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로딩이미지
로딩중

[스브수다] 영탁의 맛있는 트로트

작성 : 2020-04-10 16:03:19

조회 : 6132

영탁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가수 영탁의 노래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맛있는 트로트.

영탁은 '미스터 트롯'에서 나훈아의 '사내'로 출발해 '막걸리 한잔', '추억으로 가는 당신', '찐이야', '내 삶의 이유 있음을'까지 총 12곡을 불러 최종 선(善)의 자리에 올랐다. 발라드와 알앤비 등 클래식을 제외한 모든 장르를 거친 후 트로트에 안착한 영탁은 이 경연을 통해 가요계를 이끌 차세대 트롯맨임을 입증해 보였다.

어떤 무대도 같지 않았고, 어떤 무대도 뻔하지 않았다. 선곡이 당락을 가르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영탁은 그간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곡들을 선택했다. 그가 선택했던 노래들의 가사를 이어 붙이면 장중한 스토리 라인이 형성된다.

영탁

이 서사는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담보할 수 없었다. 결승 무대에 올라야지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영탁은 3개월 간 서바이벌 여정을 이어가며 인생 서사를 노래로 완성해냈다. 그 과정은 "온 동네 소문났던 노래꾸러기"('막걸리 한잔')가 "트로트 찐"('찐이야')이 된 드라마였다.

방송을 통해 굳이 희비가 엇갈린 인생사를 공개할 필요도 없었다. 무대에서 노래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가인(歌人)다운 선택이었다.

'미스터 트롯'을 통해 음악의 꽃을 틔운 영탁은 방송가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구성진 노래 솜씨는 물론이고 재기 넘치는 입담과 다채로운 개인기까지 더해 시청자들에게 청량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맛있게 노래하고, 시원스럽게 웃고, 재밌게 말하는 영탁의 전성시대가 이제 막 열렸다.

영탁

◆ 6번의 실패→성대결절→트로트 도전

경북 안동에서 나고 자란 영탁이 처음부터 가수를 꿈꿨던 건 아니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어디서든 분위기를 주도하고 무대에 오르는 걸 좋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이었다. 학창 시절만 해도 가수가 업이 되리라고는 스스로도 생각지 않았다.

20대 초반에 출전한 영남가요제를 계기로 가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시작은 좋았다. 2007년 '사랑한다'로 데뷔했고 '가문의 위기' OST를 부르며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이후는 긴 암흑기였다.

언제 어디서든 고군분투했지만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좌절과 시련도 많았다. 소속사를 여섯 번이나 옮겼고 그룹으로 활동했던 팀(엘클래스→제이심포니→박지)은 세 차례나 뭉쳤다 흩어졌다. 생계와 미래에 대한 불안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꿈을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30대 중반쯤에 가수를 관두려고 했어요. 음악을 너무 사랑하지만 생활이 여의치가 않으니까 현실적인 대안을 찾게 되더라고요.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어요. 수입이 안정적이면서도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게다가 음악을 잘 알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니까"

영탁

'히든 싱어'(2016) 도전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임했다고 했다. 그러나 출연을 앞두고 또 한 차례 시련을 겪었다. 성대결절로 위기를 맞은 것.

"병원에서 혹이 나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렇게 되면 목이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그동안 익혔던 기술, 음역대 등은 못쓰게 되는 거죠. 수술 날짜를 잡아 놓고 혹시 몰라 담배부터 끊었어요. 한 달 뒤 병원에 갔더니 거짓말처럼 혹이 없어졌더라고요. 수술을 안 받게 됐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깨끗해지고 음역대도 더 올라갔어요. 기적 같은 일이었죠."

영탁은 '히든싱어' 출연 이후 음악 활동의 고삐를 다시 당겼다.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트로트 가수 전향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당시의 이 결정에 대해 "트로트 노래 작곡을 하면서 이쪽에 큰 관심을 갖게 됐어요. 꽤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마침 과거 OST 작업을 하면서 친분을 쌓은 작곡가 (이)재규 형(현 소속사 밀라그로 대표)이 처음으로 음반 제작을 하게 됐는데 뜻이 맞아 같이 하게 됐고 '누나가 딱이야'로 트로트 데뷔를 하게 된 거죠."라고 말했다.

누구나 살면서 인생을 바꿀 기회 한 두 번쯤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모두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기회가 오기 전에 포기하거나, 기회가 기회인 줄 모르고 지나치기도 한다. 영탁에게는 그 기회가 데뷔 15년 만에 찾아왔다. 가장 좋아하는 것도 음악,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도 음악이라고 믿고 달려왔기에 오늘 같은 날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영탁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는 지금이다.

영탁

◆ "이제야 내 목소리를 찾았다"

영탁의 목소리는 톡 쏘는 사이다 같은 매력이 있다. 미성과 탁성을 넘나드는 보이스 컬러가 개성이 넘치고 시원스러운 고음은 듣는 이의 귀에 '탁'하고 꽂힌다. 트로트 음악을 하는 대부분의 남자 가수들과는 차별된 구성짐을 가지고 있다.

'미스터 트롯'이 그에게 특별한 의미인 것은 거둬들인 성적과 쏟아진 스포트라이트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목소리'를 찾았다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의 노래를 비교해보면 목소리에 많은 변화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여러 색깔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의미기도 하고, 나만의 목소리를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 목소리는 톤이 좀 촌스럽달까요. 게다가 까랑까랑하니까 듣는 분에게도 편안한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발라드 가수로 활동할 때 그 단점이 두드러졌죠. 발라드나 알앤비는 트렌드를 많이 타는 장르기 때문에 유행을 좇으려고 오랜 시간 부단히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본연의 목소리가 아닌 만들어낸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것 같아요.

언젠가 안동 친구들과 노래방엘 갔는데 친구가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불러달라고 하더라고요. 노래를 듣더니 말하듯 부르는 게 너무 좋다는 거예요. 힘을 빼고 말하듯 부르는 것의 장점이 뭔지 그때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톤을 만들어 유행을 쫓아가기엔 한계가 있으니 솔직하게 하자. 트로트 가수를 하면서 제 진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듣는 사람들도 좋아하시더라고요. 특히 '미스터 트롯' 하면서 다양한 분위기의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저도 몰랐던 제 목소리를 다양함을 발견했고, 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영탁

'미스터 트롯' 본선에 오른 100여 명의 가수들 중 절반은 이미 아는 사이였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통해 몰랐던 50여 명의 형, 동생들을 알게 됐다. 트롯맨들과의 교감은 '사람을 얻었다'는 보람뿐만 아니라 '한 수 배웠다'는 배움의 의미도 있다.

"트로트를 한지 이제 5년밖에 안됐잖아요. '미스터 트롯'을 하는데 노래를 잘하는 너무 사람이 많은 거예요. 그들과 합숙하고 연습하고 무대를 꾸몄던 시간들은 트로트가 제 안에 스며든 과정처럼 여겨졌어요. 특히 신동부 친구들을 보면서 '천상 트롯맨들이구나' 싶더라고요. (이)찬원이, (김)희재, (정)동원이는 그야말로 모태 트롯맨이죠. 반주만 들어도 무슨 노래인지 알고, 신곡을 받아도 그 노래를 자기화하고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영탁

◆ 알고 보면 노력파…'막걸리 한잔' 이렇게 나왔다

경연 프로그램은 당락에 희비가 엇갈리는 잔인한 자리다. 누군가가 위로 올라가면 떨어지는 누군가도 나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 과정은 방송을 통해 잔인하게 중계된다.

영탁에게 '미스터 트롯'은 첫 경연 프로그램이었지만, 경쟁의 긴장감과 압박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구보다 무대를 즐겼다. 스스로도 그 시간들에 대해 '잘 놀았다'고 표현했다.

데뷔 15년간 여러 음악 장르를 넘나든 내공 덕분일까. 색깔이 다른 여러 노래를 자기화했을 뿐만 아니라 가무에도 남다른 역량을 보여줬다.

언뜻 보면 끼와 재능을 타고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음악을 즐기는 노력파'다. '미스터 트롯'에서 춤 실력을 뽐냈던 '댄싱퀸', '또 만났네요', '찐이야' 무대가 오랜 연습 끝에 완성된 무대라는 건 익히 알려진 바다. 흥미로운 건 '막걸리 한잔'에 곁들인 어깨춤에도 땀과 노력이 깃들여 있다는 사실이다.

"노래에 걸맞은 과하지 않는 춤사위를 곁들이고 싶었어요. 특유의 분위기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살릴까 고민한 끝에 안무 선생님을 찾아가 한국 무용을 배웠어요. 기본이라도 할 줄 알아야 동작의 크기와 모양에 상관없이 태가 날 것 같더라고요. 선생님에게 배운 후에 가사에 맞춰 '손끝을 요렇게 저렇게, 어깨춤을 살짝' 곁들여냈어요."

이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000만 뷰 돌파(현재 963만 뷰)를 앞두고 있다. '탁걸리'라는 별명을 안긴 이 무대는 영탁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결정적 한 방이었다. 게다가 팬들의 염원대로 막걸리 광고 모델 데뷔도 앞두고 있다.

영탁

영탁은 노래를 맛있게 살리는 능력도 일품이다. 결승전 작곡가 미션에서 부른 '찐이야'가 대표적이다. 가이드 곡을 듣고 단 번에 선택하기 쉬운 노래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노래의 맛을 살릴지를 촉으로 아는 작곡가 마인드가 발동한 순간이었다. '탁 마에스트로' 콘셉트로 꾸민 무대는 중독성 넘치는 멜로디와 가사, 흥겨운 춤사위로 화제를 모았고 단 번에 히트송에 등극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 '사랑의 콜센타'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영탁은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저희들의 노래가 큰 위로가 됐으면 해요. '사랑의 콜센타'는 팬들과 직접 소통하고 신청곡을 불러드린다는 점에서 녹화를 하면서 큰 즐거움과 행복을 느껴요. 또 한 번 신나게 놀아볼게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영탁

◆ 롤모델로 나훈아 꼽는 이유

영탁의 롤모델은 나훈아다. 나훈아는 독보적인 보이스 컬러, 압도적인 가창력과 화려한 무대 매너를 갖춘 자타공인 전설의 가수다. 영탁은 대선배의 팔방미인의 면모를 닮고 싶다고 했다.

"존경스러운 가수예요. 노래 실력과 무대 장악력은 물론이고 작사, 작곡에도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니까요. 나훈아 선배님처럼 가수이자 뮤지션, 엔터테이너 그리고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미스터 트롯'에서 처음 선보인 노래도 나훈아의 '사내'였다. 음정과 박자를 밀었다 당기면서 목소리의 강약을 조절하고, 눈웃음에 미소까지 장착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탁 역시 작사, 작곡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히트곡 '니가 왜 거기서 나와'를 작사, 작곡했고 '미스터트롯'에 함께 출연했던 한이재와 이대원의 신곡과 데뷔곡을 작사, 작곡, 프로듀싱했다. 그는 발라드 가수로 활동할 당시에도 '히든싱어'에 출연했던 동생들의 앨범에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참여해 재능을 뽐냈다.

영탁

창작 활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스터 트롯'에 함께 한 형, 동생들의 노래를 다수 작업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장민호, 김호중, 이찬원, 나태주 등을 보며 써 놓은 멜로디와 가사가 있다고 귀띔했다.

"몇 달 동안 붙어있다 보니 서로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들의 삶과 캐릭터를 녹아낸 노래들을 만들어 보고 싶더라고요. 몇몇 곡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됐는데 그 노래들이 발매될지는 각각의 소속사와 이야기를 해봐야 할 거 같아요. 저는 기꺼이 노래를 주고 싶은데 동생들이 받을지는... 하하하."

영탁은 '미스터 트롯'의 출연진에 대한 질문을 하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내 동생', '우리 형'이라는 단어를 썼다. 외동아들로 자라온 그에게 대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은 분위기가 나는 것은 주변에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영탁

◆ "'잡초' 같았던 내 삶…모두가 만나게 됩니다"

영탁은 '미스터 트롯의 맛'에서 제2의 인생곡으로 나훈아의 '잡초'를 선곡해 불렀다. '사내'부터 '내 삶에 이유 있음을'까지 선곡으로 자신의 인생 서사를 펼쳐온 그이기에 '잡초' 가사에 담긴 의미를 곱씹게 된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부는 언덕에
이름모를 잡초야

한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영탁은 스스로를 잡초라고 여겼지만 자신의 음악을 알아봐 준 팬들에 의해 꽃을 피웠다. 그의 SNS의 대문에는 "언젠가 모두 만나게 됩니다"라는 글귀가 있다. '언젠가'와 '모두'라는 단어에는 무한한 확정성이 내포돼있다. 어려운 시절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특유의 긍정적 마인드를 엿볼 수 있다.

"가요계에 15년 정도 있다 보니까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돌고 돈다는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는데 '나쁘게 헤어지지 말자'라는 생각을 늘 해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거든요"

영탁

요즘 영탁이 자주 되뇌는 말이 있다. "원래 없던 거야"라는 말이다. 인생의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면서 터득한 마음가짐이다. 이는 '초심'과도 연결된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손가락 1자 포즈를 취하는 것도 "일관성 있는 삶을 살자'는 되새김의 노력이다.

트로트 입문 5년 차, 영탁이 느낀 이 음악의 매력은 무엇일까.

"한국 사람들이 가장 흥겹고 신나게 빠져들 수 있는 음악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도 트로트는 웃으면서 노래할 수 있는 음악이에요. 발라드 할 때는 늘 울면서 했던 거 같은데 트로트는 그 반대죠. 몇 년 동안 방송이나 행사 말미에 끝인사로 '오늘 저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기분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게 제 음악의 지향점이에요. 밝고 신나는 기운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요."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