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김지영 "매번 최선 다했다,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처럼"

강선애 기자 작성 2020.06.20 11:36 수정 2020.06.21 17:32 조회 10,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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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한 분야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배우 김지영(46)은 1995년 데뷔한 이후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대중의 든든한 지지를 받아 온 배우 중 하나다.

김지영이 배우로서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 고집만 부리지 않고 변화하는 흐름에 스스로를 맞췄기 때문이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잠깐 등장하는 특별출연이든, 자신의 연기를 필요로 하는 곳에 달려갔다. 역할의 크기에 상관없이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를 맡고자 했고, 그렇게 부여받은 역할은 늘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지난 16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굿캐스팅'에서 국정원 요원이라는 정체를 숨긴 주부 황미순 역을 맡은 김지영은 이번에도 배우로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였다. 팍팍하고 힘든 시기에 누구나 보며 웃을 수 있는 작품, 그런 순기능을 황미순 캐릭터가 잘 그려낼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이번 작품에 임했다. 그녀의 바람대로, '굿캐스팅'은 유쾌통쾌한 매력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16회 연속 월화극 시청률 1위를 달성했다.

김지영은 역할 소화를 위해 12kg을 증량했고, 강도 높은 액션 연기 준비과정을 거쳤다. 방귀를 뀌거나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해야 하는 코믹 연기도 마다치 않았다. 동시에 딸의 학교폭력 피해에 가슴 아파하고, 동료의 부상에 좌절하는 감정연기도 훌륭하게 펼쳤다. 김지영은 늘 그래 왔듯, 작품에 최선을 다했고,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친근한데 웃기고, 짠한데 공감 가는 황미순을 탄생시켰다.

김지영

▲ 12kg 다시 감량 중, 면역체계 깨져 하혈까지

'굿캐스팅'은 지난해 촬영을 시작해 올 2월에 모든 촬영을 끝낸 사전제작 드라마다. 26년 경력 동안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 온 김지영도 사전제작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이라 걱정되긴 했죠.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잖아요. 우리가 찍어놓은 것들이 빛 바랜 옛날이야기처럼 구식으로 느껴지면 어쩌나, 촬영 현장에서는 너무 웃겼던 게 지금도 웃긴 포인트로 받아들여질까, 그런 고민들이 있었어요. 근데 이미 찍은 거, 어쩔 수 없잖아요?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거고, 남은 건 보는 분들의 판단뿐이니.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어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상황을 쿨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김지영의 내공이 느껴졌다. 김지영의 내공은 '연기'를 만나면 더 단단해진다. 그녀는 황미순 역할을 위해 무려 12kg을 증량했다. 배우가 맡은 캐릭터에 따라 체중 증감은 흔히 한다지만, 40대 중반을 넘겨 스스로 몸의 변화를 아는 나이에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그러기란 쉽지 않다. 쉽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들도 많으니, 하면 고단할 캐릭터는 피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김지영은 피하지 않았다.

"한 달만에 7~8kg를 찌웠고, 촬영에 들어가서는 아침식사부터 고봉밥에 스테이크, 중간에 계속 바나나, 고구마, 계란 같은 걸 먹었어요. 사육하듯 먹으며 총 12kg를 증량했어요. 촬영이 끝나고는 계속 살을 빼고 있는데, 갑자기 찌웠다가 빼니 건강이 엉망이었어요. 무릎도 아프고, 무기력해지고, 면역 체계가 깨져 하혈도 하고. 그래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식단 조절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다이어트 중이에요. 근데 7kg는 뺐는데, 이상하게 5kg가 안 빠져요. 꾸준히 해 봐야죠. 어느 정도 원래 자리에 돌려놔야, 다음에 맡을 캐릭터에 따라 찌든 빼든 맞추죠. 이번 작품처럼 과하게 찌우면 안 되겠다 싶기도 해요. 옛날엔 확 찌우고 빼고 하는 게 수월했는데, 이젠 힘들더라고요.(웃음)"

김지영

김지영이 피하지 않고 즐긴 또 하나, '코믹연기'였다. 신분 위장 작전에 투입되는 국정원 요원 황미순을 소화하며 수차례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해야 했고, 아줌마의 능청스러움을 표현하거나, 심지어 방귀를 뀌는 장면까지 있었는데, 김지영은 이 모든 걸 능숙하게 해냈다.

"제가 코믹 전문 배우도 아니고, 그냥 주어진 거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이런 어려운 시기에 시청자가 우리 드라마를 보며 웃을 수 있길, 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그게 제가 이 드라마를 하는 목표였고, 작품 안에서 제가 그런 기능을 하길 원했죠. 유치하건, 우스꽝스럽건, 상관없어요. 여배우가 그렇게 망가져도 되나 하는 마음도 애초에 없었고요. 어릴 때부터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았어요. 로맨스 연기할 때 상대 배역한테만 예뻐 보이면 돼요. 배역에 맞춰 가는 거죠."

▲ '우생순' 덕(?)에 수월했던 액션신

김지영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들이 있다. '전원일기'의 복길이, '토마토'의 악녀 윤세라, 그리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의 핸드볼 선수 정란 등이다. 김지영은 '우생순'의 산 경험으로 '굿캐스팅'의 액션이 조금은 수월했다고 한다.

"액션 훈련양으로 보면, '우생순'은 그 무엇도 따라갈 수 없어요. 웬만한 남성 액션도, '우생순' 때 필요했던 체력과 소모 열량과는 비교가 안 돼요. '우생순'은 촬영 자체가 하루 종일 뛰는 거였어요. 운동선수 역할이니 당연한 거였죠. 그때와 비교해 '굿캐스팅'은 체력적으로 수월한 편이었어요. 액션 스킬은 '우생순' 때보다 훨씬 다양하지만요."

'우생순'과 비교해서 수월했을 뿐, '굿캐스팅'의 액션 강도가 쉬운 건 아니었다. 실제로 '굿캐스팅'은 B급 감성의 코믹 첩보물이라 액션의 기대치를 낮췄던 선입견에 미안할 정도로, 수준 높은 액션신을 선보여 극찬을 이끌어냈다. 멋진 액션신의 탄생을 위해서는 출연 배우들의 연습과 준비가 마땅히 필요했다. 김지영과 배우들은 촬영 전 한 달간 액션스쿨에서 기본기를 다졌다.

김지영

"훈련한 거에 비해 '굿캐스팅'에서 보여준 액션 장면은 1/10 정도밖에 안 돼요. 와이어도 타고 유도, 발차기, 복싱, 구르기, 총 잡기 등 많은 걸 훈련했는데, 촬영한 건 돌려차기 후 매다 꽂은 정도? 감독님이 저희 다칠까 봐 어려운 액션을 할 기회를 안 주시더라고요.(웃음)"

남들이 보면 '고생'인데 김지영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즐기고자 했다. "고생이 예상되는 작품인데, 왜 굳이 하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이것도 내 팔자"라는 것이었다. 김지영다운 답변이었다.

"그냥 제 팔자려니 해요.(웃음) 제가 들어가면, 원래 쉬웠던 것도 어려워지더라고요. '우생순' 정란이도, 처음에는 중간에 부상으로 나가는 역할이었는데 제가 하면서 끝까지 가게 됐고, 없던 사투리 설정도 갑자기 생겼어요. 늘 그런 식이에요. 그래서 제가 가는 길은 무조건 힘들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고생이 예상되더라도 피하지 않아요. 그런 거 말고, 시나리오가 단번에 읽히고, 제가 이걸 표현하고 싶고, 마음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작품 선택에 거대한 포부 같은 건 없어요. 다만 제가 재미있게 만들어 갈 수 있고, 감독님, 작가님, 같이 작품을 만들어 갈 사람들과 뜻을 합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하는 거죠."

김지영이 그런 과정을 거쳐 선택했던 최근 작품들은 흥행 기운이 좋다. 월화극 시청률 1위 독주 행진을 이어온 '굿캐스팅'은 물론, 지난해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 '엑시트' 등이 좋은 성적을 거뒀다.

"너무 감사하죠. 이게 우리의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전 그저 매번 최선을 다 했어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처럼요. 최선을 다한 결과물들에 사람들이 호응을 보내주면, 더 힘을 얻어요. 이런 기회는 천운인 거 같아요. 저희뿐만 아니라 다들 열심히 할 텐데, 그 사이에서 이렇게 좋은 기운을 탄다는 게요.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죠."

김지영

▲ "연기가 더 하고 싶다" 주연만 고집하지 않는 이유

김지영은 남편인 배우 남성진과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금슬 좋은 부부다. 남성진은 '굿캐스팅'에 카메오로 출연해 김지영과 의도치 않게 뽀뽀를 하는 전개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배우자의 작품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건, '배우 부부'만이 할 수 있는 응원 방법이고 이상적인 그림이다. 결혼 후 16년 동안 변함없이 잉꼬부부로 지낼 수 있는 비결을 김지영에게 물었다.

"저희 매일 싸워요. 남편이 장난 많고 저를 엄청 놀리는 사람이라, 신혼 때는 제가 상처 받아 운 적도 있어요. 근데 매일 티격태격 해도, 크게 싸우진 않아요. 저희가 결혼 전에 10년을 알고 지낸 선후배라, 원래 격이 없는 사이였어요. 결혼 후 우리만의 규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어느 순간부터 존댓말을 사용하게 됐는데, 그게 좋았던 거 같아요. 서로 존댓말을 하다 보니, 싸움이 격해지지 않아요. 다른 부부들에게도 존댓말 쓰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굿캐스팅'이 더 의미 있었던 건, 주류에서 밀려났던 40대 여배우들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갔다는 점이다. 드라마든 영화든 남성 위주의 전개, 20-30대 배우들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굿캐스팅'은 포커스를 40대 여배우들에게 맞췄고 그들도 불륜 드라마가 아닌 액션 첩보물의 주인공을 할 수 있다는 신선한 저력을 보여줬다.

40대 여배우의 입지가 좁다지만, 최근 들어 보다 더 활발하게 작품 활동 중인 김지영은 배우도 세월의 흐름에 맞게 스스로를 바꿔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밝혔다. 주연만 고집할 게 아니라, 좋아하는 '연기'를 할 때의 행복감을 우선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시대에 맞게, 세월의 흐름에 맞게, 자신을 바꿔가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기회라는 게 항상 열려있지는 않아요. 딱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자신이 그 안에서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하는 거죠. 전 그렇게 해왔고, 그래서 제가 조금 더 많이 보이지 않았나 싶어요. 주연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너무 잘 이해하지만, 전 그거보단 연기를 할 수 있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면, 굳이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이끄는 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김지영

김지영은 '82년생 김지영'이 아닌 '74년생 김지영'이다.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이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고민이 많았던 '82년생 김지영'처럼, '74년생 김지영'도 그 모든 것의 교집합 중심에 있다. '74년생 김지영'에게 지금의 고민을 물었다.

"바뀌어가는 위치에 적응해가는, 제 자신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일적으로 제게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변했어요. 감독님도, 제작진도, 새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고, 예전에는 어딜 가든 제가 막내였는데 지금은 선배와 후배의 중간에서 제 역할이 많이 바뀌었죠. 이 시기를 지나며, 40대 초반이 힘들었어요. 브레이크가 걸렸죠. 앞으로 제 연기 인생, 여자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김지영으로서,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가야 하고 달라지는 것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김희정 감독님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수년이 지나 김 감독님이 작품을 제안해 주셨는데, 그게 '프랑스 여자' 예요. 감독님이 그려내는 서사를 원래 좋아했기에, 무작정 하겠다고 했죠."

'굿캐스팅'은 끝났지만 김지영은 영화 '프랑스 여자'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다음 달부터 방송을 시작하는 JTBC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에도 출연한다. 연속적인 작품 러시에 대해 김지영은 "다작을 하는 게 아니라, 예전에 찍어둔 게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차태현, 유연석이 출연하는 영화 '멍뭉이'에 특별출연한다는 이야기를 살짝 귀띔했다. 그녀의 이번 특별출연도 비중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의미'에 중점을 뒀다.

"'멍뭉이'에 카메오로 두 신 정도 나올 거 같아요. 사실 그 작품 말고, 다른 작품의 출연 섭외도 있었어요. 그건 남자 주인공의 아내이면서 분량이 엄청 많은 거였는데, 그거 말고 '멍뭉이'를 하기로 했어요. 특별출연이라도 이걸 선택한 건,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 역할이 한다는 점이었어요. 유기견들에 대한 시선, 생각해야 할 것들이 제 캐릭터로 인해 나오게 돼요. 또 이게 코미디 뉘앙스의 작품이라 그런 이야기를 어둡게만 그리지도 않더라고요. 그런 점이 좋아하게 됐어요."

[사진=백승철 기자, 장소=UNDERPINK, UPPERWEST]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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