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가수 루시드폴이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작성 : 2019-12-19 09: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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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가수 루시드폴이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루시드폴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우린, 비(非)인간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가수 루시드폴(45)이 2년 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그는 반려견인 '보현'과의 시간을 음악으로 담아내는 '실험'을 했다. 소리를 채집하는 여행자처럼 루시드폴의 앨범에는 그의 고민과 도전, 새로운 영감들이 가득하다.

이번 앨범엔 보현의 여러 소리를 그래뉼라 신테시스(소리를 매우 작은 단위로 분해해 모아 합성한 것)로 작업한 곡들이 있다. 매우 생소한 개념이지만, 쉽게 말해 보현이 채소를 씹는 소리, 밥그릇을 달그락대는 소리, '멍'하고 짖는 소리가 음악적으로 재탄생해 노래로 담겼다고 보면 된다.

지난해 귤 농사를 짓다가 손을 다쳤던 루시드폴은 다행히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취재진의 책상 앞에는 그가 손수 농사를 지은 유기농 귤들이 놓여있었다.

겉은 울퉁불퉁 못생겼지만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 그의 귤들처럼, 편안한 듯 어찌 보면 무심한 듯 털어놓는 루시드폴의 얘기들은 인터뷰 이후에도 한참을 그 의미를 곱씹게 했다.

루시드폴

# "하루에도 몇 번씩 '음악이 뭐지?'하고 물어요"

-손 부상을 입은 건 괜찮나요?

"손 다친 게 작년 7월인데 수술하고 올봄까지는 불편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완전히 잘 나았어요. 수술이 잘 됐어요. 손가락 수술이 굉장히 어렵다고 하던데, 전 오히려 악기를 다룰 때 더 잘 되는 거 같아요.(웃음) 야구선수들이 어깨 수술을 하고 공이 더 빨라지듯이요."

-굉장히 특별한 앨범이 될 거라고 예고했어요.

"손가락을 다친 뒤 기타 음악을 좀 외면했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평소 듣지 않았던 음악들을 들었죠. 잡지를 보다가 테일러 듀프리의 기사를 접하게 됐어요. 소리를 만들고 연구하는 그의 얘기가 이상하게 너무 흥분이 되더라고요. 그런 음악을 듣는데 계속 마음이 갔어요. 그러다가 보현의 소리를 채집해 악기를 만들고, 주변의 포크레인 소리나 굉음 같은 몸서리치게 싫었던 소리들을 음악으로 만들고 싶어 졌어요. 그러면 뭔가 치유받을 거라고 생각했죠."

-주변의 소리를 넣어 음악을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죠?

"하루에도 몇 번씩 '음악이 소리인가', '음악은 뭐지?'라는 질문을 했어요. 반추해보면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음악의 3요소를 배운 것 같은데, 결국 음악이라는 건 인간에게 어떤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청각적 매체인 걸까요? 인간이 생각하는 박자만, 규칙만 음악일까요? 물방울, 빗소리는 음악이 아닐까요? 그런 도발적인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보현'의 '멍'하는 소리도 음악으로 재창조하는 생각을 한 거죠. 이번 앨범은 보현의 소리, 다음 앨범은 제가 싫어하는 소리들로 음악을 만들 거예요. 소리는 죄가 없어요."

# "10살 보현이를 세상에 영원히 남기고 싶어요."

-보현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어떤 의미인가요.

"위트가 섞여있지만 '보현과의 음악적 콜라보'는 맞는 말이에요. 보현이가 문 두드리는 소리, 밥그릇을 딸깍 하는 소리를 음악으로 만드는 거죠. 보현이가 사과나 콜라비를 먹을 때 씹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아서 녹음을 해봤어요. ASAM처럼 기분 좋게 들리더라고요. 보너스 트랙 정도로 하려고 했었는데, 안테나 회의 때 좋다는 의견이 나와서 가수 인생 처음으로 선공개하게 됐어요(웃음)."

-보현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보현이와 하는 곡을 영원히 세상에 박제하고 싶었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고 싶었어요. 보현이는 실제로 제가 기타를 치거나 노래를 하는 걸 좋아해요. 보현이는 제가 작업을 하고 있으면 옆에 와서 음악을 듣고 있어요. 잠을 자더라도 깊게 자지 않아요. 그렇게 만들었어요. '너와 나'"

루시드폴

# "동물보다 사람이 더 귀하지 않냐는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이상하게 이번 앨범은 굉장히 담담해요. 저도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음반을 낼 때가 되면 굉장히 조마조마하고, 잘 팔리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데 이상하게도 이번 앨범은 그런 게 조금 덜해요. 어떻게 보면 이 음악 작업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서 만족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떻게 해도 결과를 가늠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돼서 일수도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하는 음악이 어떤 영향을 줄지 별 관심이 없어요. 좋은 피드백을 받으면 감사하겠지만요."

-좋은 피드백이란 뭘까요.

"반려견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동물 아니 비(非)인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에 대한 생각이요. 인간이기 때문에 가축을 키우고 먹는 건 죄악이 아니지만요. 가끔 돼지가 꽉 찬 트럭을 길에서 만나면 눈을 돌려요. 그 돼지들은 뭘까요. 고기 조직? 단백질 덩어리? 친구가 반려견을 잃어버려서 개농장을 간 적이 있어요. 인간은, 어떤 인간은 참 나빠요. 어떤 사람들은 '굶어 죽는 사람들도 있는데 강아지한테 잘해줘서 뭐해?'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저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굶어 죽는 사람들에게도 잘 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하고 싶어요. 길고양이든, 길가의 가로수이든 인간의 필요에 의해 공존하는 존재들과 같이 잘 살아가고 싶어요. 액세서리로 있는 동물이 아니라 '반려'라는 말이 참 좋아요. 그런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6년 전 훌쩍 도시를 떠나 정착한 제주도 생활은 좋은가요?

"정말 좋아요. 서울에 참 오래 살았고 나름 재밌게 살았는데도 도시에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제주도가 편해요. 보현과 저의 관점에서 제주도는 참 좋은 곳이에요. 밤에 잘 때 귀가 참 편해요.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을 좀 더 적게 만날 수 있는 핑계를 댈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아요. 40년 가까이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차례를 빼놓지 않았던 어머니가 명절마다 제주도에 오면서 그간의 짐을 턱 내려놓았는데요. 그것도 좋아요. 아주 사소하지만 언제 끊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술, 담배를 안 하게 된 것도 좋고요."

루시드폴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요?

"가끔 스스로 '욕심이 많은 건 좋은 걸까 안 좋은 걸까' 생각할 정도로 하고 싶은 음악이 많아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체력도 한계가 있을 텐데, 하고 싶은 음악이 많거든요. 여전히 제 음악의 뿌리는 브라질 음악이에요. 기타 하나, 노래 하나로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들으면 무장해제되어버려요. 훨씬 더 지금보다 잘하고 싶어요. 목소리와 기타로 된 음악을 꼭 내고 싶어요. 그리고 앞서 말했던 '굉음의 음악화'. 그리고 나무 소리를 채집하고 싶어요. 생명체인 나무도 생명활동을 하기에 어떤 에너지가 있을 거잖아요. 그런 걸 소리를 채집해 음악으로 만들고 싶어요."

kykang@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