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짧은 분량, 묻힐까 두려웠지만…'스토브리그' 조한선, 아니 임동규

강선애 기자 작성 2020.02.19 18:12 수정 2020.02.19 18:28 조회 2,360
기사 인쇄하기
조한선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이거 하나 드세요. 내일이 밸런타인데이잖아요."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잡은 배우 조한선은 기자들에게 직접 준비해 온 작은 초콜릿을 건넸다. 자신을 트레이드시킨다며 단장의 차를 때려 부수고, 막말을 퍼붓던 임동규의 거친 모습을 조한선의 부드러운 미소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제야 스치고 지나갔다. 아, 조한선이 '늑대의 유혹' 반해원이었지.

조한선의 데뷔 초는 화려했다. 스타 등용문이라는 시트콤 '논스톱3'로 얼굴을 알렸고, 당시 가장 핫한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한 '늑대의 유혹'에 배우 강동원과 함께 출연하며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데뷔 초와 달리, 조한선의 배우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꾸준히 작품을 선보여왔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지 못했다. 조한선의 배우로서 존재감은 그렇게 서서히 약해져 갔다.

그러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극본 이신화, 연출 정동윤)를 만났다. 프로야구 꼴찌팀 드림즈의 4번 타자 임동규 역. 단 2회 만에 트레이드로 타구단으로 가는 캐릭터라 분량은 적었지만, 조한선은 그 짧은 출연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극찬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후에 다시 드림즈에 돌아와 '야구에 미친' 임동규 캐릭터의 서사까지 설득력 있게 그려낸 조한선은 비로소 임동규를 자신의 '인생 캐릭터'로 완성시켰다.

2001년 데뷔해 어느덧 20년이나 흘렀다. 그 사이 조한선은 결혼해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성실히 작품에 출연해 온 조한선이지만, 우리는 정작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반갑다. '스토브리그'의 성공이, 임동규에 대한 호감이 배우 조한선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욕심을 버리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본다는, 그 당연한 진리가 맞는 거 같아서.

조한선

▲ 2회 출연 후 긴 공백, 그럼에도 출연 결심한 이유

"얼떨떨해요. 드라마 끝나고 이렇게 많은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는 건 10여 년 만이에요. 처음 이 역할이 들어왔을 때, 2회까지만 나오는 역할이고 백단장과 유일하게 무력으로 대립할 수 있는 인물이라, 어떻게 임팩트를 줄 수 있을까, 어떻게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만 고민했어요.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을 줄 몰랐어요."

조한선은 '스토브리그' 초반 2회분에 나오고, 이후 다시 드라마에 등장하긴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른 채로 촬영을 시작했다. 보통 배우는 작품에 자신의 캐릭터가 불확실하게 그려지는 걸 굉장히 꺼려한다. 게다가 조한선은 전작들에서 짧은 출연을 경험해본 터라, 그 두려움을 더 잘 알고 있었다.

"드라마 '가면'에 특별출연했었고, '빙의'에서도 4회까지 나오고 안 나왔어요. 묻히는 건 순식간이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스토브리그' 2회까지 노력하고 인상 깊게 연기해도, 그 이후 안 나오면 잊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죠. 또 스포츠 드라마는 잘 되기 힘들다는 통념도 있었고요. 그래서 처음 '스토브리그' 대본을 볼 때 약간 선입견을 가졌던 거 같아요."

하지만 '스토브리그' 대본은 달랐다. 스포츠 드라마로 보이지만, 한 팀을 만들기 위해 뒤에서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오피스 드라마의 장점을 녹여냈다는 점, 때론 자극적이지만 그걸 사이다 전개로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는 점이 조한선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임동규의 다음이 궁금했다.

"대본을 읽고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아 감독님, 작가님과 바로 미팅을 추진했어요. 미팅을 한 후에는 더 큰 믿음이 생겼죠. 이 정도의 캐릭터라면,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달려들었죠. 전 주연, 조연에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요. 분량이 적든 많든, 역할이 좋으면 해야죠. 임동규는 제가 끌고 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캐릭터였어요. 2회까지 분량으로 어떻게 하면 제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임동규를 각인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그게 '특별출연'으로 여겨진다 한들, 그건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조한선

▲ 야구선수 임동규가 되기까지

야구선수, 그것도 '4번타자'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프로선수를 연기하는 건 쉽지 않았다. 조한선은 "어떤 드라마든 준비할 때 힘들지만, 이번 작품은 정신적인 거에 육체적인 거까지 더해져 특히 힘들고 괴로웠다"라고 말했다.

"타석에 들어섰을 때의 제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보는 사람도 부자연스럽게 볼 거라 생각했어요. 공을 치는 건 둘째고, 일단 자세가 중요하다고 여겼죠. 그래서 루틴과 스윙 동작을 신경 써서 연습했어요. 야구선수들의 영상을 계속 돌려봤고, 하루 2시간씩 실내연습장에 가서 코치님과 상의하며, 그렇게 임동규의 타격 루틴과 스윙 자세가 탄생했죠. 기존에는 야구에 대해 배워본 적도, 해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배트를 잡고 허리를 돌리는 게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배트 잡은 손에 멍도 들었고요. 힘든데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조한선은 실제 프로야구 선수의 도움도 있었다고 밝혔다. 한화이글스의 김태균이다.

"해외 선수들 중에는 LA다저스의 벨린저 영상을 주로 봤어요. 키가 큰데 말랐고, 밀어 치는 선수들 위주로 공부 많이 했죠. 국내 선수 중에는 한화 김태균 선수를 개인적으로 아는데, 제가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어요. 김태균 선수가 자기 타격폼을 슬로모션 영상으로 찍어 보내줘 그걸 참고하기도 했고요. 드라마 찍으며 도움을 많이 받은 선수죠."

조한선은 학창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한 '운동부 출신'이다. 비록 '스토브리그'가 야구 이야기를 다루지만, 과거 운동을 했던 경험자로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연기에 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운동선수라면 승부욕, 집요함이 없을 수가 없어요. 그런 걸 품었을 때의 기억들이 많이 생각났죠. 과거 운동할 때 느꼈던 선후배 사이의 규율,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의 어려움, 때론 위축됐고 때론 풋풋했던 그런 기억들을 떠올렸어요. 확실히 그 경험이 연기하는데 많이 도움이 됐죠. 축구선수가 야구를 했지만요.(웃음)"

조한선

▲ "저희 선수들은".. 임동규에 과몰입한 조한선

"지금도 제가 야구선수 같다"는 조한선은 진짜 임동규가 된 듯했다. 인터뷰 내내 "저희 선수들은", "저희 단장님은" 이런 단어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왔고, 임동규가 처한 상황에서 느꼈을 감정들을 정말 자신의 일처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10화 이후 임동규가 재등장해서 서사가 풀어지며, 왜 임동규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가 나와요. 약물을 하지 않았지만 그 일로 강두기(하도권 분)와 오해가 생기고, 팀에 1순위 픽으로 들어온 강두기와 꼴찌로 들어온 자신에게 달랐던 주변의 대우, 내미는 손 하나 없이 그 속에서 혼자 '연습만이 살 길' 이라며 손에 물집이 잡히면서 연습해 여기까지 올라온 게 임동규예요. 임동규는 정말 야구에 미친놈이고, 힘들 때 자신을 믿어준 팬들 때문에 야구를 한 거죠. 그런 임동규라면,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에게는 따뜻하게 대하지만,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는 배로 돌려주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중 하나가 백승수(남궁민 분) 단장인 거고요."

백단장은 임동규를 드림즈에서 바이킹스 구단으로 트레이드시켰고, 그렇게 떠난 임동규는 독기를 품고 연습에만 매진했다. 조한선은 그 마음이 이해가 돼, 자신 역시 독기를 품고 돌아올 것을 대비해 준비했다고 한다. 재등장의 임팩트를 위해 자처해서 머리스타일도 짧게 변화를 줬다.

"중간 공백기 동안 칼을 갈았어요. 드림즈 안에서 '임동규 왕국'을 세우고 있었는데, 백승수가 와서 트레이드를 시켰을 때의 감정은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 싶었죠. 감정적으로는 그런 임동규의 독기를 표현하고자 했고, 시간이 흘러 돌아올 때는 외형적으로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머리를 잘랐어요. 공백기 동안 이 캐릭터를 놓을 수 없었던 게, 야구시합 장면으로 재등장한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쉬는 동안 야구 연습을 게을리할 수가 없었죠. 시청자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보면서도, 연습을 계속했어요. 다시 등장했을 때, 임동규가 얼마나 독기를 품었는지, 얼마나 벼려왔는지, 그게 잘 표현됐으면 했어요."

조한선은 선수 역할을 소화한 하도권, 차엽, 홍기준 등의 배우들과는 진짜 한 팀의 동료처럼 끈끈한 우애를 다졌다. 그 안에서는 '조한선'이란 본명보다 '임동규'라는 캐릭터 이름으로 불리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런 팀워크 덕에 임동규가 다시 드림즈에 돌아왔을 때 선수들이 모여 "동규동규 임동규"를 외치며 춤추는 애드리브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저희는 진짜 가족이에요. 실제 선수들이 장난치고 놀 듯 서로를 대해요. 그런 분위기가 연기할 때 도움이 많이 됐죠. 임동규가 돌아왔을 때 선수들이 '동규동규 임동규'를 부르며 환영해준 장면은 원래 대본에 없었던 거예요. 11년 동안 드림즈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임동규가 돌아온다면, 임동규의 개구쟁이 같은 면을 아는 동료들이라면, '우리 식구'를 그렇게 재밌게 환영하지 않을까 해서 재밌게 짜 본 장면이죠. 포수 서영주 역할을 했던 차엽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 친구가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였죠. 저희 선수들은 '스토브리그' 포상 휴가도 '전지훈련 간다'고 생각해요. 글러브랑 야구공 가져가서 같이 캐치볼 하며 연습할 계획이에요.(웃음)"

조한선

▲ #인기 #연기, 그리고 #가족

'스토브리그'를 통해 오랜만에 뜨거운 인기의 중심에 선 조한선은 "뭘 보여주려고 안 해서 그런 거 같다"며 겸손해했다. 많은 걸 보여주고자 하는 욕심은 과하고 부자연스러운 연기로 이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조한선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내려놓는 법을 터득했다.

"'날 보여줘야 해'라는 생각보다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걸 넘치지 않게만 보여주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시청자 반응이 좋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전에는 작품에서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죠. 배우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처음에는 가질 거예요. 근데 이제는 안 그러죠. 너무 잘나고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많은데, 그 속에서 제가 돋보이기에는 역부족이란 걸 잘 알아요. 제가 변하지 않으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어떤 작품에 들어가든 날 보여주려 하기보다는 캐릭터 준비만 잘하자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어요."

조한선이 연기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진 결정적 계기는 결혼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며 '책임감'이 생기니 연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결혼하고 나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거 같아요. 책임감이 많이 생겼죠. 두 아이의 아빠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더 이상 제가 기존에 했던 방식대로 연기에 접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연기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됐죠. 지난 20년, 모든 게 저로 시작해서 제가 만들어 온 거예요. 제가 잘했으면, 작품 선택이든, 연기든, 더 좋은 길을 갈 수 있었겠죠. 솔직히 과거에는 연기에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했던 면이 있어요. 그래서 그때로 돌아가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나이를 먹어가며 배우는 게 조금 달라요. 예전에는 머리로만 배우려고 했는데, 지금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에요. 이게 맞는 거 같아요."

'스토브리그'를 무사히 마친 조한선은 조만간 단편영화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생각보다 소박한 행보를 선택한 이유는 그 단편영화에서 맡을 캐릭터를 "너무 연기해보고 싶어서"다.

"저라는 배우를 생각하면, 크게 알려진 작품이나 캐릭터가 없어 '뚜렷한 색깔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스토브리그'를 통해 저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걸, 이런 색깔도 낼 수 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이번 작품은 저한테도 큰 공부였고, 도전이었어요. 앞으로 더 공부하기 위한 밑거름이 된 작품이죠. 3월에 단편영화 촬영에 들어가요. 보편적인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인데, 제가 너무 해보고 싶은 역할이라 하게 됐어요. 임동규와는 다른 캐릭터, 그걸 새롭게 풀어내는 방식을 공부해보고 싶어요."

[사진제공=SBS '스토브리그']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