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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가깝고도 먼"…'초미의 관심사'-'침입자', 가족의 변주

작성 : 2020-06-02 10:20:09

조회 : 358

가족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가족이란 네가 누구 핏줄이냐가 아니야. 네가 누구를 사랑하느냐는 거야."

영화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트레이 파커의 말처럼 더 이상 현대 사회에서의 '가족'은 피의 굴레 안에만 가둘 수도, 가둬서도 안될 것이다. 피로 엮인 사이가 남보다 못할 때도 있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인간관계가 가족보다 더 강한 애착과 결속력을 보여줄 때도 있지 않은가.

보편적으로 가족은 인간에게 가장 친밀한 존재이며 가장 두텁고 견고한 울타리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 가족은 가깝고도 먼 존재이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 가족의 기능과 역할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가족의 형태와 의미를 비튼 어떤 영화들을 통해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면을 들여다봤다.

초미

◆ "가족은 다 같아야 하니?"…초미가 던진 화두

이태원에서 '블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순덕(김은영)에게 성격 차이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엄마(조민수)가 찾아온다. 동생 유리(최지수)가 엄마의 가겟세와 순덕의 비상금을 들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집 나간 막내를 찾기 위해 의기투합하고 유리의 발자취를 따라 이태원 곳곳을 누비기 시작한다.

극 중 조민수의 이름인 동시에 매우 절박하고 숨 가쁜 상황을 뜻하는 말이기도 한 '초미'를 '관심사'와 합치니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 제목이 완성됐다.

'초미의 관심사'를 한국판 '탠저린'(2015)으로 부른다면 과한 비교일까. '탠저린'은 '플로리다 프로젝트', '미드 90's'로 주목받은 션 베이커 감독의 데뷔작이다. 아이폰으로 촬영한 이 영화는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선명한 메시지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탠저린

'탠저린'이 두 얼굴의 도시 LA 길바닥에서 벌어진 별안간의 해프닝을 감각적으로 담아낸 것처럼 '초미의 관심사'도 공간 자체가 일종의 복합문화공간 같은 이태원을 배경으로 하루 동안 벌어진 예측불가의 상황을 담았다.

아마도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영화의 주 무대로 등장한 첫 번째 한국 영화일 것이다. 이태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며 그로 인해 파생된 다채로운 문화가 뒤섞인 공간이다. 자유로움과 다채로움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태원은 편견과 선입견도 많은 곳이다.

'초미의 관심사'는 명과 암이 뚜렷한 이태원을 무대 삼아 영화를 시종일관 유쾌하게 끌고 나간다.

초미

큰 틀에서는 엄마와 딸의 관계 회복기를 다룬 작품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보다 포괄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연대다. 특히 여성, 성소수자, 외국인 등 약자와 소수자가 손잡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왁자지껄한 풍경이 따스한 온기가 돼 이야기의 온도를 높인다.

이들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류는 아닐지라도 각자의 인생에 있어서는 주인공이다. 인물을 담은 카메라의 시선과 감독의 연출은 그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실력파 래퍼로 유명세를 떨친 치타는 '김은영'이라는 본명으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으로 영화에 잘 어우러졌다. 뮤지션이라는 직업과 자유분방한 캐릭터가 순덕 그 자체로 보인다. 뜻밖의 보너스처럼 노래하는 치타의 모습도 등장한다. 신인 배우 김은영의 신고식과 베테랑 뮤지션 치타의 활약 그 두 가지를 모두 만날 수 있다.

초미

타이틀롤을 맡은 조민수는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영화에 쏟아부었다. 누구와도 같지 않은 조민수의 개성 있는 연기는 남과 다른 삶을 살고,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초미의 캐릭터를 보다 풍성하게 완성시켰다. 구구절절한 전사(前史) 없이도 캐릭터의 현재는 물론 과거까지 엿본 느낌이다.

영화를 연출한 남연우는 배우 출신이지만 연기보다는 연출에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연출 데뷔작 '분장'에 이어 또 한 번 소수자를 향한 사려 깊은 시선을 보여준다.

'초미의 관심사'는 제작비 10억이 채 되지 않는 저예산 영화다. 독립영화의 당찬 패기, 투박하되 꾸미지 않아 더 예쁜 진심이 느껴진다.

침입자

◆ '침입자'의 살풍경…익숙하면서도 낯선 '가족'

사고로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건축가 서진(김무열)에게 25년 전 실종된 동생을 찾았다는 연락이 온다. 서진은 처음 본 자신을 친근하게 오빠라고 부르는 유진(송지효)이 어딘가 불편하고 어색하다.

유진이 집에 돌아온 이후 가족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서진은 의심스럽게 보이는 유진의 비밀을 쫓기 시작한다.

침입자

소설 '아몬드'로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손원평 작가의 연출 데뷔작이다. 등단 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단편 영화를 여러 편 연출하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워온 손원평은 10여 년 만에 연출 데뷔에 성공했다.

"가깝고 보편적인 주제가 조금만 뒤틀렸을 때 오는 스릴이 흥미롭다"고 밝힌 손원평 감독의 말을 생각하면 '가족'이라는 주제는 정(情)의 근간이기도 하면서 때론 한(恨)의 대상이 되기도 한 것처럼 보인다. 보편적인 소재를 비틀어 스릴러 장르와 결합한 시도는 좋다.

침입자

영화는 오랫동안 찾아 헤맨 가족과의 재회와 목적을 가지고 집안에 침투한 외부인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중반까지는 비교적 긴장감을 잘 유지한다.

그러나 중반 이후의 전개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반전의 충격 지수는 높지만, 앞 뒤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는 유기적으로 기능하지 않아 갑작스럽다는 인상이 짙다. 초중반에 복선을 치밀하게 깔거나, 반전이 오픈된 이후의 서사를 보다 촘촘하게 가져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본인이 가진 역량에 비해 과소평가되어 왔던 김무열의 내면 연기가 돋보인다. 아내 잃은 슬픔과 딸의 변화에서 오는 혼란, 동생에 대한 의심 등 묘사하기 쉽지 않은 감정들을 결을 달리하며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ebada@sbs.co.kr