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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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불이야" 소리에 뛰쳐나갔더니 칼 든 살인마가…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강선애 기자 작성 2023.10.20 11:32 수정 2023.10.20 12:22 조회 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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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9일 방송된 '옆 방 살인마-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류승수, 그룹 여자친구 출신 예린, 가수 이석훈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착한 딸의 죽음

때는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오후. 맑던 하늘이 잔뜩 흐려지더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나이 마흔 아홉의 서병호 씨는 횟집 사장님이야. 이 횟집은 마포에 있는데 소문난 맛집이야. 초저녁인데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여. 그때 오랜 단골손님이 들어와서, 그 뉴스 봤냐고 물었어.

"글쎄, 아침 댓바람부터 어떤 미친 놈이 강남에서 사람들 찔러 죽이고 난리가 났대요."

회 써느라 바쁜 병호 씨는 또 그런 사건이 터졌냐며, 그런 놈들은 잡아서 똑같이 해줘야 한다고 대꾸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리고 저녁 7시쯤 됐을까. 한창 바쁜 병호 씨한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어. 당시 상황을, 병호 씨한테 직접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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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경찰서라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서진이 아빠입니까?' 물어서 그렇습니다 그랬더니, 뭔 일이 있었다는 말도 않고, 순천향대 병원으로 가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왜 순천향대 병원을 가면 되냐' 그랬더니, '순천향대 병원을 가면 안다'고 하더라고요. 순천향대 병원 입구에 딱 가니까, '이리로 오세요' 그래서 갔더니 서랍을 딱 끌어내니까 딸내미가 싸늘히 죽어있더라고요. 그걸 보는 순간에 내가 5분, 6분 정도 기절을 했어요."
-서병호, 당시 횟집 사장

병호 씨의 막내딸이 사망한 채로 발견된 거야. 아까 단골손님이 말한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어. 사인은 다발성 자상에 의한 과다출혈. 칼에 찔린 상처가 한두 군데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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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서진, 나이는 21세. 산둥대 국제무역학과 2학년이야. 중국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4개월 전 휴학계를 내고 한국에 와 있었어. 도대체 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빠 병호 씨는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강남 경찰서로 향했어. 그리고 그 곳에서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듣게 돼.

"오늘 아침에, 서진 씨가 살고 있던 논현동 고시원에서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칼로 사람들을 해쳤고, 그 피해자들 중에 진이가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아빠 병호 씨는 그 말을 듣고 이해가 안 됐어. 우리 딸이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아빠는 진이가 고모 집에서 지낸다고 알고 있었거든. 고시원은 처음 듣는 얘기야. 사실 이 부녀 사이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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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호 씨는 홀로 진이와 진이 오빠를 키웠어. 진이가 8살, 진이 오빠가 11살 때 아내와 헤어졌거든. 횟집을 운영하면서 남매의 뒷바라지를 해왔던 거지. 근데 아빠 홀로 두 아이를 키운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이야. 병호 씨는 하루도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느낀 날이 없었대.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가 없어서 매일 아이들에게 미안했어. 하지만 막내딸 진이는 오히려 그런 아빠를 위로했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온갖 집안일을 돕고, 심지어 아빠 옷을 매일 다려놓곤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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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다리미질해서 와이셔츠 다려놓고. 엄마가 없을수록 아빠가 옷을 깔끔하게 입어야 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었고요. 그렇게 잘했기 때문에 딸내미한테 더 애착이 가죠. 일을 하다가 밥을 못 먹으면, 자기가 먼저 챙겨서 '아빠 같이 식사합시다' 할 정도로 엄마 역할을 했어요. 자기 자식 안 착하다는 사람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우리 딸내미 같은 경우는 정말 착했어요."
-서병호, 서진의 아빠

아빠는 아이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어. 다행히 횟집이 잘 돼서 축구 유망주였던 아들을 브라질로 유학을 보낼 수 있었어. 딸 진이도 일찌감치 중국으로 유학을 보냈어. 진이는 중국에서 잘 적응했고, 우수한 학교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교에 단번에 합격했어.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안 좋은 일이 생겨. 아빠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게 된 거야. 다행히 아빠를 대신해 오빠가 학비를 보태줬어. 오빠가 프로 축구선수가 됐거든. 오빠도 참 대단하지.

그런데 얼마 후, 오빠한테도 안 좋은 일이 생겨. 경기 중 당한 부상으로 재계약에 실패한 거야. 그런데도 오빠는 동생한테, 학비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어. 하지만 진이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바로 휴학계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어. 자신의 힘으로 학비를 마련하려 한 거야. 그렇게 시흥에 있는 고모 집에서 지내면서,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알바를 시작해.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무려 13시간을 매일 일했대. 아직 어린 나이인데, 참 대견하지.

그런데 이 모든 게 아빠한텐 비밀이었어. 한국에 그냥 잠시 쉬러 왔다고 거짓말한 거야. 아빠가 항상 "넌 공부만 하면 돼. 학비 걱정은 하지 말고. 오빠랑 아빠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라고 했거든. 그런 아빠한테 학비를 벌려고 알바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어. 절대 허락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까 문제가 하나 생겨. 시흥 고모 집에서 강남까지 왔다 갔다 하려니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교통비가 만만치 않아. 그래서 진이는 강남 논현동 고시원에 들어갔어. 그리고 걱정쟁이 아빠와 오빠한텐 비밀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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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 안했죠. 아르바이트하는 것도 허락 안했어요. 자기 고모한테만 '나 금방 가서 며칠만 일하고 온다'고 하고 갔대요. 그러니까 고모도 '너 그냥 와라'라고 했는데, 그렇게 돼버렸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도 거기서 돈벌이가 조금 되니까 벌어 갖고 보태서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어린 마음에…"
-서병호, 서진 아버지

고시원에 들어가고 한 달 후, 진이는 다이어리에 이런 글을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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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한테 잠깐 다녀온 날.
미안… 아빠 ㅠ"

짧은 글이지만, 아빠한테 말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 부모에게 걱정거리가 되기 싫은 딸의 마음. 그 모든 게 느껴져. 그리고 이 날로부터 3개월 뒤, 진이는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 거야. 진이가 지내던 그 고시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누가, 왜, 그 곳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른 걸까.

▲ 고시원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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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제의 고시원은, 논현동의 D고시원 이야. 지하철 논현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논현동 먹자골목'이 나오지. 그 한가운데 5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건물 3, 4층에 고시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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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고시원에 들어가 봤어? 공용공간을 빼면, 방 하나당 크기가 한 평이 조금 넘어. 3층이 90평 정도 되는데, 여기에 방이 50개가 있었어. 4층에 있는 방까지 합하면 총 85개야. 강남에서 가장 작은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래도 입지가 좋고 보증금도 없어. 월 20만원 중반이면,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 생기는 거야. 목돈 없는 서민들에겐 이만한 곳이 없지.

그러다보니 이 고시원의 입주민은 무려 70여 명이야. 그런데 고시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논현동 근처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야. 그리고 그들 중에 희대의 살인마도 있었던 거야. 그 고시원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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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3층에 살고 있는 49세 김선자 씨. 선자 씨는 중국 동포야. 한국으로 시집 온 딸의 초청으로 2년 전에 한국에 들어왔어.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있었거든. 선자 씨의 아들은 어릴 적에 입은 화상으로 걷는 게 불편해.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했던 선자 씨는, 아들 다리를 고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오자마자 식당에서 일을 해 왔어. 선자 씨는 돈 쓰는 걸 제일 무서워하는 자린고비야. 식당에서 밥 한 공기 남은 거 싸와서, 그걸 두 끼에 걸쳐 나눠 먹었어. 전화비 아낀다고, 그리운 아들과도 2주에 한 번만 통화했대. 하루라도 빨리 아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렇게 돈을 아끼고 아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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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 씨와 같이 3층에 사는 29세 마준기 씨. 스무 살부터 독립해 쭉 고시원 생활을 했어. 배달, 대리운전, 안 해본 일이 없었어. 최근에 꿈이 하나 생겼어.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는 거. 틈틈이 공부도 할 겸, 낮에는 서점에서 알바를 하고, 밤에는 고시원에서 취업 준비를 하며 지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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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생활에 익숙한 건, 31세 정상진 씨도 마찬가지야. 여기 온 지 5년이 넘었어. 논현동 먹자골목에서 상진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 고깃집에서 불판도 갈고, 서빙도 하고, 주차관리도 하고. 군 제대 후 쭉 먹자골목에서만 일했거든. 이런 상진 씨한테는 '종달새'라는 별명이 있었어. 입이 한 번 열렸다 하면 말이 끝나지 않는 '투머치 토커'였대. 종달새 상진 씨와 준기 씨는 서로 잘 아는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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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 사이, 고시생이 한 명 있긴 있었어. 4층에 사는 29세 이지섭 씨야. 준기 씨, 상진 씨랑 비슷한 또래야. 4층은 3층보다 방의 개수가 적어서, 비교적 조용해. 지섭 씨는 밤낮 없이 고시 공부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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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층에는 우리가 아는 사람도 살고 있어. 21세 서진 씨. 근처 음식점에서 새벽까지 일하고 방에 와서는 그대로 뻗어 점심 때까지 자. 아빠 몰래 고시원에 들어온 지 백일이 좀 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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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서진 씨 방 근처에 49세 최정임 씨가 살아. 서진 씨와 비슷한 나이의 두 아들을 둔 엄마인데, 몇 년 전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는 집을 나왔어. 넉넉지 않은 형편에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었던 거야.

이렇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이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 아닌 이웃으로 지내고 있었어. 이 중에 누가 범인인 거 같아? 참혹했던 그 날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 타인은 지옥이다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아침 8시. 고시원 안은 고요해. 대부분 새벽에 귀가하는 사람들이니까, 한창 자고 있는 시간이거든. 그 중 중국동포 선자 씨는 아침부터 일어나 벼룩신문을 보며 더 괜찮은 일자리가 있나 찾고 있었어. 그런데 어디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 그리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거뭇한 연기가 들어와. 선자 씨는 서둘러 복도로 나갔어. 그런데 다른 방 매트리스가 활활 타고 있는 거야. "불이야! 불이야!"를 외친 선자 씨. 그리고 그 순간, 복도 끝에서 검은 형체가 보이는데, 그 모습이 범상치가 않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옷차림. 누군지 절대 알 수 없어. 머리에 랜턴을 달고, 마스크에 물안경까지 쓰고 있어. 허리엔 가스총도 찼어.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건, 길이 50cm의 회칼이야. 또 양쪽 바지 안 쪽에는 과도를 하나씩 더 찼어. 이 사람이 바로, 오늘 사건의 범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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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복장을 한 사람이 뚜벅뚜벅 선자 씨를 향해 다가오더니, 들고 있던 흉기로 가차없이 공격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어. 그리고 도망가는 선자 씨를 쫓으며, 수십 차례나 더 공격했어. 결국 선자 씨는 아들의 다리를 고쳐주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끔찍한 칼부림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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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해. 이 고시원에서 외부와 통하는 출입문은 하나인데, 거길 향하는 복도는 겨우 한 사람 지나다닐 정도로 좁아. 그런데 바로 여기에, 칼을 든 범인이 지키고 서 있는 거야.

복도 상황을 보고 깜짝 놀라서 다시 방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선자 씨처럼 연기를 피해 정신없이 나오다가 범인의 칼에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어. 지금 고시원은 완전 아비규환이야. 복도엔 매캐한 연기가 차오르고, 바닥엔 피가 흥건해. 그 때 누군가 방 밖으로 나와 소화기를 집었어. 취준생 마준기 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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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 안전핀을 뽑으려고 그러는데 뽑히지 않더라고요. 억지로 뽑았어요. 뽑은 다음에 소화기 호스를 잡고 딱 들어가려고 그러는데 갑자기 칼이 쑥 들어오더라고요. 얼굴 쪽으로 날아오니까 내가 친 거예요. 잡지는 못하니까요. 쳐내니까 나중에는 이 사람이 막 휘두르더라고요. 그냥 죽는구나. 아 이제 죽는구나. 가족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거 밖에 안 들더라고요."
-마준기(가명), 취업준비생

복부만 세 번을 찔린 준기 씨는 필사적으로 상처부위를 부여 잡았어.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데, 범인이 다시 칼을 들어 올려. 그 순간, 누군가 또 복도로 뛰쳐 나왔어. 범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쪽으로 향해. 준기 씨는 온 힘을 다해 총무실로 도망쳐. 황급히 문을 잠그려는데, 문고리가 고장나서 안 잠겨. 밖에서 밀면 열릴 수도 있어. 있는 힘을 다해 온몸으로 문을 막았어.

바로 그때, 고시원 전체에 화재 경보가 울려. 지금 연기는 3층에만 퍼졌어. 4층에선 아직 불이 났는지 몰라. 그런데 화재경보가 울렸으니, 막 뛰쳐나왔을 거 아냐. 그런데 출입문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에, 범인이 있어. 평소엔 사람들을 살리는 화재경보음이, 이날은 죽음을 부르는 사이렌이 된 거야. 그때부터 이 살인마가 뚜벅뚜벅 4층으로 올라가. 마치,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경보음을 듣고 뛰쳐나온 4층 사람들 중 가장 먼저 범인과 마주친 건,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정임 씨야. 범인은 정임 씨의 가슴과 배를 수차례 공격했어.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아. 병호 씨의 딸, 서진이야. 범인은 이제 진이를 공격하기 시작해. 저항 한번 못하고 꼼짝없이 당할 위기야.

그런데 그 때, 진이를 구하려는 듯, 누군가 범인을 잡고 늘어져. 범인과 맞선 사람, 바로 정임 씨야. 이미 몇 차례나 칼에 찔렸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 진이를 구하려 한 거야. 정임 씨 가족들은, 그 상황을 생존자들한테 전해 들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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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그 친구(서진이)가 너무 놀라버렸나 봐요. 얼어버린 거죠. 그러니까 발을 못 뗀 거예요. 거기서 굳어 버린 거예요. 근데 우리 언니도 거기 있었고, 그러니까 우리 언니가 범인을 잡았대요 양쪽 손을. 그러니까, 서진 씨를 찌르다 말고 이제 우리 언니 손을 놓게 하려고 범인이 손목을 내리쳤나 봐요 양쪽을. 다른 사람은 손목에 상처가 없었는데 저희 언니만 있었어요. 손목을 내리쳐도 끝까지 잡고 있으니까 범인이, 이제 언니 목 부위를 찌른 거예요. 그래서 목에 자상이 있었던 거예요. 여덟 군데인가… 엄마니까. 누구의 엄마니까 누구의 자식이든 그냥 내 자식 같은 거죠. 그건 엄마들에게 본능 같은 거예요."
-최정임(가명) 씨 동생

안타깝게도 진이와 정임 씨도, 살인마의 칼날에 목숨을 잃고 말아. 총무실로 도망쳤던 준기 씨는 지금 정신을 잃어가고 있어. 출혈이 너무 심해서 얼마나 버틸지 몰라. 그때, 준기 씨가 전화기를 발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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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피묻은 전화기. 1번과 9번에 찍힌 선명한 혈흔. 그 상황에서 죽을 힘을 다해 119에 전화를 건 거야.

"여기 논현동 D고시원인데, 칼 든 미친 놈이 있어요. 사람들이 도살당하고 있어요."

그 순간에도 범인의 칼날은 멈추지 않아. 이번에 남자야. 4층 고시생 이지섭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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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 소리가 나길래 깨지는 소리도 나고 그래서, 숨을 참고 내려가는 와중에 계단 끝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뭐지? 하고 내려가는 와중에 찌르더라고요. 이렇게 잡아가지고 이렇게 찌른 거죠. 그런데 긴 회칼이어서 (팔을) 관통을 해서 여기까지…"
-이지섭(가명), 고시생

지섭 씨는 칼에 관통된 팔과 몸을 감싼 채 계단 아래로 굴렀어. 그야말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거지. 심각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지섭 씨는 그날의 첫 탈출자야.

▲ 내가 아는 살인마

119에 신고한 준기 씨도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야. 도망갈 틈을 보려고 조심히 문을 여는데 하필, 범인과 눈이 딱 마주쳤어. 그놈이 다시 3층으로 돌아온 거야. 그 순간 준기 씨는 소름이 쫙 끼쳐. 정체를 완전히 감춘 살인마, 그게 누군지 알아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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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찔렸을 땐 너무 당황해서 못 봤는데요. 햇빛이 들어와서 그 사람인 걸 한 번에 알아봤죠. 고시원에서 안면이 있었고 예전에 그 사람이 고깃집에서 불판 갈아주는 일을 했었거든요. 그때 그 고깃집 가서 고기도 많이 먹고 그래서…"
-마준기(가명)

이제 범인이 누군지 알겠지? 종달새라는 별명이 있다는 정상진. 정상진은 살아있는 준기 씨를 발견하고는 총무실 문을 발로 차고 칼로 내려치기 시작해. 그 순간 준기 씨가 할 수 있는 건, 경찰들이 빨리 오길 바라는 것 밖에 없어. 문을 뚫고 들어오는 칼을 맨손으로 막는 바람에 손에도 피가 철철 흘러. 그래도 초인적인 힘으로 문을 막은 채 버텼고, 다행히 문은 열리지 않았어. 정상진은 또 다른 공격대상을 찾아 자리를 떠나. 준기 씨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어.

그 지옥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선택을 했어. 칼이 무서워 연기가 나도 방 안에 숨어 있거나, 불이 더 무서워 방 밖으로 뛰쳐나가 거나. 둘 다 무서워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어.

소방대원들과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건 오전 9시. 그날 아침 화재와 함께 시작된 이 악몽은 무려 40분간 이어졌어. 이제 빨리 사람들을 구하고 범인을 잡아야 해. 그런데 현장에 온 구조대가, 범인이 누군지 알아 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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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은 일단 화재 진압부터 시작했어. 현장은 너무 참혹했어. 주인 잃은 신발과 물건들이 나뒹굴고, 바닥과 벽, 계단까지 핏자국이 선명해. 몇몇 방은 시커멓게 타서 누구 방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어.

소방관들은 불을 끄는 와중에도 방 하나하나 수색하며,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해. 3층을 다 확인하고 이어서 4층. 칼에 찔린 사람부터 양손에 화상을 입은 사람까지, 조심조심 부축하며 나오는데, 한 경찰이 그 화상 입은 남자를 유심히 봐.

"차림이 왜 이래? 뭐야. 이거 다 피야?"

옷이며 신발에 끈적한 피가 잔뜩 묻어있어. 그런데 칼에 찔린 상처는 없어. 이 사람이 바로, 범인 정상진이야. 그 짧은 시간에 무기들을 다 버리고, 피해자인 척 하며 4층에 숨어있던 거야. 그렇게 현장을 빠져나갈 뻔 했던 정상진은, 경찰에 검거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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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6명이야. 5명이 정상진의 칼에 죽었고, 1명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추락사했어. 부상자도 7명이나 됐어. 준기 씨는 대수술을 받고 5일만에 겨우 의식을 되찾았어.

하루아침에 낯선 사람의 칼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충격과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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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도 마음 아픈 게 뭐야. 그 피를 토하고 죽어갈 때, 얼마나 아빠를 찾았을 거냐 이거지. 천금같이 키워갖고 자식을 그렇게 보낼 때 오죽했겠어요. 내가 어려웠으니까. 학비를 제대로 못 줬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더 미치는 거에요 내가…"

-서병호, 서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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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마 정상진

말이 많아 별명이 종달새라던 정상진은, 왜 그랬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앵무새처럼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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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에서는 "살기가 싫었다", "세상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 라고 말하기도 했어. 자기가 살기 싫어서 다른 사람들을 죽인다는 게 무슨 말일까. 또 "사람 몇 명을 죽이면 경찰이나 다른 사람이 저를 죽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는 말도 했어. 경찰 손에 죽겠다는 사람이, 정작 현장에서 피해자인 척은 왜 한 건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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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정상진의 노트가 발견됐어. 발견 당시 겉면에 시커멓게 탄 상태였는데, 안에 있던 글들은 훼손되지 않았어. 우리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재현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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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가치성 없음"
"집 밖에서도 가치성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생쇼만 하다가 가는 거야"
"나 같은 태생은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거야"
"하는 일마다 한계에 부딪히고 삑사리 나고"
-정상진의 메모 中

정상진의 메모를 보면, 큰 좌절감에 빠져있던 걸로 보여. 삶에 대한 의지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정상진은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정상진은 경남 합천에서 5남매 중 막내로 자랐어. 넷째와의 나이차는 아홉 살, 완전 늦둥이야. 초등학교 시절에는 몸집이 작고 성격도 소심해서, 친구들로부터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대. 중학교 땐 구타를 당해 기절하는 일도 있었어. 그래서일까. 중1때 처음으로 누군가를 해치기로 마음 먹어. 바로 자기 자신을.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어. 하지만 곧바로 발견됐고, 응급처치 후 깨어났어. 1년 후, 한 번 더 자살을 시도하지만 역시 살아남았어. 그 후로도 세 번이나 더 목숨을 끊으려 했어.

물론 정상진의 삶은 불우했어.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을 해칠 이유가 될 순 없어. 훨씬 더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데 전문가들은, 다른 건 몰라도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대.

꼬꼬무

"자살과 타살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실제로 세로토닌이 상승해져 있는 공격성 자체는 똑같은데, 그 공격성이 날 향해서 공격하면 자해나 자살이 되는 것이고, 바깥으로 향하게 되면 그게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나 타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상황에서 누적이 된 스트레스가 단 한 번 적극적인 방향으로 전환이 되었는데 그게 엄청난 사고를 일으켰다 생각하고요."
-임명호, 심리학과 교수

정상진의 별명이 '종달새'였다고 했지? 평상시의 정상진은 그리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어.

꼬꼬무
꼬꼬무

"(정상진이) 말하기를 좋아했는데요. 말을 받아주면 사람을 지겹게 해요. 아주 한시간 두시간 씩 물고 늘어져서…"
"(평소 술을 자주 마셨냐는 질문에) 아니요 아예 안 먹어요. 걔가 술을 안 먹는다니까요. 내가 일을 하고 있으면 자기가 일 끝나고 지나가다 이제 고시원 들어가면 심심하니까 와서 떠들어요. 얘기를 안 받아주고 짜증 내면 그냥 가요. 평상시에 까불다가 내가 소리 한 번 확 지르면 바로 애가 떨어지고 소심한 애인데. 겁도 많고…"
-먹자골목 상인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같기도 해. 눈에 띄는 문제를 일으키거나, 끔찍한 범행의 징조를 보이진 않았어.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을 느낀 사람이 한 명 있었어. 바로 D고시원 총무.

고시원에서 정기적으로 소방 점검을 하는데, 정상진이 방문을 절대 열어주지 않았던 거야. 끝까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방 공개를 거부했대. 그러다 사건 발생 한달 전쯤, 참다못한 총무가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그 방을 보고는 한 10초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대. 방에서 뭘 봤길래?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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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한 번도 자기 방문을 누군가가 절대 못 열게 하는 거예요. 사고 터지기 한 달 전에 문 열었을 때, 장난감 총, 터보 라이터, 지포라이터, 인형, 이런 물건들이 꽉 차 있어요. 똑 같은 인형이 색깔만 다르게,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배열이 되어 있는 거예요."
-고시원 총무

마치 인형가게처럼, 크고 작은 인형 수십개가 오와 열을 맞춰 전시되어 있었대. 그리고 정작 방바닥은 쓰레기가 가득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는 거지. 이 많은 인형들은 인형뽑기 기계에서 얻은 거야. 정상진은 인형뽑기에 빠져 있었어. 고시원 바로 앞 편의점에 그 기계가 있었는데, 어떤 날은 몇시간이고 그 앞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60만원까지 인형뽑기를 하는 것도 봤어요."
"비가 오는데도 밖에서 3시간 동안 인형뽑기를 하기도 했어요."
"주차장에서 번 월급을 3~4일만에 탕진하고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어요."
-주변인들의 증언

정상진은 주차나 배달 일로 한달에 150~180만원 정도를 벌었어. 그런데 그 돈 대부분을 인형뽑기에 썼어. 최소 1천만원 이상은 썼을 거래. 왜 이렇게 정상진은 인형뽑기에 집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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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형뽑기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처한 상황이 굉장히 외롭고 사회적으로 박탈된 상황이었고, 상실감, 그리고 전혀 세상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이런 사람으로 생각되고 있었을 때 인형뽑기에 집착을 한 것은 저는 탈출 수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진은 딱 그거 하나가 유일하게 도파민(흥분감)을 상승시킬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목숨 걸고 어쨌든 인형뽑기를 한 거고…"

-임명호,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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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뽑기를 과하게 하는 게 뭐가 큰 문제냐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정상진의 경우는 좀 달라. 인형뽑기에서 범행 도구들도 구했거든. 범행 당시 썼던 랜턴, 권총 모양 라이터 등을 모두 인형뽑기에서 뽑은 거야. 정상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 억울한 죽음의 이유

꼬꼬무

"이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지막 행복한 순간을 위하여."
"자극이 되어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이제야 저도 오랜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순간을 맞을 거 같습니다."
"피로써 싸워. 내 마지막 순간을 위하여."
"내 인생 마지막 하이라이트. 멋지게 끝내자 마지막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상진 노트 中

뭔가 거창하게도 써놨지? 대량 살인을 계획한 범인들은, 허세 가득한 메시지를 종종 남긴대. 이 사건 1년 전에 있었던 미국 버지니아주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도 그랬어. 마치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자신의 행위가 엄청 정당한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알지. 그들은 그냥, 비겁하고 찌질한 범죄자에 불과하다는 걸.

정상진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알아? 저 거창해 보이는 메모들, 언제 썼을 거 같아? 무려 사건 발생 4년 전에 쓴 거야. 4년 동안 잠잠하다가, 왜 하필 그날 범행을 저지른 걸까. 너무 어이없는 이유가 있어.

정상진은 예비군 훈련을 계속 불참했어. 그럼 벌금이 나와. 이 벌금이 쌓이고 쌓여서 150만원이었대. 그런데 정상진은 그해 봄부터 무직 상태였거든. 벌금은커녕, 고시원 월세도 못 내고 휴대폰까지 끊길 상황이야. 그때 강남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벌금 미납으로 수배가 내려졌으니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그 출석 날짜가 바로, 사건 당일인 10월 20일 오전 10시였어. 출석일이 다가올수록 슬슬 걱정이 됐던 정상진. 그리고 그날은, 미납된 고시원비를 내겠다고 고시원 주인과 약속한 날이기도 했어. 하지만 돈은 없어.

그날 정상진은 새벽부터 일어났어. 검은색 건빵 바지에 검은색 상의를 입고, 칼을 챙겼어. 그리고 종이에 테이프를 감아서 나름 칼집도 만들었어. 허리엔 가스총을 차고, 권총 모형 라이터 2개는 어깨에 달았어. 검정 모자를 쓰고, 화재 속에서 시야 확보를 해줄 헤드랜턴을 장착했어. 마지막으로, 연기도 막고 얼굴도 가려줄 물안경과 마스크까지 착용했어.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마친 정상진은, 자기방 침대에 라이터 기름을 뿌려. 그리곤 인형뽑기 기계에서 뽑은 모형 라이터로 불을 질렀어. 그 다음은, 복도에 나가서 칼을 움켜지고 기다렸던 거야. 겁에 질려 뛰쳐나올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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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진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들의 경우, 정신질환이나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 정상진도 조사 중에 "누굴 찔렀는지 어떻게 찔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 자살에 실패하고 나서 한달에 한 번 정도는 심각한 두통이 있었다" 등의 말을 했대. 결국 정상진은 정신감정을 받게 돼. 그리고 전문가는 이렇게 진단했어.

"정상진은 2년 이상 만성적인 우울증을 갖고 살아왔지만, 일종의 신경증일 뿐 현실감은 있는 상태이며 정신병질적 성격은 없어 보인다."

다행히 정신질환을 인정받지 못했어. 정상진은 범행 당시 자신의 행동에 대한 통제 능력도 있었을 거래. 그럼 재판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이 사건 범행이 피고인의 치밀한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진 점, 그 범행 수단이 잔혹하고 무자비한 점,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진지한 참회를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재범의 위험성이 매우 크고,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극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점,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판결문 中

정상진은 항소하지 않았고 그대로 판결이 확정됐어. 유가족들은, 법정 최고형을 받게 돼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기뻐할 수도 없었대. 우리나라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야. 정상진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어. 미집행 사형수로 감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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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이란 소리 들어도 저는 담담했어요. 죽이지도 않을 텐데요 뭐. 지금 우리나라에 사형수가 얼마나 많아요. 근데 한 명도 안 죽이잖아요. 왜 비싼 세금을 가지고 밥 먹이고 잠재우고 놀리고 그러냐고요. 미치지 미쳐. 왜 내 새끼는 죽고 없는데, 정상진은 저렇게 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서병호, 피해자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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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동생이 교도관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에어컨 틀어주냐' 물어봤는데, 안 틀어준대요. 그나마 다행이다… 에어컨 안 틀어준다는 거에 제가 위안을 받아요. 그게 말이 돼요? 피해자들만 애가 타고, 속이 타고 미치고…"
-피해자 유가족

내 가족을 잔인하게 살인한 범인이,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 자고 안전하게 지내고 있어. 사형제도의 찬반을 논하자는 건 아니야. 유가족들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자는 거야.

▲ 뒤늦게 드러난 문제들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범죄를 막긴 힘들어. 하지만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있어. 이 사건에서도 그랬어. 가해자 정상진한테 집중한 사이에, 우리는 중요한 걸 하나 놓칠 뻔 했어. 바로 이 공간, 고시원.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후,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한 유가족들에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얘기가 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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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까 허가가 없어. 무허가예요. 그렇게 해서 고시원을 지어서 사람한테 돈을 받았으면 왜 책임이 없느냐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억울하단 얘기예요."
-서병호, 피해자 유가족

논현동 D고시원은 무허가로 운영되고 있었어. 그런데 사실, 오해의 여지가 있어. 허가를 안 받은 게 아니라, 받을 필요가 없었던 거야. 독서실과 같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있어서, 신고만 하면 누구나 영업을 할 수 있었거든. 고시원의 용도는 고시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공간이야. 그런데 언젠가부터 서민들의 숙박시설로 이용되기 시작했어.

논현동 고시원 사건이 일어난 2008년, 전국에 고시원이 무려 5,500여개였대. 입주자만 20만 명에 달했어. 게다가 해마다 300개씩 새로 생겨. 그럼 정부나 국회에서,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고시원을 숙박업으로 규정하고, 관련 법안을 만들어 관리했어야지. 그런데 그냥 방치한 거야. 숙박시설이었다면 받았을 건축법이나 보건법이, 하나도 적용되지 않았어.

그러니 고시원 업주들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했겠지. 방 개수가 늘어나도록 통로는 더 좁게, 방은 더 다닥다닥 붙였어. 비상대피로는 만들 필요도 없어. 당연히 스프링클러도 없어. 그러니 창문으로 뛰어내리지. 법이 없으니까. '불법'이 아니라 '무법' 천지였던 거야. 사고가 일어날 수 밖에 없어. 논현동 고시원 사건이 일어나기 전 4년간, 고시원에서 화재, 방화로 숨진 사람만 60명이 넘어.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가 아예 없었던 건 아냐. 고시원 법에 대한 논의가 있긴 있었어. 하지만 매번 흐지부지된 거야. 그 사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났고,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어. 만약 정상진이 13명의 사상자를 낸 그날 그 곳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었다면? 그리고 비상대피로가 따로 있었다면? 복도의 폭이 30cm만 더 넓었다면? 단 한 명이라도 덜 다치고, 덜 죽지 않았을까.

유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고시원 주인과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 소방법 및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고시원 주인은 대형 로펌 변호사 여섯 명을 대동하고 나타나. 이 사람, 동네에서 어마어마한 자산가라고 소문이 자자했거든. 소송 결과는, 고시원 주인, 서울시 모두 '혐의 없음'. 예측 불가능한 범죄와 그로 인한 피해는 고시원 주인이나 관할 당국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야. 관련법이 없었으니까, 법의 위반이 아니라는 거지.

근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이 사건 직후에 고시원 관련법이 제정돼. 피난유도선,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고, 통로 폭도 90cm에서 최소 120cm 이상으로 강화됐어.

그렇게 논현동 고시원 사건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끝나버렸어. 유가족들은, 견디기 힘들만큼 슬픈데,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어.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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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 한 사람 두 사람,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 하지만 딸을 잃은 병호 씨는 그럴 수가 없었어. 횟집을 운영하던 병호 씨는, 도저히 다시 칼을 잡을 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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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못 했어요. 칼을 쳐다도 못 봤어요. 보면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소름이 끼친다고 그러잖아요. 소름이 끼쳐요. 이 손이 떨려서 (칼을) 못 잡았어요. 그래서 오죽해서 아들이 '아빠 횟집 하지 마세요'. 4, 5년 그렇게 했었어요. 솔직한 얘기로 저녁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해요 요즘도. 왜 자식 안 보고 싶겠어. 딸이 죽은 날 비가 왔어요. 그래서 비만 오면 못 견뎠어요 내가… 비만 오면 나가서 술 퍼 마시고. 혼자 울다가 비 오면 미쳐갖고 흙탕물 둘러쓰고 집에 들어오고 그랬어요."
-서병호, 서진 아버지

일을 놓으니 생활은 어려워지는데, 딸 생각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어느 날은, 정말 그래선 안 되는데, 한강 물에 뛰어 들었다가 간신히 끌려나온 적도 있었대. 범죄 피해 유가족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

▲ 피해자의 권리

범죄 피해 유가족들 중엔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 병호 씨는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너무나 이해가 됐대. 그런데, 그런 병호 씨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있어. "진이를 위해서라도 아버님이 힘을 내셔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가 돕겠다"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병호 씨를 돕겠대. 바로 이 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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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잔혹한 범죄가 일어나는 현장을 찾아다녀. 그리고 모두가 범죄자의 신상, 증언, 처벌에 집중할 때, 피해자와 가족들을 챙겨. 혹시 너 SBS 드라마 '모범택시' 본 적 있어? 김의성 배우가 맡은 장성철 역할이 있어. 범죄 피해자들을 돕는 파랑새 재단의 대표. 그 모티브가 바로 이 분이야. 이용우 회장님.

드라마에선 택시회사를 운영하지만, 실제로는 꽤 규모 있는 문구업체의 대표야. 급작스럽게 치러야 하는 장례부터, 피해자, 유가족들의 심리 치료까지. 그 잊기 힘든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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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이 그림자처럼 도와주신 분이죠. 자기 사비를 빌려주고 그랬어요. 벌어다가 갚고 또 벌어다가 갚고. 그래서 그 분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죠."

-서병호, 피해자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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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피해자) 유족분들은 삶이 굉장히 어렵죠. 특히 생활을 책임지고 있던 가장이 살해당했다든가 또 가족 중에, 자식이 살해당했다든가 그럴 경우에는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생긴 거잖아요. 삶이, 삶이 아니에요. 범죄자 잡아갈 때 '미란다 원칙' 하잖아요. 당신은 변호사 살 권리가 있다 얘기하지만 옆에 있는 피해자는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범죄자 인권만 있는 거예요. 피해자 인권은 없어요. 어디 가서 치료받아라 아니면 어디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걸 안 했던 거죠. 그래서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는 시기에 피해자들을 지원하겠다는 그런 취지로 해서 피해자 지원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용우, 한국 범죄피해자 지원센터장

원래는 이 분이 사비를 털어서 이 일을 했는데, 지금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어. 무려 20년 넘게 활동해온 결과,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식과 지원도 많이 달라졌어. 일례로, 피해 지원금도 논현동 고시원 사건 때보다 10배나 늘었대.

병호 씨는 이용우 회장님 덕분에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어. 10년이 조금 넘게 걸렸거든. 지금은 진도에서 횟집을 하고 있어. 병호 씨가 다시 횟집을 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겠어.

'묻지마 범죄'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생각해 보면, 범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말 같아. 정남규, 유영철,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들에 비해서 '묻지마' 살인범들은 잘 기억 못하잖아. 최근에도, 신림역, 서현역에서 비슷한 비극들이 계속 일어났지. 정말 묻지 말아야 할까? 아니지. 이런 사건일수록 그 실체를 똑바로 파악해야 해. 이런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는,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2차 피해가 심각해. "당신이 거기 있었으니까 당했다", "목숨값 받으려고 쇼한다"는 악의적인 이야기도 들어. 그렇잖아도 무너진 가족들이 더 위축될 수 밖에 없어.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기피와 혐오 대신, 관심과 지원이 먼저래. '우리를 대신해서 당한 사람들' 이라고 여긴대. 이웃들은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국가가 100% 피해자 지원을 책임져.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이용우 회장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어.

꼬꼬무

"우리나라 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외국에서는 옆집이 살인사건이 났다고 하면, 다 가서 위로해주는 거예요. '춥지 않냐', '아픈 데는 없냐' 그러는데, 우리나라는 살인 사건이 나면, 그 집을 안 가는 거예요. 재수 없다고. 엄청난 문화 차이입니다. 어렵겠지만, 그 문화가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용우, 한국 범죄피해자 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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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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