 '기생충'의 오스카 레이스는 이제 우연이 아닌 필연처럼 여겨진다. 칸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첫 선을 보인 직후, '기생충'의 운명은 어느 정도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택(송강호)은 아들 기우(최우식)가 박사장(이선균)네 가정교사로 들어간 후 가족 구성원을 모두 위장 취업시키려 하자 아들의 체계적이고 영리한 전략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유럽을 넘어 미국 영화 시상식 중심에 우뚝 선 '기생충'의 활약을 보니 이 대사는 지금의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는 말처럼 여겨진다.

봉준호

◆ '기생충', 칸에서 쏘아 올린 최초의 역사

'기생충'의 최초의 역사는 지난해 5월 열린 제77회 칸 국제영화제로부터 시작됐다. 영화는 2019년 5월 21일(현지시간) 오후 10시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최초 상영'이 전제돼야 한다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의 요건에 맞춰 국내가 아닌 유럽 무대에서 먼저 공개됐다.

영화제 후반부에 공개된 '기생충'은 평단의 압도적인 호평을 받으며 수상 가능성을 높였다. 영화제 중반까지는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 프랑스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파전 양상이었지만 '기생충'의 등장과 함께 황금종려상 향방은 바뀌기 시작했다.

칸영화제

혹시나는 역시나가 됐다. '기생충'은 '버드맨', '레버넌트'를 만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이끈 9인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 100년 역사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임권택도, 박찬욱도, 이창동 감독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저는 그냥 12살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며 "이 트로피를 이렇게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감사하다"는 담백한 수상 소감을 남겼다.

봉준호

◆ 황금종려상에 더해진 천만 흥행의 기쁨

칸영화제에서의 낭보는 '기생충'의 홍보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국내 관객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꼽는 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인에게 자부심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게다가 외신의 호평일색의 반응도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올렸다.

'기생충'은 지난해 5월 30일 국내에 개봉해 53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괴물'(2006)에 이은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천만 영화였다. '기생충'의 흥행은 1년에 한, 두 편씩 탄생하는 여느 천만 영화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기생충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예술 영화들이 모여 자웅을 가리는 칸영화제는 국내 관객들에겐 다소 멀게만 느껴지는 영화제였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의 천만 관객 돌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봉준호의 작품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역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중에서도 자국 흥행 수익은 압도적으로 높았다. '기생충'의 국내 매출액은 850억 원에 달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감독이 최고의 영예로 느끼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자국 관객의 뜨거운 사랑과 지지까지 확인한 셈이다.

봉준호

◆ 북미 개봉→수상 레이스→종착지는 오스카

유럽 최고의 영화제로 불리는 칸영화제를 제패한 '기생충'은 미국 최고의 시상식인 아카데미를 향해 진격했다. 북미 배급사는 창립 4년 차의 네온(Neon). 신생 회사지만 공격적인 투자와 마케팅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 요건은 전년도 1월 1일부터 12월 31일 사이 LA 극장에 1주일 이상 연속 상영된 70mm 및 35mm의 미국 및 외국 장∙단편 영화. '기생충'은 지난해 10월 11일 미국에서 개봉했다. 오스카 캠페인이 시작되는 최적의 시기였다.

네온은 소규모 관에서 개봉을 한 후 극장과 관객의 반응에 따라 상영관을 늘려가는 플랫폼 방식으로 '기생충'의 북미 개봉을 추진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효과에 북미 평단의 압도적인 호평을 등에 업은 '기생충'은 외국어 영화 관람을 선호하지 않는 미국 관객의 마음도 허물었다. 무엇보다 양극화 문제를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에 매료됐다.

LA와 뉴욕의 3개 극장에서 선개봉한 영화는 2주 차부터 스크린을 두 자릿수로 늘렸고, 11월 첫째 주부터는 600개를 넘어섰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둔 2월 첫째 주, '기생충'의 북미 스크린 수는 1,060개까지 늘어났다.

'기생충'의 월드와이드 수익(박스오피스 모조 기준)은 1억 6,145만 달러(약 1,926억 원)다. 한국 역대 최고 흥행 영화 '명량'(1억 3,834만 달러)을 넘어선 기록이다. 북미 누적 수입은 총 3,322만(약 396억 원) 달러. 이는 '디 워'(2007)가 갖고 있던 한국 영화 북미 최고 수입 기록(1,097만 달러)을 크게 넘어선 신기록이다. 미국에서 개봉한 비영어 영화로는 역대 6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게다가 이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다. 오스카 트로피를 획득한다면 북미에서 또 한 번의 흥행 몰이가 예상된다.

오스카

◆ '기생충' 오스카 트로피를 향한 홍보전쟁

아카데미 시상식은 전년도 미국에서 개봉한 최고의 영화에 트로피를 안긴다. 그러나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트로피를 품에 안는 것도 아니다. '캠페인'이라는 단어가 오스카에 붙는 것은 작품을 알리는 홍보전이 선거 못지않게 치열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 수는 전 세계 총 8천 여 명에 이른다. 이들에게 영화를 알리는 과정에는 막대한 홍보비가 투입된다.

오스카

지난해 가장 뛰어난 영화 중 하나로 꼽혔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오스카 캠페인에 1,200억 원을 썼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는 영화 제작비(약 180억 원)의 6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모두가 넷플릭스처럼 과도한 홍보비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오스카 캠페인'에 나서는 영화들은 작게는 수 십억, 많게는 수 백억을 쓴다.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을 지원하는 네온과 CJ E&M 역시 100억 원 이상의 홍보비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전도 오스카 트로피를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이 지난한 과정을 모두 거친 '기생충'은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외국어영화상,) 편집상, 미술상까지 총 6개 부문의 수상에 도전하는 '기생충'은 과연 몇 개의 트로피를 품에 안을까. 올해만큼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남의 나라 축제가 아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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