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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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115명 죽인 女 테러범, 미모 찬양했던 황당 여론… KAL858기 폭파사건 조명

강선애 기자 작성 2023.11.03 11:57 수정 2023.11.03 13:44 조회 4,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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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일 방송된 '꼬꼬무' 100회, '공작1987-살아있는 블랙박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이정은, 이이경, 옥주현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비행기가 사라졌다

때는 1987년 12월. 스물 여섯살 최창아 씨가 해외 출장 준비를 하고 있어. 그때만 해도 해외를 나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여성의 해외 출장은 더욱 드문 일이지. 그런데 해외 출장을 준비하는 창아 씨가 좀 이상해. 어디로 출장 가냐는 엄마의 질문에 "말씀 못 드려요"라며 출장지를 알려줄 수가 없대. 또 해외에 나간다며 짐도 안 싸. 준비물은 작은 핸드백, 그리고 이것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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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피스. 복싱선수들이 입에 물고 사용하는 거 봤지? 치아 손상이나 혀를 깨무는 부상을 막을 때 쓰는 도구야. 해외 출장을 가는데 이게 왜 필요한 걸까? 창아 씨는 운동 선수도 아니야. 또, 창아 씨 상사가 알려준 출장 지침은 더 이상해.

첫째, 신분증과 주민등록증은 모두 사무실에 두고 간다.
둘째, 여권은 개인적으로 소지하지 않는다.
셋째, 외부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이런 지침이 내려온 창아 씨의 회사. 어딘지 짐작이 가? 바로, 안기부. 지금의 국가정보원이야. 최창아 씨는 안기부 최초의 여자 수사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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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장 당일. 창아 씨와 함께 임무를 맡은 요원들이 전세기에 탔어. 비행기 안의 분위기는 매우 어둡고 무거워. 창아 씨는 창 밖을 보며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겼어. 사실, 창아 씨는 아주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길이거든. 창아 씨의 임무는, 보름 전 일어난 엄청난 사건과 관계가 있어. 시간을 돌려서, 보름 전으로 돌아가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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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우리나라의 수많은 기업들이 '오일달러'를 벌기 위해 중동으로 향했어. 많은 아빠, 삼촌들이 뜨거운 사막의 건설 현장으로 돈을 벌러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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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매 아빠 김상만 씨도 3년 전에 이라크에 왔어. 중동의 기온은 섭씨 40~60도야. 헝겊으로 얼굴 전부를 감싸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어. 이 힘든 곳에서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가족이야. 상만 씨의 아들, 재영이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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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그 전에 여러가지 일들을 하셨는데 잘 안되고 하셔서 가셨던 거죠. 어쨌든 멀리 가도, 열심히 하면 또 목돈을 벌고 올 수 있으니까. 편지를 쓰시면 꼭 항상 어머니와 가족한테 쓰시고 저한테도 또 따로 한 통 쓰셨어요. 그땐 따로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아버지 편지 오면, 편지를 여러 차례 계속 읽고 되풀이해서 읽고…"
-김재영, 김상만 씨 아들, 당시 11살

그땐 주고받는 편지가 그리움을 달래는 유일한 낙이야. 그즈음 재영이는 아빠한테 아주 반가운 편지 한 통을 받았어.

"재영이 보아라. 오늘도 사막의 태양은 몹시도 뜨겁구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 네가 장남이니까 항상 동생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기쁜 소식이 있다. 이번에 아빠가 휴가를 앞당겨서 받았다. 선물 보따리를 한아름 들고 갈 테니까. 그때까지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라. 곧 만나자."
-1987년 11월, 아빠가-

아빠를 만난 게 1년도 더 전이야. 아빠가 한국에 돌아오면, 축구도 하고 동물원도 가고, 같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재영이 아빠와 동료들도 이라크에서 가족들 선물 준비하느라 바빠. 청소기, 카세트 플레이어, 시계, 보석, 향수.. 그 시절 우리나라에 귀했던 선물이 한가득이야. 그리고, 근로자들을 위한 귀국 파티도 열렸어. 곧 가족들을 만나러 한국에 돌아간다는 기쁘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근로자들은 그 파티를 즐겼어.

드디어 1987년 11월 28일 밤 11시 30분. 중동 근로자들을 가득 태운 대한항공 858기가 바그다드 공항을 이륙했어. 한국의 가족들은 한시라도 빨리 우리 남편, 아들, 아빠를 보고 싶은 마음에, 전국에서 김포공항으로 마중 행렬이 이어졌어. 이날, 재영이 엄마도 곱게 꽃단장을 하고 김포공항으로 출발했어.

공항 전광판에 도착 사인이 언제 뜨려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갑자기 공항 분위기가 좀 어수선해. 다른 비행기들은 속속 도착하는데, 바그다드발 비행기만 아무 소식이 없는 거야.

그 시각, 재영이는 동생들하고 집에서 인기 드라마를 보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드라마가 멈춰. 그리고 TV에서 긴급 속보가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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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3년 KAL기 대참사 이후 또 하나의 대형 항공 사고 소식을 우리는 접하고 있습니다. 승객 95명과 승무원 20명을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가 버마 랭군 상공에서 실종됐습니다."

-당시 뉴스 속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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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858편은 원래 계획이 오늘 밤 8시 40분에 도착 예정이었습니다만은 현재까지 도착을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김포공항 현장 담당자

KAL 858기가 실종됐대. 바로 재영이 아빠가 탄 비행기야. 중간 급유지인 태국 방콕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거야. 승객 95명, 승무원 20명, 총 115명이 탑승한 비행기야. 이들이 어떤 상황인지, 확인이 안돼. 가족들은 최악의 상황 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교신이 재개됐다는 소식이 없어. 공항은 점점 절규하는 가족들로 울음바다가 되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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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설마했죠. 화면에 (아버지) 명단이 나오고 이러니까. 실종이라는 게 뭔지, 어디로 착륙한 건지 추락한 건지, 믿을 수가 없었던 거죠. 동생이 '아버지가 왜 안 오냐' 이런 거 물을 때 '100밤 자면 온다', 이런 식으로… 저는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동생은, 특히나 막냇동생은 전혀 인지를 못한 상황이었으니까."
-김재영, 김상만 씨 아들, 당시 11살

KAL 858기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금부터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들려줄게.

▲ 수상한 두 명의 탑승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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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KAL 858기의 항로야.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를 경유한 뒤, 방콕에서 중간 급유를 하고, 저녁 8시 40분, 김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어. KAL 858기는 아부다비에서 15명의 승객이 내린 뒤, 승무원을 일부 교체하고 문제 없이 이륙했어. 그러니까 문제가 생긴 건, 인도와 버마(미얀마) 사이를 지날 때야. 이 사이의 바다를 뱅골만 이라고 하는데, 뱅골만 어디스라는 해상 지점에서 보낸 교신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뚝 끊겼어. 마지막 교신 후, 비행기에 어떤 일이 생긴 걸까?

자, 지금부터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볼게. 첫번째, 기체 결함. KAL 858기는 두 달 전, 랜딩기어의 앞바퀴가 잘 나오지 않아서 뒷바퀴만으로 비상 동체착륙을 했던 적이 있어. 수리는 했는데, 수리 직후 첫 운항을 한 게 바로 이 비행이야.

두번째, 하이재킹. 즉, 비행기 납치. 만약 납치가 됐다면, 테러 단체한테 연락이 와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

세번째, 공중 충돌이나 공중 폭발. 이 경우라면, 완전 비상 사태야. 정부는 즉시 대책반을 꾸리고 실종 추정지점으로 가기 위해 방콕으로 떠났어. 최창아 수사관이 속한 안기부도 난리가 났지. 테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까. 당장 비행기 탑승객 115명 중에 수상한 자가 있는지 살폈어. 그런데 탑승객은 다 재영이 아빠 같은 건설근로자거나, 건설회사 임원이야. 특이 사항이 별로 없어.

중간기착지였던, 아부다비. 바그다드에서 탑승한 승객 중 15명이 아부다비에서 내렸잖아? 즉시 그 15명의 신원과 행적도 조사했어. 그리고 그 안에서, 수상한 자를 발견했어. 그것도 두 사람이나. 바로 이 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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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치야 신이치, 하치야 마유미. 일본 국적의 70대 남자와 20대 여자야. 수상한 사람이 포착됐다면, 신원확인부터 해야겠지? 아랍에미리트 대사관은 한국 외무부로 비밀전문을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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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자, 미스터 신이치 70세 가량. 미스 마유미 25세 가량. 위 사람들은 바그다드-아부다비간 항공편 예약 후, 유고 베오그라드발 바그다드 도착 후, 같은 날 KAL기로 갈아탄 후 아부다비 도착. 아부다비 도착 후 동일 09시 바레인으로 출발하였음."

-외무부 극비문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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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의 이상한 행적을 지도로 확인해 보면, 베오그라드는 당시엔 유고슬라비아, 지금은 세르비아의 수도야. 신이치와 마유미는 베오그라드를 출발해서 바그다드에 도착했어. 그리고 3시간 만에 KAL 858기에 탑승한 뒤 아부다비에 내렸고, 또 아부다비 공항에서 6시간 대기 후 바레인으로 갔어. 24시간도 안 돼서 바그다드, 아부다비 두 도시를 그냥 경유만 하고 바레인으로 간 거야. 상식적인 여정은 아니지. 수상한 2명의 존재를 포착한 아랍에미리트 대사관은 외무부에 이런 요청을 했어.

"위 일본인들이 KAL 항공기를 공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사료되오니, 두 일본인의 신원 및 소재를 파악해 주십시오."

당시 외무부 실무책임자, 장철균 대사를 어렵게 만나봤어. 원래는 기밀사항인데 30년이 지나 이제는 말할 수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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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를 지금 다 할 수 있는 거는, 원래는 못 해요. 이게 (극비문서) 30년이 지나면 비밀해제가 되니까. 우리 시간으로는 12월 1일 0시 거의 그즈음입니다. 우리는 비상근무를 하고 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건가. 나는 (실무책임자니까) 급속하게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죠. 어떻게 해야 되나. 그래서 그 전문은 일본 대사관에 보내 놓고, 정무과장한테 전화했죠. 그래서 '밀어(남이 못 알아듣게 비밀히 하는 말)'라고 하죠. '두 명이 이상한데 바로 체크해봐야 되겠어 라고…'"
-장철균 대사, 당시 외무부 동남아과 차석

비행기는 태국 미얀마 부근에서 실종됐어. 그런데 수상한 자들은 바레인에 있지. 이 수상한 자들의 신원은 일본에서 확인해줘야 하고. 한마디로, 국제적인 공조 수사가 아주 급박하게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야. 일본 경시청에 전화를 했어. 신이치와 마유미의 신원확인을 해달라고. 경시청에서 확인해 준 이 두 사람의 정체는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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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시청이 전화를 딱 받는 겁니다. 근데 마침 근무 시간이 아니면 거부해도 되는데, 거기가 근무를 하고 있었어요. 이게 또 하나의 두번째, 이 사건 해결이라고 그럴까. 두번째 포인트가 된 거죠. 한 3시간 정도? 굉장히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마침 경시청이 열려 있었고, 가서 확인하니까, 가짜 여권이에요."
-장철균, 당시 외무부 동남아과 차석

두 사람의 여권이 위조 여권이라는 거야. 그럼 이들의 진짜 국적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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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한 공작

신원 조회가 이뤄지던 그 시각, 바레인 영사와 대한항공 직원도 바빠. 두 사람의 행방을 뒤쫓고 있거든. 바레인 시내에 있는 호텔을 싹 다 뒤진 끝에 이들이 투숙하고 있다는 한 호텔을 찾았어. 바로, 바레인 리젠시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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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사람을 잡으러 가야지. 그런데 우리 대사관이 수상하다고 해서 함부로 막 체포할 수는 없어. 위조 여권이지만, 어쨌든 일본 여권 소지자잖아. 더군다나 현재 장소도 바레인이야. 그래서 일단, 염탐만 하기로 했어.

밤 9시 30분. 김정기 바레인 영사가 이들이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아 갔어. 노크를 했지만, 문을 안 열어줘. 김 영사는 명함에 한자로 이름을 써서 문 밑으로 밀어 넣었어. 한국 외교관이니 잠시 시간 좀 내달라며 한참을 노크하자, 드디어 안에서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어. 나이 든 할아버지야. 김 영사는 급하게 쓱, 방안을 살펴. 마유미라는 젊은 여자는 침대에 누워있어.

김 영사는 '당신들이 탑승했던 비행기가 태국 근처에서 떨어져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거 같다', '당신들은 운이 좋다' 라는 이야기를 영어로 설명했어. 그러자 그 남자도 영어로 놀라면서 안타깝다고 얘기했어. 그런데 영어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자니, 남자가 영어를 잘 못 해. 그나마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한자였어. 두 사람은 종이에 한자를 써서 필담을 나눴어.

일단, 남자와 여자는 부녀 사이래. 유럽 여행을 하던 중에 날씨가 너무 추워서 따뜻한 중동으로 잠깐 내려왔대. 그런데 김 영사는 필담을 나누면서, 이상한 글자를 포착했어. 바로 이 글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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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할 때 쓰는 그 '진', 우리나라는 '참진' 자를 이렇게 써. 그런데 일본에선 '진'자를 이렇게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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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살짝 다르지. 그 남자가 일본인이라면, '진' 자를 이렇게 써야지. 그런데 이 남자는 우리식 한자로 '진'을 썼어. 이 사람, 일본 사람이 아니야.

이후 일정을 물어봤더니, 이틀 후 출발하는 로마행 비행기를 탄대. 예약했다는 비행편을 확인해봤는데, 이것도 또 이상해. 그 비행기가 이틀 후가 아니라 바로 내일 떠나는 스케줄의 비행기야. 김 영사는 거기서 나온 후, 급히 바레인 일본 대사관에 이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어.

그리고 다음날 이른 새벽, 신이치와 마유미가 서둘러 호텔을 나서 바레인 공항으로 갔어. 아마도 로마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 거겠지. 공항에 도착한 두 사람이 바레인 공항 직원에게 여권을 내밀었어. 직원이 여권을 확인하고 둘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해. 두 사람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스쳐 지나가.

결국 두 사람은 위조 여권이 발각돼 출국을 거부당했어. 사실, 바레인 경찰 쪽에 이미 둘의 출국을 제지해달라 요청해 놓은 상태였어. 바레인 경찰은 두 사람을 사무실로 데려갔어. 그때, 신이치가 마유미에게 이런 말을 해.

"나는 살 만큼 살았지만, 마유미 씨한테는 정말 미안하다."

이 말이 신호였을까. 마유미가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그걸 본 경찰관이 담배를 뺏으려는 순간,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져. 담배 끝을 마유미가 깨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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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은 얼른 마유미 입에서 담배를 빼냈어. 하지만 그 순간, 마유미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소동이 벌어지는 사이 신이치는, 움직임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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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두 사람이 깨문 담배야. 그냥 담배가 아니야. 담배 안엔 작은 앰플이 들어 있었어. 그리고 그 앰플 안에는 '청산가리'가 있었어. 담배를 피우는 척 하면서 필터와 연초의 연결부분을 씹으면 독이 터져 나오는 거야. 자살 도구인 거지. 당시 상황을 기록한 글이 있어.

"신이치와 마유미는 격렬한 발작 상태에서 전신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였다. 몸의 모든 근육의 말단까지 경련 상태였다. 심장이 전기 쇼크를 받은 것처럼 몸이 튀어 오르기도 하였다. 눈을 감고 입은 조금 열려 있었다. 입의 왼쪽에 찢어진 상처가 보이고 피가 묻어 있었다. 신이치의 경련이 심해지고 마유미는 조용해졌다."
-당시 일본 대사관 스나카와 사무관의 저서 '극비령' 中

독극물 앰플을 씹은 두 사람. 신이치는 사망했고, 마유미는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살았어. 자살을 시도할 때 즉시 제지해서 독극물을 조금만 흡입했나 봐. 이 소식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졌어. 공작을 실행하고 들킬 경우 독약 앰플을 이용해 자살을 시도하는 방식. 안기부는 이 수법을 사용하는 나라를 잘 알아. 바로 북한. 80년대 남파 간첩들의 자살 수법이 딱 이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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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으로 압송된 마유미, 그리고 수색 종료

이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해야해. KAL 858기는 아직 흔적조차 못 찾고 있는 상태야. 먼저, 바레인 경찰이 마유미 심문을 시작했어. 일본어와 한국어로 이름과 국적을 묻는데, 마유미는 아무 대답이 없어. 그런데 며칠 후, 내내 입을 닫고 있던 마유미가 드디어 입을 열어.

"나는 중국 흑룡강성 출신으로, 불쌍하고 외롭고 어리석은 중국인 고아입니다."

갑자기 웬 중국? 마유미는 자기가 중국을 떠돌다가 일본인 신이치를 만나 일본 신이치네 집에서 집안일을 해주다가 같이 유럽을 여행하는 중이었대. 자긴 KAL기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비행기를 탔다는 것만으로 죄가 되냐며 막 울고불고 해. 그럼 왜 자살을 하려 했냐고 조사관이 묻자, 마유미는 "신이치가 위조 여권이 발각되면 담배의 필터 부분을 씹어 먹으라고 했다"라고 주장했어.

그 사이, 우리 정부는 바레인 측에 마유미를 한국에 인도해달라고 계속 요청했어. 범죄의 피해국은 우리, 대한민국이니까. 인도 허가가 떨어지길 기다리면서 안기부에선 재빠르게 신병인수팀을 꾸렸어. 이 팀에 바로, 안기부 최초의 여수사관 최창아 씨가 속해 있어.

최창아 수사관은 신병인수팀을 맡자마자, 종로의 의료기기 판매점을 돌아다니며 마우스피스를 구했어. '마유미의 자해를 방지하라'는 특별 미션이 떨어졌거든. 무사히 데리고 와야 진실을 밝혀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출장 짐에 마우스피스를 챙긴 거야.

바레인 공항에 도착해서 1시간 안에 마유미를 인계 받고 곧바로 되돌아와야 하는 비밀 작전이야. 한시가 급해. 신병인수팀이 바레인에 도착했어. 12월 14일 밤 9시. 어둠이 깔린 바레인 군공항. 군인들의 감시가 그 어느 때보다 삼엄해. 출발 준비를 마친 전세기 앞에서, 최창아 수사관도 입이 바싹바싹 말라. 마유미의 최근접 감시 임무를 맡았거든.

드디어, 미등을 켠 차량이 서서히 움직여. 차가 멈추고, 그 안에서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한 여자가 내려. 최창아 수사관은 재빨리 마유미를 낚아챈 후 준비했던 마우스피스를 입에 급히 끼우고 여러 겹의 반창고를 붙여 고정시켰어.

비행기가 이륙한 뒤에야 최창아 수사관은 마유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어. 아직 젊고 앳된 모습이야. 마유미를 압송한 비행기 안에서의 상황은 그간 알려진 게 거의 없잖아? 그래서 '꼬꼬무'가 수소문해서 최창아 수사관을 직접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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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KAL기 폭파 사건의 범인을 바레인에서부터 압송해서 한국에 데려와서 계속 담당했던, 안기부 최초 여수사관이라고 알려진 최창아라고 합니다. 저희들의 철칙은 이 사람하고 대화할 때 '100% 한국말만 해라' '물 먹겠느냐? 힘드나?' 한국말로 대화를 시도했었죠. 왜 사람들이 이렇게 좀 극한 상황이 아니면 방심할 때,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반응을 하잖아요? 전혀 그런 건 없었습니다. 굉장한 정신력? '내가 꼭 여기에 반항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보여서, 그거는 굉장히 좀 놀라운 거였죠."
-최창아, 안기부 최초의 여수사관

바레인에서 우리나라까진 비행기로 12시간. 마유미한테 식사를 권했는데 완강히 거부해. 물도 한 모금도 안 마셨대. 전세기가 서울을 향해 오는 동안, 수사관과 의료진은 초긴장 상태야. 마유미가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니까. 어느덧 마유미를 태운 전세기는 KAL 858기가 실종된 랭군 상공을 날아 마침내 서울에 도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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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유미의 눈가에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르 흘렀대. 이 눈물, 어떤 의미였을까?

공항에 도착하면 비밀리에 곧장 안기부의 남산 사무실로 이동할 예정이야.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마유미의 옷차림. 이날은 12월 15일, 한국은 겨울이야. 근데 중동에 있었던 마유미는 옷이 얇았거든. 결국 창아 씨와 같이 갔던 다른 여수사관의 자켓을 마유미에게 입혔어.

드디어 비행기 게이트가 열리고, 최창아 수사관이 마유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그런데 그 순간, 눈앞에 깜짝 놀랄 광경이 펼쳐져. 마유미의 입국 상황이,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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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는 저희한테 모든 게 비밀이었고, 가서 데려오는 것, 신병인수 하는 것도 비밀이고 모든 게 보안으로 빨리빨리 이루어져야 된다 했는데. 정작 흔한 말로 만천하에 공개를 시켜버리니까. 정치적인 의도는 좀 있었겠죠. 우리가 이렇게 데려왔다는 거에 대한. 중계차도 와 있었고…(마유미가) 비행기를 안 나가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서로 몸싸움 같은 실랑이가 있었죠. 그 트랩이 꽤 길더라고요. 귀에다 대고 '발 조심해' 발 조심하라고, 넘어질 수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제가 귓속말로 했었죠."
-최창아, 전직 안기부 요원

엄마한테도 말 못한 극비 프로젝트였는데, 비밀 업무를 수행하는 요원들의 얼굴까지 다 전국에 생중계 됐어. 도대체 이걸 왜 생중계한 걸까?

사실 압송 다음 날은, 13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었어. 6월 항쟁의 결과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첫 직선제 선거야. 선거 분위기가 어땠겠어? 정말 치열했지. 대통령 후보는 여당의 노태우, 야당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야.

선거 바로 전날, 테러용의자라는 여자가 잡혀 오는 장면이 TV에서 생중계돼. 북한 소행이라는 추정도 나와. 그럼 어땠을까? 국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지.

그런데 테러용의자 마유미와 뜨거운 선거전에 가려져서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게 있어. 바로, KAL 858기와 탑승객 수색 소식.

꼬꼬무 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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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유미가 한국에 도착하기 이틀 전, 미얀마 해변에서 비행기용 구명보트 한 정이 발견됐어. 고유 일련번호를 대조해봤더니, KAL 858기 꺼가 맞았어. 구명보트엔 충격을 받은 흔적도 있었어. 이건 폭발에 의해 비행기가 추락했을 가능성을 이야기 해. 그럼 이제 더 수색을 해봐야지. 탑승객도, 블랙박스도 찾아야하니까.

하지만 마유미가 압송되고 이틀 후, 조사단은 모든 수색을 종료했어. 그리고 우리 정부는 KAL 858기 승객과 승무원 전원 사망으로 결론을 내렸어.

▲ 마유미의 진짜 이름,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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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안기부 조사실. 수사관이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질문을 하는데, 마유미는 절대 대답하지 않아. 최창아 수사관은 마유미와 숙식을 함께 하며 24시간 밀착 감시했어. 입을 안 여니까, 인간적으로 대해주면서 마음을 열도록 하는 역할도 맡았어. 무엇보다, 자해 시도를 막는 것도 중요한 임무야.

그런데 어느날, 칼과 연필이 사라졌어. 자해에 사용될 수 있는 물건이라, 사용한 후에는 곧바로 치웠는데. 갑자기 사라진 거야. 심지어 마유미도 안 보여. 깜짝 놀란 수사관은 화장실 문을 급히 열었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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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자해를 할지 모르니까, 굉장히 놀랐죠. '얘가 칼을 왜 가져갔지? 어디 숨겨놨나?' 그랬는데. 그걸로 눈썹을 그리려고 연필하고 칼을 가져가서 깎아서 눈썹을 그렸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들이 좀 허탈해 했던 적이 있습니다."
-최창아, 안기부 최초의 여수사관

심문은 계속 됐어. 일본에서 텔레비전 봤냐, 브랜드 이름이 뭐였냐 물으니, 마유미는 '즈쓰시'라 대답했어. 즈쓰시는 '진달래', 북한에서 생산하는 텔레비전 상표야. 마유미는 운전석이 오른쪽인 일본의 택시 구조도 몰랐어. 마유미의 진술에 점점 허점이 보이기 시작해.

이번엔 통역관이 중국어로 심문했어. 중국에서 주로 먹었던 음식을 물으니 '호떡'이래. 당시 호떡은 중국에서 상류층만 주로 먹었대. 근데 마유미는 자기가 고아라고 했잖아. 통역관이 조사를 지켜보던 수사관에게 무심코 한국말로 "얘, 거짓말 하는데?"라고 말했어. 그러자 마유미는 "거짓말 아니다"라고 대뜸 중국어로 반박했어. 한국어를 알아듣는다는 거잖아. 거짓 진술에 슬슬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어.

그렇게 한국에 온 지 7일째. 수사관들은 마유미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 차에 태우고선 서울 구경에 나선 거야. 때는 12월 22일, 크리스마스 직전이잖아. 명동, 남대문, 압구정, 그야말로 반짝반짝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겨.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게 간첩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아주 효과적이래. 그렇다면 마유미에게도 효과가 있었을까? 다음날, 마유미가 물었어.

"내가 사실을 말하게 되면,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되나요?

부모님 걱정을 내비친다는 건, 마음의 동요가 생겼다는 거야. 수사관은 "네가 말을 안하면, 북한은 사건을 비밀에 부치기 위해 가족들을 해칠지 몰라. 하지만 네가 사실대로 말한다면, 자기네들이 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 차마, 가족들은 해치지 못할 거야"라고 설득했어. 그러면서 마유미에게, 진짜 이름이 뭐냐고 물었어. 그리고…

"김… 현희."

마침내, KAL 858기 폭파범의 이름, 김현희가 밝혀진 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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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월 15일. 마유미, 아니 김현희가 온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 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 정부는 김현희를 직접 등장시키기로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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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서 끝까지 비밀을 지키려고 이렇게 부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이렇게 있는 기간 차 안에서 시내를 다니면서도 시내 전경과 또 그 인민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그렇고.. 제가 저쪽에서 교육을 철저히 받고 생각하던 부분이 여기 현실이 너무도 차이가 나고 반대되는 현실이 좋기 때문에 점차 어느 것이 진실인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백번 죽어 마땅합니다."
-기자회견장의 김현희

김현희는 북한 외교관의 딸이래.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쿠바에서 지낸 적도 있고, 북한에서 아역 배우를 한 적도 있대. 평양외대 일본어과를 다니다 당에 소환돼서 8년간 공작훈련을 받았대. 1987년 10월, 김현희는 하치야 신이치, 북한 이름, 김승일과 함께 임무를 부여받았어. 그 임무가 바로, KAL 858기 폭파였어. 한국 비행기 중에서도 외국인 탑승객이 제일 적은 비행기를 고른 거야. 외국 사람이 많이 타면 전세계적인 문제가 되니까. 또 잔해를 찾을 수 없게, 바다 위를 운항하는 비행기를 선택했어.

1987년 11월 12일, 김현희는 김승일과 함께 평양을 출발했어. 그리고 작전대로 바그다드에서 KAL 858기를 탑승했어. 비행기 좌석은 7B와 7C. 그때 썼던 폭탄은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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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라디오와 양주병. 이게 어떻게 폭탄이 됐을까? 여기 라디오 뒤편에 적은 양에도 강한 위력을 가진 '콤포지션C4'라는 폭약을 넣었대. KAL 858기 탑승 직전, 김승일은 라디오 폭약에 건전지를 집어넣고, 폭탄 스위치를 9시간 후로 조작했어. 바다 위를 운항하고 있을 시간을 계산한 거야.

비행기에 탑승한 후 폭파용 라디오와 액체 폭약을 넣은 양주병을, 좌석 선반 위에 올려놓았어. 경유지인 아부다비에 도착하자, 물건은 남겨 두고 자기들만 내린 거야. 이게 폭파 사건의 전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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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선고, 그리고 사면

이 비열한 공작의 목적은 뭐였을까? 사건이 일어난 건 1987년. 88올림픽을 앞둔 시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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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은 세계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어.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미국과 66개국이 불참한 소련만의 잔치였어. 84년 미국 LA올림픽은, 소련과 동구권이 보이콧한 반쪽자리 대회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신경전이 어마어마했거든. 그러다가, 스포츠에서는 이러지 말자며, 다같이 참가하기로 한 게 바로 88년 서울올림픽이었어.

이 상황을 보는 북한은 어땠겠어?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겠지. 그래서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하기엔 안전한 나라가 아닌 것처럼 알리려고, 이런 무자비한 테러를 계획한 거야.

그럼 김현희가 기자회견에서 직접 범행을 자백한 후, 여론은 어땠을까? 당시 신문 보도를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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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는 범인으로 보기에는 너무 예뻤다."
"김현희가 지닌 젊음과 미모, 집단 살인범과는 거리가 먼 청순한 인상. 알게 모르게 감정 이입이 되었다."
"한-일 남성들. 김현희에게 매료"
"김현희에 청혼 쇄도"
"북괴 소모품, 죄 있으나 기회주자"

어때? 이 내용들이 믿겨져? 김현희는 115명의 생명을 빼앗아 간 테러범이야. 그런데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 엉뚱하게 김현희의 미모에 관심에 쏠린 거야. 안기부에는 남자들의 구애 편지가 쏟아지기도 했대. 김현희가 압송될 때 입었던 체크무늬 자켓. 원래 안기부 여수사관 거였잖아? 그 옷이 유행이 되기도 했어. '김현희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야.

폭파범 김현희에 우호적인 언론 보도와 여론. 이걸 접하는 유가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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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엄청 상처죠. 유가족 입장에서는. 범죄자에 대해서 그렇게.. 옹호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저희는 시신도 못 찾았는데요. 1월 초에 영결식을 하고, 돌아와서 고향에서 장례를 했거든요. 매장을 하는데 관에 채울 게 없잖아요. 옷가지나 이런 것들만 넣어서 매장을 했으니까. 사실은 그 이후에도 이게 아버지 무덤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어요. 아버지가 없으니까… 100명이 넘는 목숨은 흔적도 찾을 수 없이 떠도는데, 정작 그걸 일으킨 범인은 버젓이 활보할 수 있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김재영, 김상만 씨 아들, 당시 11살

KAL 858기 희생자 분향소에는 시신이나 유품이 하나도 없었어. 희생자들의 사진으로만 채워진 쓸쓸한 장례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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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이 잡혔다고 사건이 다 해결된 게 아니잖아. 당시 현실적으로 수색기술이나 인양 기술이 부족했을 수는 있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국가의 정부라면, 국민의 시신 한 구라도, 유품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고 최선을 다했어야지. 사람들도 김현희의 미모가 아니라, 유가족의 깊은 슬픔에 공감했어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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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현희의 재판이 진행됐어. 재판장에 입장하는 김현희를 보고, 유가족들은 계란을 던지고 분노를 표출하면서, 내 가족을 살려내라고 울부짖었어. 김현희에 대한 원망과 분노도 거셌지만, 한편에선 가족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유가족들의 절규가 쏟아졌어. 직접 눈으로 확인한 죽음의 흔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1990년 3월, KAL기 폭파범 김현희에 대한 사형 선고가 내려졌어.

"오열하는 유가족의 모습과 참회하는 피고인의 눈물을 함께 보면서 분단되 민족의 아픔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피고인은 대한항공 858편을 폭파하라는 김정일의 지령을 받고 이를 실천에 옮겨 115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자로서, 지극히 잔인하고 악랄한 소행인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돼 사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
-김현희 판결문 中

하지만 사형 선고 16일 만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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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던 대한항공 858편 폭파범 김현희에 대해서 오늘 특별 사면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정부는 오늘 오후 국무회의에서 김현희에 대한 특별 사면을 즉석안건으로 상정해 심의를 거친 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지난 87년 11월 29일 사건이 발생한 지 2년 4개월 만에 김현희에 대한 모든 사법적인 절차가 마무리 됐습니다."
-당시 뉴스 中

김현희에게 왜 특별 사면이 내려진 걸까? 북한은 KAL기 폭파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란 걸 인정하지 않았어. '마유미, 신이치라는 일본인을 내세워 남한이 KAL858기를 폭파하는 자작극을 벌여놓고 북한에 뒤집어 씌우는 것'이라고 주장했어. 그래서 우리 정부는 김현희가 '살아있는 블랙박스'이자 '역사의 산증인'이라며 특별 사면을 시켜준 거야.

사형확정 불과 16일 만에 이뤄진, 너무도 빠른 사면 결정에 유가족들은 또 한 번 울분을 터뜨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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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지 못한 KAL 858기

사고가 나고 3년 후, 태국에서 굉장한 소식이 전해졌어. 바다에서 조업하던 태국 어부들의 그물에 뭔가 커다란 게 걸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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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마크, '서울 1988'이라는 글자. 대한항공 858편의 동체야. 잔해와 함께 건진 물건 중엔 한글 상표가 부착된 옷도 있었어. 국과수의 정밀 조사 결과, 압축 충격에 의한 파손의 흔적이 발견됐어. 하지만 전체가 발견된 건 아니라서, 완벽한 조사를 하기는 어려웠어.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또 있어. 지금 이 동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아무 곳에도 없어. 국과수 조사 후 폐기처분 됐대. '꼬꼬무'가 이번에 어느 폐기물 업체로 보낸 건지라도 알아내려 했는데, 기록이 전혀 남아있질 않아.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유가족 재영 씨의 마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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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행기는 특이하게 거의 대부분이 중동에서 돌아오시는 근로자분들이 타셨고, 외국인도 거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당시 유가족들도 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유족들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부분보다는, 정부에다 이야기하면 '이건 북한이 한 건데 왜?' 항공사에서는 '이건 사고가 아니지 않느냐'… '우리가 힘이 없어서 그렇구나', 뭐 이런 식의 상처와 아픔이 많이 있으셨고 거기서 많이 분노하셨고… 드라마나 소설에서 회귀물 많이 나오잖아요. 그럼 나는 언제로 돌아가면 좋을까 할 때, 많이 돌아가고 싶은 게 87년 11월 29일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죠. '그 비행기 타지 마세요' 라고…"
-김재영, 김상만 씨 아들, 당시 11살

다시 돌아가서 아빠의 탑승을 막고 싶다는 재영 씨. 1987년 11월 29일부터 그 긴 세월, 그리움만 안고 살아야 하는 유가족의 슬픔을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여전히 바다 속엔 비행기 잔해의 많은 부분이 가라앉아 있어. 블랙박스도 당연히 찾지 못했고, 시신 한 구조차 발견하지 못했어. 아니, 찾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지? 몇 해 전, 한 언론사에서는 미얀마 앞바다에서 KAL 858기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어. 그걸 인양하는 건 쉽지 않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 동체가 정말 KAL 858기가 맞는지, 혹시라도 그 안에 남아있는 유품은 없는지. 확인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이제 기술도 많이 발전했으니까.

유가족들은 이렇게 말해. 설사 헛걸음이 될지라도,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제발 끝까지 확인해 달라고. 정부의 최선과 성의를 느낄 때, 가족을 잃은 슬픔이 한으로만 남는 게 아니고, 그래도 가슴에 묻을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유가족들에게 KAL 858기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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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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