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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해치지 않아', 반짝반짝 코미디

작성 : 2020-01-13 10:00:45

조회 : 155

해치지 않아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동물 없는 동물원'은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그렇다면 '동물 행세하는 사람이 있는 동물원'은? 이 역시 어불성설이다. 영화 속 세상이라는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으로 무궁무진하다지만 이 황당한 발상은 어떻게 구현될까.

대형 로펌의 수습 변호사 태수(안재홍)는 정직원 기회를 잡기 위해 폐업 직전의 동물원 '동산파크' 운영을 맡아 달라는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동산파크'는 동물이 모두 팔려가고 없는 상황. 동물을 다시 데려오기까지는 시간과 돈, 제도적 걸림돌 등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태수는 직원들에게 동물로 위장하라는 기상천외한 제안을 한다.

동물원 회생을 간절히 바라는 수의사 소원(강소라)은 사자로, 서 원장(박영규)는 기린으로, 사육사 해경(전여빈)은 나무늘보로, 건욱(김성오)은 고릴라로 거듭난다. 이들과 활약과 함께 파리만 날리던 동물원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러나 성행도 잠시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다.

해치지 않아

'해치지 않아'(감독 손재곤)는 허무맹랑한 상상력을 반짝거리는 유머로 채운 영화다. 그러나 유머의 강도가 세다거나 웃음의 타율이 높다고는 볼 수 없다.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입담과 웃픈 상황이 선사하는 아이러니 등은 소소한 웃음을 만들어내며 잔잔한 미소를 유발한다.

유머의 향연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전반에 인간과 동물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 넘친다. 따지고 보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떤 식으로는 실패하고 넘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태수는 별 볼 일 없는 백그라운드 탓에 엘리트 집단에서 소외 당하는 흙수저 변호사이며, 서 원장은 동물원 운영에 실패한 경영인이다. 또 해경과 건욱은 사랑에 실패하고 좌절하는 청춘들이다. 이들은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동물원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교감하고 연대한다.

영화의 발상은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등장하는 캐릭터나 이들이 선사하는 유머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영화다. 태수가 위기의 동물원을 맡게 되는 과정과 회생시키는 방식에서는 유머와 풍자가 공존하는 연출을 보여준다.

해치지 않아

또한 동물원을 인수하고 되파는 과정에서 기업 윤리나 도덕성을 넌지시 비판하기도 하고, 동물원의 존재 이유와 동물권에 대한 유의미한 질문도 던진다.

코미디의 웃음은 단기간에 휘발되는 속성을 띠지만 '해치지 않아'는 웃음 뒤에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남겨둔다. 이를테면 '동물원은 어떤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나', '동물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무엇일까'와 같은 생각들 말이다.

'해치지 않아'는 무리수 넘치는 유머와 억지 감동 없이도 건강한 웃음과 건전한 메시지를 선사하는 착한 코미디 영화다.

안재홍의 연기는 황당한 소재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 캐릭터를 계산기 두드리듯 분석하지도, 연기를 만들어내서 하지 않는다는 건 안재홍만의 장점이다. 영화 '족구왕',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멜로가 체질'로 이어지며 단단하게 구축한 특유의 연기 색깔은 '해치지 않아'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 느낌이다. 그의 코미디 연기는 대사를 치는 방식부터 리액션하는 형태까지 이상한 리듬과 온도가 있다. 그 이상함이 안재홍만의 특별한 개성이다.

해치지 않아

손재곤 감독은 '달콤살벌한 연인'(2006), '이층의 악당'(2010)을 만든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 두 남녀가 만나 우여곡절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이야기에 희극적이고 재치있는 대사를 더한 장르)의 인재다. 코미디 한 우물만 파며 충무로에서 다소 평가절하 돼왔던 장르를 재기와 총기로 업그레이드 시켜왔다.

'해치지 않아'는 손재곤 감독이 '이층의 악당' 이후 무려 10년 만에 발표한 신작이다. 물론 '해치지 않아'가 그의 최고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상한 리듬으로 터지는 독특한 유머의 날은 전작에 비해 무뎌보인다. 변용폭이 넓지 않은 소재의 한계 때문인지 결말 역시 평범하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감독의 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 코미디 장르 외길을 가는 감독이 충무로에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이 귀여운 코미디 영화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이유다.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