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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Y] CJ 이미경 소감은 계획된 것?…곽신애 대표, 갑론을박에 입열다

기사 출고 : 2020-02-12 16: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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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아카데미 게티이미지코리아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바른손 E&A의 곽신애 대표가 논란이 된 CJ 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에 대해 말했다.

1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곽신애 대표는 여독을 풀기도 전에 SNS에 관련 글을 적었다.

곽 대표는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수상 소감 당시 상황에 대해 "혹시라도 작품상을 받으면 제 다음 순서로 이미경 부회장님 소감을 듣기로 우리 팀끼리 사전에 정해뒀다"면서 "생방송이고 마지막 순서라 언제 커트될지 모른다고 들어서 저는 일부러 소감을 최소 길이로 준비해 빨리하고, 순서를 넘겨드렸다"고 전했다.

앞서 세 번의 수상을 통해 세 차례나 소감을 밝힌 봉준호 감독과 곽신애 대표의 배려로 이미경 부회장에게 마이크가 갔음을 추측할 수 있는 말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팀의 영화 같은 순간으로 마무리됐다.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에 이어 시상식의 대미인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한국 영화 역사는 물론 아카데미 92년 역사를 새롭게 썼다.

시상식 가장 마지막에 발표되는 작품상 시상 무대에서는 곽신애 대표가 수상 소감을 먼저 밝혔다. 뒤이어 감독이자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봉준호 감독이 수상 소감을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CJ 그룹 이미경 부회장이었다.

기생충 아카데미 게티이미지코리아

허민회 CJ ENM대표의 부축을 받아 무대 중앙으로 나온 이 부회장은 영어로 "난 봉준호의 모든 것이 좋다. 그의 웃음, 독특한 머리스타일, 걸음걸이와 패션 모두 좋다"면서 "그가 연출하는 모든 것들, 그중에서도 특히 그의 유머 감각을 좋아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기생충'을 후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신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면서 "그리고 내 남동생(이재현 CJ 그룹 회장)에게도 감사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이미경 부회장은 "한국 영화를 봐주신 모든 관객 분께도 감사드린다. 여러분의 의견 덕분에 우리가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고, 계속해서 감독과 창작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하며 긴 수상 소감을 마무리했다.

영화계에서는 모두가 다 아는 인사지만 대중적으로는 얼굴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이 부회장의 등장은 중계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더욱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제작자(곽신애, 봉준호) 명단에도 미키 리(이미경 부회장의 영문명)라는 이름은 없었다.

기생충

시상식이 끝난 이후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이 이뤄진 동시에 수상 소감 자격 논란이 일기도 했다. 투자사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이미경 회장이 제작자에게 수여하는 작품상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을 자격이 되느냐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팩트 체크를 해보자면, 아카데미 작품상은 영화의 제작자에게 수여하는 상이 맞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은 '그린북'의 제작사 드릭웍스 픽처스의 짐 버크와 브라이언 헤이스 커리, 피터 패럴리(감독)가 받았고 무대에 올랐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은 '셰이프 오브 워터'(더블 데어 유 프로덕션, SG엔터테인먼트가 공동제작)였으며 기예르모 델 토로(감독), J. 마일스 데일이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고, 소감을 말했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경우도 '문라이트'의 제작사 A24의 아델 로만스키와 데드 가드너, 베리 젠킨스(감독)가 트로피를 받았고, 마이크를 잡았다. 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플랜B도 제작에 참여했지만 그는 무대 전면에 나서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아카데미 시상식을 수십 차례 봐왔지만 투자배급사 고위 관계자가 작품상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는 모습은 처음 보다시피 한 풍경이었다.

'기생충'의 제작사는 바른손 E&A이며, 바른손을 이끄는 건 곽신애 대표다. 여기에 봉준호 감독이 제작에 직접 관여해 제작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두 사람만 작품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미경 부회장은 '기생충'의 책임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자격으로 칸영화제와 미국 오스카 캠페인에 참여했다. 이 자격이라면 수상 소감을 해도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미경 부회장이 투자의 주체일지는 몰라도 영화 제작의 전문가로서 작품의 만듦새에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책임프로듀서라는 타이틀은 주로 방송계에서 쓰는 직함으로 영화계에서는 다소 낯설게 여겨지기도 한다.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팀이 모두 인정하는 공신인 것은 맞다.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의 관례까지 깨 가면서 마이크를 잡았어야 했나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일리가 있다. 이미경 부회장의 공로는 시상식이 끝난 후 인정받았어도 늦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투자자가 시상식의 대미를 장식한 풍경은 한국 영화계의 단면을 보여준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기업인 CJ 계열이 영화 투자와 배급, 극장까지 장악하고 있는 현실과 영화라는 대중 예술도 자본의 토양 아래에서 싹 튼다는 있다는 현실을 재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는 빈자와 부자의 대비를 통해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자본주의 폐해를 조명한 '기생충'의 이야기와 대치되는 풍경이기도 했다.

한국 영화는 오랫동안 크레딧에 메인 배급사와 투자사의 이름을 가장 먼저 올려왔다. 창작자를 앞세우는 해외 영화계와는 다른 충무로에만 있는 이상한 관행이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감독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졌고, '군함도'의 경우 투자사 크레딧을 뒤로 빼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그러나 지금도 대부분의 영화는 메인 배급사와 투자사의 이름을 최상단에 올린다.

기생충

이미경 부회장은 1995년부터 사실상 CJ 엔터테인먼트의 영화 사업을 이끌며 320편의 한국 영화에 투자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박찬욱, 봉준호 등이 세계적인 감독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한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CJ는 CGV 강변을 시작으로 멀티플렉스 극장 시대도 열어 관람 환경 선진화를 주도했다. 명도 있었지만 암도 있었다.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논란이 일 때마다 CJ ENM은 공격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tvN SNL의 '여의도 텔레토비',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 투자배급 등으로 박근혜 정권의 눈밖에 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야인의 길을 걸었다는 이미경 부회장의 사연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통한 화려한 복귀로 반전을 이뤄냈다.

이처럼 '기생충'이 만들어낸 한국 영화의 새 역사, 아카데미 시상식 새 역사의 순간엔 참으로 많은 사연이 담겨있었다.

ebada@sbs.co.kr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기생충'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