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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배우 강은일 "성추행 무죄 확정...세상이 무섭습니다"

강경윤 기자 작성 2020.04.29 11:05 수정 2020.04.29 11:27 조회 9,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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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일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뮤지컬 배우 강은일(26)에게 2018년 3월 10일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강은일은 친형처럼 믿고 따르는 고교 선배와 그의 남녀 동창들이 서울의 한 순댓국집에서 한 술자리에 우연히 함께 했다가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에 휘말렸다. 강은일은 1심에서 징역 6월이 선고돼 보석으로 풀려나기 전까지 4개월 넘게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2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지난 4월 23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확정받았다.

28일 저녁 강은일은 취재진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2년 간 법정다툼과 구치소 수감 도중 생긴 우울증, 값비싼 변호사 수임료로 생긴 빚 생활고까지 밀어닥쳐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사건 당일 강은일을 술자리에 초대했던 고교 선배 역시 "그날 은일이를 그 자리에 부르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을 텐데"라며 죄책감에 고개를 떨궜다.

지난 2년간 강은일의 사건을 살펴보기 위해 검찰의 공소장, 1~3심 판결문, 사건 당일 CCTV 원본 및 현장을 검증한 영상 등을 살폈다. 2018년 10월 검찰은 강은일이 ▲술자리 도중 여자 화장실 칸에 여성을 따라 들어가 강제추행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여성은 ▲여성 소변기에 앉은 상태에서 강은일이 화장실에 밀고 들어와 추행을 했고 ▲항의하자 강은일이 추행을 부인하며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 해 강은일을 급히 붙잡고 화장실 안 세면대 앞에서 다퉜다. ▲이후 지인들이 화장실로 들어와 강 씨를 데리고 나갔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를 호소한 여성의 손을 들어주고 강은일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여성이 일관된 주장을 했고 ▲사건 이후부터 돈을 요구하지 않았고, ▲당일 처음 본 강은일을 대상으로 무고할 가능성이 희박했다는 정황 등을 주요하게 판단했다.

반면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사건 직후 이 여성이 "너네 집 잘살아", "다 녹음됐어" 등 말을 한 사실이 존재하고 여전히 의문이 남지만, 사건 당일 화장실 통풍구를 비친 CCTV 영상 분석과 현장 검증 조사, 사건 직후 두 사람을 데리러 갔던 복수의 목격자 진술 등을 통해 여성이 주장한 사건에 대한 동선이 신뢰성이 낮고, '두 사람이 여성칸에 들어가 다투고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강은일의 진술에 부합하는 점 등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했다.

강은일

Q. 며칠 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후련하다는 감정은 없어요. 짐을 덜었다는 마음은 듭니다. 사실 이렇게 누군가 앞에 서는 게 많이 힘들어요. 세상이 무서워요. 그럴수록 당당해야 한다는 가족들의 응원을 받고 용기를 냈어요."

Q. 1심에서는 징역 6월, 성폭력 프로그램 이수 60시간의 실형이 선고돼 법정구속이 됐었는데요.

"바로 다음날부터 무대에 서기로 되어있었어요. 떳떳하니 당연히 무죄가 나올 것이고 변호사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기에 혼자 선고 공판에 갔는데 법정 구속이 된 거예요. '제발 엄마에게 전화 한 통만 하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어요. 당연히 안됐죠. 가족도 친구도 모른 채 법정구속이 됐어요. 구치소 있는 4개월 내내 '나는 끝났다', '어떻게 삶을 끝내야 하지'라는 생각만 했어요."

Q. 3심 때까지 혐의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해왔죠.

"추행한 적이 없으니까요. 처음엔 여성이 '제가 자신을 따라 화장실 여성 칸에 들어가서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는데, CCTV에 명확하게 제가 먼저 화장실을 가고 그 여성이 뒤따라서 화장실에 가는 게 찍혔어요. 여성의 주장은 제가 여자화장실로 밀고 들어가서 성추행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적 없어요. 화장실 통풍구를 찍은 CCTV가 있는데, 저는 남자 칸에, 그 여성은 여성 칸에 들어간 게 실루엣으로 비춰요. 여성은 "세면대 앞에서 추행에 대해 항의하던 와중에 친구들이 들어왔다."고 했어요. 사실이 아니예요. 여성이 먼저 세면대에서 입맞춤을 하더니 갑자기 '녹음 있다', '너네집 잘 살아?' 등 이런 말을 해 제가 황당해서 '녹음이 있으면 밖에 있는 사람들과 들어보자'고 화장실 문을 나가니까 제 뒷덜미를 잡고 끌어 들어간 뒤 다시 여자 칸으로 데려갔어요. 거기서도 제 입에 입을 맞췄어요. 일행들이 저희가 안 나오니 찾으러 왔을 때 저와 그 여성은 함께 여성칸에 있었어요."

강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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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심 때도 CCTV가 증거로 제출됐는데 왜 2심과 결과가 달랐을까요.

"1심 재판부는 피해를 주장한 여성 진술이 일관됐다고 봤어요. 그런데 일관된 진술이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재판부는 CCTV 영상, 목격자들의 주장과 명백히 배척되는 여성의 진술에 대해선 '술 취해 착각한 것'이라고 하면서, 사건 이후 여성이 신고하거나, 저와 친구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사과를 요구한 내용에 대해선 결정적인 증거라고 봤어요. 2심 때 합의부 판사님들이 직접 현장검증을 나와서 좁은 여성 화장실에 제가 밀고 들어가서 추행을 할 수 있는지, 통풍구에 비친 다리의 실루엣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에 대해 조사했어요."

Q. 재판 도중에 판사 3명이 현장검증을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네요.

"2심 심리가 거의 마무리될 때쯤 방청을 하던 어머니가 손을 들고 '제발 판사님들이 한 번만 현장에 와서 두 눈으로 직접 봐달라'고 외치셨어요. 방청석에서 소란을 피우면 심할 경우 잡혀가는 걸 알지만 정말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었기에 어머니가 그렇게 외친 거예요.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다행히 판사님들이 저희 어머니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모두 직접 현장에 나와주셨어요."

Q. 2년간 법적 다툼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뭔가요.

"생계 문제였어요. 경찰, 검찰 조사 당시에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했던 건 경제적인 이유였어요. 학자금 대출도 갚고 있는 상황에서 변호사 선임비용을 낼 수가 없었어요. 무료 법률상담은 받았는데 '사실 그대로만 수사기관에서 말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가 재판에 넘겨졌어요. 중3 때부터 꿈꿨던 배우 생활을 이제야 하게 됐는데, 제가 가진 모든 걸 내려놓고 이 사건에만 몰두할 순 없잖아요. 2년이 흐른 지금요? 남은 것도 빚뿐이에요."

Q.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도 여전히 상황은 좋지 않군요.

"구치소에서 생긴 불면증과 우울증 때문에 약을 먹고 있다가 얼마 전에 끊었어요. 이렇게 가다간 약에만 의존할 것 같아서요. 대법원 확정을 받아도 전 그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성추행 무죄'란 꼬리표가 평생 달리니까요. 기사가 나도 사람들은 사건의 진실엔 관심이 없고 남자 편, 여자 편으로 나뉘어 싸울 텐데 그 중심에 제가 있는 게 너무 힘들어요. 정말 저는 안 했기에 너무 억울하다고 외치고 싶은데, '진짜 성추행 한 사람들'이 제 사건을 악용하면 어떡하죠. 너무 두려워요."

Q. 그럼에도 이렇게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뭔가요?

"전 평생 배우라는 꿈만 바라보며 살았어요. 1년에 4~5편씩 작품을 하며 매일 연습하는 게 행복했어요. 법정 구속 전에 유명한 드라마 오디션에 합격해 배역을 조율 중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졌어요. 주 팬층이 여성인 뮤지컬계에서 제가 무죄를 받았지만 돌아갈 수 있을까요. 두려워요. 최근에 연기와 무대 복귀에 대한 마음을 내려놨어요. 매일 미래에 무대에 서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버텼는데, 이제 그 마저 놓지 않으면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아서요. 복귀 때문이 아니에요. 이렇게 누군가에게 제 얘기를 조금이라도 하는 것 자체가 위로가 돼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말라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그렇게 해석될까 봐 너무 힘들고 무서워요. 진짜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수사기관, 사법기관은 사건을 성별로 판단하지 말고, 진실 그대로 판단해달라는 게 제 바람이에요. 저를 믿어준 가족,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저는 이제부터 다시 싸워야 해요. 수사기관과 1심 재판부, 1, 2심을 맡은 변호사 등을 상대로 어려운 싸움을 할 거예요. 그리고 저를 성추행으로 고소한 여성에 대해서도 민,형사 법적 대응을 할 겁니다. 더 이상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랍니다."

한편 피해를 주장한 여성은 사건 다음날인 2018년 3월 11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강은일을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 여성은 당시 수사기관 및 1심 재판에서 "강은일이 여자화장실 문을 밀치고 들어와서 내가 양변기에 엉덩이를 부딪히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순식간에 강은일이 허리와 가슴을 만지는 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사건 당일 강은일과 강은일의 고교 동창 일행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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