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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동백이는 동백이를 믿고, 우리는 공효진을 믿고

작성 : 2019-12-09 17:10:22

조회 : 710

동백이

동백: 용식 씨, 내가 용식 씨를 만난 게 기적일까요?

용식: 동백 씨는 그런 복권 같은 걸 믿어요?

동백: 아니요. 나는 나를 믿어요.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자기 목소리 하나 못 내고 세상 앞에 늘 주눅 들어 있던 KBS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속 동백이는 용식이를 만나고 옹산 주민들과 진정한 소통을 나누며, 알고 보면 정글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하마'처럼 강해졌다. 스스로의 힘으로 우여곡절 끝에 용식이와 사랑을 이뤘고, 목숨을 위협하던 까불이를 제 손으로 잡았고, 사랑하는 아들 필구, 27년 만에 돌아온 엄마와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동백이는 이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를 '기적'이란 신기루에 기대지 않고, "난 나를 믿는다"라며 단단해진 자존감에서 찾았다. 동백이의 뭉클한 성장에 시청자는 공감했고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따지고 보면 동백이는 상당히 궁상맞은 캐릭터였다. 어릴 때 엄마한테 버림받았고, 젊은 나이에 미혼모가 됐으며, 남들이 술집이라 손가락질해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지켜야만 했다. 편견 가득한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녹록지 않은 사연을 품고 있었지만, 동백이는 이상하게 측은하기보단 사랑스러웠다. 동백이가 사랑스러워 보일 수 있었던 이유, 배우 공효진이 동백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공효진

공효진은 그런 배우다. 괜히 '공블리(공효진+러블리)'가 아니다. 아무리 궁상맞은 캐릭터라도 신기하게 공효진이 하면 사랑스럽다. 심지어 드라마 선택 능력도 탁월하다. 출연 드라마 중 실패한 작품을 찾는 게 어렵다. 이번 '동백꽃 필 무렵'도 대박을 터뜨리며, '공효진=성공'의 흥행공식을 이어갔다.

'동백꽃 필 무렵'이 끝난 지 얼마 안됐는데, 벌써 공효진의 새로운 드라마가 궁금하다. 어떤 작품을 선택해서 돌아올지, 그건 또 얼마나 재밌을지 기대된다. 그만큼 공효진의 작품 고르는 선구안과 캐릭터 소화력을 믿기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녀의 새 드라마가 손꼽아 기다려진다.

▲ 공효진표 동백이 탄생하기까지

동백이 사랑스러워 보일 수 있었던 건, 공효진 연기의 탁월한 '완급조절' 때문이었다. 짠한 사연에 가슴 절절한 눈물을 터뜨리다가도, 갑자기 코믹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급전환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시청자를 울다가 웃게 만든 그 힘은, 탄탄한 대본 위에 공효진만의 매력이 스며든 결과였다. 물론 공효진 스스로의 깊은 고민이 선행됐다.

"궁상과 러블리, 그 간극을 시청자가 보고 이해하기 쉽도록 세밀하게 고민했어요. 계속 울기만 하면 보는 사람들도 피곤해요. 거기서 살짝만 더 넘어가면 '너무 징징댄다'라고 생각되는데, 그 미세한 경계선을 제가 좀 잘 파악하는 거 같아요. 눈물이 터지도록 궁상맞다가도 다른 쪽 감정으로 확 몰아서 원상복귀시키는 분위기의 변주. 그런 완급조절을 제가 좀 잘하는 거 같아요.(웃음) 이런 역할만 10년을 했으니, 조금 노하우가 생긴 게 아닐까요?"

공효진

"10년이나 이런 역할을 했다"는 말처럼, 공효진은 실험적인 캐릭터를 맡고자 했던 영화와 달리, 드라마에서는 대체적으로 비슷한 맥락의 캐릭터를 소화해 왔다. 얼핏 보면 약한 듯 하지만 실상은 그 누구보다 굳세고, 자기 색깔 확실한데 묘하게 공감 가는 여성 캐릭터를 주로 선보여 온 공효진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단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동백이도 마찬가지였다. 공효진은 기존에 자신이 맡아온 캐릭터와 동백이가 다르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동백이는 사회성도 떨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애정도 없고 껍데기만 남아있는 인물이라 생각했어요. 채운 적 없이 탈탈 털리기만 한 인물, 누군가와 감정을 쌓는 거조차 불필요한 '진짜 외톨이'라 여겼죠. 이렇게 가난하고 속이 텅 빈 역할을 한 적은 없었는데, 그동안 제가 했던 캐릭터와 똑같아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크게 툭 튀는 변신은 아니더라도, 이전의 역할들과 달라 보이길 바랐어요. 초반 4부 정도까지는 동백이가 앞머리를 답답할 정도로 내리고 다녔는데, 그런 것도 하나의 설정이었죠. 전 기존과 좀 다르게 한다고 한 건데,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죠."

▲ 동백이가 공효진이 아닐 뻔했다?

사실 공효진은 동백이 역할을 못 맡을 뻔 했다. '동백꽃 필 무렵'의 편성이 원래 올해 초였는데, 당시 공효진은 미리 예정된 영화 촬영 일정과 겹쳐 드라마 참여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공효진은 '동백꽃 필 무렵'의 대본을 보고 극의 신선한 재미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래서 같이 하지 못하더라도, 임상춘 작가에게 연락해 이토록 재밌는 작품을 제안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자신이 고사한 작품의 작가에게 먼저 연락한 건, 공효진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효진

"작가님 번호를 알려 달라 해서 작가님한테 제가 먼저 문자를 보냈어요. 같이 일을 못 하는 작가님한테 문자를 쓴 건 저도 처음 있는 일이었죠. 비록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동백꽃 필 무렵' 대본이 너무 재밌고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고, 다음 대본을 보여주시면 안 되냐고, 이렇게 재밌는 걸 보여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그런 내용으로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작가님이 저와 꼭 하고 싶다며 편성 논의가 다시 이뤄졌고, 조금 늦춰 5월 편성 이야기가 나왔어요. 전 그 일정도 불가한 상황이라 난감했는데, 그 이후에 용식이 역할에 강하늘 씨가 물망에 오르고 하늘 씨의 6월 제대에 맞춰 편성을 더 늦추며 9월에 방송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어요. 원래대로라면, 동백이는 제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정이었죠."

공효진을 동백이로 만들기 위해 드라마 편성 일정을 미루고 미룬 주인공 임상춘 작가는 방송가에서도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30대 여성 작가'라는 신상만 알려졌을 뿐, 임상춘이란 이름도 본명이 아닌 필명이다. 임 작가를 아는 몇 안 되는 인물, 공효진은 그를 "동백이 같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님이 어떤 사람이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제가 봤을 땐 작가님이 동백이 같아요. 많은 사람을 대하는 것을 편하게 여기지 못하는 반면, 사람 말을 잘 들어주고 정말 따뜻한 분이세요. 작품이 끝나고, 작가님이 제게 '효진 씨는 제가 탁구공을 드리면 배구공으로 만들어 준 사람이다. 꼭 나중에 저한테 다시 와달라'고 그렇게 예쁘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작가님은 정말 '이 사람이 동백이구나' 싶게, 선의에 가득 찬 사람이에요."

공효진

▲ 동백이의 사랑들, #용식이 #필구 #향미

공효진과 강하늘은 9세 나이차가 나지만, '동백꽃 필 무렵'에서는 그런 나이차가 느껴지지 않는 유쾌한 로맨스를 선보였다. 연말 연기대상에서 '베스트 커플상'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언급될 정도로 사랑스러운 커플 케미를 발산했다. 공효진은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해준 강하늘 덕에 모든 게 수월했다고 밝혔다.

"강하늘 씨의 전작들 중에 멜로가 별로 없어서, 어떻게 용식이의 로맨스를 표현할지 가늠이 안 됐어요. 이렇게 나이차가 나는 상대 배우도 처음이라, 솔직히 우려가 됐었죠. 그런데 딱, 처음 대사를 맞추고 '아 이 친구가 잘하겠구나' 싶었어요. 잘할 거라 예상을 했지만, 그 예상보다도 훨씬 더 잘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정말 나무랄 데가 없어요.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잘할, 정말 준비되어 있는 연기파 배우예요."

공효진은 특히 강하늘이 "멋있는 척을 안 하려고 해서" 애먹었던(?) 에피소드를 전했다. 시골마을 옹산의 순박한 청년 황용식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강하늘이 멋 부리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는 설명이다. 자신보다 캐릭터를 더 우선시한 강하늘의 배우로서 태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용식이가 '네가 먼저 했다'라며 동백이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크게 화제가 됐는데, 그 장면에도 후일담이 있어요. 하늘 씨가 그렇게 서울말을 쓰기 싫어했어요. 용식이로서 멋진 척을 하거나 사투리가 아닌 서울말을 쓰는 걸 꺼려하더라고요. 겨우겨우 설득해서 '네가 먼저 했다'를 서울말 버전으로 한 번, 사투리 버전으로 한 번, 총 두 번 따로 촬영했고, 그중에 서울말 버전이 방송에 나갔죠. 멋있는 척을 조금 해도 되는데, 하늘 씨는 그걸 못해요. 용식이가 이마를 드러내면 더 잘생겨 보이는데, 그것도 싫다며 이마를 머리카락으로 계속 덮으려 하더라고요. 잘 생겨 보임을 애써 감추고 모든 걸 용식이처럼 하려고 했죠. 그래서 더 용식이 같이 보였던 거 같기도 해요."

공효진

동백이는 8세 초등학생 아들 필구가 있는 미혼모였다. 필구의 존재로 모든 걸 버텨내는 엄마 동백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는 결혼도 출산도 해본 적 없지만 공효진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만 했다. 이런 공효진이 엄마 연기를 실감 나게 할 수 있었던 건, 필구 역 아역배우 김강훈과의 시너지 효과였다.

"필구의 눈물 연기, 호소 연기에 힘이 굉장했어요. '내가 복 받았구나' 싶었죠. 너무 연기 잘하는 애기가 왔더라고요. 강훈이는 정말 연기 잘했어요. 뒤로 가니까, 힘 빼고 연기하는 것도 알더라고요. 강훈이가 너무 잘하니, 같이 할 때는 제가 그 힘을 받았어요. 귀엽기도 하고 잘하기도 하고. 강훈이는 정말 칭찬만 해주고 싶어요."

공효진

공효진은 타이틀롤 동백 역할을 소화했지만, 원래 탐났던 캐릭터는 손담비가 연기한 향미 캐릭터라고 털어놨다. 자기가 봐도 너무 매력적이고 버라이어티한 이야기를 품은 역할이라, 연기하면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배우로서 탐나는 배역, 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향미 캐릭터를 누가 하면 잘 어울릴지 생각하던 그의 뇌리에 스쳐 지나간 인물이 하나 있었다. 실제로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손담비였다. 손담비의 '인생 캐릭터'라는 극찬이 쏟아진 향미를, 그에게 추천한 이가 바로 공효진이었다.

"원래 드라마 하면서 같은 작품의 다른 역할을 친한 배우에게 제안하지 않아요. 그 역할이 드라마 끝날 때까지 계속 힘 있게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현장에서 만나면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이니 친한 배우를 같은 작품에 연결시키지는 않죠. 그런데 향미는 정말 남 주기 아까운 좋은 역할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담비가 자꾸 향미처럼 보이더라고요. 운명이었나 봐요. 담비가 원래 단순명료한 성격이라, 그래서 향미랑 잘 어울려 보였나 봐요. 어떻게 보면 동백이보다도 향미가 더 연기하기 어려운 역할인데, 담비가 정말 잘 냈죠."

공효진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의 동백은 다른 꽃들이 다 지고 난 후 추운 겨울에 홀로 피지만, 그만큼 사랑을 듬뿍 받는 꽃이다. 12월, 진짜 동백꽃이 필 무렵이다. 이제 매년 동백꽃이 필 무렵이 되면, 따뜻했고 사랑스러웠던 2019년 겨울에 만난 공효진표 동백이가 계속 생각날 것 같다.

"촬영할 때는 집과 촬영장만 오가니 드라마의 인기를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어요. 드라마가 끝나고 요즘에야 돌아다니면서 동백이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깨닫고 있어요. 진즉에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테죠.(웃음) 이 순간들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요."

[사진=매니지먼트숲, 팬엔터테인먼트 제공, KBS 방송 캡처]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