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신현빈의 슬기로운 배우생활

강선애 기자 작성 2020.06.10 17:15 수정 2020.06.10 17:45 조회 4,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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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빈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어떤 배역이든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는 색이 강한 배우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색을 지우고 맡은 캐릭터에 맞게 변화하는 배우가 있다. 정답은 없다. 배우 저마다의 스타일과 개성은 다르니까.

배우 신현빈(34)은 두 스타일 중 후자에 가깝다. 배우 인생 10년간 그녀가 출연한 작품들 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게 없다. 가장 가까운 예로,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무뚝뚝한 장겨울과, 올해 초 개봉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퇴폐적 서미란만 비교해 봐도, 두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동일 인물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천지 차이다. 그렇게 신현빈은 철저하게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로 작품에 녹아들어 왔다.

신현빈은 데뷔작 영화 '방가?방가!'(2010)에서 베트남 노동자 장미 역을 맡아 '진짜 외국인 노동자 출신이 아니냐'는 말까지 들으며 제4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데뷔 때부터 캐릭터 소화력이 얼마나 돋보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화려했던 데뷔와 달리, 신현빈에게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그동안 살짝 빗겨가 있었다. 늘 맡은 작품과 캐릭터에 맞게 묵묵히 연기를 해왔지만, 빵 터지는 흥행작을 만나지 못한 탓에 그녀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자연히 희미해졌다.

그러다 마침내 신현빈에게 '인생 작품', '인생 캐릭터'의 기회가 왔다. 신원호 감독-이우정 작가 사단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신현빈은 이 작품에서 외과 레지던트 3년 차 장겨울 역을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데뷔 10년 이래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신현빈

원래부터 자신을 캐릭터에 맞추던 배우인데, 이상하게 이번 장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현빈과 잘 어울렸다.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에서 오는 차가운 느낌과 달리, 환자를 대할 때나 짝사랑 안정원(유연석 분)을 바라볼 땐 더없이 뜨거웠던 장겨울과 신현빈은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했다. 그동안 연기한 다른 캐릭터들보다도 장겨울이 신현빈과 유독 잘 맞아 보였던 이유, 두 사람이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나 본 신현빈은 장겨울처럼 덤덤한 성격에, 자신이 관심 없는 분야는 신경 쓰지 않는 쿨함이 있었다. 반면 하고자 하는 일에는 열과 성을 다하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신현빈이 장겨울보다 세련된 스타일이고, 좀 더 잘 웃는다는 정도의 차이랄까. 신현빈에게서는 많은 면에서 장겨울이 보였다.

▲ 미모 포기하면 어때, 장겨울을 얻었는데

극 중 장겨울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쓴 동그란 안경, 질끈 묶은 머리, 여름엔 흰 티 겨울엔 청남방 두 벌로 한 해를 버티는 '단벌 신사'로, 스스로를 꾸밀 줄 모르는 캐릭터였다. 이에 신현빈도 민낯에 가까운 얼굴에 매번 안경을 쓰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극에 등장했다. 여배우지만 미모는 포기해야 했다.

"얼굴에는 베이스 정도만 발랐어요. 장겨울은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안 했어요. 색조 화장을 안 하니 준비 시간도 짧고, 덕분에 아침에 좀 더 잘 수 있다는 나름의 장점도 있었어요.(웃음) 안경 쓰고 연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색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평소 안경은 책이나 영화 볼 때 가끔 쓰는 정도인데, 촬영하며 하루 종일 쓰고 있으면 눈이 좀 피로하긴 했지만, 안경을 쓰며 인상이 달라 보이는 효과도 있고, 메이크업을 안 해도 괜찮게 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신현빈

배우가 느끼기에 크게 웃거나 오열하며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보다, 표현을 잘하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더 어렵다.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세밀한 연기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뚝뚝한 성격의 장겨울도 배우가 연기하기엔 까다로운 캐릭터였지만, 신현빈은 잘 해냈다.

"장겨울이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다른 면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일을 하고 있는지, 쉬고 있는지, 그런 상황의 차이에 따라 달랐고,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도 조금씩 달랐죠. 이런 부분들이 대본에 잘 표현됐고, 그걸 제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겨울이가 인간으로서, 또 의사로서 성장해 가고, 누군가를 좋아하며 달라져 가는 모습들을 균형감 있게 잘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던 거 같아요."

신현빈이 장겨울을 연기하며 가장 어렵다고 느꼈던 부분은 의학 용어였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의학 용어를 의사로서 자연스럽게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후반부에 장겨울이 환자 보호자한테 그림을 그리면서 병에 대해 설명하던 장면이었어요. 병명이 '총담관 낭종'이란 건데, 발음하기도 어려운 그 단어를 반복적으로 계속 말해야 하는 그 신이 유독 힘들었어요. 그런 메디컬 용어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캐릭터이다 보니, 대사를 술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연습을 많이 했어요. 핸드폰에 적어 틈틈이 보고, 수험생처럼 계속 외우는 걸 반복했죠."

▲ 비슷한 듯 다른, 신현빈 VS 장겨울

신현빈은 장겨울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노숙자의 발에 들끓던 구더기를 보고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손으로 떼어내며 치료하던 장겨울의 무덤덤한 모습이 묘하게 신현빈과 많이 닮았다.

"그 신을 CG(컴퓨터그래픽) 처리한 걸로 생각들 하시던데, CG가 아니고 깨끗한 밀웜으로 촬영했어요. 전 아무렇지 않았어요. 원래 벌레를 아주 무서워하는 편도 아니고, 장갑도 껴서. 저한텐 크게 어렵지 않은, 괜찮은 촬영이었어요."

장겨울의 트레이드 마크는 '먹방'이었다. 짧은 여유시간에 최대한 많이 먹어둬야 하는 레지던트의 근무 여건상, 음식을 두 볼 빵빵하게 가득 입에 넣고 우걱우걱 먹는 장겨울 특유의 먹방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재미 요소 중 하나였다. 실제 신현빈도 먹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대본에 '맹렬히 먹는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거 때문에 먹는 연기를 잘해보려 따로 장겨울이 먹어야 하는 음식을 미리 사서 먹는 연습도 해봤어요. 실제로도 먹는 걸 좋아해서, 먹방 연기가 딱히 힘들지는 않았어요."

신현빈

어떤 질문이든 덤덤하게 대답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장겨울과 비슷해 보인다"고 말해 주자. 신현빈 스스로도 "그런 부분들이 있다"라고 인정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에는 열과 성을 다해도, 저와 관련 없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들, 소문,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요. 좋고 싫음도 확실하고, 솔직한 편이죠. 대신 겨울이와 다른 점은, 제가 훨씬 밝고 웃음도 많아요. 솔직한 성격이라도, 겨울이처럼 다 말하는 편은 아니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고려해서 잘 이야기하려 하고요."

드라마 속 장겨울은 사랑에 있어 숙맥 같아 보이지만, 첫눈에 반한 안정원을 짝사랑하며 가끔은 저돌적으로 다가갔다. 사랑 앞에서 용기 있던 장겨울의 모습은 실제 신현빈과는 좀 다른 면이다.

"물론 저도 짝사랑을 해본 적은 있는데, 겨울이처럼 그렇게 용기 있게 행동하지는 못 했어요. 겨울이처럼 순수하고, 해바라기 같은 짝사랑도 아니었고요. 겨울이가 안정원을 보고 첫눈에 반해 먹던 빵을 버린 것만큼, 그렇게 첫눈에 반하는 건 실제로는 쉽지 않은 일 같아요. 처음에는 호감 정도를 느끼는 거고, 그 사람을 겪어 보며 점차 마음이 깊어 가는 게, 사랑 아닐까요?"

▲ 시즌2 전개 모르지만...윈터가든은 변하지 않길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배우들과 제작진은 팀워크가 남달랐다. 일찍 촬영에 돌입했고 주 1회 방송이라는 여건이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 모두에게 여유를 선사했다. 10% 이상의 높은 시청률로 결과까지 좋아 촬영장 분위기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저희끼리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만났을까'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서로 칭찬도 자주 하고,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어요. 정말 사랑이 넘치는 팀이었죠. 좋은 작품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고, 그런 행복이 시청자에게도 어느 정도 전해진 거 같아 뿌듯한 마음이에요."

신현빈

신현빈은 특히 상대역이었던 안정원 역 유연석에게 고마운 마음을 밝혔다.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서로 이야기도 많이 했고, 제가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장겨울과 안정원은 함께 하고 있음에도 서로 엇갈리거나, 함께 하지 않을 때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많았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 저도 방송으로 유연석 선배가 안정원을 어떻게 연기했는 지를 보곤 했는데, '저렇게 섬세하게 감정을 쌓았구나' 하며 감탄한 적이 많아요. 그걸 보며 제 캐릭터를 잡는데 역으로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일찌감치 시즌2 제작을 확정했다. 올 연말에 촬영에 들어가 내년에 시즌2로 돌아올 예정이다. 시즌1에서 장겨울과 안정원은 진한 키스로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며 끝을 맺었다. 시즌2에서는 이들의 양방향 사랑 이야기가 담길 것으로 보여, '윈터가든'(겨울-정원 커플을 일컫는 팬들의 애칭) 팬들의 기대감이 높다.

"저도 시즌2에선 어떻게 될지 몰라요. 궁금하기도 하고, 또 모르고 싶기도 해요. 그동안 대본이 나올 때마다, 예상한 것과 달리 새롭게 극이 전개되곤 했기에, 다양한 방향으로 흐를 거라는 기대도 돼요. 겨울이와 정원이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 거 같아요.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겨울이와 정원이 같은 순수한 사람들이라면, 서로의 마음이 같다는 걸 확인했으니 변하지 않고 거기에 충실하지 않을까요?"

신현빈

▲ 미술학도의 배우 도전, 후회하지 않는 결정

연예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기과 출신 배우들이 굉장히 많다. 신현빈도 한예종 출신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연기가 아닌 미술이론 전공이다. 그녀는 대학 시절 연기학도가 아닌 미술학도였다.

신현빈은 어릴 적부터 미술을 해왔고, 자연스럽게 대학도 미술 쪽으로 진학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부족하다는 걸, 생각보다 열정이 약하다는 걸 깨달았다. 홀로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거친 신현빈은 '포기'라는 걸 했다. 오랫동안 해 온 미술 공부이기에,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신현빈은 20대 초반을 미술과 작별의 시간으로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신현빈은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미술에 가려져 더 멀게만 느껴졌던 '배우'라는 꿈을 현실적으로 꾸기 시작했다.

"저녁 메뉴 선택 하나도 잘 못 정하는 성격인데, 오히려 큰 결정을 내릴 땐 빠르고 과감하게 하는 편이에요. 미술을 포기하는 걸 오래 고민했고 그 과정에 괴로움도 컸지만, 결정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았어요. 부모님의 권유로 대학 졸업까지만 하고, 바로 연기 쪽의 문을 두드렸죠. '나중에 후회를 하더라도, 한 번 시작은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에 막연하게만 여겼던 배우 일을 무작정 시작했어요.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운 좋게 일을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신현빈

미술을 포기하고 연기에 발을 내딛은 지 어느덧 10년이나 지났다. 신현빈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10년 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잘 한 선택 같아요. 후회 안 해요. 미술과 달리, 연기를 좋아하는 제 마음은 아직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연기라는 게, 때론 절 괴롭히고 힘들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더 노력하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계속 절 자극하고, 제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연기고요. 결국에는 그런 것들이 제가 이 일을 좋아하고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배우로서 신현빈은 이전에 했던 것과 다른 캐릭터, 다른 이야기에 끌려하고, 뻔하지 않은 걸 좋아한다. 또 그런 걸 연기하며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그렇게 전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도전의 일환으로 '슬기로운 의사생활' 장겨울을 만났으니, 신현빈의 배우 생활은 슬기로운 편이 아닐까.

"딱히 선호하는 캐릭터는 없는데, 이전에 했던 것과 다른 것에 끌리긴 해요.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관객이나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게 재미있잖아요. 저도 그런 고민을 했고, 주어진 상황에서 그런 작품들을 선택해 왔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됐고요. 계속 성실하게 연기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뻔하지 않게요. 저 자신도 아직 모르는 제 모습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걸 가두지 않고 새롭게 연기로 보여드리면서, 꾸준히 배우로서 잘 걸어가고 싶어요."

[사진제공=최성현스튜디오, 유본컴퍼니]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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