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우디 앨런 영화에 대한 물음표

작성 : 2020-05-06 17: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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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우디 앨런 영화에 대한 물음표
레이니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우디 앨런의 영화를 봐야 할까?'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작품에 대한 호기심 앞 뒤로 이 같은 내적 갈등이 따라붙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새삼스레 우디 앨런 영화의 가치나 재미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편차는 있을지언정 그는 언제나 자신만의 언어로 삶과 인간을 이야기해왔다.

우디 앨런의 신작이 오늘(6일)부터 관객과 만난다. '개봉'의 의미마저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이 영화가 자국인 미국에서 조차 2년 동안 개봉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배급사 아마존 스튜디오는 우디 앨런과 '카페 소사이어티'(2016)를 작업한 후 4편의 영화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우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계약 이후 내놓은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2017년 우디 앨런의 수양딸 딜런 패론이 "7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그는 영화계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였다.

아마존은 미투 논란 이후 우디 앨런과의 연출 계약을 파기했고,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미국 개봉도 사실상 포기했다. 반면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는 먼저 선을 보였다. 한국의 수입사 역시 개봉 행렬에 동참했다. 누군가는 환영하지 않을 것이 명백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개봉이다.

과연 영화와 영화를 만든 이를 분리해서 볼 수 있을까. 이 담론을 잠시 유보하고 영화를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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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뉴욕의 하루…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개츠비(티모시 샬라메)는 어머니의 소개로 만난 같은 대학교 친구 애슐리(엘르 패닝)와의 연애에 푹 빠져 있다. 대학 신문사에서 일하는 영화광 애슐리는 유명 영화감독 폴라드(리브 슈라이버)와의 인터뷰를 위해 뉴욕행을 결심한다.

애슐리의 뉴욕 여행에 동행한 개츠비는 연인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완벽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애슐리의 인터뷰 일정이 꼬이면서 개츠비의 계획도 엇나가기 시작한다.

애슐리는 폴라드를 비롯해 시나리오 작가 테드(주드 로), 유명배우 베가(디에고 루나)를 만나게 되고 극적인 하루를 보내게 된다. 여자친구의 부재 속에서 개츠비도 전 연인의 동생 챈(셀레나 고메즈)과 우연히 만난 후 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우디 앨런의 여느 영화가 그러하듯 예측 불가능한 사건의 연속이다. 주인공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우연인지 필연일지 모르는 만남이 이어진다.

게다가 뉴욕이다. 약 10년 여에 이르는 유럽 유랑을 마친 우디 앨런은 다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 비 오는 뉴욕의 무드와 어우러진 영화는 미학적으로는 아름답고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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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디 앨런은 티모시 샬라메에게 빚졌다

삶과 인간에 대한 독설과 냉소는 우디 앨런만의 강렬한 영화 언어다. 또한 인생의 불예측성과 불가항력성은 그의 영화적 아이러니를 형성하는 근간이다.

우디 앨런이 만든 대다수의 영화들은 시시껄렁한 농담과 반복되는 우연이 만들어낸 어떤 질서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흥미로운 규칙성이나 공감을 부르는 통찰 같은 것이 부족하다.

중반 이후 개츠비와 애슐리가 보여주는 이상한 객기와 진지한 궤변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기도 한다. 노인네의 낡은 사고를 청춘 배우들의 건강한 육신에 투과시킨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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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는 티모시 샬라메의 매력에 크게 기댄 모양새다. 21세기를 살면서 20세기의 낭만을 예찬하는 몽상가 역할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싶다. 매력적인 배우가 시들시들한 영화 한 편에 어떠한 생기를 불어넣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엘르 패닝, 셀레나 고메즈 역시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활기 넘치는 연기로 입체성을 부여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그의 영화'는 놓지 못하겠다

우디 앨런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연간 한 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왕성한 창작욕이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블루 재스민', '카페 소사이어티'와 같은 근사한 영화를 완성하는가 하면 '이레셔널 맨'과 '매직 인 더 문 라이트' 같은 범작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의 편차를 떠나 우디 앨런의 영화는 그만의 미덕이 분명하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역시 뚜렷한 미학과 재미가 있다. 비 오는 뉴욕의 정취와 우아한 재즈가 어우러진 분위기 속에서 나른하게 유영하는 듯한 배우들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의 시간은 물 흐르듯 흐른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동어반복과 자기 복제 같은 서사와 궤변과 억지라고 해석될 수 있는 대사의 향연 속에서도 특유의 언어유희와 유머에 어쩔 수 없이 키득거리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것 중 하나는 '사람 구경'이며 우디 앨런의 아바타들에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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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디 앨런의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안타까운 것은 티모시 샬라메와의 협연이 단발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디 앨런의 미투 논란 이후 그와의 작업을 후회한다고 밝혔고, 출연료를 모두 성폭력 공동 대응 단체에 기부했다.

젊고 매력적인 페르소나가 될 수 있었던 배우와의 만남은 우디 앨런의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영화 속 애슐리의 어리석은 선택이 빚어낸 결과처럼 말이다.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